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16화 (116/237)
  • 116화. 21살, 테슬라를 품다

    2005년 7월 첫째 주.

    [쇼팽 콩쿠르 한국 드림팀 결성! 유한강 한리버 회장을 필두로 총 6인이 뭉쳤다.]

    [6인은 쇼팽 콩쿠르 본선 진출을 기념해 음반을 내기로 하였다. CD 한 장에 6인의 곡이 담기며 마지막 한 곡은 합동연주곡이 수록될 예정이다.]

    6인의 음반이 발표됐다.

    따라라라라.

    “음......”

    눈을 감고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며 피아노 연주를 듣던 한강의 눈썹이 꿈틀댔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간혹 튀어나오는 버릇이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피아노 연주를 끝낸 정민이 한강을 응시했다.

    ‘어때?’ 하는 눈빛이 던져졌다.

    “분명 모든 게 완벽해요. 콧대를 세울 만하고. 하지만... 정민 씨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알고 있나요?”

    한강은 고개를 가로저어 정민의 기대를 무너트리는 말을 꺼냈다.

    “제가 그걸 모를까 봐서요?”

    “기분 나빠하지 말고 내 질문에 답해 주세요.”

    한강의 눈이 매서워졌다.

    “쇼팽 발라드에서 첫 번째 곡이고 쇼팽의 자유롭고 섬세함을 보여주는 곡이에요.”

    “아주 잘 알고 있네요. 그런데 말이에요. 연주를 할 때 전 그걸 느끼지 못했어요. 누구와 경쟁을 하기 위한, 보여주기 위한 곡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선율은 거칠지만 아름답게 들려왔다.

    하나 곡에서 느껴지는 건 오로지 질투였다.

    자랑하고 우쭐하고 싶은 심정이 고스란히 곡에서 전달됐다.

    “난 말이죠. 어떤 대회이든 심사이든 지금처럼 음반을 제작하기 위함이든 곡이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의 전달은 무시하면 안 된다 봐요. 나만의 연주를 하되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정민 씨가 경쟁이란 압박을 내려놓고 좀 더 자유롭게 10대의 혈기를 보여줬음 해요.”

    “......”

    정민은 할 말을 잃었다. 분명 곡을 칠 때, 잘 보여야 한다는 욕심이 손끝에 모였다.

    “제가 이런 말을 하기에 오버스럽긴 하지만, 어디서든 자신만의 연주를 하세요. 압박과 경쟁을 지우고 오로지 곡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생각으로 연주하신다면 한 걸음 더 정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지막 말은 모두에게 한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연주를 할 때는 오로지 연주에만 집중해 곡을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또한 마음을 담았다.

    “주제넘긴 했지만, 다시 한번 갈게요.”

    방금 연주한 곡을 지우고 다시 연주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일은 모든 사람들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반복됐다.

    헉헉.

    누군가의 거친 숨이 들리는 거 같다.

    공기는 축축하게 습기로 들어찼지만, 사람들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따라라란.]

    귀로 들려오는 곡소리.

    한강이 오케이한 곡들로 이뤄진 피아노 연주가 스피커를 통해 흘렀다.

    “모두 고생했어요.”

    며칠은 걸려 완성한 음반.

    한강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보냈다.

    불만이 많다는 눈빛을 보내며 조금은 삐뚤어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모두 잘 따라와 주었다.

    “이 곡은 오늘을 잊지 않게 해줄 거라 봐요. 모두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랍니다.”

    고맙다는 구차한 말은 하지 않았다.

    본선에서 지금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보자 말하고 자리를 끝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김동진에게 받아든 수건으로 목가에 맺힌 땀을 닦고, 음료를 들이켰다.

    “크아, 좋다.”

    목을 긁는 시원함이 입을 통해 감탄성을 터트렸다.

    까끌까끌한 탄산에 구수한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미국행은 어떻게 됐어요?”

    “이틀 뒤 일정을 잡았습니다.”

    음반 작업이 끝났으니 다음 일정을 소화할 차례이다.

    “제가 없는 동안 윤희를 부탁할게요.”

    한국에 믿고 맡길 사람은 많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가장 빨리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김동진으로 뽑았다.

    그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상시 핸드폰을 옆에 두고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출산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배는 2세의 탄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왔다.

    ***

    “내일 미국 간다고?”

    “네, 장인어른.”

    “윤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집에 혼자 있을 딸이 걱정됐다.

    이건호는 어떻게 대비를 하였는지 물었다.

    “집에서 운동하며 지내고 있어요. 옆에는 아주머니가 붙어 있습니다. 또한 김 실장에게 부탁해 윤희를 챙겨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음...... 그래. 잘했구나.”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근방에 응급후송 차량도 배치해 두었으니, 안심하셔도 되세요.”

    부모의 마음은 같으리라.

    한강은 위험요소에 대한 방비를 갖춰 두었다.

    윤희의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허허.”

    이건호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시집을 아주 잘 보냈다.

    “그래, 그건 그쯤하고. 무슨 일로 찾았지?”

    “장인어른께 허락받고 요리하시는 분께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허락? 부탁?”

    자신에게 어떤 허락을 구하고 요리하는 사람에게 어떤 부탁을 하려는 건지, 이건호는 궁금함이 깃든 시선으로 변했다.

    “앞전에 말씀드린 일에 대한 건입니다. 장인어른을 생각해 식단을 맞춰볼까 하는데, 아무래도 장인어른은 제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드시고 싶은 것만 드시고 계실 거 같아서요.”

    이건호의 심장이 뜨끔했다. 숨기려고 애써 모른 척하려 하지만 얼굴엔 못마땅함과 당혹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내 알아서 한대도.”

    “음, 역시. 안 됩니다. 장인어른의 건강이 좋지 않으면 기업을 떠나 윤희와 가족에도 영향을 끼칠 거예요. 전 윤희의 슬픈 모습을 보기 싫어요.”

    “사람은 언제고 가게 되어있어.”

    “그 기간을 뒤로 미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내가 죽으면 너의 재산도 늘 터인데?”

    “재산은 충분합니다. 장인어른보다 제가 돈은 더 많습니다.”

    “...... 내 먹는 낙을 뺏어야 속이 후련하겠더냐?”

    부리부리한 눈이 한강에게 향했다. 눈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고집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이건 장인어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칩니다.”

    당장은 모른다. 죽기 전까진.

    그 씁쓸하고 허무한 순간을.

    “못된 놈.”

    “먼 날 제가 고마울 때가 있을 겁니다.”

    한강의 눈은 변함없었다. 누구의 고집이 더 센지의 결투. 그간 배려를 해주어 그렇지, 한강의 고집은 황소보다 더 질겼다.

    “하아...”

    이건호의 입에서 한숨이 터졌다.

    “알아서 하거라. 끙.”

    10분간 이어진 눈싸움의 승자는 한강이 되었다.

    “운동 일정도 짜놓으라 일러 놓겠습니다.”

    “......?!”

    “골프도 운동이지만, 다른 운동도 함께 병행하시면 좋을 겁니다.”

    태연하게 말하는 한강의 모습은 이건호의 눈에 불길이 일게 했지만.

    “손주가 결혼하는 건 보셔야죠.”

    “...... 망할 것.”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주에 고집이 꺾였다.

    “허락하신 걸로 알고 식단을 짜라 이르겠습니다.”

    “......”

    이건호는 분한 얼굴로 밖으로 나가는 한강을 응시했다.

    앞으로 찾아오게 될 우울함을 떠올리며...

    “정말 이대로 준비하면 되나요?”

    주방으로 향한 한강은 주방을 담당하는 아줌마에게 종이를 건넸다.

    종이를 받아 내용을 확인한 여성은 크게 당황한 눈을 한강에게 던졌다.

    [매일 챙겨야 할 음식.]

    [사과, 아보카도, 오트, 레드와인, 연어, 토마토, 레드비트...]

    [빼야 할 음식.]

    [기름진 육류, 짠 음식, 정제된 곡물...]

    [쌀량을 줄이고 현미를 늘려 섞어 밥을 지을 것.]

    “고기를 빼라니...”

    아줌마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것 중 하나가 고기였다.

    이건호 회장이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고기를 완전히 빼지 않았어요. 저기 있잖아요. 고등어랑 연어.”

    “......회장님이 과연 이걸 드실지는.”

    “드실 겁니다. 배고파서.”

    “......”

    이건호가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아는 그녀로선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주문이었다.

    “정말인가요?”

    엿 먹이는 건 아닌지 걱정마저 들었다.

    한강의 성격을 아는 그녀이지만 믿기 힘들었다.

    “네. 혹여 문제가 있다면 제게 말해 주세요. 달려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묻는다면 실례.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부탁할게요. 그리고 이건 약소하지만.”

    마음이 듬뿍 담긴 십만 원 수표 두 장을 건넸다.

    “필요한 데 쓰세요. 수고하세요.”

    한강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무 일 없겠지?”

    떠나는 한강을 보며 아무 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날 저녁 육성저택의 저녁 시간.

    “......”

    “......”

    “......”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황당함이 가득한 눈으로 식탁을 바라봤다.

    현미밥은 둘째치고 모든 메뉴가.

    “싱거워.”

    “고등어.....?”

    다른 날과 다른 음식과 간이 되어 있지 않은 반찬은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게 하였다.

    “아줌마, 이게......”

    홍라혜가 아줌마를 불러 뭐라고 하려는 순간.

    “내가 시켰어. 이제 건강에 신경 써야지... 그냥 먹어.”

    “여보?”

    “아빠...”

    이건호의 음성에 정적이 흘렀다.

    “막냇사위가 다음 주에 해외에서 복귀를 한다더군. 한국 음식이 그리울 거야. 초대해서 같이 먹지.”

    “......”

    “......”

    그제야 이게 누구로 인해 발생한 문제인지 알았다.

    식구들은 생각했다.

    ‘무서워.’

    그리고 이건호는.

    ‘망할 녀석. 절대 혼자 죽을 순 없다.’

    복수를 계획했다.

    ***

    쉬이이이이이이이이.

    에취!

    “어제 너무 춥게 잤나.”

    비즈니스석에 자리한 한강은 터진 재채기에 얼얼한 코를 매만지며 인상을 구겼다.

    “그건 그렇고 정말 빠르구나.”

    1985년에 눈을 떠 아이의 아빠가 되는 2005년.

    전생에도 느꼈지만,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모두가 오랜 시간 아무 일 없었음 좋겠어.”

    점이 되어 보이는 대지를 응시했다.

    어느덧 미국에 도착했다.

    시간 만큼이나 도착도 빨랐다.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낮췄다.

    안내 방송에 따라 착륙준비에 들어갔다.

    ***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본사.

    “또 실패야.”

    배터리에 불이 붙었다. 소화기 분말을 이용해 간신히 불을 껐다.

    “하, 정말 미칠 노릇이야.”

    검게 그을린 주변을 보며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헝클어지는 머리칼 사이로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벌써 3만 달러가 적자라고.”

    마틴 에버하드가 크게 탄식했다. 한 번에 성공하리라 보진 않았지만, 배터리 개발이 이리도 장기화로 접어들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의 성과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약간의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왔어.”

    정말 목구멍 끝까지 밀려왔던 말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뱉어냈다.

    그만큼 테슬라의 사정은 너무도 좋지 못했다.

    자금은 한정이고 투자유치도 쉽지 않은 상황에 계속된 실패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냥 전자책이나 팔아먹을 걸 그랬나.”

    이쯤 되니 그나마 잘나가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버나드 체는 작게 중얼거렸다.

    “좀 쉬자고.”

    “그러지.”

    마음이 지치니 머리가 굳었다. 잠시간 휴식이 필요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그때였다.

    “당신은......?!”

    “......?!”

    아주 익숙하고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한리버 유한강 회장이 해맑게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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