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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15화 (115/237)

115화. 21살, 음반

아주 잘 아는 술집이란 곳이 호텔이었다. 호텔에서 거하게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실히 기억났다.

[사람은 말이야, 영원한 생은 없어......]

흐릿한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각인된 말들.

[꿈을 꾸었단다. 병들어가는 내 자신을 보았지. 허허......]

“미리부터 준비하는 건가......”

잡을 수 있는 병이 있고 아닌 병이 있다.

[장인어른 이제 붉은 고기는 피하시고, 짠 음식을 줄이세요. 밥은 현미랑 섞어 드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를 해주었다. 의류기술이 많이 발전했다 한들 한 번 망가진 몸은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그 전에 막고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잘됐음 좋겠는데, 말이야.”

어제 보인 행동은 어떤 징조를 느꼈기 때문일지 모른다. 단순히 꿈으로 치부하기 힘들다 여겼다.

“큰형님이 본격적으로 나선 시기가 2014년이었지. 다음 해에 모직과 물산을 합병하고 시기에 맞춰 장인어른은 퇴장하던 시기......”

육성은 국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만큼 적도 많았다.

수시로 재판을 받는 모습이 그 증거.

“윤희가 슬퍼하는 모습은 역시 볼 수 없어. 오늘 이태원에 들르자. 그보다 너무 마셨어.”

쓰린 속을 손으로 문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어? 거기 테이블에 꿀물 있으니 마셔.”

윤희의 배는 이제 큰 동산을 이뤘다.

더는 출근하기 힘들어진 윤희는 육아휴직을 내고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아? 미안.”

“됐어. 아빠랑 마신 술인데.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술주정도 안 부리고, 그 정도면 합격점.”

손으로 허리를 잡고 있는 모습, 확실히 힘에 겨운 모습이다.

“이따 이태원에 들를 거야. 그래서 조금 늦을 수 있어.”

“알았어. 아줌마랑 같이 있을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윤희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김 실장님, 다음 주 미국 일정 잡아주세요. 테슬라로 갈 겁니다.”

테슬라를 인수할 시기가 찾아왔다.

김동진에게 일정을 잡고 비행기 표를 예약하라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조회 수: 5,345,650회]

“와우......”

얼마 전 찍은 광고 영상 조회 수다.

평가도 후했다.

└ 이미영: 오늘도 전 쇼팽을 듣고 잡니다.

└ 한소라: 무슨 광고가 이래... 넘 듣기 좋아서 계속 보게 돼...

“감사한 분들이야. 내 모든 걸 좋아해 주니.”

사랑을 받는 건, 참으로 좋은 기분에 취한다.

더 열심히 해야겠단 의욕이 마구 샘솟는다.

똑똑.

시선이 앞으로 당겨졌다.

“들어오세요.”

유길섭 월드 플레이 대표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좋은 아침이에요.”

일어나 유길섭을 반겼다.

“어쩐 일이세요?”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는 건 결재를 위해 들린 건 아니란 소리가 되었다.

“제가 요즘 회장님께 터무니없는 부탁을 계속 드리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유길섭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머쓱한 얼굴은 연분홍빛을 냈다.

“편하게 말하세요. 제가 그렇게 부담스러운 얼굴도 아니잖아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그럼 과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이번에 음반을 내보심이 어떠십니까.”

“음... 반요?”

“네, 엔터 사업을 시작한 이상 음반사업도 나쁘지 않다 봅니다. 무엇보다 회장님은 이미 퀸 엘리자베스에서 수상 경력도 있고 쇼팽 본선까지 진출하셨고. 충분히 자격이 된다 봅니다.”

“허, 허허...”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다.

“회장님의 음반 반응이 좋다면, 이번에 참여한 한국인 수상자들의 음반을 제작한다면 꽤 좋은 호응을 받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흐음...”

다른 사람들까지라.

생각이 동했다. 공항에서 있던 그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떠올리니 사기를 북돋아 주고 싶었다.

자신이야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환생한 케이스.

하지만, 그들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하여 어린 시절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쇼팽 콩쿠르 본선 진출 기념으로 다 같이 만든다면, 나쁘지 않겠어.’

생각을 정리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세요. 여러 음반을 제작할 필요 없이 하나의 CD 안에 본선 진출자 곡을 담기로 해요.”

“네, 그건...”

“시작도 하기 전에 서로를 견제하고 경쟁심을 심어주기보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보듬어 주고 의욕을 불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좋아 보여요.”

작은 마음을 뱀심이라 한다. 이 마음이 커지면 범죄로 이어지고는 했다.

한강은 이런 건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곳에 집중된 관심 또한 원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을 완전히 지울 수 없지만, 그러한 상황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함께 하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수익분배도 공평하게 나누는 건 잊지 마시고.”

하기로 했으면 완벽하게 잡음 없이 하자.

한강은 최종 승인을 해주었다.

***

딩동댕동 딩동댕동.

수업이 끝난 시각.

학생들은 가방을 메고 교실에서 도망쳐 하굣길에 올랐다.

“야! 야! 차정민!”

멀리서 한 남학생이 목에 핏대를 세워 교문을 통과하는 남자를 불렀다.

“응?!”

정민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멀리서 뛰어오는 남자를 바라봤다.

“뭐야, 담탱에게 끌려간 거 아니었어?”

“히히. 제꼈지.”

너무도 태연하게 웃어 젖혔다.

“미친놈.”

그 모습에 혀를 내둘러 고개를 홱 돌려 걸음을 옮겼다.

남학생과 한 발짝 떨어져 걸었다.

“야 매정하게 그러기야. 내가 좋은 정보 물어와서 이렇게 달려왔는데.”

섭섭하다는 눈빛으로 정민을 응시했다.

기가 살던 목소리가 메말라 갔다.

“...끙.”

검지로 미간을 꾹 누르며 재촉하던 걸음을 멈추고 남학생을 바라봤다.

“뭔 소식인데.”

“오, 이제야 반응을 보이네.”

“빨리 말해, 나 시간 없어. 콩쿠르 준비해야 돼.”

정민은 돌아오는 국내 최연소 쇼팽 콩쿠르 본선 참가자이다.

연습 일정이 잡혀 서둘러 집으로 가고 있던 차였다.

“한리버 월드 플레이에서 음반을 만든대.”

“...뭐야. 나랑 관련 없는 얘기에 시간을 뺏은 거야?”

멈춰있던 시간이 너무도 아까웠다.

지금쯤이면 백미터는 더 가고도 남았을 거리였다.

“야, 뭔 상관이 없어. 잘 들어봐봐. 완전 빅뉴스니깐.”

“......”

정민은 입을 다물고 친구를 응시했다.

그리고 눈으로 말했다.

헛소리면 각오하라고.

“음반 제작에 본선 진출자들 전부를 담고 싶대. 제작비는 유한강 회장이 전부 대고. 수익은 공평하게 엔 분의 일. 대박 아니냐?”

“그걸 누구한테 들었어?”

“당연 교무실 갔다가 담탱이랑 이야기하는 아저씨에게 들었지.”

“진짜야?”

“그렇다니깐. 어때 내가 막 존경스럽지?!”

가슴을 활짝 열어 코를 쓱 닦았다.

“아니, 왜? 무슨 이유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돈 쓸 일이 그렇게 없는 걸까?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마지막은 상세하게 듣진 못했는데, 그 뭐라더라. 단결도 하고 각자의 연주를 들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도 같고 이걸 계기로 목표를 잃지 않았음 한다고 그러는 거 같았어.”

남학생은 최대한 들은 기억을 떠올려 밖으로 끄집어냈다.

“......”

“낼 선생님이 부를 거야. 그것 때문에.”

“나 먼저 간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민은 등을 돌렸다.

마침 택시가 지나갔다. 손을 벌려 택시를 잡았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긴. 그렇게 시샘하던 녀석이 귀가 팔랑거리는 모습이라. 쯧쯧. 저리도 피아노가 좋을까.”

무시하고 지나가는 정민이지만, 애초에 이럴 줄 알았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모습이 더 보기 좋다 여겼다.

“나도 갈까...”

지이이이이이잉.

교복 주머니가 부르르 떨었다.

[담탱이.]

“아... 받아야겠지...?!”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개를 떨구고 전화를 받았다.

---승우야, 설마 선생님의 가르침을 회피하기 위하여 교문을 통과한 건 아니겠지?

“......”

---오늘 승우를 보지 못하면 선생님이 막 질투 나서 내일 더 집착할 거 같은데?

“지, 지금 가고 있습니다! 교문이라뇨. 큰 게 급해서요. 이것만 해결하고 금방 가겠습니다!”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에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당장 튀어 오지 않는다면 내일은 지옥을 경험해야 할지 몰랐다.

승우는 ‘에이씨!’ 후회로 물든 얼굴로 황급히 통과한 교문을 지나 교무실로 달렸다.

***

[따라라라. 안녕하세요. 기분 좋은 방송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차량 라디오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강은 눈을 감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귀에 담았다.

[요즘 아주 핫한 곡을 들고 왔답니다. 동영상 조회 수 5백만 회를 넘긴 한리버의 광고 곡 쇼팽 에뛰드 OP. 10-3, 제가 이 연주를 듣고 얼마나 감탄했는지 몰라요.]

방송에서 한강이 연주한 곡을 극찬했다.

[모두 아실지 모르겠어요. 이 곡은 이별의 노래라 알려졌는데 사실은 다르답니다.]

감겼던 한강의 눈이 떠졌다.

[일본이 20세기 초에 독일에서 만든 영화의 제목을 따서 이별이라 지었어요. 이때부터 우리나라도 일본을 따라 이별의 곡이라 불렀어요.]

끄덕.

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아는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진 슬픔에서 작곡한 걸로 알려진 이 곡은 그럼 어떤 의미를 두고 있을까요? 그건 바로......]

“......조국 폴란드를 그리워하며 만든 애국의 마음을 담은 곡.”

[...이에요. 이 사실을 아는 건지 노래에서 그리움이 그대로 전해 오는 거 같아요.]

한강은 시선을 창 너머로 던졌다.

[......그럼 우리 함께 감상해 볼까요. 쇼팽의 그날을 떠올리며...]

따라라♪

높은 건물들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감상했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옆으로 스윽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강이 걸어 나왔다.

“먼저들 오셨네요. 오랜만이에요.”

걸음을 옮기자 앞쪽에 쇼팽 콩쿠르 본선에 진출하는 다섯 명의 인원이 대기해 있었다.

“사전 동의도 없이 먼저 계획을 잡고 갑작스레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모인 사람들을 향해 머리를 내렸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

한강의 행동에 사람들은 허둥대며 손사래를 쳤다.

공항에서 보아온 행동과 많은 부분에서 달라진 모습이다.

‘에뛰드를 그렇게 잘 치는 사람이 어딨냐고. 정말 사기야.’

‘이 사람은 인정해야 돼.’

모두는 편집이 되지 않은 풀영상을 월드 플레이를 통해 감상한 바 있었다.

그걸 듣는 순간, 사람들은 기가 확 꺾였다.

그런 상황에 음반 제작을 하고 싶다는 한리버의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전과 다른 감정을 품고 한강의 말을 기다렸다.

“제가 이번 기획을 짠 이유는 저는 여러분과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

사실과는 다르지만, 마지막 방향은 같기에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은 지우고 전하고픈 메시지만을 공개하였다.

“이번 인연을 길게 가져가고 싶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만큼 길게 이어질 인연도 없을 거다.

“그리고 한국에 뛰어난 음악가가 많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지금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조금 그렇지만. 저와 함께 한국의 음악을 세계에 알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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