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13화 (113/237)

113화. 21살, 역사는 미래의 정답지다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 30대 남성은 불만이 가득한 시선으로 조판서를 응시했다.

“우린 판삽니다. 법은 우릴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권한입니다. 어째서 그깟 기업인의 말에 놀아나십니까!”

남자는 억울하고 분함을 목소리에 담았다.

“어디서 큰소리야!”

목청을 높이는 후배의 모습에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손바닥의 얼얼함보다 속에서 타오르는 뜨거움이 머릿속으로 강하게 전달됐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유 회장의 말을 듣고 너에게 다른 말을 하는 걸로 보였더냐?”

어느 누구보다 노력하여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판사라는 고귀한 자리에 앉은 이의 모습이 너무도 어리게 다가왔다.

‘허허... 유 회장이 더 법조인으로 보이는 꼴이라니.’

헌법을 운운할 때, 깜짝 놀랐다.

과연, 헌법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법조인은 얼마나 익히고 있을까?

조판서는 목에 힘을 풀고 입을 열었다.

“법이란 도덕성을 기초로 한다더군. 넌 어떨까? 만약에 네가 그 일에 휘말린 운전자고, 내가 너에게 유죄를 내린다면 너는 내 판결을 순순히 따를 거냐?”

“그것과 이건 다릅니다. 전 그런 일은 벌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질문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군. 난 자신 없어 말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회장실에서 급히 벗어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법조인이 법에 관련된 이야기에서 꼬리를 말았다.

그보다 더 창피한 일이 있을지 싶다. 더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존심이 무척 상한 얼굴이다. 남자는 조판서의 말에 굴복하지 않았다.

“음......”

“그리고 제 주변엔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전방을 주시했다면... 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드르륵.

의자가 뒤로 밀렸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

버릇없는 행동인 걸 알지만, 남자는 그런 예의는 가뿐히 무시했다.

‘돈을 받은 거야. 분명해. 시XXX.'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 저리 순순히 물러설 이유 따위 없었다.

적어도 자신 만큼은 정당하고 깨끗하다 여겼다.

남자는 불쾌한 감정을 들고 방을 나섰다.

“쯧쯧, 어리석은 녀석. 분명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길 거야.”

조판서는 나간 남자의 뒷모습을 좇다 시선을 거두었다.

저런 타입은 직접 겪지 않고선 설득이 불가능했다.

입맛이 썼다. 빌어먹게도.

***

저녁 9시, 주변에 가로등이 많지 않아 사위(四圍)는 무척 어두웠다.

사물조차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다.

“시골은 시골이야.”

도심과 달리 시골의 저녁은 무척 조용했다. 풀벌레 소리가 창을 뚫고 들려왔다.

운전대를 잡은 60대 남성은 허허 웃으며 조심히 차량을 몰았다.

“공기 참 좋죠.”

조수석에 앉은 여성은 창문을 열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시골의 모습을 조용히 감상했다.

“예전엔 소똥 냄새가 대수롭지 않았는데 말이야.”

“맞아요.”

젊었을 당시 세상은 무척 가난했다. 먹고 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던 시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을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아이들은 당시의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할 터다.

“시간이 빨라. 우리가 벌써 육십 줄이라니 말이야.”

“정말 그래요. 때론 그때가 그립기도 해요. 먹고 살긴 힘들었지만...”

과거의 노력은 나이를 먹어 나름 성공이란 문턱을 넘어 노후를 보장받게 되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 추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제대로 놀아 보지도 못하고.

그래서일까? 때론 젊었던 10대, 20대 당시가 무척 그립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떠올리며.

쿵!

“어?! 방금 뭐였지?”

정면을 주시하고 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보. 사... 사람이 여... 옆에...”

차에서 느껴진 떨림이 안으로 전달됐다.

여성은 열린 창문으로 밖으로 쳐다본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됐다.

바닥에 쓰러진 남성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 어쩌지. 1, 119. 119를 불러.”

방금까지 추억에 젖던 중년인의 안색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

“아, 아빠. 엄마!”

경찰서로 30대 남성이 뛰어 들어와 부모님을 찾았다.

“경수야......”

여성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남자를 조용히 불렀다.

얼굴에 미안한 감정이 얹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경수라 불린 남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게 말이다. 분명히 전방에 아무도 없어서 주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들려 봤더니 사람이 있지 뭐냐. 하아...”

“보험사기예요?”

“그런 더 알아봐야 알 거 같은데, 듣기로 길을 건너는데 우리가 부딪혔다며 날을 세우지 뭐냐.”

“혹시... 사고 장소가 횡단보도였나요?”

“아니야. 그냥 일반 도로야.”

침착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중년남성은 경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 이경수 판삽니다. CCTV는 확보됐나요?”

“분석 중입니다. 너무 어두운 시간대에 일어난 사고라 시간이 좀 소요될 거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찾으세요. 당장!”

아무리 봐도 보험사기 냄새가 진동했다.

이경수는 눈에 불을 켜 경찰에게 지시하듯 말을 던졌다.

[청주 도로 인근에서 A 판사 부모가 사람을 치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다행히 목숨에 지장이 없는 걸로......]

[피해자는 50대 남성으로 무단횡단을 하다 차량에 부딪혀......]

[경찰 CCTV 확보 조사 중......]

해당 사건은 빠르게 기사로 작성되어 전국으로 뿌려졌다.

[최모씨는 전치 4주로, 원만하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적 소송에 들어가겠다 엄포를 놓았다.]

[얼마 전 공항에서 벌어진 사고에서 무단횡단자가 승소한 바 있다.]

“이걸 인과응보라 해야 하나?!”

아니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해야 할까?

아무리 높은 권세라도 십 년은 가기 힘들다는 의미로 얼마 전 판결을 낸 판사가 떠올랐다.

판결이 내려진 지 한 달도 못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항소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될지 참으로 궁금해지네.”

한강은 느긋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설마, 자신이 예를 들었던 사고가 이런 형태로 찾아오게 될 줄 몰랐다.

***

└ 이다혜: 겁나 웃기네 ㅋㅋ 무조건 운전자 잘못이라고 우겼던 판사, 어떻게 그걸 본인이 그대로 겪냐 ㅋㅋㅋ

└ 유진: 인생 새옹지마, 진짜 아무도 모릅니다 ㅋㅋ

└ 나민영: 내가 말했지? 이거 백퍼 이용해 먹는다니까, 듣기로 판사 집안인 거 알고 합의금 5천 불렀다 함.

└ 이진주: 선례가 있어 고대로 따라 한 듯.

└ 이주영: 어떻게 될지 몰라요. 운전자들 합심해서 항소 들어갔는데 이거 결과에 따라 내용 180도로 달라질 거예요.

└ 김용진: 설마 이번 재판도 그 인간이 하지 않겠지?! 결과가 눈에 보이기는 하는데, 양심 있음 본인이 못하지 ㅋㅋㅋ

사람들의 관심은 항소를 한 운전자에게로 향했다.

이 결과에 따라 무단횡단을 하고서 합의를 하자는 남자의 처우가 결정될 터다.

“선배님...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경수는 오랜 고민 끝에 조판서를 찾았다.

그가 예시로 들었던 일이 직접 닥치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합의금 5천만 원 별거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집에 이력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남몰래 자리에서 해결을 했다면 눈 딱 감고 합의 후 입을 싹 닦았을지 모를 일이나.

모든 사실에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허허.....”

당황하긴 조판서도 마찬가지.

설마 일이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 했다.

‘정말 내게도 일어날지 모를 일이 되겠구나.’

당시 경수에게 그런 말을 했지만 스스로도 비슷하게 생각했었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후배의 일로 생각이 확 바뀌었다. 동시에 한강에게 들었던 불편한 말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번 재판에서 빠져. 그 재판은 내가 보도록 하지.”

얼굴을 보니 당분간 자리에 오르지 못할 걸로 보였다.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사라지고 얼굴엔 불안과 공포가 자리했다.

그간 도덕을 배제한 판결들이 하나로 뭉쳐 자신에게 돌아올까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경수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

[“.....비가 쏟아진 날, 운전자의 시야는 전방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한의 상황이었다. 캄캄한 도로에서 위아래로 어두운색 옷을 입은 무단횡단까지 예견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판서 판사는 이번 항소심에서 운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사건으로 며칠 전 벌어진 무단횡단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칠 걸로 보인다.]

└ 유승진: 크아, 속 뻥 뚫리네!

└ 이새롬: 고생하셨어요! 운전자님들!!!!

└ 도준석: 이필수 변호사님 만세!!

└ 지석진: 월드 플레이 정말 좋네요. 이거 아니었음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 이진석: 여러분 절대 무단횡단하지 마세요. 횡단보도 건너기 전에 반드시 좌우 살피고 건너세요. 진짜 위험합니다.

“결국 결과가 이렇게 되나? 예견된 일이었지만, 이래서 판결은 중요해.”

판결 하나에 여러 사고와 사건들이 크게 줄어든다.

판사들의 약한 판결은 범죄자들을 늘리는 효과를 낳고, 반대된 판결은 잠재적 범죄자 생산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정말 판결을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 모르지만, 다신 억울한 사람이 없었음 좋겠어.”

한강은 시선을 돌려 정면으로 가져갔다..

어느새 완성된 그림에 시선이 닿았다.

[역사는 미래의 정답지다.]

세로로 이등분된 흑과 백 면에 세로로 글씨가 자리했다.

글씨 안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한강은 완성된 그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거 여기에 걸어 두세요. 앞으로 우리 회사가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강은 직원에게 건네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로비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하라 이르렀다.

***

2005년 6월.

“됐다! 완성이야! 드디어 해냈다고!!”

한리버 일렉트라에서 사람들의 기쁨의 포효가 건물 전체로 퍼졌다.

주변에 모인 수많은 연구진과 엔지니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감정을 공유했다.

“당장 이 소식을 회장님께 알려야겠어요. 정말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김상수 연구소장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 될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 사실을 한강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그의 발걸음은 한달음에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 핸드폰이 자리했다.

한편 그 시각.

[육성 자동차 운전자 피해자에게 손상된 자동차에 대해 무상으로 수리해 주겠다 발표했습니다. 또한 무단횡단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일부 소송비를 지불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무단횡단은 무척 위험한 행동입니다. 육성그룹은 국민들의 안전에 보탬이 되고자 정부와 협력해 무단횡단을 방지하는 펜스를 설치하겠습니다.]

육성그룹은 해당 사건을 이용해 기업의 이미지를 올리는 한편, 신규 사업을 발표를 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