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10화 (110/237)
  • 110화. 21살, 월드 플레이 법률 방송

    “......어이없네요. 이건.”

    돌아가는 길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은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

    생각을 해보라.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좌회전하는 차량이 갑자기 달려드는 사람을 무슨 수로 피할까?

    뒤따라 오는 차는 또 무슨 죄?!

    한강은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혹여나 자신의 사람이 방송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정말 생각도 하기 싫구나.”

    현재 사회는 미완성 단계이다. 뜯어고쳐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회사로 가세요.”

    “네.”

    집으로 가던 길을 틀어 회사로 향했다.

    인천공항 톨게이트를 지나 차량은 고속도로를 달려 영동대교남단을 지나갔다.

    “월드 플레이 대표 들어오라 하세요.”

    회사에 도착해 바로 월드 플레이 대표 유길섭을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잠시 후, 유길섭이 안으로 들어왔다.

    허겁지겁 왔는지 숨을 헐떡였다.

    “별건 아니고 플레이에 추가적인 방송을 만들었음 해서 불렀어요. 일단 여기 앉아보세요.”

    “네.”

    나이는 어리지만 기업의 오너.

    나이가 들어도 오너 앞은 늘 긴장되는 법이다.

    “제가 오는 길에 아주 황당한 걸 들었습니다. 무단횡단으로 사고 난 사람의 죄를 전부 운전자에게 뒤집어씌운 내용입니다.”

    “아......”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거 같았다.

    유길섭은 작게 입을 열어 고개를 흔들었다.

    “유 대표님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유 대표님도 이게 운전자의 잘못으로 보이시나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무단횡단자의 잘못이죠. 만약,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신호를 지켰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죠? 저도 그래요. 그런데 법원은 생각이 다른가 보더군요.”

    너무도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었다. 세상천지에 그런 어이없는 판결이라니.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라 하지만, 잘잘못은 확실히 따질 필요가 있다 봤다.

    사람들 모두 무단횡단자의 잘못이라 말하고 있음에도 법원은 운전자가 아닌 무단횡단자만이 피해라 말하는 모습.

    너무도 불편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말입니다. 대표님이나 가족이 그런 일에 휘말려 해당 운전자처럼 된다 생각해 보세요.”

    “끔찍하군요. 그런데 왜 이걸 저에게...”

    “이번 일과 같은 일을 없애고 바꿔 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영상만큼 좋은 건 없으리라 봅니다. 변호사를 섭외해 이번 일을 다뤄볼까 합니다.”

    앞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선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여겼다.

    첫 번째로 운전자에 대한 나쁜 인식을 없애고, 무단횡단자가 범죄자임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이번 일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간다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될 터다.

    그런 꼴은 절대 보지 못한다.

    ‘윤희나 부모님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참을 수 없을 거다. 모든 부와 권력을 이용해 대응하리라.

    “대표님이 직접 움직여 해당 콘텐츠를 만들고, 모두 볼 수 있도록 공격적으로 홍보에 나서세요. 비용은 상관하지 마시고.”

    한강은 강하게 말했다.

    돈이란 이런 곳에 써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제대로 돈을 질러 보기로 했다. 월드 플레이로 수익을 창출하는 건 반쯤 포기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유길섭이 움직였다. 월드 플레이에 또 다른 방송이 생겨나려 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한강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 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를.

    ***

    이필수는 신문을 읽어 내려가며 가슴을 탁탁 쳤다.

    “말세다. 말세야. 저걸 저리 판결해 버리다니. 쯧쯧.”

    고구마를 먹은 듯한 기분에 목이 턱 막혀왔다.

    신문 일면에 크게 박힌 기사 한 줄은 판사에 대한 불신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였다.

    “변호사님, 또 왜 그러세요.”

    이필수의 동료 변호사가 곁으로 다가왔다.

    “이걸 보라고. 이걸. 아주 속이 터져.”

    더는 보기도 싫은 기사이지만, 자꾸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봤다, 결과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자 화가 부글부글 끌었다.

    “아, 이거요. 말들 많잖아요. 지금. 판사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냔 비판도 나오고 있고.”

    “나도 돈을 받고 변호하는 사람이다만, 정말 이건 아니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줘야 할 판에 죄인도 아닌 사람을 죄인 취급하고 거기에 피해자들끼리 싸우게 하냐고.”

    참으로 사회가 요지경이다.

    아니 판사가 요지경이다.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당최 모르겠다.

    “으휴, 내가 진짜 못 산다.”

    이필수는 또 가슴을 내려치고 몸을 뒤로 젖혀 누워버렸다.

    “그렇게 답답하시면 한리버에서 진행하는 변호사 방송에 지원해 보심이 어때요?”

    “......?”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마치 모자란 듯한 얼굴로 강혜리를 바라봤다.

    “역시 모르셨네. 월드 플레이라고 한리버에서 엄청 미는 사업 있잖아요. BJ들 나와서 방송인처럼 활동하는......”

    “계속해봐.”

    “한리버에서 새롭게 추진하는 컨셉이 억울한 사람들 사연 듣고 그에 대해 도움을 주는 방송이래요.”

    강혜리가 노트북을 가져와 인터넷을 연결해 화면을 비췄다.

    [이번 교통사고 사건 판결에 대해 참으로 유감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어도 될 사고였습니다. 한데, 판사님은 잘못이 없는 운전자에게 벌을 내려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죽게 만든 운전자는 누가 보상을 해줄까요? 이를 악용하는 범죄가 줄지 않은 이유는 이런 판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월드 플레이는 이런 억울함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억울하지만 자금적으로 부담스러워 변호사 상담을 받지 못하는 모든 분들을 위한 콘텐츠로 한리버와 함께 하실 변호사를 모집합니다.]

    [수익은 고정급+영상광고비용 일부 지급.]

    “뭣?!”

    게시글을 읽던 이필수는 너무 놀라, 잘못 읽은 건 아닌지 싶어 재차 읽었다.

    “여긴 왜 이런 손해 볼 짓을 한대?”

    자칫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밝히지를 않나, 변호사비를 한리버에서 감당하고 사람들의 사연을 대신 변호해 주겠다 나서고 있는 모습이라니.

    “저래서 과연 얻는 게 뭘까?”

    정말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변호사님이 원하던 거 아니에요?”

    고민하는 변호사의 모습에 강혜리는 뚱한 시선을 보냈다.

    “그렇기야 한데, 이거 참.”

    “어때요.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만나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잖아요.”

    “만나봐?”

    “그럼요. 그리고 한리버예요. 다른 곳도 아니고. 어린 사람이 경영자란 사실만 빼면 우리나라 IT기업에서 탑에 위치한다고요. 돈도 잘 쓰고.”

    이게 무슨 고민거리냐고 말하고 싶은 속마음을 간신히 감췄다.

    “좋아. 가보자. 가보면 알겠지.”

    끝내 이필수는 결정을 내렸다. 못 믿을 기업도 아니고, 직접 만나 물어보기로 하였다.

    어째서 이런 일에 돈을 쓰는지 말이다.

    ***

    청담동에서 제법 명물이 된 한리버 빌딩 안으로 들이는 발걸음이 어색하다.

    변호사가 되어 많은 기업을 기웃거렸지만, 대기업이라 칭해지는 곳으로 걸음만 하면 괜스레 부담됐다.

    “월드 플레이가 몇 층이냐...”

    시선을 올려 월드 플레이가 자리한 층을 확인했다.

    “3층이구나.”

    층을 확인한 이필수는 4층에 가 있는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며 변경되는 숫자를 바라봤다.

    2층에서 한 번 멈췄던 엘리베이터는 이윽고 1층에 도착하며 ‘띵’ 소리를 냈다.

    정장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밖으로 나갔다.

    1층, 2층, 3층 띵!

    “저 변호사 콘텐츠 미팅을 가지기 위해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안으로 들어서니 파티션으로 둘러진 책상과 직원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근처를 지나치는 직원 하나를 잡았다.

    “아, 미팅은 저기 표기된 화살표 방향대로 가면 되세요.”

    “화살표......”

    직원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변호사 콘텐츠 미팅 장소 (→)]

    그곳에 코팅된 A4 크기의 종이가 스탠드에 부착되어 있는 게 보였다.

    “감사합니다.”

    이필수는 작게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직원들도 밝고 사무실이 깨끗한 걸 보아, 잘 돌아가는 곳이야.”

    회사는 직원들의 얼굴과 사무실 환경, 분위기를 보면 대충 안다.

    사람들 표정이 무척 밝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공기 중에 떠다녔다.

    이 뜻은 오로지 하나를 의미했다. 아주 잘 굴러가는 회사와 피로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복지와 연봉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너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지 예측이 가능했다.

    “변호사님이신가요?”

    화살표가 가리키는 마지막 장소에 이르자 여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담당자님 되십니까?”

    “미팅은 대표님이 직접 하실 거예요. 이쪽으로 오세요.”

    여직원 근처에 자리한 미팅실 안으로 향하는 유리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대표님이 오실 거예요. 음료는 저기 냉장고에서 꺼내서 드시면 되세요.”

    여직원이 미팅룸을 벗어났다.

    “요즘 대기업은 미팅룸에 냉장고가 배치되어 있나?”

    너무 어이없어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옆으로 뜨거운 음료 칸도 마련되어 있었다.

    “부럽고만.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수입은 적지만, 그럼에도 한리버에 다니는 직원들이 점점 부럽다 여겨졌다.

    “안녕하세요. 유길섭 대표입니다.”

    잠깐의 휴식 타임도 없었다. 음료를 마시며 기다리라 하더만, 음료를 고르기도 전에 유길섭이 들어왔다.

    “이필수 변호사입니다.”

    둘은 명함을 교환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방송하기에 너무 좋은 이미지세요.”

    방송에 적합한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방송마다 추구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지금 하려는 방송은 사람들에게 적당한 무게감과 신뢰를 풍기며 접근이 쉬운 외모를 지녀야 한다.

    그 모든 걸 놓고 봤을 때, 이필수는 동네 문방구를 운영하는 선한 아저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기와 거리가 먼 얼굴과 그리고...

    “목소리도 넘 듣기 좋고요.”

    공명하며 들려오는 톤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시작도 전에 이필수에 대해 깊은 호감을 느꼈다.

    “보자마자 뜨거운 칭찬에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은 또 약한지 순박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이 좋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빈말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많은 변호사님을 뵈었지만, 이필수 변호사님만큼 마음에 드는 분은 없었어요.”

    엔터테인먼트에 터를 잡고 있어선지, 사람을 상대할 때 분야별로 외모와 목소리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방송을 함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라 빠트릴 수 없었다.

    “먼저 진행에 앞서 정산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아, 그건 됐습니다. 잘 쳐주시겠죠.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그보다...”

    내미는 종이에 적힌 숫자를 대충 봤다.

    제법 후하다.

    그리고 한리버의 운영상태를 봤을 때 사기성 계약을 할 거 같지도 않았고, 계약서는 차차 확인하면 된다.

    그보다는 제일 먼저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어째서 돈도 안 되는 이런 사업을 하시려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의도와 기획은 좋다 여겼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망치면서 감행하려는 이유가 지금까지 무척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제가 사람을 잘 보는 거 같네요. 지금까지 그걸 묻는 분은 없었는데. 아주 간단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여겨섭니다. 기업이 돈을 무시할 순 없지만, 한리버는 돈만 좇는 그런 기업이 아닙니다. 회장님이 늘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돈의 맛을 알게 되고, 돈을 좇게 되는 순간 기업은 망한다.

    돈을 좇지 마라. 돈이 우리를 쫓아오게 만들어라.

    한강이 늘 달고 사는 말이었다.

    “우린 이번 사업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여기고 있습니다. 최소 억울한 사람은 만들지 말자가 이번 사업의 핵심이며 잘못된 법을 고쳐 쓰자가 앞으로의 방향이 될 겁니다.”

    미팅을 거쳐 장시간 방향을 잡아갔다.

    그 끝은 방송과 병행된 사업으로 회사 차원에서 회원들에게 변호사를 선임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위해 상담을 해주고 필요시 변호사를 고용해 억울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억울하지 않게 해줄 겁니다. 최근 벌어진 교통사고처럼요. 범죄자에 대해선 변호는 해주지 않을 겁니다.”

    입을 다문 유길섭의 입이 고집스럽게 닫혔다.

    유길섭의 시선은 이필수의 눈을 응시했다.

    바톤은 이필수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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