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09화 (109/237)
  • 109화. 21살, 폴란드 바르샤바로

    생일 당시 여운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보육원 사람들과 직원들의 깜짝 이벤트는 전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선물이었다.

    4월이 되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개발이 성공했다며 언론이 떠들기 바쁜 때,

    쉬이이이이이이.

    한강은 비행기에 올라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했다.

    희뿌연 구름 사이를 통과해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춰 거대한 바퀴를 아래로 내렸다.

    끼리리릭.

    뒷바퀴부터 활주로에 닿고 앞바퀴가 서서히 내려와 바닥을 긁었다.

    “도착이다!”

    인구 3700만이 모여 살며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한 폴란드의 대지를 밟았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는 역시 프레데리츠 쇼팽.

    그를 기념하기 위해 1927년에 제 1회 쇼팽 콩쿠르를 개최하였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등용문으로 일컬어지는 쇼팽 콩쿠르.

    “두근거려.”

    바르샤바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 공기조차 음악의 선율과 한데 섞여 흐르는 거 같다.

    “한리버다.”

    주변에서 알아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강이 아닌 별명으로 불리었다.

    사람들은 한강이 걸음을 움직이자마자 눈동자를 이동했다.

    “유한강!”

    한참을 주변을 서성이던 때, 아주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한강의 시선이 자연스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로슬라브!”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귀공자, 미로슬라브 꿀띠쉐프가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이날만을 기다려왔어.”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시원한 미소를 던졌다.

    “나도야. 너와의 대결도 그렇지만 피아니스트로서 멋진 연주를 하고 싶다.”

    한강은 수상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연주로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했다.

    그리고.

    “마찬가지야. 우리 후회 없이 연주를 해보자.”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도 한강의 말에 동조했다.

    기다려온 시간만큼 많은 연습을 통해 기량을 늘렸다.

    아주 좋은 승부가 되리라 봤다.

    ***

    후릅, 후.

    보온통에 든 보리차의 풍미가 입안을 통해 코로 전달됐다.

    4월의 봄을 만끽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한리버.”

    순서가 찾아왔다. 함께 따라온 수행원에게 보온통을 맡기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익숙해진 정장의 흐트러진 부분을 정리하며 예선전 무대에 올랐다.

    “후웁.”

    예선전 심사위원들 앞에서 서는 건 오랜 시간 살아온 한강으로서도 꽤 긴장됐다.

    길게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끌어 마신 숨을 밖으로 내뱉자 그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딴.

    한강의 손은 하얀 길을 걸어나갔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곡 에튀드 OP 10 No 8이 홀에 퍼졌다.

    “허......”

    “......음.”

    애칭으로 ‘햇빛’이라 불리는 에튀드는 많은 사랑을 받는 쇼팽의 대표곡 중 하나다.

    콩쿠르의 예선전 곡 중 하나이기도 하고.

    심사위원들은 전해져오는 강렬하게 전해오는 선율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은 눈을 감고 귀로만 모든 걸 받아들여 쇼팽의 태양에 빨려갔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에서 재해석된 곡은 말 그대로 강렬하고 경쾌했다.

    무겁게 들려오지만 탄탄함 속에 섬세함이 느껴졌다.

    모두를 이끌고 나가겠다는 포부가 선율에서 들려왔다.

    손이 분리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연주. 16분음표 속에 두 손이 마주하는 부분에 있어 조금씩 어긋나게 쳤다.

    마치 모두를 이끌고 나가는 대장격의 손을 따라 수하들이 믿고 따라오는 기분에 심취했다.

    딴!

    곡이 끝났다.

    평행차원에 있을 쇼팽의 곡이 이러하지 않을까.

    심사위원들은 숙연한 얼굴로 한강을 돌려보냈다.

    “어떻게 들었습니까?”

    금발을 뒤로 보내 묶은 머리의 남성이 물었다.

    “퀸 엘리자베스에서 왜 그리 소란이었는지 알겠어요.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아주 멋진 에튀드였어요.”

    “난 그의 주변에 쇼팽의 귀신들이 손을 맞잡고 노는 환상에 빠졌어요.”

    연주는 끝났지만, 귓속은 아직도 연주의 향연을 즐겼다.

    “올해 연주자들 실력이 부쩍 늘었습니다. 앞으로 본선이 기대됩니다.”

    심사위원들은 한강이 나간 문을 빤히 바라봤다.

    2차 예선전이 무척 기다려졌다.

    ***

    한국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본선 진출자를 발표했다.

    300명이 넘는 실력자들을 뚫고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따라라라라라.]

    “와, 좋다. 진짜 잘 친다.”

    동시에 예선전을 치렀던 연주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덕분에 심사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번 참가자들 중 가장 주목할 대상은 한국의 한리버와 러시아의 미로슬라브 꿀띠쉐프입니다. 다른 연주자들도 뛰어났지만, 그들에게 없는 것을 둘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쇼팽의 곡을 치고 있음에도 쇼팽이 뒤로 밀려난 기분이었어요. 쇼팽에게 가르침을 받아 연주하는 것이 아닌, 쇼팽과 또 다른 것으로 경쟁을 벌이는 기분이었달까. 기교도 기교지만 정말 대단한 실력이었습니다.]

    [이번 심사에 아시아인 참 많아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요 일간지에선 심사위원들의 비평과 호평이 실렸다.

    “교수님, 어떻게 보세요?”

    동료 교수가 옆으로 다가와 영상에 자리한 주인공을 가리켜 물었다.

    “정말 훌륭한 연주예요. 어떻게 스물한 살이 저런 수준 높은 곡을 칠 수 있는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자 피아니스트 김채권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 연주를 맛있는 음식을 먹듯 음미했다.

    “정말 놀라워요. 저도 저렇게 칠 자신이 없습니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피아니스트의 탄생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순수한 감탄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실한 선을 그었다.

    “교수님이 그런 말 하면 모두 욕할걸요?”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전 저렇게 표현할 자신이 없어요. 머리가 두 개는 되어야 가능할 능력이에요.”

    “그 정도예요?!”

    “네. 만약 우승자가 나온다면 저 러시아 천재와 한리버가 될 겁니다.”

    김채권 교수는 자신 있게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교수님이 그렇게 말 하시니, 이번 콩쿨의 1등은 저 둘이겠네요.”

    저리 말하고 있지만, 김채권의 귀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귀이다.

    아주 미세한 소리조차 잡아내는 귀는 그의 장기 중 하나였다.

    “음?!”

    그러던 차, 채권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세요?”

    여성은 채권이 보고 있는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와, 세상에...... 교수님. 이거...”

    여성은 화면에 적힌 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 ‘으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 사정으로 김채권 씨를 2005년 15회 심사위원으로...]

    김채권이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 21명 중 한 명으로 위촉됐다.

    “교수님 정말 축하드려요!! 무려 심사위원이라고요. 그것도 쇼팽에!!”

    여성은 자신의 일이 된다는 듯, 팔짝팔짝 뛰며 좋아해 주었다.

    “고마워요, 이 교수님.”

    3대 콩쿠르에 한국인이 참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채권은 머리를 긁적여 머쓱한 얼굴로 감사함을 전했다.

    “이거 아무래도 10월에 잡힌 일정을 전부 취소해야 할 거 같네요.”

    “당연하죠! 이게 먼저죠!”

    여성은 당연한 걸 말한다며 모든 행사 취소를 권했다.

    “네네. 그럴게요.”

    자신의 몫까지 좋아해 주는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 21인에 한국인 최초로 김채권 피아니스트가 위촉됐다.]

    [“우리나라 음악계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김채권 피아니스트는 9월에 시작될 본선 심사위원에 자리를 앉게 될 전망이다. 보통 콩쿠르 심사위원은 대회가 열리기 전에 확정되지만 마르타 아리헤리치가 사정이 생겨 대신 김채권 피아니스트가 자리를 채웠다.]

    해당 소식은 인터넷과 언론을 강타해 세계로 전해졌다.

    “후웁, 후우.”

    바르샤바의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약 열흘간의 예선전 일정은 본선 진출자란 명예를 얻는 시간이 되었다.

    찰칵찰칵.

    게이트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기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제2의 코리안 쇼팽이라며 세계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뜨거운 관심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히 아직도 얼떨떨한 심정입니다. 심사위원님들의 높은 평가를 받아, 본선 진출권을 얻게 된 만큼 최선을 다해 부끄럽지 않은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되겠습니다.”

    다른 한국인 진출자도 본선에 오르게 됐지만, 한강의 인기에 밀려 존재감을 잃었다.

    “칫, 제기랄. 우리도 진출했는데 찬밥이라니.”

    “......부럽다.”

    “우울하다. 그래도 꽤 관심을 얻으리라 봤는데, 완전 투명인간 취급이라니.”

    그간 노력한 시간들이 너무도 우울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하여 지금껏 노력해온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연소로 본선에 오른 남자는 다른 이들보다 배알이 꼴렸다.

    늘 떠받들며 천재란 소리를 듣고 살아온 인생을 부정 받는 기분이란 우울감을 일으켰다.

    “반드시 내가 우승한다. 반드시...”

    어린 남자는 바로 앞쪽에 서서 혼자 빛을 내는 한강을 응시하며 이를 갈았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흠, 곤란해.”

    공항을 나서는 한강은 이맛살을 구겼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함께 출전을 하게 됐는데, 혼자 관심을 독차지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 좋겠는데 말이야.”

    사람의 좁은 마음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마음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어 범죄로 이어지게 만들곤 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짓을 벌이진 않겠지. 않을 거야.”

    퀸 엘리자베스의 일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좁은 마음으로 발생된 부정심사.

    결과는 좋게 끝났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일은 잊지 못한다.

    “응?”

    공항을 벗어나 차량에 오르는데 커다란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든 여성이 보였다.

    [억울합니다. 저희 남편은 살인자가 아닙니다. 검은색 옷을 입고 밤길에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피하나요? 절대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겁니다.]

    “저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마중 나온 기사에게 물었다.

    “뉴스로 떠들썩한 사건의 피해자 가족 같습니다. 저쯤 코너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넘어가던 중이었답니다.”

    “그래서요?”

    “문제는 밤길이었고 비까지 내렸다는 점입니다. 저쯤에서 갑자기 뛰어 들어온 사람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따르던 차량이 재차 박고 지나가면서 무단횡단자는 죽고 운전자는 재판으로 넘겨진 상태입니다.”

    “거참......”

    모든 설명을 들으니, 어떤 사건인지 짐작이 되었다.

    누가 봐도 무단횡단자의 잘못.

    문제는 사람이 죽었다는 데 있었다.

    사람들은 무단횡단자가 잘못이다, 아니다 그래도 사람을 죽였으니 운전자의 잘못이다 라며 총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을 터다.

    “씁쓸하네요. 그래도 무단횡단자 잘못이니 큰 문제는 없겠죠.”

    전생에도 이런 문제가 이슈화되고는 했다.

    그리고 대게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내 죽음과는 반대구나.’

    교통사고를 보니 전생 전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출발하겠습니다.”

    한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사건 중 하나라 생각하며 방금 본 일을 고개를 저어 잊었다.

    [뉴스입니다. 인천공항 인근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로 숨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죽음에 이르게 한 운자자 둘에게 각각 75%와 25%의 과실을 물었습니다. 이에 75%의 과실을 물게 된 운전자는 2차 가해자 운전자에게 손해배상금 50% 지급하라는 소송을......]

    “......응?!”

    한강의 눈은 그때 떠졌다. 예상조차 하지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상황에 어이없어 눈을 깜빡였다.

    “미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흘러나왔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재판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피곤하던 정신이 확 깨고 말았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지금이 2040년이 아닌... 2005년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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