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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07화 (107/237)
  • 107화. 21살, 하와이에서의 만남

    “호오.”

    40대 초반의 서양인 남자, 한 번 보면 절대 기억하지 아니할 수 없는 남자가 옆에 자리했다.

    “영광입니다. 마이클 잭슨 씨.”

    그랬다. 80년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팝의 황제 미국의 가수, 그가 바로 앞에 자리했다.

    긴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스타일이 눈길을 끌었다.

    “알아봐 주어 감사해요. 꼭 만나고 싶었어요.”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의 뜻밖의 만남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의 재산이 인기를 말해준다.

    한때 제주도를 사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슈를 짊어지고 다녔던 마이클 잭슨을 두 눈으로 볼 기회가 생기다니, 정말 꿈 같다.

    “설마 이분 그분?”

    윤희가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만들고 옆으로 다가왔다.

    “인사해. 마이클 잭슨, 제 아냅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저의 부모님이시고 여기 작은 애들은 여동생들입니다.”

    한강은 근처로 모인 가족을 소개했다.

    “어머어머.”

    그중 미화가 제일 반겼다.

    “팬이에요.”

    소녀의 감성으로 돌아간 걸까? 예전 지혜가 HOT를 외치던 때와 겹쳐 보였다.

    “한강아, 종이 좀 주겠니.”

    두 눈에 ‘제발’ 다급함이 묻어났다.

    한강의 시선은 또 다른 여자들의 시선을 느꼈다.

    “나두.”

    “저두요.”

    “나도...”

    지혜, 지연, ...윤희였다.

    “허, 대단. 저 죄송스러운 부탁이지만 여기에 사인... 네 장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강은 조금은 민망한 얼굴로 스케치북과 팬을 슬쩍 내밀었다.

    “이거 그림을 그려달라 부탁을 하러 왔다 이리되는군요. 하하. 그럼 저도 다시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그림이라면 그려드리겠습니다.”

    “그것도 그거지만, 저도 회장님의 사인을 받고 싶습니다.”

    활동 분야는 다르지만, 둘은 세계 정상급 대스타.

    둘의 시선엔 존경의 감정이 담겼다.

    “좋습니다.”

    한강은 먼저 스케치북에 사인을 해 마이클 잭슨에게 넘겼다.

    “굿, 고마워요.”

    다음으로 마이클 잭슨은 총 네 장의 사인을 하고 한강에게 스케치북을 넘겼다.

    “제가 어떤 그림을 그려드리면 될까요?”

    ‘어떻게 사인 받았어’ ‘너무 좋다’ ‘자랑해야지’ ‘쯧쯧’ 등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이클 잭슨에게 원하는 그림을 물었다.

    “저기 제 딸이 있어요. 저곳에서 이곳에서 그린 것과 같은 그림을 그려주세요.”

    유난히 야자수가 많은 곳에 금발의 여성이 자리해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딸, 패리스 잭슨이 한강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요.”

    한강은 용품을 챙겨 마이클 잭슨과 걸음을 옮겼다. 가족들은 사인을 받은 것에 정신없어 한강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여간, 저리 좋을까.’

    가족들이 좋아하니, 기분은 제법 좋았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성공적인 거 같다.

    “꺄...”

    사인을 받아 든 패리스 잭슨이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한다. 한강의 사인은 딸을 위한 선물로 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그림 또한.

    “자 그립니다.”

    편한 자세를 잡아줄 것을 요청하고 펜을 들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두 사람.

    두 사람의 포즈를 대충 선을 그어 잡은 후 스케치를 시작했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 그릴 필요 없지.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검은 피부를 싫어...했지. 외모도... 그리고 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결정을 내리자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손은 경쾌하게 움직여 마이클 잭슨과 그의 딸을 그려갔다.

    잘못된 성형으로 부조화를 이루는 얼굴선을 갸름하게 그렸다.

    딸의 익살맞은 미소는 조금은 짓궂지만, 매력적인 미소로 만들었다.

    스케치북에 두 부녀의 행복한 모습이 채워졌다.

    ‘이제 생명을 불어넣을 차례다.’

    스케치가 끝났다. 색연필을 들어 채색에 들어갔다. 피부 톤은 태양 빛에 의해 밝게 표현했다.

    커다란 두 눈이 가장 큰 매력을 발산한다. 속눈썹을 진하게 그려 모든 시선에 눈에 집중되도록 칠했다.

    “너무 예뻐요.”

    완성된 그림을 앞으로 내보였다. 40분 정도 걸린 그림을 받아든 패리스 잭슨은 화사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좋아했다.

    “역시 당신은 최고의 화가입니다. 난 이 그림을 우리집의 가보로 삼을 거예요.”

    마이클 잭슨도 만족했는지 크게 흡족해하였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로서도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림의 주인공이 기뻐하는 건, 그려준 사람에게 있어 무척 기쁜 일이다.

    한강은 눈웃음을 지었다.

    “이거 계산이 맞지 않네요. 음, 이거 참.”

    그러다 마이클 잭슨은 머쓱한 얼굴로 곤란한 눈빛을 보냈다.

    “우린 잭슨 씨의 사인을 무려 네 장이나 받았습니다. 그 정도면 됩니다.”

    가족들에게 또 다른 경험을 해준 슈퍼스타인 그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여행지를 가서 이런 대스타를 만나 사인을 받아 보겠나?

    가드들에 보호된 이들에게 접근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이미 주변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가드들이 서 있었다.

    “내게 명함을 줄 수 있을까요.”

    마이클 잭슨이 명함을 원했다.

    “여깄습니다.”

    한강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명함을 건넸다.

    “여기다 당신의 메신저 아이디를 적어주세요. 이쪽으로 연락을 드리죠.”

    “어, 네? 설마 한리버 메신저를 말씀하시나요?”

    깜짝 놀랐다. 요즘 메신저가 크게 퍼진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체감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한데, 마이클 잭슨이 언급한다? 한리버 메신저가 얼마나 유명한 메신저가 되었는지 피부로 확 와닿았다.

    “감사합니다. 제 아이디로 검색하기보다 여기 한국 핸드폰 번호와 저의 이름을 넣어 검색하면 바로 제가 뜰 겁니다.”

    한리버 메신저는 아이디는 익명으로 쓰고 있으나, 아이디 검색은 실명과 핸드폰 번호로도 검색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아이디를 알려주기에 너무 복잡했다.

    “고마워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둘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카페.

    “정말 기대돼.”

    [예선 진출자 미로슬라브 꿀띠쉐프...... 유한강.]

    손에 든 종이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좋아?”

    그의 연인 마리아 유디나는 미로슬라브 꿀띠쉐프의 좋아하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못 말리겠단 얼굴로 가득했다.

    “그럼, 내가 이날을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데.”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에 가지 못한 게 얼마나 한으로 남던지 모른다.

    너무도 기습적인 출전에 일정이 꼬여 가지를 못했다.

    하나 쇼팽 콩쿠르는 다르다. 오랜 시간 준비를 거쳐, 2005년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길 자신은?”

    신난 남자친구의 얼굴을 보며 뚱한 눈으로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 하지만 멋진 승부가 될 거란 건 확신해.”

    “정말 그를 인정하고 있구나.”

    그러다 이내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천재가 누군가를 인정하는 걸 보았는가?

    “그는 천재야. 예술의 천재!”

    심지어 천재가 타인을 천재라 지칭하고 있었다.

    “정말 못 말린다. 너란 남자.”

    순간 묘한 감정에 휩싸인 그녀는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를 멍하니 쳐다봤다.

    하지만, 그런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를 보는 여자의 눈엔 존경 어린 감정 녹아 있었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는 오로지 쇼팽 콩쿠르 예선전 날만을 기다렸다.

    ***

    [......한리버 그룹 계열사인 더움 커뮤니케이션은 진행 중인 파츠넷 계약위반 소송에서 승소를 하였다. “한리버는 파츠넷에서 받게 될 백억을 작가들의 지원책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이번 승소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리버 더움 커뮤니케이션 만화 사업부 파라다이스로 이전, 통합 관리 확정...]

    장기간 걸린 파츠넷 소송전을 이겼다. 파츠넷은 이번 사태로 경영 위기에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매출이 줄어드는 시점에 백억은 파츠넷에 있어 큰 타격이었다.

    “이거 큰일입니다. 어찌해야 할지...”

    누가 알았겠나? 망할 대표가 사고 치고 잠적할지를.

    파츠넷 경영진들은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해 고민했다.

    “한리버가 온라인 시장을 빠르게 점유하고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매출에 있었다.

    “하... 돌아오는 만기도 걱정입니다.”

    아직 금융위기가 해소되지 않아, 만기연장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었다.

    파츠넷도 이번 일로 만기 연기가 힘들 거라는 좋지 않은 전망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유한강 회장을 만나봐야 할 거 같습니다.”

    더움 커뮤니케이션 고호경 대표를 만나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지만, 실질적인 결정은 유한강이 하기에 자리를 가져 보기로 하였다.

    “그러니 전무님은 지점장을 만나 만기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김민국 파츠넷 대표는 이세영 전무에게 채무에 대한 부분을 맡기고 한리버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

    쉬이이이이이이.

    “정말 너무 좋았어.”

    인천 공항 게이트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한강의 가족들이 들어섰다.

    모두 하나같이 검게 그을린 모습들이었다.

    찰칵찰칵.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공항을 나섰다.

    “나 학교 가면 애들에게 막 자랑할 거야.”

    “나도나도.”

    두 자매는 마이클 잭슨의 사인을 받은 것에 감격해 어쩔 줄 몰랐다.

    아직도 그때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윤희야 먼저 집에 가. 난 회사 들렀다 갈게.”

    한강은 조용히 윤희에게 말했다.

    전세버스의 노선은 청담동을 경유해 압구정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시차 적응도 못 했잖아. 피곤하지 않겠어?”

    윤희의 얼굴에 걱정으로 가득하다.

    귀국하자마자 출근하겠다는 남편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오는 길에 푹 잤잖아. 그리고 거기에서 몇 시간 있을 것도 아니고.”

    한강은 윤희를 살포시 끌어안아 주었다.

    걱정하지 말란 행동이었다.

    “조심히 다녀와. 피곤하면 무리하지 말고.”

    “알았어.”

    주변에서 숨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가족들은 의자를 뒤로 젖혀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가족들에겐 말해줘.”

    “응.”

    취이이이.

    에어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버스 앞문이 열렸다.

    모두 깊게 잠이 들었는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 부탁드릴게요. 기사님.”

    기사에게 소액의 팁을 쥐여주고 내렸다.

    창문에서 바라보는 윤희에게 손을 흔들며 회사로 들어갔다.

    “오늘 귀국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들어서는 한강을 본 김동진은 놀라 물었다.

    “하하, 시간도 한창 일할 시간이고, 걱정돼서 말이죠. 곧 예선전 치르러 바르샤바로 가야 하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렇기에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 수 없었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주 이기적인 녀석이었으니까.

    “하하, 정말 못 말리겠습니다. 회장님은 말이죠.”

    김동진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조금은 납득했다.

    바르샤바로 가게 되면 회사 일을 잠시간 보지 못하는 건 맞기 때문이다.

    “이것도 병이겠죠. 그보다 저 없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로 수북하게 올라온 보고서를 보며 자신이 알아야 하는 일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어제 파츠넷 소송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승소했습니다.”

    “돈은 언제 준대요?”

    예상한 일이기에 그리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지금 그 문제로 파츠넷 측에서 회장님을 뵙고자 합니다.”

    “거기서요?”

    동진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배상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거 같습니다.”

    “그걸 왜 저와 나눈답니까? 그쪽에 이르세요. 나는 모든 전권을 고호경 대표에게 맡겼으니, 내게 오지 말고 거기와 마무리를 지으라고요.”

    여기서 자신이 끼어들면 고호경을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그리고 한강은 고호경에게 마무리까지 맡긴 바 있었다.

    이건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파츠넷에 그리 전하겠습니다.”

    직원을 부리는 오너가 가져야 할 아주 기본적인 마음가짐이기도 하였다.

    김동진은 한강의 말을 듣고는 말없이 감탄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한강은.

    “각 대표와 사업부장들 모두 제 방에 모이라 하세요.”

    수화기를 들어 비서실로 연락해 한리버 임원진들을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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