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06화 (106/237)

106화. 21살, 하와이에서의 만남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영창 피아노.

맑은소리 고운 소리 영창 피아노 영창♪

익히 아는 유명한 광고.

국내 내수시장 점유율 55%를 차지하고 세계 피아노 브랜드 17위에 등극한 세계급 피아노 회사, 영창 피아노.

따르르릉.

직원 수만 6,800여 명을 보유한 이곳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 한리버에서 피아노를 치는 광고를 내보낸다며 협찬을 요청해 왔습니다.”

걸려온 곳은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그룹, 한리버였다.

“피아노?! 가만, 거기 회장이 이번에 쇼팽 콩쿠르 나간다 난리였지? 아마?!”

중년인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눈을 번쩍 떴다.

“네, 그것 때문에 언론이 시끌시끌하죠.”

중년인의 말에 젊은 남성은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 멋들어지게 기안 올려봐. 대표님껜 내가 잘 말해볼 테니, 피아노 좋은 놈으로 빼둬.”

중년인은 시원하게 한리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현재 인기를 달리고 있는 유한강인 만큼 나쁘지 않겠다 판단이 섰다.

“그러니까, 우리 피아노를 무상으로 한리버에 맡기자 이 말이죠?”

“네, 피아노 한 대 정도면 저렴하게 먹힌다 봅니다.”

“유 회장이 본선에 진출하리라 보나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퀸 엘리자베스 본선 대상을 받았으니 최소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않겠습니까? 듣기로 쇼팽 곡에 있어서 세계에서 그만큼 치는 사람도 드물다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인정한 피아니스트. 쇼팽의 환생이라 말할 정도로 한강이 친 피아노 연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좋아요. 피아노를 내주세요.”

최종 결재가 떨어졌다. 영창 피아노는 이참에 한리버를 이용해 회사를 광고하기로 하였다.

***

한리버 기획실.

“영창에서 연락 왔습니다. 저희 제안을 오케이 했습니다.”

언제 연락 오나 기다리고 있던 차, 마침내 연락이 왔다.

“그럼 다 된 거지. 비서실에 전달하고 올 테니까, 마무리 짓고 있어.”

서인구는 결재판을 들고 사무실을 벗어나 비서실로 올라갔다.

“다 됐나 보네요.”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나머진 저에게 맡기세요. 특별한 점이 있다면 비서실을 통해 연락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김동진은 결재판을 받아 들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음, 이번 기회를 살려보겠다는 거네요.”

김동진에게 받아 든 종이의 적힌 내용을 보자 단번에 기획 의도가 보였다.

“네. 쇼팽 콩쿠르 예선에 진출하는 것만으로 기획 의도는 반은 성공했다 보입니다. 본선에 진출하거나 수상자에 오른다면 이번 기획은 크게 성공하리라 봅니다.”

한리버의 이미지는 회장에게서 나온다.

이번 일만 잘 풀리면 한리버는 더욱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리라 봤다.

“전 피아노만 치고 있으면 된다라. 마음에 들어요. 이대로 가죠.”

여성 배우까지 섭외해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출연자는 오로지 본인 하나였다.

종이에 직인을 찍어 최종 승인을 하였다.

***

[쇼팽 콩쿠르 예선 진출자 발표!]

[...... 유한강(21).]

”......!!“

“회장님, 기사 떴습니다! 이번에 예선에 붙으셨다고!”

며칠이 지난 날, 전 세계로 하나의 소식이 강타했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저도 보고 있었어요.”

[4월 바르샤바에서 예선전이 열린다.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는 유한강 회장을 포함 16명이 바르샤바 예선 무대에 오른다. 예선 진출자는 총 164명으로......]

유한강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기사에는 유한강의 단독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축하합니다.”

[실시간 검색]

[1위 유한강]

[2위 쇼팽 콩쿠르]

[3위 쇼팽 콩쿠르 예선전]

[4위 한리버]

[5위 바르샤바]

......

실시간 검색은 모두 유한강을 가리킴과 동시에 쇼팽 콩쿠르를 지목했다.

“감사해요. 결국 광고 다 찍으면 전 바르샤바로 가야겠네요.”

“이참에 인터넷 방송팀도 함께 가시지요.”

요즘 월드 플레이에서는 다양한 방송을 통해 회원들의 관심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한리버의 소식을 담은 방송이었다.

“본선에 올라야 하는 이유가 생겼네요.”

한리버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기자들을 동원해 바르샤바로 가는데 본선에 들지 못하면 그보다 민망한 일은 또 없으리라.

“아, 그런데 파츠넷과의 소송전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작년 가을쯤부터 시작된 소송전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법무팀 말에 따르면 우리 쪽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합니다. 곧 결과가 나올 거 같습니다.”

“제가 나가 있을 때 발표가 되겠네요.”

“아무래도 그럴 거 같습니다.”

지금 일정이 상당히 타이트하게 잡혔다.

가족여행에 이어 바르샤바행까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거 같다.

***

한리버 빌딩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광고 제작사. 네모 미디어.

“정말 페이스 훌륭하십니다. 여성분들이 넘어가지 않을 수 없죠.”

김두성 피디는 피아노에 앉은 한강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남자의 눈조차 떼지 못할 정도로 한강의 외모는 완벽 그 자체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전 그냥 피아노만 치고 있으면 될까요?”

매일 듣는 칭찬이지만, 매번 민망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곡은?”

“회장님께서 곡을 정해 연주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한강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회사의 이미지를 위한 광고다. 그럼 그에 맞는 곡이 좋으리라.

‘그래 그게 좋겠다.’

마음의 안정을 주는 편안한 곡, 녹턴 20번.

딴.

마음을 정하자 머릿속으로 악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선은 곧 PD와 닿았다.

끄덕.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들어갑니다. 큐!”

카메라가 돌았다.

한강의 시선은 바로 피아노에 고정됐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건반을 천천히 눌렀다. 다치지 않을까 손길이 조심스럽다.

한 음 한 음 신중을 기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연인과 길을 거니는 걸음을 표현한 건 아닐지 싶은 손동작은 때론 천천히 때론 빠르게 움직였다.

아름다운 선율은 바람이 되어 사람들의 닫힌 마음속의 열쇠가 되었다. 곧 개방된 마음은 선율과 어울려 춤을 추었다.

카메라 앵글은 레일을 따라 움직여 곡선으로 돌았다. 지미집은 하늘에 아래 한강의 연주하는 모습을 찍었다.

스윽, 잠시 넋 빠져 있던 피디의 손이 조심히 하늘로 올라갔다.

감독의 사인에 맞춰.

“컷.”

촬영을 끝냈다.

“정말 좋았어요. 백샷으로 한 번 더 갈 텐데, 이번엔 치는 시늉만 부탁드립니다.”

카메라를 들고 뒤로 갔다. 한강은 PD의 지시대로 소리 없이 손만 움직여 소리가 아닌 몸으로 연기했다.

치는 느낌이 안 드니 느낌이 살지 않아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악보를 떠올렸다.

“연기를 해봐서 그런가? 이거 느낌 좋은데...?!”

그러다 한강이 눈을 감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한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김두성 피디는 느낌이 팍 왔다. 카메라 감독에게 사인을 보냈다.

“클로즈업 갈게요.”

클로즈업은 얼굴을 위주로 찍어 캐릭터의 감정선을 찍을 때 사용된다.

‘이거 그림인데.’

카메라 감독은 자르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이유를 한강의 얼굴을 본 순간 깨달았다. 아주 멋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캇!”

사인이 떨어졌다. 카메라를 치웠다.

“회장님, 정말 감정선 너무 좋았어요.”

김두성이 다가와 한강을 깨웠다.

“아, 끝났나요.”

“정말 프로십니다.”

김두성은 크게 감격했다. 한강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좋게 나왔나요...?”

“네, 이대로 전부 사용해도 될 거 같아요. 고생하셨어요.”

모든 씬이 끝났다. 너무 간단한 건 아닌지 싶지만, 나머진 자막과 내레이션을 까는 거라 더는 할 게 없었다.

“급한 일은 다 끝났다.”

놀러 가기 전까지 가득 차 있던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였다. 빡센 일정이었다.

“이제 남은 건......”

놀러 갈 일만 남았다. 바르샤바로 가기 전까지.

***

여행 가기 전날.

“우리가 가도 되는 거야? 너희끼리 가려는 걸 괜히 우리가 방해하는 건 아니니?”

음성에 미안함이 깃들었다.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왜 그러겠는가. 자신 스스로만 하더라도 젊은 시절 친부모님이 아니고서 불편했는데.

아직 20대인 신혼부부라면 둘만의 시간을 더욱 가지고 싶을 거다.

“어머니 그런 말 마세요. 제가 부탁한 거예요. 어머니랑 아가씨랑 같이 가고 싶다고.”

“하지만......”

미화의 시선은 윤희의 배로 향했다. 이번 여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희망이도 할머니랑 가길 원할 거예요.”

시선의 방향을 확인한 윤희는 배시시 웃으며 배를 내밀었다.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임산부의 모습. 크게 부풀려 나온 배를 만지며.

“그치 희망아.”

태명을 불렀다.

“고맙구나. 윤희야.”

아들네 부부와 함께 하는 여행. 왜 싫을까.

다 며느리를 위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리 살갑게 다가오는데.

“헤헤.”

어떻게 어여쁘지 않을 수 있을까.

미화는 윤희를 안고 고마움을 전했다.

“뭐 하세요. 어서 타세요.”

오늘을 위해 버스를 준비했다. 가고 오는 길이 편하고자.

“아, 그만 가자.”

“제가 모실게요.”

미화 옆에 착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버스엔 어느새.

“와, 여행이다!”

지연과 지혜가 크게 만세를 외쳤다. 현장답사(?)를 이유로 며칠간 휴가를 냈다.

방학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시기가 좋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생들을 놓고 갈 수 없는 문제 아니겠나.

부릉!

차량이 출발했다. 목적지는 영종도 인천공항으로.

***

포근한 봄바람이 부는 날, 인천공항을 벗어나 북아메리카 하와이로 향했다.

쉬이이이이이.

룰루랄라, 하얀 구름 아래로 뻗어 있는 바다를 감상하며 태평양 한가운데 섬에 내려섰다.

“야자수다!”

지연이가 바로 보이는 야자수에 환호한다.

“와!!!”

지혜도 좋아 두 팔을 벌려 심박수를 한껏 끌어올렸다.

“정말 오기 잘한 거 같아.”

“나도.”

가족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포근하다. 한강은 윤희의 어깨를 감싸고 캐리어를 끌고 대기 중인 차량에 올랐다.

하와이의 뷰를 배불리 감상하며 호텔에 들어섰다. 호텔에서 내려보는 전경은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하루를 호텔에서 푹 쉬고, 밖으로 나갔다.

컨버터블(오픈카)을 타고 하와이 해변도로를 달렸다. 따스한 바람에 모든 걸 맡겼다.

“하나우마베이다!”

책자를 보던 지연의 목소리다.

약 19억 마리의 물고기들과 산호초를 감상했다.

한강 또한 하와이는 처음이기에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감상하기 바빴다.

태평양 뷰는 꽉 막힌 가슴을 뻥 뚫어 주었다.

“이거 진짜 맛있다. 오빠도 빨랑 먹어봐. 아빠랑 엄마두.”

“언니 짱맛.”

지혜와 지연이가 제일 신났다.

식사는 츄토로로 하였다. 붉은 살이 입에 들어갈 때마다 환상을 보여주었다.

“희망이도 맛있다네. 아빠 한 접시 더 시켜주세요. 한다.”

“크크, 개구쟁이 같긴.”

정말 질리도록 먹었다. 빵빵한 배를 두들기니 해는 어느덧 아래로 내려와 붉은 세상을 만들었다.

“오빠 정말 잘 먹었어요.”

“나도.”

“아들 잘 둬서 이런 곳도 와보는구나.”

“아들이 아니라 울 며느리 때문이거든.”

가족들 모두 만족한 여행이었다.

후식으로 각자의 손에 로코모코와 바비큐 슬러시를 들고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은 하와이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와이키키 해변, 배불로 등 가볼 수 있는 곳은 모두 가봤다.

“이걸 그림으로 남겨두면 참 좋을 거 같은데......”

문득 든 생각.

사위는 어둑어둑하다.

“이럴 줄 알았음, 도화지를 챙겨올 걸 그랬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뜻을 이루기 힘들 거 같다.

“내일 그리면 되지. 나 사실 스케치북 챙겨왔지. 자기에게 그려달라 부탁하려고.”

한강의 중얼거림을 들은 윤희가 해맑게 웃었다.

“오, 그거 잘됐다. 역시 내 여자!”

한강은 크게 감격한 얼굴로 윤희를 끌어안았다.

둘의 모습을 본,

“어후...”

지혜는 눈을 가렸고.

“와, 나도 오빠 같은 남자 만나야지.”

지연은 미래 남편의 모델을 한강으로 정했다.

“거기에 자세를 잡고 서 계세요. 움직이시면 안 돼요.”

다음날, 오후 한강은 예정대로 스케치북을 들고 가족들과 해변으로 나왔다.

해변이 비치는 장소에 우뚝 솟아 있는 야자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자, 그립니다.”

지연과 지혜는 꽃무늬 원피스를 팔랑이며 포즈를 잡았고 덕화는 초창기 삼류 달건이 포즈를 취했다.

윤희와 미화는 서로 팔짱을 끼며 한강을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한강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은 쉴 법도 한데, 약간의 막힘없이 그림을 그려갔다.

대충 움직이는 거 같지만, 손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이 뚝딱 완성됐다.

스케치가 대충 완성됐다. 한강의 손에는 연필이 아닌 색연필이 들렸다.

“간다.”

곧 그림에 생기가 감돌았다. 새파란 하늘 아래 선 다섯 사람은 스케치북 안에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였다.

“완성이다.”

한 시간 정도 걸려 그림을 완성했다. 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던 사람들의 자세가 큰 한숨과 함께 풀어졌다.

저벅저벅.

“미안합니다만, 우리도 그려줄 수 있겠습니까? 유한강 회장님.”

스케치북을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뻐근해진 몸을 풀기 위하여 기지개를 켜는 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한강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다, 당신은......”

남자의 얼굴을 본 한강의 두 눈 크게 떠졌다. 입은 더없이 크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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