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03화 (103/237)
  • 103화. 20살, 대자연의 즉흥곡 경매

    “유 회장님.”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간 시선에 한강이 자리했다. 사람들은 한강의 한마디에 놀란 눈이 되었다.

    “설마 했는데 연주까지 직접 하셨군요. 어쩐지 참 좋다 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당시와 확연히 다른 호칭과 태도였다.

    그때는 ‘아이’란 벽에서 탈피를 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기업의 오너로서 성인으로 대했다.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고 행동에 조심하였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어우러지는 자연의 조화가 환상을 일으킵니다.”

    잘 빗어넘긴 올백 머리의 중년남성이 감상평을 전했다.

    “저 그림도 그림이지만, 확실히... 피아노 소리와 참 잘 어우러지는 그림이야. 금방이라도 저 선들이 뚫고 나올 거 같기도 하고. 좋아, 내가 이 그림을 30억에 사겠네.”

    ‘12개월’을 구입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마침 잘됐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간 한리버의 이름으로 팔린 그림들과 비교해 금액을 불렀다.

    “무슨 소리십니까? 여기 저도 있다는 걸 잊으신 거 같습니다? 전 40억을 내지요.”

    반사적으로 시선이 이동됐다. 절대 뺏길 수 없다는 눈이 한강을 응시했다.

    정지섭 회장이었다.

    둘이 원수지간이라도 되는지 그림 하나에 신경전을 벌인다.

    “저도 그 자리에 껴도 될지요? 처음 뵙습니다. 부디 텍입니다.”

    아시아인 외국인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나이대는 40대쯤 되었을지 모르겠다.

    “부디 텍? 혹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위더야오십니까?”

    소개한 남자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미술계에 있다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이름이 바로 부디 텍이었다. 중국 이름이 위더야오.

    머지않아 미술계 부호로 8위에 등극할 남자다.

    한강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여실 없이 드러났다.

    “절 아십니까?”

    ‘아차차, 내가 실수했구나’ 머릿속에 빨간 경고등이 울렸다.

    “지금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회장님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축산업과 농업을 크게 하시면서 중국의 유명그림을 모으신다고요.”

    아주 일부 기억이다.

    부디 텍은 홍콩에서 시작해 수많은 그림을 모으는 걸 업으로 생각했다.

    2009년 자카르타에 미술관을 개관하고 상하이와 싱가포르에 컬렉션전을 연다.

    ‘아주 대단한 사람이 왔구나.’

    장샤오강의 구작을 62억 원에 낙찰받은 걸로 크게 유명세를 탄 적도 있었다.

    “호오, 놀랍군요. 나를 아는 이가 한국에 있을 줄은.”

    부디 텍은 재밌다는 얼굴로 한강을 바라봤다. 동시에 주변의 시선을 즐겼다.

    “모르면 미술계를 떠나야죠.”

    물론, 이 말은 그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한 아부였다. 중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부인 만큼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게 어디서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를 일이다.

    “하하. 인터넷 사업에 도가 텄다 하더니, 참 대단한 정보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부디 텍은 한강의 정보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어리게만 봐오던 생각을 싹 고쳤다.

    “저의 장인어른이시자, 한국의 거인이신 육성의 회장님이십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하하, 아주 잘 알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회장님.”

    “허허허허.”

    ‘역시 알고 있었나?’ 한강은 살짝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하긴, 육성에서도 미술품을 모아 전시하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그리고......’

    한강은 남몰래 멀리서 다른 손님을 안내하는 홍라혜를 쳐다봤다.

    ‘장모님 집안도 빵빵하시고, 쑥스럽구만.’

    너무 무시했다. 작게 반성했다.

    그러는 사이 한자리에 모인 회장들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한강의 작품, 대자연의 즉흥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리서 온 저에게 넘기시면 안 되겠습니까? 12개월에 대한 작품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대자연의 즉흥곡 제가 꼭 가져가고 싶습니다.”

    부디 텍은 대자연의 즉흥곡을 크게 탐냈다. 다섯부터 이름을 알린 대작가이자 천재작가로 이름 높은 한리버의 작품이었다.

    한리버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황금보다 더한 가치를 지녔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공평하게 경쟁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게 아닌지요.”

    이용범이 나섰다.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건호가 그랬다면 이해될 문제이나, 이건 의외였다.

    ‘이래서 딸년을 잘 키워야 하는데. 에잉 쯧.’

    이용범은 집에 있을 딸을 떠올렸다.

    [아빠, 꼭이야! 꼭! 한강이 오빠 작품 가져와야 해.]

    열여섯 살 딸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아빠만 믿어.]

    [아싸! 사인도! 사인도!]

    차라리 아이돌을 좋아했음 하는 바람을 담아보기도 하였다.

    “오늘따라 적극적이십니다?”

    이건호가 의아해 물었다. 이용범이 미술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건 매우 신선했다.

    “한리버의 작품 아닙니까. 당연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요.”

    차마 딸 때문이라고 말은 못 하겠다.

    JK그룹의 이름에 먹칠은 하지 말자.

    “그거 몰랐습니다.”

    정황상 의심은 가지만, 이건호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허허, 이거 곤란하군요.”

    한편 부디 텍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경매를 통해 낙찰을 받는 방법 외엔 없게 됐습니다.”

    경쟁자가 너무도 많았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이 대자연의 즉흥곡 주인이 될 터다.

    정지섭은 경매를 진행하길 주문했다.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한강에게 있어 역대급 경매가 되리라 봤다.

    “이거 너무 내가 불리한 게 아닌지 싶습니다. 대단한 분들이 전부 이 작품을 노리고 계시는군요.”

    부디 텍은 경매로 넘어가려 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적당히 돈을 쥐여주고 가져가고 싶었는데, 일이 많이 꼬였다.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히 관망하고 있던 한강이 나섰다.

    자신의 작품에 재계 거인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참으로 영광이지 싶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만한 작품을 원하지 않는다면 시력에 이상이 있는 거겠지요.”

    부디 텍은 크게 긍정하며 한강의 작품을 추켜세웠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한강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하하하.”

    머쓱한 나머지 뒷덜미를 긁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부끄러워하시니 참으로 새롭습니다.”

    “아주 두꺼운 철갑을 두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유 회장님도 역시 사람이었군요.”

    각기 다른 반응이지만, 그간 벌인 일을 떠올리면 지금 모습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작품을 원하는 관계로 공평하게 경매를 통해 그림을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이용범은 동참했다.

    “...... 나도 끼리다.”

    단순히 돈으로 하는 경매라면 미래도 꿀리지 않는다.

    제법 재밌는 경매가 될 거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분들도 이번 경매에 참여를 하는 건지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자기야. 부탁 좀 해도 될까? 적당한 곳에 경매장을 만들어줘.”

    “알았어. 미술관에 적당한 장소가 있으니까, 거기다 준비할게. 그런데 오늘은 힘들 건데?”

    미술관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은 직원이자, 한강의 아내로 참여를 하고 있던 참.

    미술관을 사정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까진 어때?”

    “내일은 괜찮을 거야.”

    “그럼 그렇게 좀 부탁해.”

    “세 시까지면 되겠지?”

    윤희의 시선이 옆으로 쓱 이동됐다.

    “세 시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아요.”

    기업 회장님이라 그런지 시간이 제법 자유롭다.

    “네, 그럼 내일 세 시까지 마련해 둘게요.”

    윤희는 수첩에 일정을 메모했다.

    “어찌 보면 다행이군. 생각할 시간이 있어서.”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루 정도면 적당히 계획을 짜볼 수 있을 거 같다.

    주변에 자리한 사람들은 대화의 끝을 알리고 자리를 파했다. 여기에 더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찰칵찰칵.

    “특종이다.”

    근방에서 어슬렁거리던 기자들은 좋은 기삿거리를 얻은 것에 쾌재를 불렀다.

    기자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회사로 향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특종입니다. 내일 세 시에 한리버 대자연의 즉흥곡이 경매를 가집니다. 예상 참여자는......”

    ***

    [세계 재벌, 대자연의 즉흥곡을 가지기 위한 사투를 벌이다. 12월 25일 3시, 육성 미술관 라움에서 경매 열린다......]

    [대자연의 즉흥곡은 대체 어떤 작품인가? 한리버 유한강 회장이 쇼팽 즉흥환상곡을 연주하며 떠올린 작품이다.]

    [대자연의 즉흥곡은 대자연을 바탕으로 중앙에 높은음자리표가 자리한다. 그 안에 자리한 피아노와 유한강 회장이 직접 연주한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기자들도 아무나 못 할 거야. 그렇지?”

    “맞아. 이렇게 소식을 빠르게 캐치하고 퍼다 나르는 일도 보통은 아닐 텐데. 참 대단해.”

    다음날이 밝았다. 한강은 회사에서 퇴근해 윤희를 데리고 육성 미술관 라움으로 향했다.

    “배는 어때?”

    “괜찮아. 이 정도면 아직 처녀 배지.”

    윤희는 배를 살살 문질러 보이며 웃었다.

    “희망아, 힘들어도 엄마 괴롭히면 안 된다. 알았지?”

    한강도 윤희의 배를 어루만져 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손을 타고 전해왔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라움에 도착하자 대기해 있던 사람들이 차량 뒷문을 열어 맞이해주었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방으로 들어갔다.

    “와...... 이게 다 뭐야.”

    주차장까지 가보지 않아 몰랐는데, 50평은 됨직한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앞쪽에는 경매로 나갈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기자들은 피아노 박자에 맞춰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 그림을 카메라에 담았다.

    “장인어른은 왜 여기에 계십니까? 설마 이번 경매에 참여를 하시는 건가요?”

    그간 조용히 있어 그림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끔 마련된 의자에 이건호가 떡하니 자리해 있었다.

    “당연한 거 아니더냐. 왜? 장인인 내겐 팔기 싫으냐?”

    이건호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러면서 힐끔 시선을 내려 윤희의 배를 바라보다 다시 한강에게 가져갔다.

    “그럴 리가요. 장인어른이 참여해 주심 제 입장에서 아주 좋지요.”

    육성과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능구렁이 같기는... 그냥 저걸 내게 넘기겠다 하면 될걸. 쯧쯧.”

    못내 아쉬운 이건호였다. 차마 딸에게 부탁하지도 못하고 경매에 참여하게 됐다.

    “지금부터 천재 화가 한리버께서 그리신 대자연의 즉흥곡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정각 세 시가 되는 시점, 진행자가 경매 시작을 알렸다.

    “경매에 앞서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진행자가 앞으로 진행될 경매에 대해 설명했다.

    “구매수수료는 낙찰가 기준 5.5% 부가세 포함입니다. 대금은 10일 이내 완납 후 물건은 10일 이내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작품 출처는 도록에 표시한 작품에 한하여 보증하며 진위감정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출품 수수료는 1%, 낙찰되면 면제며 낙찰 수수료는 11%입니다.”

    또렷한 음성으로 시작된 설명은 빠르게 끝을 냈다.

    “시초가는 일억 원, 인상단위는 백만 원입니다.”

    대자연의 즉흥곡 경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