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99화 (99/237)
  • 99화. 20살, 한리버도 금융업을 하고 있다

    뎅그르르르.

    홀컵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리는 때.

    “나...... 7주래.”

    예상도 못 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윤희의 입에서 들려온 말은.

    “뭐어?!”

    하마와 싸움이라도 할 기세로 입술이 위아래로 쩌억 찢어졌다.

    눈동자는 말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더 말해 달라고. 재확인을 시켜달라고 말이다.

    “임신이래...”

    다시 수줍게 말하는 윤희, 한편으로 얼굴엔 걱정으로 가득했다.

    “진짜?”

    끄덕.

    “하, 하하. 아빠다. 아빠야. 하하하하. 윤희야! 고마워. 정말로!”

    위아래로 조심스럽게 흔들리는 머리를 보다, 한강은 앞으로 달려들어 윤희를 끌어안았다.

    “좋아?”

    기뻐하는 남편의 품에 안긴 윤희는 고개를 올리지 못한 채 물었다.

    “당연히 좋지! 어떻게 안 좋을 수 있어.”

    “진짜?”

    “당연!”

    “나 사실 무서웠어.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제야 안도가 되는지, 잘게 떨던 마음을 내리누를 수 있었다. 윤희는 한강을 꼭 잡았다.

    처음으로 겪는 경험에 조금 두렵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걱정 마. 옆에 내가 있잖아. 내가 옆에서 지켜줄게.”

    윤희의 말을 들은 한강은 신나 웃고 있던 표정을 고쳐, 윤희를 부드럽게 안은 자세 그대로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

    “부모님께 알리자.”

    끄덕.

    그제야 안도를 했는지 품속에 파묻고 있던 윤희의 얼굴이 위로 들렸다.

    “나 두고 절대 어디 가면 안 돼.”

    “널 두고 내가 어딜 가.”

    “......응.”

    한강은 벗겨진 윤희의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

    하하하.

    “이런 경사가 있나. 우리 집안의 경사야. 경사.”

    이태원 저택에서 이건호의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터졌다.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이제 너도 엄마라니.”

    스물일곱 살을 바라보는 딸.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

    홍라혜는 세월이 참 빠르구나 싶었다.

    “사위. 우리 딸 잘 부탁해.”

    홍라혜는 한강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부터 한강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윤희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할게요. 아이도 그렇고.”

    어찌 모르겠나. 부모의 마음을.

    한강은 둘과 약속을 하였다.

    “그래, 내 믿지.”

    이건호는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장가와 시집을 보낸 아이들 중 가장 성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윤희로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자, 이 일은 이쯤하고. 우리 또 다른 이야기를 할 게 있지 않나?”

    이건호는 한강과 단둘만의 시간을 원했다. 주변에 눈치를 주었다.

    “우린 나가 있을게요. 윤희야 자리를 피해주자.”

    라혜는 윤희를 데리고 담요를 챙겨 정원으로 나갔다.

    “엔지카드 때문이시겠죠.”

    둘만의 자리가 된 공간, 한강은 입술을 뗐다.

    “그래, 사돈과도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우려스럽긴 하구나. 지금 기업만 유지해도 국내에서 상당한 기업이 될 거라 보는데 말이다.”

    예전이야 부정적인 시선을 내세워 사업을 정리하고 육성 자동에 입사하기를 바랐는데, 지금의 한리버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계 최강자로 군림했다.

    야후가 서서히 몰락하고 그 시장마저 한리버가 채워갔다.

    머지않아 30대 기업으로 성장할 힘이 한리버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 엔지카드를 인수할 이유가 있을까?

    이 생각은 떠나지 않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리버는 플랫폼 시장의 완벽한 장악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장의 기본 생활은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게 될 겁니다. 그중 하나를 카드로 선택했습니다.”

    “음......”

    이건호의 눈썹이 꿈틀댔다.

    유한강이 꺼낸 시장의 완벽한 장악.

    이 부분이 납득이 가지 않은 탓이다.

    “겨우 인터넷이야. 모바일 인터넷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지만, 시장은 작고. 카드사를 인수한다 해서 한리버의 외형만 커질 뿐, 이를 연계할 사업은 없을 터인데.”

    연계사업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의 자금이 순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없긴요. 한리버도 지금 금융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강은 씩 웃어 보였다. 얼굴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하고 있다?”

    의아한 시선은 즉시 한강을 향했다.

    “한리버에서 취급하는 가상화폐 쿠키가 있습니다.”

    한리버의 결제 시스템을 즉시 결제가 아닌, 쿠키를 통한 결제를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다소 불편함이 있을 수 있으나, 한리버를 이용하는 회원들은 현 시스템에 대한 적응이 되어갔다.

    “...... 음.”

    “카드사가 한리버에 넘어온다면, 카드를 활용해 쿠키로 현금으로 바꿀 시 1~2% 정도를 더 지급해 쿠키 결제를 이끌 겁니다.”

    “충분히 가능성은 있지만, 그걸 가지고는 힘들 거라 보이는데.....”

    조용히 듣던 이건호는 충분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한강에게 고정된 눈빛은 ‘숨기고 있는 걸 다 말해라’ 압박을 하였다.

    “이 정도로는 아직 매력 정도가 부족하겠죠. 하지만 만약에. 자신의 매출과 재산을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특히 장인어른 같은 분들이라면......”

    “허, 그렇구나.”

    기업에서 결제를 한 순간 한리버에 매출이 잡히고, 결제한 사람들은 사용된 자금으로 찍힐 터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 모를 일이나, 당장은 써먹기 좋은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되면 기업과 개인은 절세의 혜택을 누릴 수 있고 필요 시 쿠키를 현금화하여 사용할 수 있으니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겁니다.”

    입금 시 수수료는 없으나, 출금 시에는 수수료가 따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리버의 쿠키를 활용한 혜택을 누릴 터다.

    “한리버로 많은 현금이 집중될 겁니다. 이 현금들은 한리버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오랜 시간 생각해 온 일인 만큼, 설명에 막힘이 없었다.

    “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어. 허허.”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부정적인 시선은 놀람으로 바뀌었다.

    눈동자엔 경외심마저 흘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정말로 궁금해 물었다. 이건 천재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세상의 흐름과 앞으로 변화할 시장을 떠올리니, 자연히 이런 답이 나왔습니다.”

    “내가 졌네. 완전히.”

    허탈함이 가슴 안으로 스며든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육성이 아닌, 한강에 의해 크게 변할 거야.’

    육성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나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육성은 한국의 대표이자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한리버로 인하여 유통기한이 생겼음을 인정했다.

    육성가에 태어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같은 등급으로 여겨보긴 처음이었다.

    “추후 부탁할 일이 생길지 모르겠구나.”

    “한리버는 육성의 좋은 파트너가 될 겁니다.”

    “그때가 기대되는군. 이만 끝내지. 밖으로 나가 있던 사람들이 돌아오는구만.”

    통유리창 너머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두 여성이 보였다. 이건호는 엔지카드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였다.

    ‘잘할 거라 생각해 이 핑계로 새로운 사업권을 넘기려 하였는데... 이렇게 된 이상 사돈을 제대로 밀어줘야겠어.’

    ***

    [한리버 유한강 회장, 내년 아빠 된다.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의 막내딸이자, 한리버 그룹 유한강 회장의 아내인 이윤희 씨가 내년 여름 엄마가 될 예정이다. 현재 임신 7주차로......]

    윤희의 임신 소식이 아침 문을 열었다.

    직장인들은 윤희의 소식을 읽으며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 조심하고, 힘들면 장모님께 말해 쉬엄쉬엄 일해.”

    한강은 윤희를 생각해 한 말이었지만.

    “걱정 말고 다녀오셔요. 남편님.”

    윤희가 일을 대충할 여자는 아니었다.

    아직 배도 나오지 않은 상태.

    “그래도...”

    “됐으니 그만 가봐. 고맙지만, 나 아직 아무렇지 않다고.”

    벌써부터 회사를 쉰다는 건, 모든 직장인들에게 죄를 짓는 행동.

    윤희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 잘 다녀와.”

    윤희의 강한 주장에 한강은 힘겹게 걸음을 옮겨 회사로 향했다.

    지이이이잉.

    [산업은행장 이동기.]

    8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간, 핸드폰 화면 위로 이동기 은행장의 이름이 떴다.

    “기사님, 갓길에 잠시 차를 정차하죠.”

    이름을 본 한강은 기사에게 지시를 내려 차량을 세워둘 것을 주문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은행장님.”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오늘 회장님을 뵙고자 하는데, 시간 어떠신지요.

    “아무래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신 거 같습니다?”

    ---하하하.

    웃음을 흘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하나, 한강은 이를 좋게 받아들였다.

    “어디가 좋겠습니까? 은행장님 편한 곳에서 보도록 하죠.”

    ---음, 영등포에 참 맛있는 삼계탕집이 있습니다. 좀 낡긴 했지만, 몸보신하는 데 아주 좋은 곳입니다.

    “맛있는 집에 건물은 중요하지 않죠. 위치를 알려주시면 그리로 가겠습니다.”

    ---문자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기다리죠. 아무래도 영등포로 가야 할 거 같네요.”

    전화를 끊고 기사에게 넌지시 목적지 변경을 알렸다.

    지이이이잉.

    잠깐의 시간이 지나 문자가 왔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342-... XX삼계탕. 대영 중학교 인근.]

    “여기로 가주세요.”

    핸드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청담동 본사로 향하던 차량은 크게 우회해, 우측으로 돌았다.

    “접니다. 산업은행장과 약속이 있어 오늘 출근은 좀 늦을 거 같네요. 결재서류가 있거든 제 자리에 올려두세요. 도착하면 확인하겠습니다.”

    회장일지라도 비서가 자신의 동선을 몰라선 안 되기에 비서팀에 연락해 자신의 일정을 알렸다.

    부릉, 차량은 곧 용산을 빠져나가 원효대교를 지나갔다.

    “차량은 여기서 조금 떨어진 장소나 백화점에 두세요. 대화가 끝날 때 연락드릴게요.”

    지어진 지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건물 앞에 차가 멈췄다.

    차량에서 내린 한강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차량을 이동할 것을 주문했다.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대신이라 하기엔 뭣하지만, 건강식이라도 드시며 쉬고 계세요.”

    한강은 그 말을 남기고 녹색 간판이 달린 건물로 들어갔다.

    “바쁘신 분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조금 튀는 만남을 피하고자 여기로 잡았습니다.”

    건물로 들어가니 이동기 은행장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으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 기자라도 있나 살피는 거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발표하기 전에 기자들이라도 닥치면 머리 아파져서 말이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 나누죠.”

    아침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한산했다.

    대화를 나누기에 아주 최적의 장소였다.

    둘은 자리에 마주 앉았다. 동시에 식사가 나왔다.

    “냄새 좋은데요.”

    “드셔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이동기는 가슴을 활짝 폈다. 입가엔 금세 침이 고였다.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허기가 들던 참.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입 안에 넣어 맛을 음미했다.

    “호오.”

    구수함과 깊은 육수의 맛에 정신이 정복당했다.

    한강은 살코기를 발라 입 안으로 바쁘게 넣었다. 부드럽게 갈라지며 젓가락에 잡히는 고기는 둘의 입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휴우, 정말 맛있네요. 좋은 곳을 알게 됐습니다.”

    식사는 빠르게 끝났다. 너무 맛있어 정신없이 먹었다. 빵빵해진 배를 손으로 문지르며 아직도 혀에 맴도는 고기의 맛을 즐겼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동기도 뿌듯했는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그릇을 옆으로 치워 자리를 정리했다.

    “아내와 와보고 싶은 곳이네요. 음식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산업은행의 선택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기까지 오는 데.

    그리고 한강은 확신이 깃든 얼굴로 이동기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의 입을.

    “엔지카드, 한리버에 넘기겠습니다.”

    곧, 이동기의 입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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