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20살, 엔지카드 인수
[엔지카드를 매각하면서 정부 강압에 의한 부채탕감은 없을 것......]
채권단에서 부채탕감에 나설 경우, 감자(자본금을 줄이는 행위)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모든 피해는 주주들에게 향한다.
혹여나, 십 분의 일 비율로 감자를 시행할 시 주주들의 주식은 그만큼 줄게 된다.
즉, 모든 피해가 주주들에게 돌아감을 의미한다.
기업에 있어 자본금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자본잠식이라 하는데 2년간 이어지면 상장폐지를 당한다.
그렇기에 부채탕감은 절대 없을 것이라 공표했다.
“더는 시간을 끌면 안 되겠어. 감히 내 먹이를 노리다니. 젊은 놈이 욕심이 대단해.”
지금껏 열매가 무르익는 날을 기다려온 이때, 생각도 못 한 복병이 등장했다.
덕분에 발등 위로 불이 떨어졌다.
“당장 언론에 알려 내 뜻을 알리게. 우리도 엔지카드 인수에 나서겠다고.”
남궁현 하나은행장은 더는 기다리지 않고 엔지카드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결정하였다.
***
숭례문 인근에 자리한 신한은행.
“뭐야? 지금 산업은행에서 움직였다고?”
“그렇습니다. 당장 나서지 않으면 자칫 기회를 애송이에게 뺏길 수 있습니다.”
이곳도 하나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이밍만을 보고 있던 때 날아든 소식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제기랄, 하나은행 그 늙은이도 움직이겠구만. 어서 움직여 우리의 뜻을 전하게.”
하나은행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리버의 독주로 예상하던 상황은 크게 확대되어 3개사로 늘었다.
***
그 시각.
“주변 반응은 어떻던가요?”
한강은 여유로이 차를 음미하며 김동진과 대화를 나누었다.
“예상대로 몇몇 기업들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하나와 신한이 이번 인수전에 뛰어들 걸로 보입니다.”
언론사에 심어둔 기자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언론사 입장에서 한리버는 갑에 속한다.
플랫폼 영향력이 확대되고 신문시장이 좁아짐에 따라 언론사는 한리버와 상생을 원했다.
“아주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네요.”
똑똑.
그때 들려오는 노크 소리.
“회장님. 이동기 산업은행장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연락입니다.”
김소영이 안으로 들어와 산업은행장의 소식을 알려왔다.
“생각보다 빠른데요?”
“그만큼 급박하단 증거 아닐까요.”
그의 행동에서 여러 정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겠죠. 제 생각을 들어보고 싶기도 할 테고.”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좋겠네요. 어쨌든 두 은행의 움직임을 포착했으니 확실하게 어필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도록 하죠.”
어떤 경쟁이든 후발은 좋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란 게 처음 제시한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파격적인 조건이면... 더 그렇게 되겠지.’
한강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오는 대로 이쪽으로 모시세요. 시간 맞춰 다과도 준비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김소영이 나갔다.
곧 문이 굳게 닫혔다.
“그럼 저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추가 소식이 들어오면 보고 올리겠습니다.”
잠시 후 김동진 비서실장도 방을 나섰다.
그의 걸음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그럼 난 눈을 감고 어떻게 계획을 정리해 보자.”
찌푸등한 몸을 뒤로 젖혀 소파에 몸을 맡겼다. 푹신함이 등을 따라 머리로 전달됐다.
자세가 편안해지니, 생각의 흐름이 폭넓게 이뤄졌다.
“이걸 저렇게 해서 저걸 이렇게 가져오면......”
한강은 앞으로의 계획을 조금 더 세밀하고 섬세하게 짜맞춰갔다.
***
한리버 빌딩 지하 주차장으로 검은색 고급 세단이 들어섰다.
끼리릭, 바닥에 긁는 타이어 소리가 퍼지며 차량은 주차장 빈자리로 들어갔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게.”
기사를 주차장에 두고 이동기 은행장은 지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어서 오세요. 은행장님.”
약 40분의 시간이 지나, 이동기가 들어왔다.
꽤 서둘렀는지 어깨가 약하게 들썩였다.
‘아니면......’
시선이 자연히 아래로 내려갔다. 펑퍼짐한 저장창고로 짐작되는 배가 시야로 들어왔다.
무거워 보이는 배를 이끌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반갑습니다. 유 회장님.”
산업은행장은 넉살 좋은 얼굴로 한강과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간단히 인사를 마친 둘은 자리로 향했다.
비서의 손에 들린 음료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한강은 감사를 전하고 캔을 따, 입에 가져가 목 안으로 넘겼다.
“캬, 시원하니 맛나네요. 드셔보세요. 제가 좋아하는 음료입니다.”
목을 간지럽히는 구수하며 달달한 맛, 보리 그림이 참 보기 좋다.
“잘 마시겠습니다.”
이동기 음료를 입 안으로 가져가 까끌까끌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단숨에 음료를 비웠다.
“꺼억. 좋죠.”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트림. 예의는 아니지만 서로 트림을 주고받으며 서먹하던 분위기를 한층 가볍게 만들었다.
“하하, 내 살다 첫 자리에서 이런 가벼운 모습을 보이긴 처음입니다.”
“저도예요. 우리가 딱딱한 분위기를 이어갈 관계도 아니고, 편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음 합니다.”
한강은 편안한 미소를 입가에 품었다.
“아주 달변가십니다? 말을 이리 잘하시는 분일 줄은. 하하.”
“다 먹고 살기 위한 게 아닐까요.”
“맞죠. 맞아요.”
사업가는 결국 영업직. 말 한마디에 사업의 결과물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하지 않는가?
그만큼 사업가에게 있어 말은 무척 중요했다.
“제가 말입니다. 다섯 살 때부터 가져오던 꿈이 무엇인지 아세요.”
공기가 조금씩 바뀌어 갔다.
“꿈이라, 미술가? 음악가가 아닐지요.”
한강의 질문에 어린 시절 밟아온 길을 되짚어 가본다.
“아니요. 그건 내가 있게 해주는 나를 위한 취미라 할 수 있습니다. 제 꿈은 바로 이겁니다.”
한강은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자리를 가리켰다.
“바로 이 자리에 앉아 국내 최고의 기업가로 성장하는 겁니다. 제가 걸어온 발걸음 은행장님도 잘 아실 거라 봅니다.”
“음......”
이동기는 그제야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왜 꿈이란 단어를 끄집어냈는지 알 거 같았다.
그의 자세가 고쳐지고 편하게 앉던 자세를 앞으로 끌어왔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겠다는 그만의 표현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 했을 때, 전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리버란 브랜드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비록 매출 면에서 볼 때 대기업이란 가면을 쓴 거 치고 너무 저조하나, 분명한 건 매년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리버와 함께하는 영세사업장의 매출 증가는 한리버의 매출 증가를 의미했고, 메신저와 오션월드로 유입되는 회원은 영향력과 힘을 의미했다.
한강은 이 부분을 확실하게 어필해 한리버란 기업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리버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세 곳과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아마존과 애플 그리고 육성입니다. 이 세 그룹과의 합은 한리버의 잠재적 힘이라 보면 좋을 겁니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확실하게 각인을 시켜주었다.
“......혹시 엔지카드 인수전에 컨소시엄 하실 건가요?”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한리버 혼자 힘이 아닌, 믿을만한 기업과의 합은 부정적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필요하다면 그리하겠으나, 솔직히 개인의 힘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은행장님께 제안을 드릴 게 있습니다.”
한강의 눈빛이 반짝 빛을 뿌려 다시 한번 방 안의 공기를 바꾸었다.
“말씀하시지요.”
이동기의 얼굴이 침착하게 변했다.
“전 이번 인수전을 위해 육성의 지분을 적당히 정리를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상당한 자본금이 확보가 될 겁니다.”
끄덕.
유한강의 자산은 꽤 떠들썩하다. 이미 세계 100대 부자라며 떠들썩 하기도 하였으니까.
“저의 제안은 저에게 엔지카드를 넘기면 엔지카드를 1.2조 원에 매입해, 채권은행출자 1조를 해결하고 조정자기자본비율 8%로 맞춰 5년 내 13%까지 끌어올려 보겠습니다.”
한강은 엔지카드에 소모되는 비용을 약 4조 원을 보고 있었다.
어느 기업도 받아들이지 않던 조건을 직접 언급해 못을 박았다.
‘월 연제분에 대한 손실률은 70%에서 80%. 넉넉잡고 2조는 필요해.’
엔지카드 대표가 빌어먹게도 아주 X같이 운영을 하면서 회사 재무제표를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파격적이지.’
한강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총 4조 원, 5년 뒤에는 총 5조 원을 엔지카드에 쏟아붓겠습니다.”
여기에는 유상증자도 계획하고 있었다.
“단, 초기 들어가는 1.2조 원에 대해 5년 만기로 하여 기다려 주셨음 합니다. 이것이 제가 은행장님께 내건 제안입니다.”
“......”
“필요하다면 전환사채도 사용하기로 하죠. 전 어느 기업보다 한리버에 맡기는 게 엔지카드에 있어 좋은 선택지라 봅니다. 지금 이만한 조건을 내걸 수 있는 기업은 하나가 됐든 신한이 됐든 힘들 겁니다.”
한강은 이번 일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볼 참이다.
카드 또한 통신업과 자동차 산업, 미래산업에 꼭 필요한 수단이 되기에 무조건 인수를 하고자 하였다.
“허허, 단단히 준비하셨군요. 이거 솔직히 놀랐습니다.”
놀람은 당연하다. 03년 당시 하나은행이 인수의향을 밝혔다 너무 비싸다는 트집에 결국 무산이 됐었으니까.
지금의 조건은 그때 내건 조건보다 파격적이었다.
대신 1조2천억 원을 5년 뒤 주겠다는 부분이 다르다면 다른 부분이었다.
‘대체 유 회장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엔지카드가 욕심이 난다지만, 가능한 일일까?’
자신이 매입하는 입장에서도 조금은 과한 부분은 있었다. 매각하는 입장에서야 좋은 일일이지만.
“당장 답을 드리긴 힘들 거 같습니다. 워낙 큰 규모의 일이라.”
너무도 좋은 조건이나, 여기서 결정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구멍가게를 파는 것도 아니고, 무려 몇조 원이 움직이는 거래이다.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정도면 됩니다. 저도 당장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니까요.”
“배려 감사합니다.”
이동기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스무 살 나이에 4조, 5조를 당당히 내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겠지. 확실히 달라. 그릇도 그렇고. 야망도 그렇고......’
이번 일로 한강의 진정한 모습을 엿본 거 같았다. 어리게만 느꼈던 기존의 생각을 전면 수정했다.
“오늘 좋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연락 기다리죠.”
둘의 긴 대화가 끝났다. 한강은 일어서는 이동기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실장님, 농협이 보유한 엔지카드 지분 14%. 공개매수에 들어가세요.”
이번에 확실히 보여주기로 하였다.
한리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며, 자신의 뜻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한강은 엔지카드의 대한 공개매수 지시를 내렸다.
“추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빠짐없이 받겠습니다.”
총알은 쏴졌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