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93화 (93/237)
  • 93화. 20살, 스트리머

    ---여러분 안녕하세요. 예라예요!! 여기는 전주~ 아주 허허벌판이죠. 전 여기서 그림을 그려 볼게요. 아주 쉽게 그릴 거니까, 잘 따라오세욥.

    허허벌판이라 말했지만, 영상으로 보이는 세상은 푸르른 하늘 아래로 뻗어 있는 녹색 수림.

    그리고 녹색 벼로 가득했다.

    여성은 갈색 흙길을 따라 쭉 걷다, 한 지점에 멈춰 파스텔을 들었다.

    스케치 없이 긋는 모습은 이번 영상을 찍기 위한 연습량이 느껴졌다.

    여성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야로 보이는 세상을 자신만의 색깔로 스케치북에 채웠다.

    그녀만의 독창성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다.

    “모두 다양한 시도를 하는구나. 이건 좀 재밌고, 디건 좀 신선하고.”

    여기저기 올라오는 영상을 보며 흐뭇함을 느꼈다.

    영상이 올라오는 수만큼 일일 방문자 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사람들과 계약을 하면 될 거 같고...”

    영상의 목적은 그림을 잘 그리는 데 있지 않았다.

    좋은 콘텐츠를 활용해 재밌는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뽑기로 하였다.

    당연히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을 예정이다.

    “나도 힘내 볼까. 으자자.”

    인터넷 창을 닫았다. 의자에 붙이고 있던 엉덩이를 떼어 허리를 쭉 폈다.

    “조금 민망하지만, 양말도 더럽혀질 수 있으니......”

    양말을 벗어 맨발 차림으로 하얀 도화지를 밟았다. 천천히 걸어 하얀 도화지로 가득한 세상에 서서 가만히 응시했다.

    “거꾸로 그림을 그리게 될 날이 올 줄 몰랐지. 그간 연습한 걸 생각하면.”

    약 15년 뒤 SNS에 떠돌게 될 그림.

    한강은 거꾸로 그림을 그리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수십 번은 넘게 그렸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퇴근하면 개인 작업실에서 실패한 작품을 찢고 그리고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실전, 어떤 편집과정도 없이 고스란히 영상을 오션월드에 업로드를 시킬 것이다.

    “연습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그리긴 무리야. 진짜 이건 재능이 따라와 줘야 하는 거 같아. 휴...... 그럼 가볼까.”

    하얀색 세상과 어울리면서 어울리지 않은 진한 녹색 캔버스가 앞에 놓였다.

    작게 심호흡을 하고 앞에 놓인 카메라를 바라봤다.

    “앞으로 전 120초 이내에 사람의 얼굴을 그려 보겠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제가 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120초 만에 사람 얼굴을 그리기. 그야말로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 시대에 이런 걸 시도한 사람도 없었고.

    진한 녹색 캔버스에 하얀 물감이 덕지덕지 묻었다. 붓을 들지도 않았다. 그저 손에 물감을 묻혀 사방천지에 찍어 발랐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움직였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색이 바뀌었다. 이번엔 붉은 기가 감도는 색이었다. 하얀 물감 안쪽을 서서히 공략해갔다.

    시간은 60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사람의 얼굴인지 구분도 안 되었다. 그냥 낙서한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와서 손바닥으로 찍는 게 더 좋아 보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95초가 지나가는 시점!

    “완성입니다!”

    물감으로 엉망이 된 손을 수건에 대충 닦고, 캔버스를 들어 돌렸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캔버스에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채 어딘가 바라보는 윤희 얼굴이 등장했다.

    엉망진창으로 보이던 그림에 기적이 일어났다.

    약속한 시간은 120초, 하지만 고작 95초 만에 그림을 완성하였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한리버였습니다. 즐겨찾기 추천 꾹 눌러주세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가장 하단에 사인을 하는 걸로 모든 방송을 끝냈다.

    “회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우와, 이거 망친 거 아닌가 싶었는데......”

    한강의 방송을 돕던 사람들은 짧은 시간, 충격을 선사한 한강의 얼굴을 영혼이 이탈한 눈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동공은 확대돼 그림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어때요?”

    알록달록 물감이 옷에 묻은 상태로 걸어오는 한강의 모습이 과연 잘 나가는 회장의 모습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털털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멋져요.”

    “맞아요. 저건 아무도 못 이겨요. 역대급이라고요!”

    직원들은 너도나도 엄지를 하늘로 추켜세웠다.

    “다행이네요. 어떨까 걱정했는데.”

    정말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오늘 그린 건, 시간에 쫓겨 거의 감에 의지해 그린 것.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진짜 회장님은 예술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세요.”

    “담에 저도 꼭 그려주세요!”

    직원들은 한강을 예술계 화신 같은 인물로 받아들였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창의적이고 독특한데도 늘 작품성을 지녀 시선을 떼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래요. 꼭 그려줄게요.”

    직원들의 격려와 칭찬 세례 속에 한강은 웃으며 주변을 정리했다.

    ‘이제 시간을 두고 기다리며 스트리머를 위한 영상 전용 사이트를 완성하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

    ***

    퇴근을 하고 돌아온 집.

    “이거 진짜 나 주는 거야?”

    윤희의 얼굴에 감격의 물결이 좔좔 흘렀다.

    “이벤트 문제도 있었지만, 자기를 위한 그림이니까. 그건 자기 거지. 어때, 마음에 들어?”

    한강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꺾였다.

    윤희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응, 너무 좋다. 내가 요즘 그림 보는 눈이 엄청 높아졌는데, 자기 건 볼수록 빠져들어.”

    작품 하나하나가 새롭고 창의적이다.

    거기에 여심을 흔드는.

    “오늘 좀 늦게 자도 되지?”

    완벽한 미소는.

    “......짐승.”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자극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마력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빠져들게 만들었다.

    “나 낼 출퇴근 시켜줄 거지?”

    윤희는 한강에게 쓱 안겨 몸을 맡겼다.

    오늘 밤은 잠자기 힘들 거 같다.

    ***

    육성 미술관 라움.

    “자갸, 이따 봐!”

    부웅!

    약속대로 윤희를 미술관까지 태워주고 떠나는 한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윤희의 얼굴에 행복감이 가득 맺혀 있었다.

    어젯밤의 긴 시간은 둘의 사이를 한층 더 두텁게 만든 모양이다.

    “아주 못 봐주겠구나.”

    때마침 뒤따라 출근하는 홍라혜가 어이없는 눈으로 멀어지는 한강의 차를 바라봤다.

    “오셨어요. 관장님!”

    들려오는 목소리에 등을 돌려 인사했다.

    오늘 두 눈가에 생기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홍라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뒤로 수행원들이 따라붙었다.

    “진짜 사위가 이렇게 그렸다고.”

    관장실로 따라붙은 윤희는 어제 한강이 들고 온 그림을 내보였다.

    홍라혜는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을 감상했다.

    “정말 예쁘죠?”

    “잘 그렸구나.”

    “이거 우리 미술관에 전시하려고요. 관장님 허락만 해주시면.”

    윤희가 그림을 가져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집에 보관하고 싶었으나, 새로운 방법으로 그려진 그림이기에 꼭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봐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였다.

    “나쁘지 않겠구나. 전시관에 다양한 그림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홍라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하였다.

    유한강을 위한 룸에 작품이 더 늘었다.

    그리고.

    [판매 안 합니다.]

    문구가 새겨진 카드가 부착됐다.

    ***

    2004년 8월 20일 금요일 11시 20분을 가리킨 시간, 한강의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 이미자: 00:01:33 실화?

    └ 박수진: 유느님 사랑해유~~

    └ 김말자: 깜짝아, 이게 왜 조회 수 1위일까 했는데...... 역시 이유가 있구나.

    └ 이숙희: 소매 걷어붙인 거 봐. 개 섹시하다. 내 남자는 지금 음식물로 입가에 그림 그리는 중......ㅠㅠ

    └ 조현아: 저도 데려다 그려주세요. 평생 팬 할게요 오빠......

    삽시간에 해당 영상 조회 수는 10만을 넘겼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개된 영상은 사람들의 이슈놀이 재료로 충분했다.

    [저보다 빠르게 그리시는 분께 쿠키 10만 개 쏩니다. 완벽하게 해내 보세요.]

    그리고 모든 예술가와 미대를 다니는 학생들을 도발하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이슈성을 증폭시켰다.

    “헹, 95초라고? 90초 만에 그려주지.”

    “나도 도전이다.”

    게시물 아래로 적힌 문구를 확인한 사람들은 뜨거운 열기를 눈가에 두르며 의욕을 불태웠다.

    한리버의 챌린지는(Challenge)는 사람들의 퍼 나르기와 도전에 빠르게 전파를 탔다.

    “와, 살 떨리네.”

    네티즌들의 반응을 접한 누군가 말했다.

    계속해 도전하는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을 질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야, 살 떨리면 지방이야. 살 빼.”

    “......”

    그러던 중, 날아든 돌직구는.

    “이거 살 아니거든요. 근육이라고요!”

    억울함이 가득한 묻은 목소리가 사무실을 두들겼다.

    ***

    열흘이 지나 8월 말일.

    [수상자는 화제성 창의성 조회 수를 기반으로 평가가 이뤄집니다.]

    [수상자 중 원하시는 분에 한하여 한리버와 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인센티브 광고 수익을 제외한 고정급여 월 3백만 원을 드립니다.]

    수상자가 안내문과 함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1위 김유정(24)-안산]

    [2위 이유리(26)-강남]

    [3위 나훈이(30)-수원]

    ......

    100위까지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고 나머지 인원은 개별로 메신저를 보냈다.

    ***

    딩동!

    [한리버 스트리머 챌린저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수상자로 올라 메시지를 보냅니다.]

    [특전! 쿠키 500개를 드려요. 웹소설 웹쇼핑 등 자유로이 이용 가능하세요.]

    [원하시는 분에 한하여 고정급여 받으며 스트리머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드립니다!]

    “...... 염병할.”

    업무 중 받아든 메신저에 욕이 튀어나왔다.

    “이래서 잘생기고 예뻐야 해. 부러운 얼굴 부자들.”

    남자의 이름은 얼마 전 한리버 웹툰 작가로 계약한 이도였다.

    이도는 그림만 그려선 수입의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한리버 오션월드에서 진행하는 스트리머 챌린저 영상을 올렸다.

    유화, 수채화, 파스텔이 아닌 만화 작화 형식으로 그렸는데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했다.

    “세상 뿌옇게 변하네, 안구에 서리 찬다.”

    못해도 50위 안에는 들 거라 자신한 영상은 100위에 턱도 걸치지 못하고 TKO패 당했다.

    “오늘 두꺼비 친구랑 맞잔 해야지.”

    진하게 소주가 당겼다. 이도는 안 되겠다 싶은지 핸드폰 폴더를 열어 단축 버튼을 길게 눌렀다.

    “상덕아, 오늘 목에 세균 찼다. 소독하러 가자.”

    ---뭔, 또 샵소리야.

    “정신이 건조해져서 가뭄 들게 생겼다. 두꺼비 장군님과 미팅 잡았다. 퍼뜩 나와.”

    ---아, 이 새끼. 또 지랄이고. 지랄이. 그래서 네가 사나?

    “송충이도 안 할 짓을. 내 배춧잎 뜯어 먹다 번데기 된다.”

    ---술을 취하려 마시지, 그럼 걍 마시냐. 확실히 말해.

    “장군의 아들로 7시까지. 오늘 종로 잡자.”

    ---염병, 기다려 간다.

    전화가 끊겼다.

    오늘의 우울함을 술로 달래기로 하였다.

    이도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온돌도 이것보단 시원하겠다.”

    무척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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