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91화 (91/237)
  • 91화. 20살, 웹툰

    “불법이 아닙니다. 계약을 어긴 점도 없습니다. 더움은 파츠넷으로부터 정당하게 햄썬 온라인 서비스권을 가져왔습니다.”

    한강이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당당하게 뱉어냈다.

    “그럼 문제가 없는 일인데, 왜 저들이 난린가요?”

    “그것이 일이 조금 꼬였습니다. 파츠 대표가 독단적으로 신주를 받고 온라인 서비스 계약 포기각서를 쓰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

    세상엔 별 희한한 사람들이 많다. 그깟 돈 몇 푼에 양심을 파는 사람과 피해자 연기를 하는 사람들.

    한리버는 양쪽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되었다.

    뭘 하든 손해로 남게 되었다.

    “햄썬에서 가져온 만화들 실적이 어떻게 돼요?”

    “1천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다 내리세요.”

    “하지만, 회장님.”

    “그거 얻자고 저쪽과 소송전을 벌일 이유가 없어요. 대충 따져봐도 손해 아닌가요. 소송까지 가면 기업 이미지만 나빠질 거예요. 대신 우리도 억울하니 피해보상에 따른 건 없는 걸로 하세요.”

    한강은 이번 일은 어디로 보나 한리버에 있어 손해라 결론지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만화시장은 곧 죽을 거니까요. 우리는 인기 있는 소설을 기반으로 웹툰에 들어갑니다. 무료로 풀 수 있는 다양한 웹툰도 준비해 서비스를 진행하세요.”

    온라인 만화 서비스에서 발을 빼기로 선언을 하였다.

    대신 그 빈 공간에 인기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을 서비스하는 걸로 방향을 틀었다.

    ---한리버 더움은 이번 일에 대해 파츠넷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파츠 전 대표의 사전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판매권 포기각서를 씀으로 한리버 더움은 큰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한리버 더움 고호경 대표는 파츠넷에 억울한 심경을 언론에 밝혔다.

    ---하지만 너그러운 회장님의 결정에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으며, 햄썬 온라인 만화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유한강의 이미지를 올려주며 모든 이야기를 마쳤다.

    └ 악! 거기에 보다 만 만화 있는데...... 내 쿠키......

    └ 그러지 마셔요. 아......

    더움에서 만화를 보던 독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쿠키는 원하시는 분에 한하여 환불 조치해드리겠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을 여러분께 전해드려 죄송합니다. 독자님들의 마음을 담아 더움 만화는 더욱 재밌는 만화를 개발해 서비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댓글에 한리버 더움은 이같이 글을 남겼다.

    ***

    육성그룹 도곡동 사옥.

    “참 결정이 빠른 아이야. 그렇지 않은가?”

    한편, 기사가 사람들 앞에 제대로 공개가 되기도 전에 한리버는 소송에 대한 문제를 단시간 내에 꺼버렸다.

    “이 이사라면 어쩌겠나?”

    이건호는 아들이자 육성그룹 등기이사인 이재진에게 물었다.

    “여러 방향으로 손을 써, 소송전에 임했을 거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인수를 통해 소송전을 없앴을 거 같습니다.”

    정답은 없다. 모든 정답은 기업의 오너가 판단하여 결정할 문제였으니까.

    “그렇지.”

    저 또한 맞는 대답이리라 봤다.

    뭣하면 육성이란 힘을 이용해 기업을 무너트리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그간 공격적인 면모를 보이던 유한강의 판단이었다. 당연히 이번 일도 공격적인 자세로 임해 손실을 만회하고 이익을 취하리라 내다봤다.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단 말이야.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단 한 번을 뒤로 물러난 적 없던 이가 바로 유한강이었다.

    빠른 시간 기업을 키운 것만 보더라도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아이가 고작 소송비가 아까워 물러났다고?!”

    납득이 가지 않았다. 무엇인가 있을 거 같은데, 대체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억측이십니다.”

    “네이컴을 먹기 위해 긴 시간 머리를 굴리며 살아온 녀석이 말이냐?”

    이재진의 말에 이건호는 인상을 구겼다.

    아직 한참 멀었음을 지금의 말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아직 멀었어. 쯧쯧. 그 녀석이 조금만 육성에 욕심을 낸다면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되는 것도 모르고.’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몇 년 전 한강은 자신의 뜻을 확실히 밝힌 바 있다.

    허락한 육성 자동차 이외에 다른 곳엔 욕심을 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확실하게 육성 자동차를 외부에서 성장시켜 나갔다. 시장을 읽는 뛰어난 안목에 그림이 더해지니 육성 자동차는 대한민국 1위와 2위 자리를 경쟁하며 그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 있었다.

    “아직 스무 살입니다. 지금도 대단하다 할 수 있지만,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래......”

    MBA를 수료한 머리와 사람을 보는 눈은 다른가 보다. 대화를 이어가면 갈수록 실망감만 증폭됐다.

    “나가보거라.”

    결국 밖으로 내보냈다.

    “후... 한심해. 저것도 내 아들이라고......”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한숨이 깊게 내려앉았다.

    ***

    한리버 파라다이스.

    작가 사무실.

    “속보, 속보예요!”

    통조림(마감이 닥쳐도 원고를 제출하지 않는 작가를 가둬서 쓰게 한다는 은어)으로 유명한 작가 사무실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아, 내 집중력...... 망할......”

    “무슨 일인데, 그래요?”

    한창 원고 작업에 열중이던 작가들이 퀭한 눈으로 시끄럽게 들어선 남자를 응시했다.

    “사무실 지나다 얘기 들었는데, 웹툰 부서가 신설됐대요!”

    “아...... 난 또......”

    “에휴......”

    남자의 말에 시선을 가져가던 작가들은 짧게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가져갔다.

    “뭐야, 다들 알고 있었어요?”

    김샜다는 분위기에 남자는 크게 당황했다.

    “계약할 때 못 들었어요? 곧 웹툰 부서 들어올 거라고?”

    “......그랬나요?!”

    “에휴...... 그거 보세요. 있어요.”

    여성 작가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지 손가락을 가리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팸플릿?!”

    “네, 거기에 여기 사업에 대한 거 다 적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여성 작가는 인내심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전 또 이게 저기선 기밀이라길래 엄청 중요한 소식인 줄 알았네요. 우리 소설들 전부 웹툰화시킬 거라고 해서......”

    멈칫!

    글은 쓰고 있지만 귀는 열어놓고 있던 작가들은 방금 들려온 이야기에 고개가 남자에게로 확 꺾였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우리 소설 전부 웹툰화 된다고요?!”

    작가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아, 네네. 그래서 웹툰 만화 작가들을 예정보다 많이 채용하게 됐다면서......그리고 더움 만화 내리고 전부 웹툰으로 채울 거라고......”

    갑작스러운 공격적인 질문세례에 남자는 크게 당황했다.

    “와, 그럼 대박 아니에요?”

    “그냥 대박이 아니지. 대충 따져도 최소 직장인 월급 수준은 매달 꽂힐 텐데.”

    웹소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게 엊그제 이야기.

    종이책과 웹소설이 얼마나 차이가 날까 싶었던 작가들은 처음 정산서를 받게 됐던 날을 떠올렸다.

    [실 입금액 ₩ 4,200,000.]

    [실 입금액 ₩ 13,000,000.]

    [실 입금액 ₩ 3,500,000.]

    [실 입금액 ₩ 12,100,000.]

    각자 입금액은 천차만별 차이는 있었지만, 작가로 생계를 이어가며 받아본 돈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잘했어, 신입!”

    “이건 몰랐어요.”

    “큰 건 하나 하셨네요. 크크.”

    “그래도 이건 내부 기밀이니까, 우리도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회사에서 직접 발표하기 전까진 다른 작가들에게 말하지 말고.”

    이 중 가장 연장자가 해당 정보에 대한 주의를 주었다.

    “괜히 입 잘못 놀렸다가 받아든 정산금 다 토해내고 쫓겨날 수도 있으니까.”

    “네! 형님!”

    “그럼... 다들 다시 지옥 가자고.”

    글쓰기 싫은 병을 뚫고 자세를 고쳐 손을 키보드에 가져갔다.

    속으로 ‘글쓰기 싫다’ 생각하면서 망상에 잠겨갔다.

    소설은 별로지만, 웹툰은 대박나라. 희망찬 그들의 손길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

    한적한 오후, 서울 먹자골목에 자리한 할매 고기국밥집.

    후르룹, 후후. 후르릅.

    순대와 잘 썰어진 고기를 입 안으로 우걱우걱 넣었다. 남자는 누가 음식 가로챌까 싶은지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숟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입으로 가져갔다.

    “후아, 잘 먹었다.”

    국밥이 나오고 정확히 10분 만에 그릇을 비웠다.

    테이블 위로 마련된 밑반찬조차 깔끔히 정리했다.

    “아따 총각 잘 먹네. 수정과 한 잔 줄까?”

    “주시면 감사하쥬.”

    남자는 씩 웃으며 코를 벌렁거렸다.

    “총각이 예뻐서 주는 거야.”

    “알죠, 알죠.”

    익살스럽게 웃으며 수정과를 공손히 받았다.

    곧장 시원하게 쭉 들이켜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하여금 침 넘어가게 만들었다.

    “얼마예요!”

    “너무 맛있게 먹네. 나까지 먹고 싶더라니깐. 호호. 5천 원만 줘.”

    “여깄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남성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국밥집을 벗어났다.

    터벅터벅, 팔(八)자걸음으로 전철역에 올라 7호선 열차에 올랐다.

    [이번 역은 청담, 청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아, 멀다 멀어. 그래도 기숙사도 내준다니까, 괜찮겠지.”

    작게 투덜거리며 문 앞에 섰다.

    [문이 열립니다.]

    치이이익!

    에어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우르르 밖으로 사람을 쏟아냈다.

    “정말 난 서울 체질 아닌가 봐. 기차가 배고픈 돼지 뱀 새끼 마냥 사람들 집어삼키네.”

    안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탑승하는 걸 본 남자의 감상평이었다.

    한참을 그 장면을 응시하다, ‘이크! 내 정신 보게’ 시계를 보고 황급히 출구로 달렸다.

    “이도 씨, 이도 씨 오셨나요.”

    더움 만화에서 웹툰으로 이름을 변경해, 새롭게 단장한 사무실 복도로 여성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여기요! 여기 왔으요!”

    저 멀리서 헥헥거리며 달려오는 남성이 보였다. 두 손은 들어 좌우로 자신임을 알렸다.

    “......저 사람 뭐야.”

    잠시 남자를 바라보던 여성은 거부감이 가득한 눈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남자로부터 뒤로 물러났다.

    “이...도 씨인가요?”

    “하하, 네. 제가 이돕니다.”

    “이리로 따라오세요.”

    ‘휴 살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자, 이도는 여성의 뒤를 따랐다.

    ‘허벌나게 좋네. 그림으로 건물 올리고 있다던디, 그 말이 참말인가 보네.’

    그간 봐온 사무실과 다른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사무실 비주얼 죽이네. 컴퓨터 너란 녀석 부럽다.’

    그만의 세상을 머리에 그리며 문 앞에 섰다.

    “이곳에 들어가면 빈 의자가 있을 거예요. 거기에 앉아 기다려 주세요.”

    여성은 그 말을 남긴 채 자리에서 벗어났다.

    “쌀쌀맞은 게 아주 보리보다 사납네.”

    보리는 본가에서 키우는 진돗개 이름이었다.

    손만 들이밀면 으르렁거리기 일쑤인 보리를 떠올려, 여자와 비교를 하였다.

    3분, 5분, 10분.

    자리에 앉아 홀로 기다리는 시간.

    “오래 기다렸죠. 저 웹툰사업부장 한국형입니다.”

    새롭게 신설된 사업부장 한국형이 직접 미팅 자리에 참여를 하였다.

    “먼저 원고를 볼 수 있겠습니까?”

    모든 소설을 웹툰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으로 더움 웹툰은 만화작가를 대거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도는 그중에서 바로 연재가 가능한 원고를 가져온 만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여기요.”

    파일철을 앞으로 내밀었다. 한국형은 파일철을 가져와 펼쳐 원고를 확인했다.

    ---쿨럭.

    [남자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하나 남자는 피를 도로 삼켰다. 다가오는 남자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괜찮나? 전사는 얼마나 되는가?

    [다가온 한궁백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전사는 무슨, 여기에 무사밖에 더 있나.

    ---......병신같은 말을 하는 걸 보니, 여긴 괜찮나 보군. 여긴 자네에게 맡기겠네.

    ---가보게.

    [떠나가는 한궁백을 보며 이현은 나직이 말했다.]

    ---차마 자네 앞에서 죽는 모습은... 쿨록.

    [삼켰던 핏물이 분수처럼 공기 중에 뿌려졌다. 바닥은 금세 검붉은 피로 얼룩졌다.]

    ---다시 한 번만 더 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남자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영면에 들었다.]

    “조금만 손보면 정말 재밌을 거 같네요. 원고료는 연재 1회당 1백만 원, 차후 성적에 따라 원고료는 오를 겁니다. 비율은 7:3. 연재분이 완결이 될 시 회사 요청에 따라 소설을 원작으로 웹툰을 그리기도 할 겁니다. 상세 내용은 계약서에 표기돼 있습니다.”

    “저, 정말로 그만큼이나 준다고요?”

    “한리버 더움은 업계 최고 대우를 자랑합니다.”

    이도의 반응에 한국형의 어깨가 쓱 올라갔다.

    한리버 더움 웹툰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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