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90화 (90/237)

90화. 20살, 소송

청와대 대회의실.

“모두 모이셨군요.”

가득 찬 회의실을 보며 노지호는 무표정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을 보며 잠시 기다리고 있다,

“모이란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그림 하나 같이 감상하시겠습니까?”

그림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

뭐 하나 싶어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단번에 그림에 집중됐다.

“한리버 대표, 모두 아시죠? 유한강 대표라고.”

노지호는 유한강을 언급하다 입을 다물고 시선을 그림에 가져갔다.

“한창 이슈로 떠오르는 그림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씩 보셨을 겁니다.”

낮은 톤의 목소리.

하나,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거 같습니까?”

재차 물었다.

그러나 이 역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무시라기보다 알고 있는 걸 본인의 입으로 직접 꺼내기가 껄끄러운 탓이 컸다.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권은 오물로 덧칠되어 있다.

본인이 가만히 있는다 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주변인들이 그 문제의 핵심 중 하나.

이들은 노지호가 무슨 말을 할지 초점을 맞췄다.

“이 그림엔 각종 부정과 비리가 숨어 있습니다. 좌측 그림의 나무가 썩어가죠. 한데, 작은 나무들은 너무도 멀쩡한 모습입니다. 이건 누군가일 터이고, 이건 그 사람의 가족이나 주변인이겠지요.”

다시 한번 들리는 고개. 시선은 의원들을 잠시 응시하다 그림으로 향했다.

“반면 우측은 모든 게 푸르고 생기로 넘칩니다. 나무에 구멍이 생겼지만, 새들과 주변 벌레 풀 작은 나무와 상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조목조목 가리켜가며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즉, 상생하지 못하는 비리로 얼룩진 정치는 죽는다 뭐 이 말이 되겠군요. 이 중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사람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찔리는 무언가 있던 탓이다.

“참 좋은 말이면서 어려운 단어죠. 상생. 과연 우리가 그 말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나, 앙금은 풀고 성인답게 나갔음 합니다. 난 이 그림을 대통령실에 걸고 사본을 국회에 걸까 합니다. 숨은 뜻이 많은 만큼, 이 그림을 보며 생각할 시간을 가졌음 합니다. 제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오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노지호는 두말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원들도 특별한 일은 없었기에 조용히 자리를 파했다.

***

[청와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이제부터 상생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며칠이 지난 날, 언론을 통해 청와대의 뜻이 세상에 퍼졌다. 여당과 야당은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인다며 입장문을 발표하였다.

[오션월드에 올려진 그림이 국회 의견 과반을 넘어 사본이 국회의사당에 걸리게 되며, 원본은 대통령 집무실에 걸어졌다. 정치권은 해당 그림을 보며 올바른 정치를 하겠노라 약속을 하였다.]

[해당 그림은 천재 화가이자 천재 음악가인 유한강 대표의 그림으로 이름은 ‘부러지지 말고 갈대가 되어라’다.]

└ 이미주: 말은 잘해요~

└ 나찬호: 그런데 그림은 진짜 예술임.

└ 이호열: 듣기로 그림 값어치가 10억은 넘을 거라 함...

└ 김동국: ㄹㅇ로 유명해지면 똥도 금값이라던데, 개부럽네. 나도 그림이나 그려서 팔걸.

└ 유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전동진: ㅋㅋㅋㅋㅋㅋㅋ

오션월드와 각 사이트에 올려진 기사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부정적인 댓글들이 주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같았다.

제발 말대로 되기를.

***

[여러분 안녕하세요. 연예가중계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재간둥이 이연희입니다! 제가 오늘 소개시켜드릴 드라마는요. 바로 요고! 일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열풍 선도주자 겨울연가를 소개합니다!]

내게 올 수 없을 거라고 이젠 그럴 수 없다고 제발 그만하라고 나를 달래지...

내가 웃고 싶을 때마다 넌 나를 울어버리게 만드니까...♪

“어쩜 저리 멋질까.”

“왕.....”

“욘사마... 오빠.”

1세대 아이돌 시대가 저물고 새롭게 여성들의 심장을 잡아챈, 욘사마 배용준이 커다란 TV 화면에 잡혔다.

미화를 더불어 지혜와 지연은 TV에 등장하는 배용준을 보며 마음의 하트를 뿅뿅 발사했다.

“......”

덕화는 어이없단 눈으로 세 모녀를 바라보다,

“정말 멋지죠. 어머님.”

며느리 윤희를 지나쳐, 한강을 응시했다. 눈가에 불쌍함이 서렸다.

“아빠, 그 시선 뭘 의미하는 거죠?”

촉촉해지는 아빠의 시선을 느낀 한강의 눈에 울컥하는 감정이 스르르 올라왔다.

“너도 끝났구나. 이제.”

누군가 그랬다. 결혼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지만, 그건 아니라고.

“뭘 끝나요!”

한강은 반항을 하였지만, 솔직히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결혼 전과 결혼 후 그리고 신혼여행과 그 이후’에 많은 부분이 달라져 가고 있음을.

“한강아, 다 그런 거야. 이해해.”

“크윽.”

아빠의 음성에 더는 TV를 보는 게 불편해졌다.

“저 나갔다 올게요.”

“이 험난한 세상에 이 아빠를 홀로 두고 어딜 가려고.”

한강이 떠나고 집에는 여자 셋에 남자가 하나.

덕화는 모처럼 찾아온 아군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바람이 쐬고 오려고요.”

그러나 한강은 매몰차게 덕화의 아련한 눈망울을 무시했다.

“자기야.”

“응, 다녀와.”

“......”

전이었으면, ‘나두 갈랭!’ ‘나두나두’ 이랬을 터인데. 지금은... 아주 쿨하게 허락을 해주었다.

“올 때 과자도 사와. 나 홈런볼.”

“엇, 난 자갈치!”

“저는 감자깡이요.”

“엄마는 짱구인 거 알지?”

그리고 쏟아지는 주문에 한강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미남을 눈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지연이도 변했구나... 그렇게 떨어지기 싫어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여자로서 자각을 가지게 될 나이 열네 살이 된 지연을 슬피 바라보다 터벅터벅을 현관문을 나섰다.

“욘사마, 욘사마. 배용준보다 내가 몇 배는 낫구만.”

한강은 걸음을 옮기며 주차된 자동차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흠, 바람머리라......”

전생에도 욘사마의 인기는 강렬했다. 바뀌지 않은 역사이기에 당연한 일이지만.

남자로서 오빠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이대로 넘어가기 힘들었다.

“좋아. 나도 바람머리 한다.”

까짓거 못할 게 무어 있나?

하면 되는 것을.

누가 더 괜찮은지 집안에 자리한 여자들에게 보여주리라.

한강의 걸음은 마트가 아닌, 미용실로 향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결혼 전까지 자주 갔던 미용실에 들렀다. 원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며 커트보를 목에 둘러 내렸다.

“바람머리로 해주세요.”

결연함을 목소리에 담았다.

“네?!”

미용실 원장이 크게 당황하며 다시 물었다.

“저기 TV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해주세요. 머리 색도 저 색으로.”

“지금이 더 좋으신데요.”

“해주세요.”

“네......”

원장은 시선을 돌려 TV 속 화면에 잡힌 배용준을 응시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한 사람 더 추가되는구나’

원장은 파마약과 염색약을 챙기러 창고로 향했다.

“어떠세요?”

3시간 정도 흘러, 파마가 끝났다.

“흠......”

파마 초기라 매우 곱슬거리는 머리를 보며.

‘대체 이 머리가 왜 인기가 좋은 거야?’

속으로 투덜댔다.

“네. 들어가세요. 회장님.”

한강이 나가는 걸 보고.

“그나마 본판이 되니 다행이야.”

낮게 중얼거렸다.

“대단하다. 이윤희. 세 시간 넘게 집에 들어가지 않는데, 아직도 전화가 없네......”

엄마도, 동생도 감감무소식이다.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마트로 향했다.

***

띡, 띠리리리.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오빠, 이제 왔...어요?”

“내 과자 주.....어?”

“한강아, 왜 이리 늦었어. 기다리다가 목 빠져...서 어?!”

“자기......야?”

뒤늦게 한강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인지한 가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현관문으로 두는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

“뭐예요. 그 표정은. 너흰 왜 그래. 뻑갔냐?”

푸훕.

누군가의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깔깔깔.

그것이 시작이었다. 집안은 단숨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자기야, 이게 뭐야. 그렇게 욘사마가 좋았어? 그런 거야?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호호.”

끝내 윤희도 웃음보를 견디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려 웃음을 터트렸다.

“배용준보다 내가 훨 낫구만.”

원하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툭 내던졌다.

“오빠 저 그 머리 싫어요.”

“그게 뭐야 창피하게.”

그러자 두 여동생은 한강의 뼈를 산산이 조각내는 말을 사정없이 던졌다.

“지연아... 너가...”

한강은 충격 먹었다. 적어도 지연은 믿었는데.

“우리 남편 귀엽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난 이전 머리가 더 좋았는데.”

“......”

그날 저녁.

“머리 원래대로 해주세요.”

한강은 미용실을 찾아 파마를 풀었다.

눈물을 머금고.

***

한리버 빌딩,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시각.

“회장님, 지금 GV에서 더움에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한강이 회장실로 들어간 걸 본 김동진이 방 안으로 따라 들어와 보고했다.

“그게 갑자기 뭔 소린가요? GV가 왜 더움을 소송합니까?”

갑자기 들려온 소송 소식에 편히 있던 한강은 몸을 일으켜 물었다.

갑자기 날아든 소식에 눈에 힘을 줬다.

“GV에서 햄썬과 독점계약을 한 상황이라 더움에 미스터 초밥왕을 포함해 1천여 권의 만화를 내리라 하고 있습니다.”

김동진은 들은 소식은 빠짐없이 보고했다.

“아니, 그간 가만히 있다 소송을 한답니까?”

“한리버와 네이컴, 더움이 합병하면서 기업이 커지고 하였고, 유입되는 독자들로 더움 만화 매출이 늘고 있는 반면, GV의 매출은 크게 죽고 있는 형국이라, 그래서 우리에게 소송을 건 걸로 보입니다.”

GV와 한리버의 규모로 놓고 봤을 때, 큰 차이를 보였다. 유입되는 회원과 독자 수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상황.

GV에서 칼을 빼 든 모습이다.

“더움 대표를 부르세요. 직접 정확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요.”

3자에게 듣기보다 직접 핸들링을 하였을 고호경 더움 커뮤니케이션 대표를 소환을 주문했다.

“바로 호출하겠습니다.”

기업 간 소송은 친구처럼 따라붙는다. 하나, 한강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껏 불법을 저지른 적 없고 모든 걸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던 참이라 지금의 소식은 꽤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모든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모두 미연에 방지를 했을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다.

전생자라고 모두 기억이 좋고, 모든 사건을 안다는 건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즉 말도 안 되는 사실이었다.

“내 얼굴에 먹칠하는 더러운 일은 아니었음 하는데 말이야.”

기업 오너의 이미지는 곧 회사의 얼굴.

한강은 잘못된 일이 아니기를 바랐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려 고호경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창가로 시선을 두고 있던 한강의 시선이 뒤로 옮겨졌다.

“더움 만화와 GV일 읊어보세요.”

그리고 낮은 톤의 음성이 방 안에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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