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88화 (88/237)
  • 88화. 20살, 정치를 캔버스에 담다

    스위트 쇼핑.

    “언니, 미안해. 내 멋대로 행동해서...”

    한리버 빌딩을 나와 바로 일터로 향했다.

    생각 없이 한 행동으로 인해 힘들었을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냐.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크게 혼낼 거라 여겼던 이영아는 오히려 동생을 감싸 주었다.

    [좋은 동생을 두셨습니다. 서로의 마인드를 잃지 말고 지금처럼만 일해주세요.]

    한리버 쇼핑몰의 주인 유한강 회장의 전화 한 통은 그동안 동생이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짐작 들게 하였다.

    ‘고생했어, 영미야.’

    덕분에 부족한 자금이 일시에 해결됐다.

    “나 이제 열심히 일할게.”

    “그래.”

    영아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얹어졌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전보다 더욱 힘차 보였다.

    “그리고 우리 주문 소화 가능한 선까지만 받고 모두 취소하자.”

    “그래, 네 말대로 하자.”

    바뀐 동생의 모습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2억이란 큰돈이 생겨 마음에 여유가 찾아와서일까?

    영아는 변화된 동생의 모습에 방긋 웃고는 고개를 끄덕여 동생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모두 취소하려 했는데, 이번 일은 동생에게 맡겨보자.’

    ***

    2004년 4월.

    화성시 마도면. 주변은 온통 논과 밭으로 가득한 땅 위로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쾅! 쾅!

    사방천지에서 땅을 다지는 소리와 건물을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라이!”

    건축자재가 추가로 입고됐다. 거대한 지게차가 검은 연기를 배출해 우우웅 소리를 내며 동바리와 콘크리트 블럭을 들어 올렸다.

    쿵! 쿵!

    한쪽에선 100톤급 크레인이 거대한 기둥을 들어 올려 땅에 박아 넣었다.

    밖에서 한창 공사로 바쁠 때, 조금 떨어진 건물 안에선 다른 일로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격이지 않을까 싶어 우려했는데,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겠단 이유가 있었군요.”

    한강에게서 배터리 원리에 관한 자료를 받았다.

    인터칼레이션(Intercalation).

    사전적인 뜻으로 ‘사이에 끼움’.

    리튬이온배터리는 이런 현상에서 발견하면서 탄생했다.

    상세하진 않지만 관련된 내용이 정리돼 있었다.

    “충전에 중요한 기술이 이 안에 있어요. 어떻게 이걸 생각한 건지...”

    사람들은 관련 내용을 읽어 갈수록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한리버의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연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몇몇 위험 요소가 보이네요.”

    아직은 테스트 단계.

    필요한 자재도 다 들어오지 않아 당장 테스트를 하기에 무리가 따랐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다.

    “최대한 머리를 맞대어 봅시다.”

    하지만 연구에 대한 기본 실마리는 찾았으니, 어떤 기업보다 몇 년은 앞서게 됐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무척 큰 업적이었고 대단한 일이었다.

    “밥을 차려줬는데, 숟가락까지 챙겨달라 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핵심기술과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차 지원금은 무려 백억 원.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개발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연구 자료에 집중했다.

    바깥은 공사로 시끌시끌하지만, 개발자들은 아랑곳 않고 연구에 매진했다.

    “흠, 역시 연구진들이 더 필요해. 그것도 확실한.”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고액 연봉을 약속하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별수 없이 3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나?”

    초기 투자자라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던 일론 머스크가 나서기 시작하는 시점,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정들은 제법 유명하다.

    출시일을 계속 뒤로 미루고 치솟는 원가를 보면서 일론 머스크는 마틴 에버하드가 출장 간 사이 이사회를 열어 연구팀으로 좌천을 시켜버리고 CEO에 올랐다.

    마틴 에버하드는 회사를 떠나게 된다.

    “새로운 회사를 차리게 되지. 루시드 그룹을.”

    두 회사의 장단점은 있으나, 확실한 건 두 회사의 가치는 뛰어나다는 점에 있었다.

    “그들을 얻는 건 테슬라와 루시드 두 곳을 동시에 얻는 꼴이지.”

    한강의 다음 노림수였다. 사업은 몇 달 늦게 시작했을지 모르나, 기술은 이쪽이 좀 더 진보해 있었다.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가는 것과 아닌 부분에선, 시간과 개발과정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일단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자. 아쉬운 건 그쪽이지 내가 아니니.”

    한강은 전기차 개발진들의 문제는 뒤로 미뤄두기로 하였다.

    지금 있는 인력으로 결과를 내고 테슬라의 모든 걸 가져오기로 하였다.

    그 시각.

    쉬이이이이이.

    긴 활주로로 비행기가 내려섰다.

    비행기 게이트가 열리고 연갈색 머리를 흩날리며 이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여기가 한국......”

    처음으로 와보는 한국의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후진국으로 알려진 가난한 나라 한국.

    “생각 이상으로 발전한 곳이야.”

    그저 시골로만 치부했던 한국이란 국가는 상당한 발전을 이룬 수준 높은 국가였다.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이런 만남 또한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남자는 곧 만나게 될 이를 떠올리며 공항을 벗어났다.

    ***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은 날.

    [저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해 주어 감사합니다. 5월 22일에 뵙겠습니다. 미로슬라브 꿀띠쉐프가.]

    러시아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댓글로만 접했던 인물, 피아노 천재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를 결혼식에 초대했다.

    “이렇게 보게 되는구나.”

    쉽게 응하리라 보지 않았는데, 답장이 왔다.

    교통비를 주려 하였으나, 거절의 뜻을 내비쳐 돈은 보내지 못했다.

    “기대돼.”

    이전 생에선 멀리서만 봤던 그를 현생에선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과연, 어떤 인물일지 무척 기대되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해온 것 같은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기각하였습니다. 탄핵 소추 64일 만에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습니다.

    2004년, 민주당 한나라당 등 연합 주도하에 193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함에도 통과를 시킨 이번 일은 광화문 일대에 촛불을 들게 하였다.

    “다행인 일인데, 이분도 씁쓸하지. 가족과 엮여서는.”

    당시 사건의 석연치 않은 점, 다 정리도 안 된 어설픈 프린트 종이.

    그 나이대에 컴퓨터를 이용해 유서를 쓰는 이가 몇이나 될까마는.

    “나랑 관계없는 일이야.”

    고개를 내저어 털어냈다. 자신은 예술가이자 기업가이지 정치꾼이 아니었다.

    모든 건 운명에 맡기기로 하였다.

    “......”

    하지만, 뭔가 그냥 넘기기 찝찝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에휴..... 내 팔자야.”

    고개를 떨궜다. 전생자의 문제라면 문제.

    어떻게 한다?

    “그림을 그리자. 그 안에 메시지를 담아 올리자.”

    예술가면 예술가답게 나가자.

    한강은 이번 작품의 주제를 정치로 정했다.

    그림에 스스로 생각하기에 올바른 정치라 생각하는 메시지를 담기로 하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그분의 결정에 달린 것이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2004년 5월 16일 일요일.

    “회장님, 갑자기 웬 등산이십니까.”

    결혼식까지 앞으로 며칠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상황에 봉화 마을에 자리한 부엉이 바위에 올랐다.

    “그림 그리기 딱 좋은 날씨 아닌가요?”

    기사에서 나돌던 바로 그 장소.

    그곳에 이젤을 펼쳐 들었다.

    “......전 아니라 봅니다만.”

    윤희 대신 따라온 김동진의 목소리엔 힘듦이 느껴졌다. 헥헥거리는 숨소리가 허공을 떠다녔다.

    “우리 같은 사무직 겸 영업맨은 체력관리가 필수예요. 종종 체력관리를 해두세요.”

    그의 모습이 귀엽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걸쳐 펜을 들었다.

    “한데, 좋긴 좋네요. 경관이 아름답습니다.”

    숨이 돌아왔는지 허리를 펴 자연경관을 바라봤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에 잠시 몸을 맡겼다.

    “좋구나.”

    “......허허, 가끔 보면 스무 살이 아닌 거 같습니다. 뭐랄까 저희 아버지를 보는 거 같달까.”

    “......그거 무례한 소린 거 아시죠?”

    스무 살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데, 대체 어디가 그리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인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억울한 표정을 눈동자에 담아 김동진을 노려봤다.

    “하하, 그렇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주 싸늘한 시선에 김동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 날씨 좋다.”

    슬며시 시선을 돌려, 양팔을 앞뒤로 움직였다.

    ‘하여튼, 귀여운 사람이야.’

    김동진의 행동에 살포시 미소를 쪼개고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이젤을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고정했다.

    캔버스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끔 부직포를 이용해 이젤과 연결했다.

    가운데는 2mm로 반듯하게 잘라낸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왼쪽과 오른쪽은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품게 될 것이다.

    스스슥.

    스케치가 시작됐다. 굵은 연필심은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며 나무를 그려냈다.

    한데, 너무 이상했다.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휘지 않고 버티는 나무의 뿌리는 상해갔다.

    나무뿌리에서 이어진 얽혀있는 작은 나무들에게 거름 대신 돈을 먹였고, 나무는 그로 인해 썩어갔다.

    “여기는 이 정도면 됐고, 우측은...”

    좌측과 달리 작은 나무들은 돈을 뱉어냈고, 커다란 나무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양분 삼아 성장했다.

    바람에 흔들리지만, 뿌리는 굳건하게 대지에 박혀 있었다.

    정통으로 부는 바람을 유연하게 흘려 부러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나무에서 느껴졌다.

    꿀꺽, 뒤에 이를 지켜보는 김동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본 탓이다.

    ‘설마, 정치에 관여를 하시려는 아니겠지.’

    아주 위험한 발상이기에 김동진은 아니길 속으로 바라며 그림을 조용히 지켜봤다.

    어느덧 그림은 색으로 덮어갔다. 색이 채워질수록 그림의 의도는 명백하게 보였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대지는 부엉이 바위를 의미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림이 완성됐다. 한강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이 그림이 다 마르면 사진을 찍어 오션월드에 올리시고... 이 그림은 청와대로 보내세요.”

    “역시...... 이 그림은.”

    “별문제는 없을 거예요.”

    깡이 있고 언변이 좋다 하여 정무를 잘 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살고자 한다면 때로는 바람을 피하기 위한 휘어짐도 중요하다 생각했다.

    “이제 내려가요. 이제 결혼 준비를 해야 하니깐.”

    이젤을 어깨에 걸치고, 그림은 둘이 같이 들어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으허, 다음부턴 절대 산에서 이런 그림은 그리지 말자’

    마르지 않은 그림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시간이 더 걸리고 더 힘들었다.

    한강은 크게 반성하며 땀에 전 모습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

    2004년 5월 22일 토요일.

    “아드님 결혼,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따님 결혼을 축하합니다. 회장님.”

    결혼식 날이 되었다. 재계부터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결혼식에 참여를 하였다.

    “저, 저 사람들은!”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는 인물들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제프 베조스?”

    “스티브 잡스?”

    미국 재계 거물이 식장에 등장한 것이다.

    국내 재계를 찍고 있던 기자들은 황급히 카메라를 챙겨 둘에게 가져갔다.

    “하하, 우리는 찬밥인가?”

    “어때요. 덕분에 조용하고 좋은데.”

    뒤따라 내리는 두 부부는 가벼이 웃으며 구석진 자리로 피했다.

    아폴로 머리를 한 밥 로스와 그의 부인 제인이었다.

    “밥 로스 가족도 왔다!”

    하지만 그건 그저 바람.

    밥 로스의 독특한 헤어는 신분증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드르륵.

    기자들과 국내 정재계가 시끌시끌한 이때, 젊은 남성이 신랑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그리고 초대를 해주어 감사합니다. 미로슬라브 꿀띠쉐프입니다.”

    “당신이 그......”

    한강과 피아노 천재 미로슬라브 꿀띠쉐프가 처음으로 식장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잔잔한 미소를 흘리는 러시아 남자와 놀란 눈을 크게 뜬 한국 남자의 만남.

    새로운 역사가 육성호텔에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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