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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87화 (87/237)

87화. 20살, 스위트 쇼핑 이영미

“이따 봐.”

쪽!

출근 뽀뽀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액셀을 살살 밟아 어두운 주차장을 벗어나 밝은 빛이 들어오는 대로로 나갔다.

“많이 막히네요. 앞에 사고라도 난 모양인데요.”

기사의 목소리였다.

“천천히 가세요. 급할 건 없으니까요.”

그간 바쁘게 지내 오늘 일정은 제법 한가했다.

물론, 보고서 결재를 제외하고.

빵빵. 여기저기서 클랙슨 소리가 들려온다.

바쁜 출근길은 어딜가든 전쟁터였다.

“사고가 크게 났는데요.”

천천히 이동하는 차량들 사이로 4중 추돌사고 현장이 시야로 들어왔다.

“이크... 끔찍하네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크게 훼손된 모습이다.

더 앞으로 진입하니 BMW와 롤스로이스가 보였다.

구급대와 경찰이 2차선까지 가로막고 도로를 통제했다.

“기사님은 지각해도 좋으니까, 급하게 운전하지 마세요. 대통령이 밟으라 해도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에요.”

“알겠습니다.”

차량에 서서히 속도가 붙었다. 거북이보다 느리게 가던 차량은 속도를 내 사고현장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났다.

“......”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무슨 일인지, 이번엔 이삿짐 차량들이 길을 막아섰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기 힘들어 보이니, 전 저쯤에서 내릴게요. 기사님은 주변에 주차해서 쉬었다 볼일 보세요.”

기사에게 있어 휴식도 업무 중 하나.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휴식시간은 무척 중요했다.

한강은 차에서 내려 한리버 빌딩까지 걸어갔다.

힐끌힐끔 이사 현장으로 시선을 가져가기도 하였다.

“이렇게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인가?”

어렸을 때부터 회사 건물 주차장 안까지 차로 이동을 하다 보니, 이렇게 걷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드르르르륵.

자동문이 빙그르 돌아갔다. 기사의 연락을 받았는지 직원들이 입구에 대기해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회장님!! 유한강 회장님!!!”

“막아, 저 미친X를!!”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와 동시에 소란스럽게 변하는 건물 안.

수행직원들은 빠르게 한강 주변을 에워쌌다.

경호원들도 신속하게 경계 자세를 취했다.

“무슨 일이죠?”

사람들 중앙에 자리한 한강은 사람들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아, 틈 사이로 시선을 가져갔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회장님을 찾고 있습니다. 저 여성입니다. 혹시 아시는 여성입니까?”

한강의 나이는 올해 스무 살.

자신들이 모르는 어떤 일에 관여를 하고 있을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모르는 여자예요. 왜 나를 찾지?”

전생을 통틀어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드라마나 뉴스에 나오는 불륜현장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럼, 바로 밖으로 쫓아내겠습니다.”

어느 틈에 등장한 김동진 비서실장은 여성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님, 5분! 아니, 1분만 시간을 내주세요. 저는 이번에 26위에 오른 스위트 쇼핑 직원이에요.”

요원들에게 붙잡힌 영미는 발악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버텼다.

“스위트라면... 이번에 30위권에 오른 그 기업 맞죠?”

그제야 여성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무척 어렸다.

“맞습니다.”

“좋은 일인데, 무슨 일로 저리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아리송한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으로 영미를 응시했다.

“놔둬 보세요. 궁금해졌어요.”

나쁜 일이면 또 모르나, 좋은 일을 겪고도 저리 찾아온 거라면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자칫 이상한 일에 휘말리시면...”

“세상에 그런 이상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여긴 좀 시끄러우니까, 회장실로 데려오세요. 먼저 가있을게요.”

그 말을 남기고 직원들과 자리를 떴다.

김동진 비서실장은 벗어나 영미에게로 향했다.

***

기업을 그룹화하고 한강이 자연히 회장이 되면서,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이루어졌다.

“......무턱대고 찾아와 죄송합니다.”

어렵사리 회장실에 발이 닿은 영미는 막상 한강을 보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도 이건 무례하고 미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언니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움직인 일...

“이야기는 들었어요. 날 만나기 위해 며칠째 찾아왔다고.”

‘무슨 일로? 왜?’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무례에 대한 화는 나지 않았다.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무리한 행동을 했을 테죠. 괜찮으니 솔직히 말해주세요.”

얼굴에 자상함을 얹었다. 잔잔하게 비치는 미소.

“......”

이번엔 다른 의미로 영미의 볼이 붉어졌다.

‘아씽, 내가 미쳤지...’

분명 목표를 이뤘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막상 저를 보고 나니, 몸이 굳었나 보네요. 전 오늘 같은 사람은 딱 두 부류로 나눕니다. 대단한 자와 그냥 사기꾼. 그 외 딱히 떠오르는 부류는 없네요. 당신은 어떤 부류인가요?”

한강의 시선은 영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정된 눈은 어서 말해보라 압박을 하였다.

“저, 전 사기꾼이 아니에요.”

“그럼 어떤 사람이죠?”

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꺼내지 못하겠는지 계속 입술을 달싹였다. 한강은 잠시 기다려 주었다.

“......휴. 실은 이번에 벌어진 일로 회사에 큰 문제가 생겼어요.”

5분 정도 시간이 흘러 영미의 입술이 떼어졌다.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두 손을 모아 떨리는 가슴 위에 가져갔다.

“문제......?!”

반면 뜬금없이 들려오는 단어에 대한 생각에 들어갔다.

딱히 문제로 떠오를 만한 일은 없었다. 당장 생각하기로.

“이번에 순위에 들고 지원금을 받게 돼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처음 뗀 말문은 무거웠다. 하지만 한 번 열린 입은 봇물이 터지듯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생각도 못 한 주문량에 회사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가 돼서... 이렇게 도움을 구하고자 회장님을 뵙고자 청했어요.”

“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다.

“자본금이 어떻게 되죠?”

“5백만이요...”

“......”

엄청 작은 회사다.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흠... 그나저나 일개 직원이 회사를 위해 나선다? 신기한 일이야.’

그런 직원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례적인 일이라 흥미가 동했다.

“내 대답에 앞서 궁금한 게 있는데, 그쪽 사장님과는 무슨 관계죠?”

“언니예요. 친언니.”

“아하.”

오케이, 일단 납득은 갔다.

꽤 사이가 좋은 자매로 짐작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두 발로 뛰어들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죠?”

길게 빙글 돌아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본론에 들어갔다.

“투자를 해주세요.”

“투자라... 단순히 그런 이유로 투자를 받기 위해 저를 찾은 건가요?”

용기는 가상하다.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네?! 아, 저 그게, 그러니까...”

예상하지 못한 반응 때문일까? 당당함을 찾아가던 영미는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죠?”

“1, 1년 좀 안 돼요...”

“직원은요?”

“언니랑 저 두 명이고,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한두 명 쓰기도 해요.”

“좋게 생각해서 4명이라 할게요. 내가 10억을 투자했다 칩시다. 그 4명 가지고 지금 물량을 전부 소화할 수 있을 거라 보나요? 자신 있어요?”

“......”

“제가 보기에 지금 들어온 주문량에 너무 들떠 있는 거 같아요. 기업에 있어 돈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아는 거예요.”

“......”

“분명 기분이 좋을 거예요. 이해해요. 사람이 잘 찾지도 않았던 곳을 어떤 계기로 찾게 되는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왜, 모르겠나? 사업가라면 누구나 겪고 넘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신의 역량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무조건적 투자는 양날의 검. 망하거나 운이 따라 잭팟을 터트리거나.

하지만, 아쉽게도 전체에 1%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그중에서도 제대로 유지를 못 해 폭삭 망하는 회사가 대다수.

대개 그런 회사는 자신의 체력을 알지 못한 오너들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스위트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에 대해 검토를 해봤어요.”

결과는 절대 지금의 물량 전부를 100% 소화할 수 없다는 결과를 냈다.

야망과 능력은 별개로 봐야 한다.

“......”

영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리고 후회가 극도로 밀려왔다.

“10%. 잘해봐야 20% 정도. 직접 해보기 전까진 모르지만, 여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거라 봐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어쩌면 이것도 높게 쳐주는 것일 터.

그만큼 스위트의 기본 체력이 너무도 낮았다.

다행이라면 경영자의 마인드와 공격적인 동생의 조합이 기업에 잘 융합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앞섰어요.”

영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번엔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밑으로 내렸다.

“정말 기업을 성장하고 싶다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80%까지 소화를 해보세요.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 체력을 키운다면 언젠간 목표로 하는 위치까지 오를 거예요.”

이들에게 필요한 건, 투자보다 경험과 체력이다.

한강은 그 부분을 크게 강조했다.

“새겨들을게요. 바쁘신데, 갑자기 찾아와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영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그리고 중요한 걸 배운 기분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도... 돈이...’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돈에 대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

“2억...”

“......?!!”

등을 돌리려던 영미의 걸음이 멈췄다.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용기에 대한 보상입니다. 사실, 당신처럼 하는 분도 흔하지 않습니다. 거의 없다 봐야 맞겠죠.”

스르륵, 떨리는 큰 눈이 한강의 두 눈과 닿았다.

“사람도 붙여 드리죠. 한 달간.”

자본금 5백만 원이면 충분히 사이즈가 나왔다.

거기에 매출까지.

그것만 보더라도 지금 회사가 자금에 얼마나 쪼들려 있는지 내다볼 수 있었다.

“아......”

영미의 다리가 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앉았다.

“제가 투자를 결심한 이유는 언니분의 경영마인드와 평가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영미는 계속 감사를 전했다. 내려놓고 그냥 가려던 걸, 붙잡아 준 한강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우발적이든 충동적이든 뭐가 되었든, 영미 씨의 용기에 큰 점수를 줬습니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언니는 좋은 동생을 두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모습,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마세요. 그럼 고객은 스위트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이야기는 끝났다.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언니와 힘내서 잘해보세요. 건투를 빌게요.”

“......오늘 들은 말 절대 잊지 않을게요. 꼭 결과를 내서 투자금 이상을 회장님께 안겨드릴게요.”

영미의 얼굴이 이제야 확 펴졌다.

그녀의 둔 눈동자가 더욱 단단해졌다.

“그 말 믿고 기다리죠.”

스위트에 2억을 투자하게 된 세 번째 이유.

영미로 인해 이벤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영세사업장을 위한 또 다른 지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영세사업장에 전문 경영인을 붙여주자. 한리버에 맞는 경영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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