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86화 (86/237)

86화. 20살, 그룹 선언

[(주)한리버 포털, 전자책 사업에 이어 전기차 사업에 나서다. 부지는 경기도 화성시로 결정.]

“04년 우리 회사의 목표를 새로이 정하겠습니다. 한리버를 그룹이라 칭하고, 앞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미래형 기업이 되는 걸로 하겠습니다.”

단순히 한리버가 아닌, ‘그룹’이란 단어를 가져와 한리버와 합치기로 하였다.

한리버 그룹.

아주 단순한 변신이지만 담긴 뜻은 의미 자체가 달랐다.

그저 그런 중견기업 아닌, 세계를 선도할 대기업 군단에 합류하였음을 의미하였다.

“전기차 사업은 우리의 슬로건이 될 겁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전기차의 시작과 동시에 세계를 견인하는 선도기업이 될 겁니다.”

임직원과 주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리버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하여 포부를 밝혔다.

이제 그저 그런 기업이 아닌, 매출 면에서도 앞서는 우수한 기업으로 탈바꿈하리라 다짐했다.

***

‘스위트 여성복’ 상호가 예쁘게 디자인된 간판이 달린 건물 안.

“언니, 이번 매출도 고작 8백이야. 적자라고.”

대차 대조표가 테이블 위로 던져졌다.

던진 여성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아직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래.”

대차 대조표를 말없이 눈으로 훑던 여성은 바보처럼 웃었다.

“그리고 봐봐. 우리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잖아.”

사업 첫날 매출은 3백 미만 수준. 그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언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쌓이고 있는 빚 안 보여? 이러다 길거리에 나앉아서 구걸하게 생겼다고.”

“영미야. 걱정 마, 잘될 거야.”

일어서서 불만과 걱정을 쏟아내는 여성의 이름은 이영미. 앉아 있는 여성의 친동생이다. 언니의 이름 이영아. 스위트 여성복의 대표로 사업을 이끌고 있었다.

“좀!”

매일 저런 식으로 웃으며 넘어가는 영아의 모습에 영미는 끝내 소리를 꽥 질렀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내지른 외침이었다.

“진정해, 영미야.”

“하... 언니, 다른 가게에 비하면 우리 마진 얼마 되지도 않아. 단순한 적자가 아니라고.”

영미는 손가락으로 원단 가격을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언니의 모습에 반쯤 포기했다.

“원가를 낮추면 다른 회사와 우리가 다를 게 뭐가 있어. 똑같지. 그리고 우리도 몇 번 경험했잖아. 잘못된 옷 샀다가 보상도 못 받고 그냥 버리고. 난 그런 옷을 팔고 싶지 않아.”

원단의 질을 낮추고 현 가격에 판매해 마진을 키우자는 동생의 주장에 영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짜자고. 열심히 마케팅을 해도 계속 적자인데. 이번에 대출도 거부당했다며. 월세 낼 돈은 있는 거야?”

화를 내던 걸 이내 포기하고 울상을 지었다.

눈가가 붉게 충혈됐다.

“마련했어. 걱정 안 해도 돼.”

힘든 상황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볼 때면 세상이 참 야속하기도 했다. 사기꾼은 떵떵거리며 잘만 사는데, 정직하게 살아가는 언니는 하루 한 끼도 간신히 해결한다.

단무지에 밥. 김치에 밥.

사업을 시작하고 고기 구경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 봐봐. 여기 또 만족도 10점 떴어.”

모니터를 보고 있던 화면에 리뷰가 하나 추가됐다.

[가격도 저렴한데, 원단도 엄청 좋아요!! 이곳을 늦게 알게 돼서 분하네요ㅠㅠ 관심 기업 누르고 갑니다!]

최근 옷을 구매한 여성 고객이 올린 리뷰였다. 여성은 인증샷까지 찍어 올리며 한리버 쇼핑 목록인 관심 기업으로 등록했다.

[120명]

“엇, 120이다. 영미야 10명이나 늘었어.”

동생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관심 기업이 늘었단 사실에 얼굴 위로 화색이 감돌았다.

“휴... 내가 정말...”

또 한소리 하려던 영미는 고개를 떨구고 몸을 일으켰다.

“어디 봐봐.”

영아의 옆으로 걸음을 옮겨 모니터를 바라봤다.

“여기 봐봐. 여기.”

영아는 신난 얼굴로 검지로 관심 기업을 가리켰다.

“어? 저기 뭐 왔는데.”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뜬 적 없던 이벤트에 ‘2’란 숫자가 달렸다.

“엇? 방금까지 없었는데?!”

영아의 고개가 갸웃거리다, 눈에 물음표가 새겨졌다.

“한번 보자. 뭔지.”

영미의 눈에 짙은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응, 잠시만.”

마우스를 끌어 커서를 ‘이벤트’에 가져갔다.

따닥, 마우스를 클릭했다.

[스위트 쇼핑이 한리버 쇼핑몰 ‘26위’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30위까지는 한리버 배너 영광의 무대에 등록되며 지원금 1천만 원을 지원받게 되십니다.]

[1000위 안에 드는 모든 기업에 수수료 1%를 할인해, 한 달간 4% 수수료를 적용받게 되십니다. 한리버 쇼핑몰의 빛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인하신 사업주분들께서는 확인 버튼을 눌러주세요.]

“언니...”

“영미야...”

둘의 두 눈이 맞닿았다. 흔들리는 동공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흑......”

“히잉......”

두 자매의 눈에선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힘들었다. 정말로 힘든 시간이었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어려움 속에서도 바꾸지 않은 신념이, 이제야 보상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8시.

[여성복.]

[2위 스위트 쇼핑.]

[......]

여성복 순위에 스위트 쇼핑에 버젓이 올라갔다.

[한리버 쇼핑몰이 직접 고른 가격대비 상품성과 품질, 평가 등이 우수한 기업입니다.]

[믿고 구매하세요.]

[구매하신 분들께 보너스로 쿠키 1천 개를 드립니다.]

└ 스위트 쇼핑- 김아영: 오!! 여기 완전 믿을 만한 곳!!!

└ 스위트 쇼핑- 박수희: 축하합니다! 정말 원단 질도 좋은데 가격도 착해요!!!

└ 스위트 쇼핑- 이미주: 포장도 짱짱, 정성이 느껴지는 곳^0^~~~

└ 스위트 쇼핑- 남궁연아: 주문인증!!!

세 시간도 안 되어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침이 아님에도 쇼핑몰 밑으로 달리는 댓글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 스위트 쇼핑- 마츠시마 나나코: 기대합니다!!!

└ 스위트 쇼핑- 사토 미와코: 기모찌!!!

일본을 넘어.

└ 스위트 쇼핑- 올리비아: 스위티 걸♥

└ 스위트 쇼핑- 엠마: ♥♥♥

미국 등 각국에서 해당 쇼핑몰을 확인했다.

이 현상은.

“언니 A라인 원피스 5천 장, H라인 3천 장, 베이비돌 1만 장 주문 들어왔어!”

스위트 쇼핑에 대량 주문으로 이어졌다.

단 한 번도 벌어진 적 없던 이 현상으로 인하여.

“어쩌지. 급한 대로 원단을 급히 주문을 넣긴 했는데... 돈이...”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소규모 기업은 선불을 원칙으로 했다.

정기결제도 어느 정도 꾸준한 물량과 원단을 공급해 주는 곳과 하지 필요할 때만 주문하는 기업과의 거래는 피했다.

“하필......”

누군가 그랬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하지만 그것도 능력이 될 때, 할 수 있는 말.

스위트에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어쩌지......”

한리버에서 나오는 지원금 1천만 원.

이게 유일한 자금줄이었다.

“...... 언니, 나 나갔다 올게!”

“영미야, 갑자기 어딜 가.”

“다녀와서 이야기할게.”

영미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급히 밖으로 나갔다.

역사 시간 때 일이다.

---너희들 우리나라 조선소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아?

선생님의 질문은 대답 못 하는 아이들로 인해 1970년대로 역사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에 포항제철이 들어서는데,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줄 산업이 필요했어. 고심 끝에 생각난 게 바로 조선산업이었지.

육성그룹 초대회장에게 거절당하고 미래 초대회장에게 화살이 날아갔다.

[해보겠습니다.]

[그래, 깡통에 동력 달면 배지. 배가 별거야!]

당시 정권은 그 한마디로 끝났지만, 미래 초대회장은 달랐다.

[당시 우리나라엔 돈이 없었어. 차관이란 것도 필요했는데 하늘의 별 따기였지. 일본에서 차이고 미국에서 차이고.]

[너희 같은 후진국이 무슨 몇십만 톤의 조선소를 지어!]

---아주 미친놈 취급을 했어.]

그러다 악에 받친 미래 초대회장은 모험심이 발동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영국이었다. 영국의 조선회사로 달려갔다.

[이걸 보세요. 이 지폐 안의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거북선이요.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이지만, 우리는 1500년대로 영국보다 300년이 앞서가 있소. 대한민국의 잠재력은 이 돈에 그려진 철로 된 함선에 있소.]

기지를 발휘해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500원 지폐.

미래 초대회장은 의지를 다져 말했다.

[자금만 확보되면 최고의 배를 만들게 될 겁니다. 버클레이 은행에 추천서를 보내주십시오!]

굴하지 않는 끈기와 용기는 고작 500원 지폐로.

[당신은 옛 조상에게 감사를 해야 할 거요.]

애플 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다.

---롱바톰 회장은 말했지. 거북선도 대단하지만, 당신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뭐냐? 난 이렇게 생각한다. 포기하는 순간 끝이다. 그러니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이상.

결국 포기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단 소리였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선생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라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영미를 태운 택시는 청담동으로 향했다. 복잡한 도로를 지나 넓은 대로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탁해요. 회장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상상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택시에서 내려 들어선 건물은 회장을 만나기도 전에 1층 로비에서 발목을 잡혔다.

“아가씨 안 된다니까요. 이만 가보세요.”

예전이야 모를 일이나, 지금은 아무나 쉽게 만날 수 없는 위치에 올랐다.

로비 출입구를 지키는 요원들은 영미를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거듭된 부탁에도 막아서는 요원에게 회장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 왜 오션월드나 메신저에 물어보세요.”

“그럼 느리잖아요. 전 바로 원한다고요.”

오션월드와 메신저 회원만 따져도 족히 1억은 넘는다. 뉴스나 기사에서 연일 언급을 하였기에 아주 잘 알았다.

영미는 절대 이대로 돌아설 수 없었다.

지금껏 자신을 위해 살아온 언니를 위해서라도.

이대로 물러날 생각 따윈 없었다.

“만약 절 보내주지 않는다면 회장님을 만날 때까지 매일 찾아오겠어요.”

그러고선 핸드폰을 꺼내 들어 귀에 가져갔다.

“수연아, 미안한데, 우리 언니 잠깐만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며칠 일을 못 할 거 같아서. 응 고마워.”

핸드폰을 끊고 정면을 주시했다.

마치 자신의 각오를 보여줬다는 듯이, 눈을 치켜떠 노려봤다.

“맘대로 해요. 난 일 없으니까. 이곳에서 깽판은 치지 말길 바라요. 신고당해서 잡혀가기 싫다면.”

요원은 별 미친X을 다 본다는 얼굴로 등을 돌렸다. 작은 경고와 함께. 더 상대하기를 포기했다.

일주일째.

“와, 독하네. 진짜. 또 왔어.”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독종도 저런 독종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행이라면 회장이 출퇴근하는 경로와 다르단 점에 있었는데.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뭔 바람이 불어, 생각도 못 한 장소로 출근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요원은.

“당장 저 여자 치워!”

한강과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영미를 가리키며 무전을 날렸다.

요원은 급히 들어서는 회장에게 달려갔다.

“회장님! 유한강 회장님!”

그때 들려오는 강렬한 여자의 목소리.

요원의 얼굴은 곧 창백하게 변했다.

막아서는 요원들 틈을 비집고 달려가는 영미를 보며.

“막아! 저 미친X."

그리고 무전기에 입을 가져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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