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82화 (82/237)
  • 82화. 20살, 네이컴 인수

    “대,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아무래도 우리가 당한 거 같습니다.”

    네이컴의 아침은 문을 박차고 들어온 김수경으로 인해 시작됐다.

    식은땀을 흘리며 붉게 달아오른 모습으로 등장한 그의 얼굴은 분노가 자리했다.

    “무슨 일이예요? 갑자기.”

    보고서를 읽어내려가던 김수경의 미간이 좁아졌다.

    “우리가 당했다니요?”

    난데없이 말하는 소리에 들려온 소리에 의문을 가졌다.

    “이, 이것 좀 보세요.”

    김수경은 손에 들린 신문을 건넸다.

    “대체 무슨 일인데......?!”

    뭔가 싶어 신문을 확인한 순간.

    [더움 쇼핑몰 다시 한리버의 품으로 돌아오다.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해 이자로 허덕이던 안드로이드사는 파산절차를 밟다 “경영과 영업능력이 입증된 한리버에 매각하기로 결정...” 했다고 밝혔다.]

    [앤드 루빈 대표는 잘못된 경영을 반성하고 할인된 값에 매각하기로...]

    [“더움 커뮤니케이션은 제가 운영했던 회사인 만큼 애착이 남다릅니다. 경영상의 문제로 매각한 쇼핑몰을 다시 되찾는 한편, 루빈 대표가 운영하는 안드로이드사를 한리버가 품기로...” 유한강 대표는 앞으로 소프트웨어가 시장의 핵심 기술로 떠올릴 것이라 내다보고 인수를 결정했다 밝혔다.]

    “......이 새끼가!”

    웬만해서 욕을 입에 달지 않는 한문철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제대로 당했음을 신문기사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당장 이 자식을......”

    따르릉.

    어떤 말을 던지려 하던 타이밍에 전화벨이 울렸다.

    “한문철입니다.”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날세. 나 좀 보겠나.

    “......”

    수화기 너머에서 이건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한문철은 어버버하다,

    “강녕하셨습니까. 회장님.”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잘 지내네. 내 새롬 대표도 불렀으니, 함 봅세.

    “알겠습니다. 회장님.”

    올려보기도 힘든 높은 사람의 전화. 한문철은 굳은 얼굴로 수화기를 내렸다.

    “이건호 회장님이십니까?”

    “휴......”

    끄덕.

    힘없이 한문철의 고개가 내려갔다 올라왔다.

    “설마......”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 넘기려는 건 아니죠?”

    김수경은 물었다.

    네이컴의 2.35%의 지분을 가진 이로써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만약 넘긴다면 제 지분을 정리하고 이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

    “다녀와서 말하죠.”

    하지만, 한문철은 그에 타박하지 않고 옷걸이에 걸어둔 코트를 챙겨 방을 나섰다.

    “......”

    김수경은 이를 악물었다. ‘망할 재벌 새끼들’ 욕을 하며 방을 비웠다.

    1시간 반 정도 지난 시간.

    “내가 왜 불렀는지 알리라 생각하네. 안 대표야, 오면서 들었을 거고.”

    육성그룹 도곡동 사옥 회장실에 안동수 새롬기술 대표와 한문철 네이컴 대표가 자리했다.

    “......”

    “......”

    둘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움직였다. 새롬기술 대표 안동수는 찝찝한 표정을 얼굴 위로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한문철에게 슬며시 옮겨졌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불편할 거야. 특히 한 대표는 그간 일군 회사가 이 모양이 됐으니 제일 분하겠지.”

    이건호는 충분히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그를 위로했다.

    “나도 놀랐어. 녀석이 그 긴 시간을 지금을 위해 야심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네이컴의 지분을 무려 32%나 보유하고 있더군. 자네들보다 많아.”

    며칠 전 본 한강의 당당하게 털어내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둘과 비교를 해보았다.

    ‘확실히 그릇이 달라. 한 대표는 못난 사람이 아닌데. 그 아이에 비하면 부족해...’

    수년간 공부를 하고 육성에서 기반을 다지던 한문철과 어떤 기반도 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억만장자가 되고 사업을 일으켜 괴물이 된 유한강.

    너무도 비교가 되었다.

    이제야 성년이 되어 잉크도 마르지 않은 민증을 든 아이를 위로 보게 될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주주총회를 열면 네이컴은 한리버로 넘어가게 될 거네. 새롬과 내가 합치면 44%야.”

    찌릿.

    한문철의 사늘한 눈빛이 새롬기술 대표 안동수 대표에게 향했다.

    한때 합병을 하기 위하여 함께하던 둘.

    새롬기술의 주가가 반 토막이 나지 않았다면 하나 된 기업으로 운영되었겠지만, 무리한 주식교환으로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그때부터 둘의 사이는 그리 좋진 않았다.

    “명예롭게 물러나겠나, 아니면 주총까지 가겠나? 주식을 넘기란 말은 하지 않겠네.”

    크흑, 가혹했다. 너무도.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절대 줄 수 없다 말하려 하였지만.

    ‘말도 안 된다고. 32%라니... 카득.’

    언제부터 준비했는지 모를 말도 안 되는 지분이 네이컴의 3분의 1일을 삼켰다.

    경영능력은 입증된 상태.

    그것도 부족해 뒤에 거대한 배경에 12% 지분.

    뭘 어떻게 해보려 하더라도 시간도 부족했고 돈도 부족했다.

    완패였다.

    “들고 있으면 수익도 제법 괜찮을 게야. 원한다면 그 아이의 밑에서 일해도 되네.”

    “......배려 감사합니다. 하지만, ...물러나겠습니다. 대신......”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고집을 부린다고 벌어진 일이 ‘0’이 되지 않았다.

    ‘애한테 진 경영자라... 안 봐도 뻔하지.’

    남아 있는다고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대표로서 신뢰도 잃었다.

    과연 몇이나 자신을 따라올까?

    남아 있어 봤자 비웃음만 당할 뿐이다.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원게임을 네이컴에서 분리했음 합니다. 애초에 그 회사는 제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본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원게임은 김수경이 운영하던 회사.

    그것만이라도 되찾아 주고 싶었다.

    “유 대표를 설득해 보도록 하지. 고맙네. 시끄럽지 않게 해줘서.”

    2003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가 얼마 남지 않은 하얀 겨울날, 네이컴 대표 한문철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김수경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부족한 운영으로 회사를 넘겨 버렸다.

    자신을 믿고 함께해준 김수경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아닙니다. 둘이 다시 시작해 보죠.”

    “......”

    “이번엔 제 지분을 좀 더 늘린 공동대표로서 함께하시죠.”

    둘은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원게임에서.

    ***

    [계란이 바위를 깨트렸다. 한리버가 자신보다 몇 배는 큰 네이컴을 전격 인수를 하였다. 원게임을 분리하고 네이컴을 품은 한리버 유한강 대표의 저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와, 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증시에 알려진 바 없었다. 기사로도 다뤄지지 않았고.

    한데 하룻밤 지난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갓 태어난 강아지가 과연 호랑이를 이길 수 있을까? 싶었는데 보기 좋게 이기고 말았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주식 봐라.”

    한 달 사이 23% 정도 오른 주식은 하루 사이에 20%가 하락했다.

    파랗게 칠해진 선과 음봉 막대기에 투자자는 패닉에 빠졌다.

    “지져스. 망할.”

    모든 결과는 증시가 말해준다고 했다. 시장은 한리버가 네이컴을 인수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X발 것. X됐네. 진짜.”

    떨어지는 주식만큼이나 기분은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

    사람들이야 어쨌든, 한리버 사옥은 축하 화환으로 가득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더움 커뮤니케이션 대표 고호경.]

    “축하합니다. 정말 대단한 걸 해내셨습니다.”

    가장 앞 열에 더움 커뮤니케이션 화환이 떡하니 자리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대표님의 도움 덕입니다.”

    고호경의 방문에 한강은 반갑게 맞이했다.

    이번 일의 일등공신이 그였던 만큼, 한강이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이제 더움 차례겠군요.”

    “그렇네요. 부담이 줄었어요.”

    더움도 비슷한 수준으로 지분을 가져와 지배하에 둘 예정.

    계열사 지배를 강화하는 건, 좀 나중에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언제 잡으면 될까요?”

    고호경은 재밌다는 투로 말하며 지금 순간을 즐겼다.

    애초부터 기업을 넘길 생각이었는데, 결과를 놓고 보니 무척 잘한 선택이었다.

    “내년 2월로 하죠. 그때까지 모든 매각 준비를 마쳐주세요. 네이컴을 준비 없이 인수하게 돼서 정신이 없을 거 같으니까요.”

    두 달 터울도 짧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길게 끌어 좋을 것도 없었다.

    다가올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미리미리 준비해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공개는 보름 전에 하는 걸로 할게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참으로 길게 돌아왔다. 돈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 그럼 우리 파티를 하러 가시죠. 옥상에 파티가 준비돼 있습니다.”

    한리버 빌딩의 옥상은 아주 특별하다. 직원들의 휴계 공간으로도 쓰이며, 벽과 천장이 통짜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난방까지 되어 있어 겨울임에도 따스했다.

    “그럼, 빼지 않고 함께 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3시부터, 12월 송년회 겸 네이컴 인수 축하 행사가 열렸다.

    ***

    2003년도 끝물인 날.

    빵빵.

    “타!”

    고급빌라 주차장에 클랙슨이 울렸다.

    “아후, 춥다.”

    한강은 손을 삭삭 비비며 외제차량에 올랐다.

    “먼저 모교 한번 들르자.”

    “모교? 선화예고?!”

    “아니, 내가 거기 뭔 추억이 있다고. 경기초.”

    6년간 참 많은 일을 경험했던 추억의 장소.

    곧 스무 살이 되니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조용히 지난날을 되새겨 보고 싶었다.

    “감성적은. 간다.”

    윤희의 터프한 운전실력에 한강의 몸이 문짝으로 크게 쏠렸다.

    “안전벨트......”

    ‘후딱 면허를 따자’ 생각하며 급히 안전벨트를 몸에 둘렀다.

    부아아앙, 한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윤희는 엑셀을 더욱 세게 밟아 경기초까지 달렸다.

    펄럭펄럭.

    “하여튼, 학교들이란. 이게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저리 걸려 있담.”

    경기 초등학교.

    [경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유한강 축]

    [한리버-네이컴 인수합병을 축하합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사진까지 찍혀 있었다. 빨기라도 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수시로 교체를 하는 건지.

    경기 초등학교 교문 위로 큼지막한 플래카드와 현수막이 걸렸다. 얼굴 홍보를 제대로 해주었다.

    한쪽에 차량을 정차하고 내리자,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 엇! 선배님이닷!”

    지나던 아이들이 알아보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학교 주변을 노닐던 아이들까지 가세하였다.

    “선배님, 싸인해주세요!”

    “저도요!”

    저마다 악기를 들고 있는 아이들이 종이를 내밀었다. 저 종이는 어디서 난 걸까? 의문이 들던 차.

    “좋겠다. 누구는. 연예인 뺨치게 인기도 좋고. 얘들아 줄 서야 잘생긴 오빠 형이 차례대로 사인을 해주지!”

    윤희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던 윤희는 아이들을 직접 통제했다.

    “...... 이러기야?”

    뜻하지 않게 연예인 놀이를 하게 되었다.

    이러기 위해 들른 곳이 아니거늘.

    “어허, 새싹들의 부탁을 짓밟을 셈이야?”

    짐짓 화난 얼굴로 한강을 노려본 윤희는 가방에서 매직을 꺼내 건넸다.

    “대체, 매직은 왜 있는 건데?”

    “그건 알 거 없고. 어서 해. 해 지겠다. 빨리 끝나야 우리 데이트한다?”

    한강은 눈빛으로 윤희를 실컷 때린 후, 아이들의 종이를 받아 들어 사인을 하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모여든 아이들까지 줄을 서자 주변은 금세 소란스럽게 변했다.

    “자! 여기까지. 사인 못 받은 사람들은 다음 기회를!”

    윤희가 컷하고 잘랐다.

    “한강아, 춥다. 빨랑 가자.”

    윤희는 한강의 팔을 잡아끌었다.

    옛 추억을 떠올려 잠시 들른 학교는 아이들의 사인회로 바뀌어 옛 감성을 사인과 맞바꿨다.

    ‘휴’ 한숨이 길게 나왔다.

    도끼눈을 치켜뜨며 윤희를 바라봤는데.

    “그런데 왜 갑자기 동해야? 이젤에 그림 도구까지 챙겨서는. 이 추운 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 나 때문에 휴가까지 냈는데. 같이 즐겼음 됐지.’

    같이 있는 것만도 행복하다.

    한강은 골난 시선을 털고, 눈을 하늘로 보냈다.

    “전시관에 걸어둘 보물을 그리기 위해서.”

    차량이 출발했다.

    새해가 밝아 오는 동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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