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80화 (80/237)

80화. 19살, 파산 절차

[한리버 더움과 갈라서다. 쇼핑몰 운영권을 넘기는 한편, 모든 투자금을 회수하다.]

[더움 커뮤니케이션 고호경 대표 이유 밝히지 않아, 입을 닫다.]

며칠이 지난 날, 모두가 놀랄 기사가 쏟아졌다.

“하하하. 정말 큰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파트너사로서 최선을 다해 한리버를 지원하겠습니다.”

기사는 네이컴에도 이어져 한문철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게 만들었다.

한문철은 찾아온 한강의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네이컴 주식 8%, 배너 50% 할인. 잊지 않으셨죠?”

“암요. 당연하지요.”

“저, 그런데 제가 워낙 피해를 보고 온 터라, 이 계약서에 추가 내용을 적었음 합니다.”

한강은 준비된 계약서에 추가사항을 넣어줄 것을 언급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무엇을 넣어 드릴까요?”

세상 착한 사람의 얼굴로 계약서에 펜을 가져갔다.

“해당 계약은 ‘을’인 (주)한리버와 협의 없이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 강제 파기 시 ‘갑’인 네이컴은 ‘을’인 (주)한리버에 위약금 1천억 원을 지급한다.”

우뚝.

계약 내용을 써내려가던 한문철의 손이 멈췄다. 종이로 향해있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이게 뭡니까?”

“보시는 대로입니다. 우린 연결된 하나의 노선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만한 안전장치를 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네이컴에서 악의를 가지고 파기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 효력도 없는 그저 그런 내용입니다.”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안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 내용이 아님을 표정으로 내보였다.

‘이것만 마무리하면...’ 그물망은 완벽이란 말을 속으로 되뇌지만, 겉모습은 무척 억울한 열아홉 살 미성년자의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그러지요.”

잠시 고민하던 한문철은 피식 웃고는 계약서에 자필로 직접 적어 서명을 하였다.

붉은 도장이 부수별로 찍히고 모든 과정을 끝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선뜻 받아주어 감사합니다.”

속알맹이는 한강만 알 뿐, 겉을 핥아먹은 네이컴은 이를 몰랐다.

한강은 끝까지 표정을 약자의 모습을 유지하며 비굴한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는 걸로 마무리를 지었다.

“크크크. 바보들. 나중에 뚜껑 열고 머리를 들이밀면 아주 보기 좋은 모습이겠어.”

한가을 태운 차량이 네이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한강은 실실 쪼개며 마무리된 계약서를 정독했다.

며칠 뒤.

[더움 커뮤니케이션 안드로이드 회사에 지분 넘겨, 안드로이드 회사는 어떤 회사?]

[외국계 안드로이드사 쇼핑몰 운영권 인수.]

[위기에 빠진 더움 커뮤니케이션 극적으로 살아나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던 더움 커뮤니케이션에 새로운 기사가 실리며 파란색을 그리던 음봉이 양봉으로 전환됐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안드로이드가 어떤 회삽니까?”

당연히 해당 소식은 네이컴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알아보니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주 작은 회삽니다. 은행에서 확장 목적으로 돈을 빌리고 그걸로 더움에 투자를 했답니다.”

“아니... 지금 거기에 들어갈 돈이 얼만지 아세요? 최소가 천억이에요. 천억. 그걸 작은 회사에서 그만한 돈을 빌려 투자를 했다고요? 말이 된다 생각하세요?”

김수경의 보고에 어이없는 감정이 입 밖으로 쏟아졌다.

억눌렀던 감정은 분수가 되어 위로 올라왔다.

“저도 그게 이상해 어떤 절차를 거쳐 그만한 돈을 은행에서 빌릴 수 있었는지 조사 중입니다. 확인이 되는 대로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샅샅이 확인해 보세요.”

이렇게 되면 한리버와 계약한 모든 게 없던 내용이 된다. 오히려 네이컴 입장에서 손해를 본 꼴.

‘아닐 거야.’

그러다 이번 일이 유한강과 관련이 있는가 싶다,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이번 일로 한리버는 손해를 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얻은 것 또한 없었다.

“그 회사의 뒤에 누가 있는지까지.”

생각을 지우고 김수경에게 지시를 내렸다.

싸움을 하더라도 적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차이가 컸다.

그렇기에 안드로이드사의 뒤에 누가 버티고 있는지 확인하고 다음을 생각하기로 하였다.

“알겠습니다.”

***

2003년 10월 28일 화요일.

한강은 이건호의 호출을 받고 윤희와 육성가로 발걸음을 하였다.

“무슨 일로 보자는 걸까? 갑자기 이렇게 밥 먹자고 부를 분이 아닌데.”

윤희가 화장을 고치며 물었다.

평소엔 며칠 전 미리 약속을 잡는 분이다.

윤희의 입장에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 때문일 거야.”

“자기 때문에?”

둘 사이에 애칭이 생겼다.

“응, 이번에 큰일 한 건 치렀잖아. 그 문제로 부르는 걸 거야.”

“음... 하여튼. 사업만 관련됐다 하면...”

윤희는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 있다면 오로지 미술!

그것만을 위해 엄마 밑에서 일하며 안목을 높이고 있었다.

“하하, 너무 그러지 마. 다 자기가 잘됐음 하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니까.”

“으... 완전 노땅.”

한강의 손을 오물거리게 만드는 말에 소름이 쫙 돋았다.

윤희는 고개를 홱 돌려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다 화장 망친다?”

핸들을 잡고 있는 한강은 정면을 주시하며 어택을 날렸다.

“됐네요. 신경 끄셔.”

윤희는 혀를 베에에에 내밀며 다시 화장에 집중했다.

차량은 이태원에 도달해 육성가에 닿았다.

곧 거대한 저택이 보이고, 한강의 차량임을 확인한 경비원은 주차장 도어를 열었다.

“올라가자.”

조수석을 열어 윤희를 에스코트하였다. 둘은 이건호가 머무는 저택 건물로 천천히 걸음을 하였다.

“왔나?”

이제 예순이 넘은 이건호의 머리 위로 하얀 서리가 내렸다. 주름진 눈가와 피부들.

‘초딩 시절에 접한 모습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야. 그래도 눈빛은 그대로. 하여튼 대단한 분이야.’

남자가 육십 줄에 오르면 기가 꺾이기 마련.

하나, 이건호의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왔는가.”

아이를 대하던 태도는 달라졌다. 초딩 시절의 한강이 아닌, 성인으로서 한강을 대했다.

“사위 왔어.”

“안녕하세요. 장인어른, 장모님. 형님 처형도 안녕하세요.”

들어간 장소는 식탁이 있는 주방.

그곳에서 식구들이 미리 앉아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왔는가. 매제.”

윤희의 첫째 오빠이자 미래의 육성 회장 이재진이 아는 척을 하였다.

뒤로 그의 아내부터 시작하여 소희와 경희도 한강을 맞았다.

“그리 바빠서 그림은 언제 그려, 사위.”

끝으로 홍라혜가 웃으며 한강을 반겼다.

“얼마 전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서 내년 1월부터 한 번씩 그림을 그려볼까 해요.”

다음 작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약 1년 정도가 걸릴 프로젝트가 될 거 같다.

한강은 웃으며 짧게 계획을 밝혔다.

“기대해도 되는 거지?”

“그럼요. 제가 누군데요.”

“호호. 그래. 그때가 기대되네.”

“모두 완성되면 한 번에 보여드릴게요.”

홍라혜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분위기를 가볍게 가라앉혔다.

“이야기는 들었다. 네이컴과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더움에서 손을 뗐다고.”

식사를 시작하고 배를 채울 무렵, 잠자코 있던 이건호의 입술이 떨어졌다.

가족들은 먹던 걸 멈추고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네.”

“흠... 그럼 수익은 사라지는 거 아니냐? 유일하게 돈 좀 될 만한 사업으로 알고 있었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곧 메신저도 돈이 될만한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거니까요.”

“음... 네 알아서 잘하리라 본다만... 음.”

“얼마 전 미국 부동산을 전부 매각하면서 17억 달러가 넘는 돈을 챙겼습니다. 장인어른도 아시리라 봅니다.”

“......?!!”

“......!!!”

이건호와 이재진을 제외한 사람들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원화로 약 2조 원이 넘는 돈을 부동산으로 매각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육성가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지금 자산이 15조가 넘는다지.”

“......”

“......”

조용하게 울리는 이건호의 목소리는 밥 먹던 사람들의 숟가락을 놓게 만들었다.

전부 한강의 가정을 아주 잘 알기에, 그가 이룩한 업적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육성그룹이 성장하는 만큼 저의 자산도 성장하고 있지요.”

육성그룹의 계열사들의 성장은 눈부셨다. 특히 전자 물산 자동차 SDI SDS 등은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자동차 가치면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3배에 이르는 성장을 하였으니. 한강의 자산이 어떨지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다.

아직 미국기업에 투자한 부분까지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뭐 크게 오르려면 아직 멀었지만.’

모든 주식은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유리하다. 액면분할을 몇 번 거치면서 역대 주가를 찍게 될 테니까.

“앞으로 네이컴의 하청처럼 지낼 터냐?”

“하청이라니요. 파트너삽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리라 보느냐? 번 돈을 가져다 바치는 봉으로 알 게다.”

‘저 말도 틀리진 않지. 이번에 쇼핑을 처분하면서 다시 깡통 회사가 되었으니.’

저 생각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앞으로 2년이면 많은 것이 바뀔 겁니다. 당장 내년만 가도 시대는 빠르게 변화를 맞이하리라 봐요.”

애플의 본격적인 각성. 뒤를 따르기 위한 치열한 전쟁.

그 전쟁 속에 한리버는 그간 가꾸고 다듬어온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이다.

‘누가 알았을까? 김 실장님이 그 사람과 친분이 있을 줄은. 정말 세상이 변하는 만큼, 내 주변도 많은 변화를 가져주는구나.’

이쯤 되면 이미 플랫폼 시장의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될 기본 틀은 갖춘 꼴.

돈을 소비하며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도무지 모르겠어. 다른 사람 속은 알아도 네 녀석 속은 읽을 수가 없어.”

이윽고 이건호는 다시 인상을 쓰며 이마에 자리한 주름을 위로 올렸다.

“모든 사람을 읽는 건, 신도 못 할 겁니다.”

“이것 하나만 알아두거라.”

이건호는 그릇을 옆으로 밀고 시선을 윤희에게 옮겼다.

“말씀하세요.”

“윤희에게서 아쉬운 말은 듣지도, 듣게도 하지 말거라. 이 말 하려고 불렀다. 내 얘긴 끝났으니 쉬다 가거라.”

이건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튼 딸 생각은 엄청 하시는 분이야. 네이컴이 아니라, 날 자극하기 위해 부른 거였어.’

“네, 장인어른.”

이건호가 일어나자 주변 가족들도 하나둘 일어났다.

가정부 둘이 앞다퉈 나서 주변을 정리했다.

“섭섭해하지 말어. 부모 마음이 다 그런 거 사위도 알지?”

자리를 비운 공간, 홍라혜가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장모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겠습니다.”

“그래, 내 사위만 믿을게.”

홍라혜와 간단히 이야기를 하고, 또 눈시울을 붉히는 윤희의 모습에 시야로 들어왔다.

참으로 눈물이 많은 여자라 생각하며, 그녀의 어깨를 팔로 감싸고 육성가를 빠져나왔다.

***

2003년 12월이 지난 날.

“이제 파산절차 밟는 모습을 보이고, 한리버에 매각 의사를 밝히면 되겠지?”

앤드 루빈은 이자를 갚지 못해 늘어난 빚더미를 보며 쓰게 웃고는 지난날 계획을 떠올렸다.

[이자는 갚지 말고 빚을 최대한 늘리세요. 그러다 적당한 시기에 파산절차를 밟다, 한리버를 찾으세요.]

“참으로 복잡한 동네야.”

앤드 루빈은 작게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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