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76화 (76/237)

76화. 19살, 귀국과 작가들

“......?!”

“......?!”

생기로 넘실거리는 눈동자에 의문이 깃들었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누보 미디어도 멋진 사업이지만, 전 두 분이서 하실 배터리 사업을 듣고 강한 촉을 느꼈습니다.”

공기가 바뀌었다. 주도권의 줄다리기 싸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대체 그걸 누구에게 들은 거죠? 우린 그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마틴 에버하드가 이마에 골을 만들어 물었다.

‘이크, 이거 골때리게 됐다’ 너무 앞서나갔나 생각이 들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마음이 너무 앞서갔다.

‘할 수 없다. 될 대로 되어라지.’

이렇게 된 이상, 거짓말을 진실처럼 꾸며야 한다.

여기부턴 배우 시절 연기가 필요했다.

“사실 제가 이곳을 알게 된 계기가 어떤 사람에게서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지나가는 투로 말한 거 같은데, 길을 지나치다 이 회사와 배터리 사업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됐습니다.”

되는대로 지껄였다. 정면 돌파가 안 되면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

“......!?”

“그래서 제가 이 회사를 알게 되고 이렇게 두 분 앞에 있게 된 겁니다.”

저들이 어찌 알까? 이건 천재 아버지가 와도 모를 일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다 이야기를 꺼냈을지 어떻게 알까?

“아니, 그걸 어디서 들었단 말이오?”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 질문을 던졌다.

“그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여튼 제가 여기에 있고 그 사실을 안다는 것 자체가 증겁니다.”

이게 팩트였다.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기에 저들은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허... 허허.”

“대체 어디서 샌 건지. 우리가 너무 입방정을 떨고 다녔나 봅니다.”

어디서 그렇게 떠들어 댔는지 기억을 해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시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어떤 형태로든 저와 두 분은 운명의 이끌림에 만났다 보여집니다. 그렇지 않고서 이런 인연이 또 어딨을까요?”

한강은 저들의 생각을 방해하고 흐름의 영역을 자신의 안에 가둬두고 세뇌작업에 들어갔다.

사람이란 게 복잡한 동물이지만, 현실과 증거가 있으면 의심이 들면서 ‘운명’의 톱니바퀴에 몸을 차츰 맡기게 된다.

‘할 수 있다’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

‘할 수 없다’를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처음엔 거부하지만 계속 듣게 되면 처음 기억은 잊고 반복해서 듣게 된 말을 믿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울 때 말 한마디가 무척 중요하다는 거지.’

한강은 슬며시 표정을 풀어 미소를 머금었다.

“전 여러분에게 없는 걸 해드릴 수 있어요. 이 회사를 좋은 값에 판다 쳐도 자본금은 턱없이 부족할 겁니다. 설사 초기 자본금을 얻는다 쳐도 언제 끝날지 모를 개발은 돈을 계속 잡아먹게 될 겁니다.”

“......확실히.”

“......음.”

돈이란 무기는 자본주의 세상에 최대 강점이요, 무기로 통한다.

한강은 적절한 설득과 맞춰 들어가는 설득형 키워드를 활용해 천천히 옭아맸다.

“1천만 달러, 초기 투자금으로 이 정도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지분은 제가 90%를 가지되 필요시에만 경영에 참여를 하겠습니다. 이곳의 대표는 두 분께 드리지요.”

이들의 정체는 바로 201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는 전기 자동차 최강자 테슬라 창업주였다.

“......”

“......”

둘의 얼굴이 심각하다.

“배터리 개발이 완료되고 전기차에 도전장을 던지는 시기가 온다면, 육성 자동차 디자인 경력을 살려 디자인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서로에게 아주 공평한 거래라 봅니다.”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오는 딜에 둘은 고민스러울 터다.

90%의 지분 양보에 더해 생각지 않게 얻게 된 큰 기회.

이리저리 흔들리며 저울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이거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허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대표님의 뜻은 알았으니, 시간을 가지고 고민을 해보고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틴 에버하드.

마크 타페닝.

둘은 미안한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세요. 어차피 당장 어떤 답을 듣기 위해 말씀을 드린 건 아니니까요.”

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하였다. 더 설득해봐야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다.

“감사합니다. 회사 인수는...”

그러다 마틴 에버하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좋은 값에 쳐 드리겠다고요.”

“뭐라고 드릴 말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이것과 그건 별개입니다.”

마틴 에버하드에게 약간의 빚진 감정을 만들어 두었다.

일이야 어찌 되었든, 전자책은 곧 크게 뜰 사업.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

한강이 떠난 자리.

“어떻게 생각하나?”

마틴 에버하드가 입에 담배를 물며 물었다.

하얀 스모그가 공기 중에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잘 모르겠어. 회사를 좋은 값에 넘기기도 했고,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지분이...”

이들이 고민하는 건 역시 지분에 있었다.

일은 본인들이 하고, 과실은 다른 사람이 맺는 부분에서 거부감이 생겼다.

“일단 우리끼리 사업을 해보고 차후에 생각을 해보자고.”

한리버 측도 시간을 주었다. 이들은 주어진 자본금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

[한리버 공격적 인수 계열사 늘리다. 첫 제조회사로 전자책 시장 진출을 알려...]

미국에 있었던 소식이 한국으로 전파돼, 한리버가 전자책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얼마 전 한리버 측에서 접근했어요. 이번에 웹소설과 웹툰 사업을 하겠다고 하던데.”

“엇, 작가님도요? 저한테도 왔었어요.”

“저도요. 대부분 받았나 보네요.”

종이책 시장에서 제법 이름을 알리거나, 등단한 작가들이 모임을 가졌다.

주제는 ‘한리버’.

최근 공격적으로 무섭게 세를 확장하고 있는 한리버는 늘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곤 하였다.

한데, 이번 주제는 다른 것과 달리 꽤 무겁게 다가왔다.

“어떻게 보세요?”

바람머리를 뒤로 넘겨 고무줄로 묶은 남자가 물었다.

나이대는 대략 20대 후반.

뿔테 안경을 고쳐 잡고 중앙에 자리한 남성을 바라봤다. 턱에서부터 구레나룻까지 이어진 수북한 털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일단 내 조건을 오픈하자면 작품당 1억에 3질(세 작품 완결) 하는 거야. 편수는 200편 이상이라는데...”

“와, 선배님 대박이네요. 전 5천이던데.”

“야, 그것도 괜찮은 거긴 하지. 이 시기에 어디서 그렇게 쳐주냐.”

저마다 자신들의 계약조건을 오픈해,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며 결정의 폭을 줄여갔다.

“그렇긴 한데, 선배님 얘기 들으니까 눈이 뒤집히네요. 엠지가 1억이라니... 그것도 권당.”

바람머리 남자의 이름은 고정석.

정석은 머릿속으로 셈을 치렀다.

“그게 중요하냐? 글자 수를 생각해라. 내가 많은지 네가 많은지.”

“헤헤헤.”

나이도 훨씬 윗줄에 있고, 경력도 압도적.

셈을 치르며 부러운 감정을 가지던 정석은 이내 포기하고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요즘 한리버 인지도가 매우 좋아. 이미지도 좋고. 게다가 돈도 많고. 망할 일 없다는 거지. 최근 콩쿠르 1위까지 먹고 말이야.”

말을 하다 보니 아주 괴물이 따로 없었다.

털보 이태형은 한리버의 주인 유한강을 떠올리며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선배님은?”

“해봐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비율도 나쁘지 않고.”

“하긴... 제 비율도 역대급이긴 하더라고요.”

물론, 종이책과 인터넷 소설은 매우 다르다.

종이책 비율은 잘 쳐줘야 7~8%.

인기작가는 10% 선이다.

그에 반해 한리버에서 제시한 웹소설 비율은 60%~70%.

거기다 엠지는 최소 5천만 원을 불렀다.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독자도 없는데 잘될까요?”

문제는 독자였다. 아무리 인지도가 좋다지만, 괜찮을까?

“뭔 상관이야. 뭣하면 빨리 완결하고 빠지면 그만이지. 너 작품당 5천 번 적 있어?”

“없지만서도...”

“그거 3질 후딱 끝내면 1.5억이야. 불안하면 후딱 손 털고 나가면 그만이고. 안 그래?”

작가가 손해 볼 건 없었다. 계약대로 글 써서 던져주면 그만이다.

빨리 쓰면 쓸수록 자신들에게 있어 이득이었다.

“선배님 말이 맞네요. 거기서 매니지 역할도 해준다니 해보자고.”

전속으로 묶이는 거지만, 계약조건이 나쁘지 않기에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전 하던 곳에서 연재하는 게 좋겠어요. 엠지가 끌리긴 하는데 추가 수익은 기대하기 힘드니까요.”

불안감을 느끼고 빠지겠다는 작가도 나왔다.

당연한 상황이기에.

“그렇게 해.”

붙잡지 않았다.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였다.

***

쉬이이이이이.

긴 출장 끝에 한국으로 귀국한 한강은.

찰칵찰칵.

“대표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수상을 하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연습하지 않은 곡으로 1위에 오르셨습니다. 혹시 따로 연습을 하셨었나요?”

모여드는 기자들의 장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대표님을 지지해 주시던 회장님들께 전하고픈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멈출 줄 몰랐다. 그 와중에 걸리는 질문도 있었지만, 연달아 들려오는 질문에 묻혔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게 뭔 일인지 몰라, 당장 어떤 인터뷰도 받기 힘들 거 같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면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겠습니다.”

한강은 기자들의 벽을 힘겹게 뚫고 지나가는 경호들의 도움을 받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눈을 마주치는 기자들에겐.

“죄송합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마디를 짧게 던지며 쓱 지나쳐갔다.

“대표님 여깁니다.”

마침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가 잔뜩 빨린 한강은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20미터 앞에 아군이 등장했다.

그들은 곧바로 기자들의 접근을 막고, 한강을 공항 밖으로 안내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말씀드리자면 긴데, 아마존과 애플 회장님과 밥 로스 작가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차량에 오르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허허허.”

모든 이야기를 들은 한강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영향력이 어떤지를.

제프 베조스, 스티브 잡스, 밥 로스에 이어 수많은 해외 팬들.

그들의 모아진 힘은 벨기에를 움직였다.

심지어 역사에 다시 없을 대사건을 일으키며.

“아무래도 회사에 도착하는 대로 감사 인사를 해야겠네요. 바로 회사로 갈 테니 준비해주세요.”

피곤해 집으로 복귀해 당장 쉬고 싶지만 감사한 마음을 뒤로 미룰 수 없었다.

한강은 비서에게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칠 것을 주문했다.

***

이튿날 아침.

╔유한강 대표님께

먼저 저희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전해드립니다.

일단 저희끼리 사업을 꾸려 나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추후 도움이 필요할 때 염치 불구하고 손을 내밀겠습니다. 마틴 에버하드...”

솔직히 이번에도 한 번에 거래가 성사될 거란 자신감을 가졌었다.

하지만, 결과는.

“차였네. 후후.”

보기 좋게 까였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자신의 조건을 무시하지 못하리라.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조건이 얼마나 좋은 조건인지 알게 될 날이 오게 될 테니까.

그들과 얼굴을 튼 것만으로 충분했다.

“대표님. 소설 작가님들을 모셨습니다.”

얼마 후, 초대한 작가들의 도착 소식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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