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75화 (75/237)
  • 75화. 19살, 반전과 역전 그리고 기회

    [애플 스티브 잡스,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깊은 유감을 표명.]

    [아마존 제프 베조스, 실력 이외에 정치력으로 평가하는 벨기에 콩쿠르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다.]

    [밥 로스, 콩쿠르 심사위원인 칼 하인츠 케멀링 조사 의뢰!! 항의 성명에 나서다.]

    한강의 관심에서 떠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대형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자신의 인기와 인지도, 명성 그리고 영향력, 인맥을 떠올리지 못한 한강은.

    일주일이 지난 날.

    쉬이이이이잉.

    “크크크크크. 너무 약았나. 내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자리한 대단위 공업단지 실리콘 밸리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한강은 들뜬 마음으로 다음 사업만을 떠올렸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오. 우리의 명망 높은 콩쿠르가 이런 수치를 당하다니요!”

    알베르 펠릭스 왕베르 테오도르 크리스티앙 외젠 마리, 줄여서 알베르 국왕은 부들부들 떨리는 얼굴로 대신들을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면목없습니다.”

    콩쿠르로 국가적 망신을 당했다. 모인 사람들은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말로 그자가 편파판정에 우리가 모르는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들의 모습에 알베르 국왕의 얼굴에 씁쓸함이 머물렀다.

    “그것이... 이번 일은 좀 심한 경우이긴 하나,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건 관례처럼 일어났었습니다.”

    관례, 아주 무섭고도 성의 없는 답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말인즉슨, 세계 3대 콩쿠르 전체가 더러운 오물로 가득함을 인정한 꼴이다.

    “허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알베르는 너무 어이가 없어 입을 연 남자를 바라봤다. 어찌 저리 뚫린 입이라고 막 뱉을 수 있다 이 말인가?

    알면서 묵인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남자는 더욱 몸을 낮췄다.

    “하아...”

    사실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크게 불거질 문제는 아니었다. 하필 대상이 ‘한강’이었단 게 문제였다.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지도가 있는 것도 모자라 세계 유명 부호들과 얽힌 관계.

    칼 하인츠 케멀링의 최대 실수였다.

    “이를 어쩌면 좋을꼬.”

    그들의 영향과 세계인들의 항의는 한 국가의 왕이라 할지라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중국이야, 철판을 깔았으니 뭘 하든 당당했으나, 벨기에 국왕 알베르는 아니었다.

    심지어 국가의 행사이자 이름 높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먹칠을 하는 건 용서가 안 됐다.

    노기 띤 얼굴에 깊은 수심이 얹어졌다.

    알베르는 화를 내던 걸 멈추고 팔걸이로 가져간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눌렀다.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폐하,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때 들려오는 중년의 목소리.

    “......”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을 치우고 좌측에 위치해 있던 중년인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말하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게 칼 하인츠 케멀링과 그의 제자에 대한 편파판정입니다.”

    중년인은 잠시 한 타임 쉬며 알베르의 눈치를 살폈다.

    “......”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려보고 있었다. 계속하란 의미였다.

    “그자를 빼고 기존에 있던 심사위원들을 불러 다시 심사를 해, 수상자를 다시 뽑는 것입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편파판정은 확실한 것이오?”

    “정황으로 보나, 1위와 2위가 그자의 제자란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확실한 증거는 점수에 있습니다. 2점을 줬다면 센 웬유는 2등이 아닌 3등이었을 겁니다. 참고로 센 웬유에게는 다른 심사위원들과 달리 10점을 줬습니다.”

    “계속하세요.”

    “칼 하인츠 케멀링이 퀸 엘리자베스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처분을 내리면 이번 일은 무마되리라 봅니다.”

    “그리하면 정말 문제가 해결되는 게 맞겠지요?”

    “책임지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더는 이런 문제가 생겨선 아니 될 것이오.”

    “알겠습니다.”

    알베르의 허락이 떨어졌다. 중년인은 숙였던 몸을 세워, 방을 나섰다.

    ***

    “출발!”

    미국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밖으로 나섰다.

    수행직원과 경호원 두 명을 대동하고 인도로 빠져나와 택시에 올랐다.

    [누보 미디어.]

    건물 옆으로 삐져나온 간판이 모였다.

    택시는 미끄러지듯 달려 앞에 멈췄다.

    “일 마치는 대로 렌트를 알아보겠습니다.”

    택시를 타고 온 게 불편했는지,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죠.”

    “대표님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세요. 단, 배는 채우고 하시죠.”

    미국에 잠시간 머무를 거 같다. 물론, 한 번에 마무리하면 금방 한국으로 복귀가 가능하지만.

    “그리하겠습니다.”

    직원들과 경호원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누보 미디어는 1997년에 설립된 회사로 전자책 리더기, 로켓 이북을 만들었다.

    ‘이곳 대표 아저씨들이 엄청 떠들어 댔었지. 후후.’

    사무실이 다가오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서 시작되는 역사는 한리버에 또 다른 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드린 한리버 유한강입니다.”

    아!

    누군가의 감탄 소리에 귀가 팔랑거렸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연달아 터졌다.

    “저, 저. 제가 모실게요.”

    우물쭈물하던 여성이 다가와 얼굴을 붉히며 안내를 자처했다.

    “감사합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예쁘시네요.”

    여성의 안내에 감사를 전했다.

    “헤헤헤... 천만에요.”

    감사를 전하는 태도와 단어에 살짝 문제가 있었지만.

    여자는 한강에게서 전해져오는 향수를 음미하며 대표실로 걸음을 하였다.

    ‘무슨 향일까. 좋다.’

    시원하면서 달달한 꽃내음, 취할 거 같다.

    “여기에요. 저...”

    “네, 말씀하세요.”

    “가실 때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 얼마든지요.”

    “기, 기다릴게요. 안으로 드시면 되세요.”

    여자는 그리도 좋은지 해맑은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연락하시면 저희가 모셨을 터인데, 먼 걸음 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남성은 일어나 한강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전 마틴 에버하드이고 이쪽은 저의 동업자...”

    “마크 타페닝입니다. 유명한 예술가이자 대표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두 사람을 보게 되다니’ 머릿속에 연신 스마트한 생각들이 마구 떠다녔다.

    “영광은요. 기쁘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강은 둘과 악수를 하며 미소 띤 얼굴로 호쾌하게 웃었다.

    “앉기 전에 먼저 축하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틴 에버하드가 자리에 앉으며 싱긋 웃어 보였다.

    “이런, 역시 소식을 접하지 못하셨군요.”

    짐작을 했다는 듯, 마크 에버하드는 웃으며 말했다.

    “소식요?”

    한강의 눈에는 곧바로 의문이 떠올랐다. 시선을 돌려 직원을 바라봤다.

    도리도리, 직원도 모르는 눈치다.

    “아마 모를 겁니다. 막 기사가 떴으니까요.”

    “무슨 기산데 그러시죠?”

    단번에 말해주면 좋으련만, 둘은 그러고 싶지 않은가 보다. 마크 타페닝은 입을 다문 채 엷은 미소만을 걸치고 있었다.

    “벨기에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나가셨죠? 3위에 오른 걸 포기하시고.”

    “음......”

    잊으려 노력한 불편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강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번에 그곳에서 칼 하인츠 케멀링을 입국 금지를 시켜, 다시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출입하지 못하게 막고, 모든 수상을 취소하겠다 공표를 하였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단 한 번도 콩쿠르 수상을 취소하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분들도 벨기에 국왕의 손을 들어주었답니다. 증거가 너무 명확해 1위와 2위를 수상을 취소했다는군요.”

    ‘오 마이 갓, 세상에...’ 머릿속으로 쌓여있던 앙금이 확 풀렸다.

    “그리고 대표님 악보를 바꾼 사람도 잡혔답니다. 실수가 아닌 계획적 범행으로 드러났습니다.”

    “......”

    한강의 입이 잠시 다물렸다.

    심증만 있던 진실이 너무도 쉽게 풀려 버렸다.

    머릿속에.

    ‘왜?’ ‘어째서?’ ‘어떻게?’ 의문의 단어들이 이리저리 떠다녔다.

    “그리고 이건 대표님을 위해 급히 준비한 꽃입니다. 이런 걸 누군가에게 줘보긴 첨이군요.”

    손을 뒤로 옮기는가 싶더니, 마크 타페닝 손에 꽃다발이 한아름 들려 있었다.

    “아니, 그건 또 왜...”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한강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번 콩쿠르는 2위와 3위 없이 1위만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그 1위가 바로 한리버 유 대표님이십니다.”

    두둔!!

    너무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쇼팽 콩쿠르나 노리자’ 이 생각만이 가득했는데.

    “...... 제가요?”

    뜻하지 않게 1위를 해버렸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해달라더군요, 대표님을 보는 분께는. 미안하다. 특사를 보내 직접 상을 전하겠다고 말입니다.”

    “......”

    언블리버블.

    이걸 어떻게 해석하여 받아들여야 할지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은 얼빠진 얼굴로 앉아 있는 한강에게 축하를 전했다.

    “하하, 하하하.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저에게 이런 기쁜 소식을 안겨 주고, 이렇게 축하까지 해주셔서.... 정말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당장 머릿속에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네요.”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웠다.

    콩쿠르에서 받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터인데. 아무래도 ‘수상’을 쿨하게 버리지 못했나 보다.

    한강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빙그르르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쪽팔리게, 망할. 거래하러 온 자리에서 이게 뭐람.’

    바지 위로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하하.”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가 이런 영광스런 말을 대신 전하게 돼서요.”

    둘은 뿌듯한 눈으로 한강을 응시했다. 한강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께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한강은 정말로 둘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저들이 챙겨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있었을 터다.

    물론 귀국하는 길에 듣거나, 귀국해서 소식을 접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신경 쓰고 챙겨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둘의 세심한 배려에 고개를 숙였다.

    “하하. 우리는 좋은 값에 이 회사를 인수해 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마틴 에버하드는 시원하게 자신의 바람을 전달했다.

    “당연하지요. 어쨌거나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후한 값에 쳐 드리겠습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한강은 호기롭게 외쳤다.

    어쩌다 보니 둘과 제법 사이가 가까워졌다.

    높은 장벽을 허물고 저들과 거리감 없이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하하하. 신께서 우리를 돕나 봅니다.”

    “그러게요. 이래서 사람은 말과 행동이 중요한가 봅니다.”

    한강의 말에 둘도 껄껄 웃었다.

    한강은 둘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제법 성격들이 호쾌하고 좋은 사람들로 여겨졌다.

    물론, 자신이 특수한 환경에 있어 그런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떠랴, 좋게 흐르면 만사형통인 것을.

    그것도 잠깐.

    한강의 눈빛이 변했다.

    “이 회사를 인수하고 두 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강의 변한 시선이 둘에게 향했다.

    “뭡니까?”

    마크 타페닝이 물었다.

    “두 분이 배터리 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저도 두 분과 함께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한강의 진짜 목적이 밖으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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