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71화 (71/237)

71화. 19살, 벨기에 브뤼셀

[(주)한리버 서민 위기에 솔선수범하다.]

[2002년 오션월드 결제금액에 대한 50% 환불 진행.]

다음 날 아침 오션월드 환불 기사가 세상에 뿌려졌다.

“이렇게 손해만 보는 사업을 해서 어쩐대.”

“그러게 말이여.”

이번 위기를 국민과 함께하겠단 내용은 국민들의 환심을 샀다.

기업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사이버 장터는 날이 거듭될수록 규모를 키워갔다.

종합쇼핑몰로 시작한 야후의 지난달 매출은 20억 원.

한리버 쇼핑몰은 35억 원을 찍었다. 한리버 메신저와 오션월드로 올라오는 광고 덕을 톡톡히 봤다.

국내 대형 사이버 강자로 우뚝 섰다.

“현진택배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한리버는 택배 물류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인수작업에 들어갔다.

1순위로 지목된 곳은 1992년 국내 최초로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 현진택배가 되었다.

“관심 없수. 그러니 그만 가보시오.”

그러나 그간 적절한 시기와 타이밍에 들어갔던 기업과 달리 현진택배는 매각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쩝, 이거 쉽지 않네요.”

택배 사업을 처음부터 시작하기에 돈도 시간도 많이 걸렸다.

결국 부족한 부분은 돈으로 채우기로 하고 중소형 택배회사를 대거 인수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하였다.

총 5개사를 인수하는 한편, 창고를 늘리는 방향으로 틀었다.

“소형 화물을 개인에게 넘긴다고요?”

“그럴 수 있나?”

한리버 택배사로 새롭게 오픈한 장소로 자전거, 오토바이, 소형 차량들이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렇습니다. 한리버는 중형에서 대형 화물만을 취급하고, 그 외 소형 물품들은 각 지역에 맞는 여러분에게 풀겠습니다. 단가는 나눠드린 종이에 정리되어 있으니 그걸 보시면 됩니다.”

[350g 이하: 1,000원.]

[1kg 미만: 1,500원.]

[20kg 미만: 5,000원.]

“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종이에 적힌 가격표로 향했다.

“물량은 많을 것이기에 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오고 가며 24시간 나르셔도 됩니다.”

해당 택배비는 고객과 공동부담을 하게 되거나, 주문 값에 따라 회사에서 부담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물품에는 기사님들의 차량 넘버, 이름, 전화번호를 반드시 기입하셔야 합니다. 즉, 핸드폰이 없으면 이 일은 하기 힘드십니다. 그리고 자전거처럼 번호가 없는 건, 회사에서 발급하는 코드를 부착해야 저희와 함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배달된 물건은 사진을 찍어 관리자와 주인의 핸드폰으로 전송하게 하였다.

“물건 훼손 시 책임은 배송인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보증금 50만 원을 받기로 하였고, 일을 그만둘 때 말씀해 주시면 확인 후 열흘 내 돌려드리겠습니다.”

관리자는 사람들에게 한리버 택배 운영방침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어떤 거 같아?”

“잘 모르겠네. 이걸 해봐야 알 것도 같고.”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머릿속으로 셈을 하며 손익을 따져봤다.

“괜찮은 거 아닌가? 우리가 하는 만큼 버는 거니께. 소형 화물 20개씩만 돌려도 2만 원이고 하루 10에서 20 정도 괜찮아 보이지 않아?”

물량만 꾸준히 받쳐준다면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현재 최저시급이 2,200원 수준.

10시간 일해야 22,000원.

이걸 따져 봤을 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 100만 원도 벌기 힘든 때, 이 정도면 해자지.”

셈을 치른 사람들은 이번 일을 꽤 괜찮은 수입원으로 생각했다.

부업으로도 해볼 만한 그런 일.

“일은 언제부터 하나요?”

“지금부터 접수를 받을 겁니다. 오늘부터 일이 가능하신 분들부터 등록을 해드리겠습니다. 등록이 끝나면 출하장으로 가서 원하는 지역 물건을 가져가시면 됩니다.”

한리버 택배 직원은 등록할 사람과 생각이 필요한 사람을 구분해 등록을 진행했다.

조금씩 한리버는 시스템을 갖춰갔다.

***

딴딴!

“어떻게 보셨습니까?”

하얀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영상에 비친 남자를 가리켜 물었다.

“확실히 잘 치는군요.”

“좋은 소립니다.”

영상을 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감상평을 꺼냈다.

“그 아이가 관심을 보인 아이가 이 아입니까?”

“그렇습니다. 심지어 사이트에 들어가 쇼팽 콩쿠르에서 경쟁하자는 말까지 했더군요.”

“......”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눈가를 찌푸렸다.

분명 잘 친다 생각은 들지만, 고작 영상에 자존심을 팔았다는 부분에서 불쾌함을 느꼈다.

“족보도 없는 인간을 인정하는 건가요? 그걸 아셔야 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키가 작은 배불뚝이 남자는 영상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보지 못하겠다며 영상을 껐다.

“고작 흉내 내기에 불과한 걸... 에잉. 귀가 다 썩는군요. 난 이만 가보겠소.”

그는 기분 나쁜 시선을 주변에 뿌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여튼 저 성질머리하고는.”

“그만큼 피아노에 가장 큰 애정이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평생 음악을 내 몸처럼 생각해온 자들. 그럼에도 음악의 모든 걸 갖지 못하였다.

그런 틈 사이로 불청객이 끼어들어 가장 큰 이슈 속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진짜는 이곳 러시아에 있는 것을.

“지켜보면 알겠지요. 그가 피아노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언젠간 만나리라.

직접 구애를 하지 않아도.

***

끼익.

“안녕하세요. 선부동 택배 가지러 왔습니다.”

안산 반월공단에 자리한 택배 창고로 커다란 짐가방이 달린 오토바이가 경비실을 지나쳐 들어가 출하장에 멈췄다.

“선부동 저리로 가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신난 발걸음으로 직원이 가리킨 장소로 이동했다.

[선부3동]

곧 표지판이 보이고 아래로 팔레트 위에 올려진 택배 물건들이 시야로 들어왔다.

“이걸로 30개를 챙기자.”

이번 일을 위하여 등에 메고 다닐 가방과 오토바이에 고정할 가방을 특수 제작하였다.

소형 화물 30개면 3만 원. 이걸 하루 세 번 반복하면 제법 쏠쏠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루에 9만 원, 직장생활을 하던 때보다 수입이 짭짤했다.

“고생하세요.”

“거 살살하세요. 그러다 쓰러지것네.”

밖으로 나가는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보며 직원이 주의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실실 웃으며 오토바이를 몰고 회사를 나섰다.

“매일이 이랬음 좋겠어. 이렇게만 되면 빚도 갚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남자는 외환위기 당시 사업을 말아먹고 가족에게 빚의 부담을 떠안게 하지 않기 위하여 이혼 후 떨어져 살았다.

정상적인 회사 생활은 힘들고, 공사현장을 전전하다 중국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한리버 택배 사업 소식은 한 줄기 빛을 선물했다.

“이진영 씨 택배 왔습니다.”

가족과 다시 같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엇? 벌써 왔어요?”

“하하, 앞으로도 한리버를 많이 이용해주세요.”

분명 몸은 고됐지만.

“전화 안 받으면 그냥 놓고 가면 될걸, 왜 계속 전화질이에요!”

이상한 걸로 욕도 먹었지만.

[입금 ₩30,000원]

[입금 ₩30,000원]

[입금 ₩30,000원]

[입금 ₩30,000원]

[입금 ₩30,000원]

...

[잔액 ₩1,300,000원]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깔끔히 날아갔다.

좀만 더 열심히 하면, 좀만 더 아끼면 꿈을 이루게 되리라.

부릉!

“택배 가지러 왔습니다!”

오늘도 힘내자.

***

[한리버 쇼핑몰 배송 대란에 칼을 빼 들었다. 무섭도록 성장하는 한리버는 중소형 택배회사 인수를 통해 세를 불리고 새로운 접근방식을 운송업에 적용했다.]

[오토바이 자전거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

[운송수단이 없더라도 몸만 건강하면 가능!]

[몇 날 며칠 걸리는 배송문제로 골머리를 안고 있는 지금, 한리버는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금액만 더 지불하면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리버는 기사 메인 소재로 한국민들에게 소개가 되었다.

한리버의 성장세가 날이 거듭될수록 모습을 갖춰가는 때.

“이번 콩쿠르에 나가 예선전을 통과한다면 한 달간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얼마 있지 않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예선전이 시작된다. 달력을 바라보는 한강의 얼굴엔 긴장감이 떠올랐다.

“콩쿠르요? 갑자기 무슨 콩쿠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콩쿠르에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벨기에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가 5월에 열립니다. 전 그곳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올해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가 열린다.

그곳에 한강은 예선전을 치르러 갈 준비를 하였다. 그간 나름 충분한 연습을 통해 지난 전생의 감각을 한껏 끌어올렸다.

“갑자기 이러시면. 지금 수많은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인 상태입니다. 아직 안정도 다 되기 전에...”

“이 작은 회사가 저 하나 잠깐 빠진다고 운영이 엉망이 된다면 여기 계신 분들은 전부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가?

최종 결정권자가 한강이라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은 한 명 한 명이 전문교육을 받고 그간 회사를 관리해 오던 실력자다.

몇 년도 아니고 잠깐 자리를 빈 정도로 회사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전부 옷을 벗거나, 사업을 접는 게 맞았다.

그런 사람들과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따랐으니까.

“정말로 여러분은 능력이 없는 분들인가요? 전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자리를 한 달간 비우기로 결정한 겁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

“......”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이곳에 묶여 있을 순 없었다.

채찍을 던졌으니, 당근을 줄 차례.

“제가 없는 기간 동안, 회사의 실적이 는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약속드리죠.”

‘혹’할 만한 제안을 하였다.

“저희 생각 짧았습니다. 저희를 믿고 다녀오세요.”

당근은 통했다.

그제야 한강은 웃음이 깃든 편안한 얼굴이 되어 사람들을 바라봤다.

“믿어요. 그러니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 가장 힘든 건 일이 아니다.

그건 자신이 채용한 사람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연인 사이에도 믿음을 전제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듯, 사업도 마찬가지.

한강은 저들을 믿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선을 벨기에 브뤼셀로 두었다.

그곳이 시작의 장이 될지, 목적의 종착지가 될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너는 정말 한 곳에 얌전히 있지를 못하는구나.”

공항에 발이 닿은 미화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정말 너무해. 상의도 없이 불쑥 떠나는 법이 어딨어.”

이는 윤희도 마찬가지였다. 달달한 신혼 같은 동거를 상상했는데, 사업과 개인 일로 바쁜 남자친구로 인해 상상으로 끝났다.

“미안, 대신 꼭 본선에 들어 초대할 수 있도록 할게.”

“.....바보야,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다녀올게.”

“.....진짜 나빴어.”

홍길동도 이러진 않을 거란 생각을 가지며 윤희는 눈물을 보였다.

“누나도 중요하지만, 이것도 중요해. 내가 말했지. 난 때려죽여도 군대는 갈 생각 없다고.”

목적은 만들기 마련. 그것이 군대로 통했을 뿐이다.

누군가 자신을 욕해도 좋았다.

이번 생은 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살기로 다짐을 하였으니까.

윤희에게 미안한 마음도 강하게 들었지만, 이번 선택은 후회하지 않았다.

“하아... 본선에 못 들면 진짜 두고두고 후회할 줄 알아...”

윤희는 백기를 들었다.

저 고집은 눈물로도 통하지 않았다. 빌어먹게도.

“고마워. 다녀올게.”

윤희를 잠시간 품에 안은 한강은 곧 들려오는 안내방송에 윤희와 떨어졌다.

쉬이이이이이.

한강은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쾌청한 하늘 위로 비행기가 하얀 구름 줄기를 따라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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