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64화 (64/237)

64화. 18살, 학교를 졸업하다

[긴급뉴스입니다. 도곡동 육성빌딩 근방에서 30대 남성이 흉기에 찔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원인은 어깨를 부딪쳤단 이유로 발생한 우발적 범행으로...]

[30대 남성은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식입니다. 범인은 사건 발생 시간부터 5시간이 지난 시각 압구정 모텔에서 검거했습니다.]

[범인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준 이는 놀랍게도 근처를 지나고 있던 한리버 유한강 씨로, 유한강 씨가 그린 정확한 몽타주로 수사를 좁혀갈 수 있었......]

몽타주가 세상에 공개되며, 한강의 이름이 세상에 다시 한번 알려졌다.

“...범인을 잡는 데 일조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함. 2002년 1월 2일 서울특별시 지방경찰청장.”

짝짝짝.

범인을 잡은 소식은 경찰 상부까지 알려져 청장이 직접 나서서 표창장을 수여하였다.

“정말 큰 일을 해줬네. 한강 군.”

서화예고에서 행해진 수여식은 굵고 짧게 끝이 났다.

한강은 모두의 박수 속에 표창장을 받았다.

“......”

하지만, 한강은 전혀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기자들로 인해 애써 입가에 미소를 걸칠 뿐, 속과 겉은 따로 놀았다.

“그저 국민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살려 도움을 주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값진 상을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창장을 받은 소감은 형식적인 멘트를 가져왔다.

“하하하, 정말이지, 우리 학교를 참으로 빛나게 하는 학생입니다. 성적도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주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입니다.”

학교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한강의 성적과 행실을 상세하게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한강을 앞세워 학교를 홍보했다.

기자들은 학교 측의 의도를 알고 머릿속으로 어떻게 기사를 낼지 계획을 세웠다.

[2001년 전교석차 1등, 평균 100점 우수한 성적과 모범적인 행실은 학교에서도 이어져......]

[외환위기 당시 경기 초등학교 총 2억 원 및 모든 장학금을 형편이 어려워진 친구들과 후배들을 위해 사용해...]

[청운 중학교 3년간 평균 100점, 전교석차 1등을 놓치지 않아...]

한강의 소식은 경기 초등학교와 청운 중학교를 움직이게 하였다.

두 학교는 한강에 대한 모든 정보를 풀어내며 학교의 이미지와 교육방침을 소개하였다.

“와, 이게 사람이 낼 수 있는 성적이야?”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한 문제를 틀리지 않은 완벽한 성적에 사람들은 좌절을 맛봤다.

“세상 진짜 더럽게 불공평하네.”

“하... 잘생긴 얼굴에, 돈 버는 능력에, 그림 실력에, 거기다 피아노까지... 완전 완패네.”

“키도 졌어. 지금 185cm래.”

그리고 사람들은 세상의 불공평함을 안아 들고 패배를 인정했다.

뭐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아냐? 거긴 우리가 이겼을지?”

“.....ㄲㅈ.”

약간의 희망을 품은 사람도 있었다.

조금은 더럽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그만큼 한강은 사람들에게 있어 무척 대단한 학생이자 동생이고 우상이었다.

***

강남 경찰서.

경찰관들이 모여 대화를 나눴다.

“이 몽타주 버리기 아깝지 않아?”

“그러게. 내가 거기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왜 그림의 신이라 불리는지 알겠더라. 무슨 몽타주를 인물화로 그릴 줄 누가 알았겠어.”

손에 들린 복사된 그림을 보며 강력계 형사는 혀를 내둘렀다.

범인의 얼굴이 담긴 종이를 버리기 아깝다 느껴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렇지. 그런데, 이거 원본은 어딨데?”

짧은 머리를 올린 경찰이 다가와 의문을 드러냈다.

“...그러게?”

“어딨지?”

경찰들은 대화의 주제가 된 몽타주 원본에 대해 생각했다.

하나, 이 중 어떤 누구도 원본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버렸나 보지. 누가 그딴 그림을 가지고 싶어서 빼돌렸겠어.”

“그렇겠지. 그만 일이나 하자고.”

서로는 눈을 교환하다 찾아도 보이지 않는 원본에 신경을 끄기로 하였다.

한편.

“음,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경찰이 찾고 있던 원본은 경찰청장의 손에 들려 있었다.

경찰청장은 연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사람들의 이목을 한몸에 받은 한강은 미화와 덕화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폭탄 발언을 하였다.

“뭐?! 학교를 그만둬??”

“한강아, 왜 갑자기 학교를 자퇴해. 누가 괴롭혀?”

비싼 돈 주고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둔다는 갑작스러운 발언에 둘은 패닉에 빠졌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거예요. 제 꿈을 이루고 싶어요.”

“한강아, 사업도 사업이지만. 이건 아니라고 본다. 네 나이 아직 열여덟이야.”

“2년만 버티면 성인인데, 왜 그래. 한강아.”

덕화와 미화는 한강의 마음을 바꾸려 애를 썼다.

단 한 번도 속을 썩이지 않던 아들이었기에 충격은 더했다.

“죄송해요.”

차마 학교에서 더는 배울 게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한강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죄송하다는 말이 다였다.

“정말 그만둘 테야?”

“한강 아빠!”

덕화의 포기한 듯한 물음에 미화가 깜짝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한강이가 언제 우리를 실망시킨 적 있어?”

“그치만 이건 아니잖아.”

가슴이 답답했다. 미화는 덕화에게 가져간 시선을 한강에게 옮겼다.

“......”

무릎만큼도 오지 않던 아이는 이제 자신이 올려봐야 하는 키가 되었다. 언제 저리 컸는지 세월이 참 야속하다.

“엄마, 미안해요. 저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를 보는 걸로 졸업할게요.”

“대학은?”

“사업에 집중하고 싶어요.”

진지함, 진실함, 고집스러운 눈이 미화에게 향했다.

“정말 그렇게 해야겠어?”

미화의 안타까운 시선.

“네. 이게 최선이에요.”

한강은 무덤덤이 넘겨 자신의 뜻을 확고하게 전했다.

조금은 흔들릴 법하건만, 한강에게선 약간의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가 잡을 순 없겠지.”

학교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 하지만, 10대의 추억이 머무는 장소다.

인생의 단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그곳의 향기를 끊겠다 하였다.

“한강 엄마, 저리 뜻이 확고한데 허락해 줍시다.”

아들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 탓에 덕화는 끝까지 잡지 못했다.

“......넌 왜 맨날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가는 법이 없는 거니.”

미화는 투정을 부리듯 섭섭한 마음을 전했다.

지금의 삶이 아들의 결과물이기에 차마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미안해, 아들.”

“......”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모르겠다. 미화는 연신 미안하다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덕화는 그런 아내를 조용히 토닥여 주었다.

“감사합니다. 믿어주셔서.”

장시간 끝에 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시간보다 꿈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회사는 무척 중요한 순간에 와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형평성에 맞게 군대도 안 갈게요’를 작게 되뇌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꼭 그래야 돼?”

서화예고 서양화과.

한강의 소식을 접한 미나의 안색이 슬픔으로 젖어갔다.

“응, 역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네.”

“......넌 또 이렇게 가는구나.”

참뜻 유치원 시절 갑자기 미국으로 가겠다던 한강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됐어.”

한강은 머쓱하게 웃었다.

“담에 본다면 넌 또 변해 있겠지... 아니... 쳐다보기 힘든 곳에 있겠지.”

미나는 작게 속삭였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

하나, 한강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나 너 좋아해.”

“......”

갑작스러운 미나의 고백.

한강은 흔들리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봤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쭉. 널 좋아했어.”

“고마워.”

“정말 나빠.”

뭐라고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정말 만약에...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내가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연락해.”

품으로 안기는 미나의 행동에 한강은 잠시간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응.”

2002년 1월 중순, 한강은 서화예고를 자퇴하였다.

***

보름이 지난 시간.

“찍습니다. 찰칵.”

윤희의 졸업식 날이 찾아왔다. 윤희는 학사모를 쓰고 해맑은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한강아, 웃어.”

“하하.”

윤희는 한강의 팔에 기대며 오늘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강은 정자세로 윤희의 옆에 서서 배경이 되어줬다.

“에잉. 맘에 안 들어. 이래서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만.”

이건호는 얼마 전 한강과의 마찰을 떠올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옆에서 홍라혜는 ‘호호’ 가볍게 웃음으로 넘겼다.

“잘 어울려, 그치?”

“......”

이건호 첫째 딸 부부는 귀여운 동생들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막내가 결혼할 일만 남았나?”

“아가씨 진짜 예쁘다.”

이재진 부부는 둘 사이를 축복해 주었다.

[육성그룹 막내딸 이윤희(24) 졸업. 졸업식에 약혼남인 한리버 유한강 대표가 보인다.]

[유한강 서화예고 자퇴. 박수를 받고 학교를 떠나다. 검정고시 신청한 걸로 알려져...]

[천재의 걸음은 아무도 예상 못 해...]

윤희의 졸업 소식은 한강의 선화예고 자퇴 소식과 같이 신문에 실렸다.

특히, 한강의 자퇴 소식은 한국민들에게 있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시 없을, 한국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기록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을 하였지만.

[검정고시 만점자 전년 대비 크게 늘어...]

[유한강 검정고시 만점 패스...]

또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에 열광을 하며 2002년 5월을 맞이했다.

세계인들의 관심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쏠렸다. 붉은 악마의 열풍은 더운 여름날, 응원단의 목소리가 거대한 물결이 되어 대한민국을 덮쳤다.

“박지성 골! 골이에요!”

“안정환, 안정환 헤딩!!! 고-올이에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붉은 전사가 해냈습니다. 4강, 4강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에 기적이 일어났다.

태극기가 경기장을 메웠다.

붉은 악마의 함성이 경기장을 채웠다.

짝짝 짝짝짝!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오 오 오 오레오레!”

버스 위에 올라 기쁨의 함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자신의 차량을 기꺼이 내주며 방망이로 부수게 하기도 하였다.

도로는 마비가 될 정도로 4강의 축배를 들어 대표 선수들을 축하해주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위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내며 월드컵이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자랑스럽습니다.]

2002년 06월의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는 끝나고, 7월이 찾아왔다.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방음 잘 해주시고, 저 피아노는 저기에 옮겨 주세요.”

한리버 빌딩 대표실 옆으로 피아노 공간을 마련하였다.

앞으로 한강이 피아노를 연습할 공간. 미래에 있을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하여 연습 장소를 만들었다.

“이제부터 맹연습이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손을 가볍게 풀고 건반 위로 가져갔다.

딴.

건반이 눌러지는 그 순간, 방 안으로 음악의 아버지가 현신했다.

바흐 평균율 1번이 한강의 손에서 새로이 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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