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63화 (63/237)
  • 63화. 18살, 2002년 이건호 회장과 담판 짓다

    쉬이이이이잉.

    활주로를 긁고 비행기의 거대한 몸체가 하늘로 떠올렸다.

    [내가 뭘 만들 줄 알고 그런 걸 부탁하나?]

    [컴퓨터나 그와 유사한 모델이지 않겠어요? 휴대용이면 더 좋겠고.]

    [허허허.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니고.]

    [휴대폰인가 보네요.]

    [맞아. 하지만, 이건 당분간 비밀로 해야 할 거야.]

    [걱정 마세요. 그것도 계약서로 명시해 두면 좋겠네요.]

    [말이 통해 좋군.]

    [두 가지 디자인을 드릴게요. 각자 크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정말 기막히군... 같은 사각형인데 어찌 이리도 다를 수가.]

    [마음에 드셨나요?]

    [아주 좋네. 아주 좋아.]

    [우리 계약 잊으시면 안 돼요.]

    [하하하. 걱정 말게.]

    “훗, 요즘 사기꾼이 되어 가는 거 같아.”

    한강은 창 너머 하늘을 보며 스티브 잡스와 있던 일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개발 욕심에 목이 탄 나머지 마음이 급했나 보다.

    미래 역사에 벌어지지 않던 일이 현시대에 벌어져 큰 이득을 가져오게 되었다.

    “뭘 그렇게 실실 쪼개. 밥 아저씨랑 얘기가 잘 통해 좋은가 봐?”

    스티브 잡스와의 일을 마치고 다음으로 밥 로스를 만났다.

    [선생님의 그림을 인터넷을 통해 전시를 하고 싶어요.]

    유명한 작가는 잘 몰라도 밥 로스 이름은 다섯 살 유치원생도 알 정도.

    한강은 여기에 착안해 새로운 계획을 잡았다.

    사람들이 한리버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대이벤트.

    인터넷 전시관을 차리기로 하였다.

    [손이 하나 더 늘었네.]

    [몇 개는 무료로 풀릴 거고, 몇몇 개는 유료로 볼 수 있게끔 할 거예요. 거기서 발생하는 수입 중 일부는 선생님께 드리겠습니다.]

    밥 로스와의 거래를 마치고 한국 비행기에 오른 한강.

    단단히 오해한 윤희였지만.

    “응, 좋네. 일이 너무 잘 풀려서.”

    한강은 오해까지 모든 걸 받아들였다.

    “열흘간의 미국여행은 어땠어?”

    한강은 시선을 돌려 동생들을 바라봤다.

    “짜! 최고였어.”

    “멋졌어요.”

    해외여행이 처음인 지혜와 지연에게 있어 미국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아직도 설레는지 가슴을 끌어안고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뭐, 나도 그랬지. 첫 여행 땐.’

    동생들의 반응이 귀엽다.

    윤희 덕분에 이번 출장은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끼리리릭.

    10시간 넘은 비행시간.

    “한국이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활주로로 내려섰다.

    지혜의 목소리는 미국 여행의 끝을 알렸다.

    “저 사람은?”

    게이트를 뚫고 들어간 공항 안.

    오십 미터 거리에 매우 익숙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맞지? 비서실장님.”

    윤희에게 확인차 물었다.

    “그렇네. 어쩐 일이지?”

    윤희는 고개를 끄덕여 맞음을 알렸다.

    “지연아, 지혜야. 인사하자. 언니 쪽 어른이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가오는 김종식 비서실장에게 인사를 시켰다.

    “두 아가씨가 말로만 듣던 동생분들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비서실장은 훨씬 어린아이들임에도 존칭을 사용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한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건 그거고.

    기분이 살짝 상했다.

    “회장님께서 잠시 뵙고자 하십니다.”

    “...... 무슨 일인지 알 순 있겠죠?”

    “사업적인 문젭니다.”

    “사업 문제라... 좋습니다. 누나 아무래도 난 여기서 헤어져야 할 거 같다. 지연아 지혜야. 실장님과 먼저 가. 오빠는 일 마치고 복귀할게.”

    “응.”

    “조심히 오세요.”

    “...알았어.”

    한강은 일행을 보내고 김종식을 따랐다.

    “이거 매우 불쾌한 행동인 건 알고 계시죠? 실장님.”

    “......모두 대표님을 위한 일입니다. 가시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

    한강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이건 한참을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

    ‘이대로 흐른다면 좋지 않아. 이번에 확실히 못을 박아야 해. 휘둘리기 전에.’

    이건 월권이고 간섭이었다.

    육성과 한리버는 엄연히 다른 회사. 그리고 아직 가족도 아닌 남남이었다.

    설사 윤희와 법으로 묶인 부부가 되었다 한들, 이거 너무 나간 행위였다.

    육성 빌딩에 닿을 때까지 입을 닫았다.

    “......”

    김종식 비서실장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하나, 큰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느껴오는 불안감을 떨쳐 보냈다.

    “휴... 들어가죠.”

    김종식 비서실장을 뒤로하고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왔구나. 미국 일은 잘 마무리를 했느냐?”

    이건호가 웃음으로 맞이해 줬다.

    하나, 한강은 웃을 수 없었다.

    이번 생에 태어나 처음으로 ‘부정적’ 감정을 느꼈다.

    ‘일단 들어보고 정하자.’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앉았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돌아왔습니다.”

    “듣기로 아마존과 애플에 다녀왔다던데, 거긴 어쩐 일로 다녀온 게야?”

    “죄송합니다. 기업 기밀이라 아무리 아버님이라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기밀이라. 말이지. 그래. 좋아. 기밀은 말하면 안 되지. 요즘 사업은 어때? 힘든 건 없고?”

    웃음 짓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아무래도 이건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는 모양이다.

    “행운이 따르는지 좋은 일만 생겨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감정을 절제하며 물음에 성실히 답했다.

    “음, 내가 알아본 이야기와 다르구나.”

    이야기를 듣던 이건호는 정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떤 부분이 다르단 건가요?”

    “분명 회사의 외형은 상당히 커졌어. 한데, 모든 사업이 적자를 내고 있더구나. 날이 거듭될수록 적자 폭이 늘고.”

    “......위험하다 느껴지시나요?”

    “그래, 맞다. 위험해. 아무리 네가 돈이 많다 쳐도 지금과 같은 운영은 좋지 못해. 더욱이 넌 학생이고 회사를 돌보지 못하고 있으니, 무리가 따른다 본다.”

    좋은 의미에서 조언.

    나쁜 의미에서 간섭.

    그리고 지금은 조언보다 간섭이 맞았다.

    한강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곧 윤희와 결혼을 할 터인데, 그런 사업을 해서 좋을 게 있을까. 내가 값은 잘 쳐줄 테니 자동차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게 어떨지 싶다.”

    추측건대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 윤희의 안정된 생활.

    둘째, 이건호 회장의 욕심.

    셋째, 육성 자동차 경영.

    ‘하나, 이건 너무 간 행동이지. 이번에 확실하게 선을 긋자.’

    한강은 결단을 내렸다.

    사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지킬 것과 도움은 확실히 구분을 지어야 하였다.

    “아버님, 그건 힘들 거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저에게 말씀하시는지 아주 잘 압니다.”

    잠시 한 템포 쉬고 이건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

    굳게 다물린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단호하게 거부하고 나설 줄 예상하지 못한 모습.

    “아버님은 제게 있어 감사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받아온 만큼 도움을 드렸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돕는 관계가 지속되고 있지요.”

    디자인을 줌으로써 돈을 벌고, 육성은 디자인으로 차를 개발해 수익 냈다.

    미래 자동차와 경쟁하며 점유율을 상당수 가져왔다.

    덕분에 미래 시총은 60% 이상 떨어지고, 반대로 육성 자동차는 100% 이상이 올라 미래자동차 시총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가고 있었다.

    “당장 숫자로 보면 한리버는 분명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입니다. 이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도 물러섬이 없는 고집이 말속에서 전해졌다.

    한강은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학생 신분인 부분은 빠른 시일 내 해결하겠습니다.”

    그간 고민해오던 문제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 한 말 어떤 의미지?”

    “말 그대롭니다. 저를 타 기업 대표로서 대우해주셨음 합니다. 그리고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겠습니다.”

    선화예고는 경유지였다. 대부분의 공부는 아는 것이라 사실 더 배울 건 없었다.

    ‘대학 생활도 그렇고...’

    아쉬울 건 없었다.

    “내가 방금 섭한 말을 했다고 개... 그리 나오는 게냐?”

    이건호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목 주변이 붉은 걸로 보아, 올라온 화를 가까스로 누르고 있는 걸로 보였다.

    “학교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문제였고, ...오늘 갑자기 불러내 저의 기업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은 이해는 하나, 이건 아버님께서 실수를 한 부분입니다. 아버님은 직원으로 있는 첫째 형님께 회사에서 어떤 호칭을 부르게 하십니까? 아버지, 회장님?”

    “......”

    “제가 알기로 직함을 사용하는 걸로 압니다. 아버님보다 아래일지 모르나, 전 아버님의 회사 직원이 아닌 타 기업의 대표입니다.”

    “......내가 잘못했다 이거냐.”

    이건호의 두 눈동자에 뜨거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한강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렇습니다.”

    지지 않고 이건호의 두 눈을 마주했다.

    “허... 고얀 녀석.”

    “아버님께서 실수를 한 부분이니 죄송하단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네 뜻은 알았다. 나가 보거라.”

    “감사합니다.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한강은 단 1초의 고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를 다시 봐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아닌, 대표로서 한 인간으로서 말이지요.’

    문이 닫혔다.

    “......”

    이건호는 말없이 닫힌 문을 응시했다.

    ***

    육성빌딩에서 빠져나와 뒷못을 벅벅 긁었다.

    “찝찝해.”

    현생에서 느껴보는 최악의 기분에 혀를 쯧 찼다.

    일은 벌어졌고 돌아오지 않은 과거가 되었다.

    “털어내자. 다신 오늘 같은 일은 있어선 안 되고, 한 번쯤 부딪히고 넘길 문제였어.”

    좋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한강의 걸음은 택시 정거장으로 향했다.

    “저, 저 사람이 사람 찌르고 도망갔어요!!”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응?!”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이도 저도 못 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살인?”

    한강의 고개가 급히 사람들 틈을 지나 달리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민머리에 험상궂게 생긴 덩치가 골목길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무리야.”

    거리도 거리지만, 직접 잡는 건 무리였다.

    남자를 잡을 힘 따위 자신에겐 없었다.

    “......”

    한강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윽.”

    배에 칼이 찔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보였다.

    눈가가 절로 찌푸려졌다.

    곧 구급대가 오고 남자는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졌다.

    “인상착의가 어땠는지 보신 분 계신가요?”

    경찰이 찾아와 자리한 사람들에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상착의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어떤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당장 기억하는 거라곤 눈에 보였던 옷과 민머리가 다였다.

    “...음. 저도 보기는 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여기서 자신 외에 확실하게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걸로 여겨져 직접 나서기로 하였다.

    “다, 당신은 하, 한리버!”

    경찰이 한강을 알아보며 놀란 마음에 별명을 외쳤다.

    “엇, 유한강이다!”

    순간 거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한강의 이름 불렀다.

    이제 관심은 한강에게 모였다.

    “누구, 펜과 종이 있는 분 계시면 빌릴 수 있을까요?”

    한강은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종이와 펜을 찾았다.

    “여깄어요.”

    그때 미대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타이밍 좋게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그 가방도 빌려주시겠어요.”

    “넵!”

    여학생은 본인이 나이가 더 많음에도 존칭으로 대답하고 화구가방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한강은 짧게 감사를 전하고, 화구가방 옆면에 두꺼운 종이를 올려 연필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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