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17살, 더움 커뮤니케이션 인수
더움 커뮤니케이션, 1995년에 설립되어 무료 메일을 풀어 본격적인 성장세에 돌입해 더움카페를 런칭하고 종합포털사이트로 거듭났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기업은 무리한 프로젝트를 감행하면서 악재에 시달렸다.
그런 악재 속에 고호경은 결단을 내렸다.
“정말 훤칠하니 잘생기셨습니다. 유 대표님.”
청담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식집에서 더움 커뮤니케이션 대표 고호경을 만났다.
먼저 도착해 있던 고호경은 한강의 도착 소식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한강을 맞이했다.
“과한 칭찬 감사합니다. 출출하실 터인데 식사부터 하시죠.”
미성년자라 술은 생략했다. 술 대신 음료로 대체해 식사를 시작했다.
푹 끓인 닭고기의 속살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둘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탐색시간을 가졌다.
“휴, 정말 맛있는 집입니다.”
배를 두들기며 숭늉으로 입가심한 고호경은 만족한 미소를 흘렸다.
“부모님을 모시고 종종 오는 곳이에요.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비싼 만큼 맛도 좋다.
한강은 그 부분을 쏙 빼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런 좋은 밥을 먹고 나니 말씀드리기가 막상 망설여집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미 아는 얘기 편히 하세요.”
지금은 벤처기업들 사이에 M&A 붐이 일고 있다.
회사를 키우고 매각하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는 이때, 더움 커뮤니케이션의 자금난에 의해 기회가 찾아왔다.
앞으로 사업 방향에 더움은 필수적이었다.
네이컴을 노리고 있는 이때, 시기가 좋았다.
“속 시원히 말씀드리죠. 전 대표님만 괜찮다면 더움을 대표님께 매각하고 싶습니다.”
“자금운영이 어려워진 게 그 이유겠죠.”
“솔직히 그렇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 돈이란 장벽에 가로막힌 게 가장 큰 이유일 터다.
“일단 드리고 싶은 말은 한리버는 더움 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할 수 없습니다.”
“하하, 감사... 네?! 방금 무슨 말씀을...?”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고 안도하고 있던 차, 예상 밖의 답변에 고호경은 크게 당황했다.
살길을 마련했다 안심했던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아예 인수를 안 하겠단 뭐 그런 말은 아닙니다.”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인수를 하겠다는 소리인지, 아닌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무척 혼란스럽다.
“제게도 사정이란 것이 있어 인수를 뒤로 미루겠다 이 말입니다. 대신 대표님의 일부 지분을 매수하고 더움의 쇼핑몰 운영권을 가져오겠습니다.”
현재 SDS 산하에 있는 네이컴이 먼저다.
더움을 인수 후 네이컴에 손을 뻗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지금 더움은 네이컴 검색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니...’
여러 관점에서 보고 결정한 선택이었다.
“쇼핑물 운영권 300억, 지분 5%인 30만 주를 96억 원에 쳐드리죠.”
한 주당 3만2천 원으로 책정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 큰 문제는 없을 거라 봅니다.”
운영권만 가져오겠다는 건, 더움 커뮤니케이션에 큰 이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쇼핑몰 자체를 매각하지 않고 운영권만 넘긴다면, 더움 쇼핑몰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그대로 더움 매출에 포함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하, 하하... 그런 묘안이.”
“제 개인 일이 완료되면 그때 절차대로 인수를 감행하겠습니다. 그와 관련된 계약서를 작성토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깜박 잊고 지나칠 뻔했다.
“우표제 그거 취소하세요.”
“네?”
“메일 무료로 돌리시라고요. 이 정도 권한은 제게도 있는 거겠죠?”
“그렇게 되면 수익이...”
“기업이 밟혀 망하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모두 철회하시고 기존대로 나가세요. 이 또한 제가 더움은 인수하는 한편, 투자하는 조건입니다.”
네이컴이 너무 크는 건, 막는 게 좋았다.
더움의 경쟁력에 방해되는 요소를 지우고, 네이컴을 견제해 더욱 높게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고자 하였다.
“매출 부분이 걱정이라면 한리버 메신저 다운로드를 통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해드리죠. 적어도 없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여기저기 돈을 뿌리는 호구 같지만, 이 또한 한리버 메신저에 대한 투자였다.
즉 둘 다 먹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지분을 조만간 20% 이상 끌어올리도록 하지요.”
보호 예수가 풀리는 기간, 그 모든 물량을 직접 받아내기로 하였다.
고호경과 한강은 만족스러운 거래에 웃으며 헤어졌다.
***
2001년 12월 올해도 폭설로 가득한 하얀 세상으로 덮은 날.
“방학이다!”
서화예고에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한강을 더불어 모든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며 학교를 떠났다.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네. 그리 오래 있지는 않을 거예요.”
한강은 덕화와 자리를 가져 겨울방학 동안의 일정에 대해 대화를 하였다.
“흠, 그렇단 말이지?”
덕화의 얼굴에 고민이 깃들었다.
“...무슨 고민 있으세요?”
“커험, 그게 말이다. 나야 찬성하는 일이지만... 쟤네들이...”
덕화는 거실에 자리한 두 사람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곳에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지혜와 지연이 자리했다.
“설...마...?!”
“어떠냐?”
“안 돼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미국은 놀러 가는 것이 아닌, 사업적인 문제로 가는 거였다.
그런 곳에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갈 순 없었다.
“오옵빠.”
생전 보이지 않던 애교가 묻은 콧소리.
“얌전히 있을게요.”
수줍지만 바람을 담은 목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사람 구해서 같이 가면 안 될까?”
덕화는 두 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빠랑 엄마는요?”
하나 한강은 가볍게 두 목소리를 튕겨내고 시선을 돌려 덕화에게 물었다.
“이 아빠는 공부하랴 사업하랴 바쁘지 않으냐.”
“방해꾼 없애고 오붓한 시간을 가지시려는 건 아니고요?”
“어허, 그 무슨 말이냐. 아들에게 짐을 주고 맘 편히 있을 아빠로 보는 게냐?”
“네. 지금은요.”
“하아, 그렇게 착하고 귀엽던 아들이 크더니 이제는 기어올라 부모 꼭대기에 오르려 하는 모습이라니. 슬프다. 이 아빠는...”
‘에휴...’ 한강의 입에서 결국 한숨이 터졌다.
계획에도 없던 짐 두 짝을 짊어지게 되었다.
“같이 다녀올게요...”
‘김동진 실장님에게 부탁 좀 해야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딱 그 정도였다.
‘밥 로스 선생님 댁에서 잠시 신세를 질까 했는데, 호텔을 잡는 게 좋겠어.’
동생을 데려가 민폐를 끼치기보다, 5성급 호텔에서 보내는 게 안전하리라.
“알았어요. 데려갈게요.”
언젠간 해외로 나갈 동생들이다. 미리 안목을 높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봤다.
“하하. 고맙구나.”
‘옙쓰!’ 거실에서 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옷 챙기러 가자’ 지혜는 지연을 데리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미성년자에게 미성년자를 맡기는 부모님은 우리 집이 유일할 거예요.”
둘을 힐끗 바라보며 한강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어디 그냥 미성년자더냐. 그리고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널 수행한다고 여러 사람 같이 갈 건데. 충분히 안심하고 보낼 수 있지. 우리랑 가는 것보다 더 안전할 거 아니냐?”
“......무사히 다녀올게요.”
저 말도 틀린 건 아니기에 한강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경호원과 몇몇 직원들을 추려 함께 넘어가게 될 터이니, 이보다 완벽하고 안전한 조합도 없었다.
‘여성 경호원도 뽑자.’
한강은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하였다.
마침 잘됐다 생각하여 동생들을 위한 시간을 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경호원으로 적당한 사람이 있지. 흐흐.’
돈을 아끼고 확실하게 아이들을 보호해줄 인물을 머릿속에 그렸다.
***
쉬이이이이잉.
며칠이 지난 날,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 말씀 잘 들어야 해. 돈 함부로 막 사용하지 말고.”
“알았지?”
“응!”
“네!”
마음이 막 놓이진 않으나,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봤다. 인원은 완벽했다. 그리고 옆에는.
“내게 맡겨둬.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윤희가 있었다.
윤희는 지혜와 지연을 본인이 직접 챙기겠다며 자신에게 맡겨달라 하였다.
‘천군만마를 얻었어.’
이 정도면 걱정은 없으리라.
“이 카드 가져가.”
아맥스 블랙카드.
돈을 크게 벌고부터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던 카드를 윤희에게 주었다.
“나도 카드 있는데?”
“이거 장모님 거야.”
‘꺄, 장모님이래’ 아이들이 떠들며 두 손을 얼굴에 붙여 소란을 떨었다.
“엄마 거라고?”
“응. 이젠 난 필요 없으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어.”
“엄마 거라면 또 얘기가 다르지. 돈 굳었네.”
윤희는 싱긋 웃고는 카드를 가져갔다.
한강이 어떤 이유에서 주는지 알았기에 챙기기로 하였다.
‘이제 블랙카드는 필요가 없어졌지. 내가 직접 구하자. 블랙카드.’
이제 육성과의 연결고리는 윤희와 지분만이 남게 됐다.
미국에 도착해 하루가 지난 날.
“으자자자자.”
시차 적응을 위해 하루를 푹 쉰 한강은 찌뿌둥한 몸을 풀어 피로를 날렸다.
“나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와. 우린 시애틀 구경하고 호텔에 있을게.”
“그럼 부탁 좀 할게.”
‘윤희와 함께 오길 정말 다행이야’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 제프 베조스가 있는 아마존으로 향했다.
***
워싱턴 시애틀에 자리한 아마존닷컴 최상부층.
“회장님, 주식회사 한리버 유한강 대표가 도착했습니다.”
회장실로 기다려온 소식이 들려왔다.
“오오, 이제야 보는구만.”
제프 베조스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잘생긴 청년을 보며 두 손을 뻗어 반겨 주었다.
“유 대표.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도 뵙고 싶었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마존 주식을 매수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둘은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사인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제프 베조스는 테이블에 있는 종이를 가져와 앞으로 내밀었다.
“제 사인을 원하실 줄 몰랐네요. 부족하지만...”
매직을 들어 종이에 사인을 종이 전체 면에 그려놓았다.
“앞으로 이건 내 보물이 될 겁니다.”
정말로 좋은지 제프 베조스는 흐뭇한 눈으로 사인 종이를 한참 바라봤다.
“큰 영광이에요.”
누군가 자신을 위해 준다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다.
한강은 제프 베조스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함을 전했다.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 얘기를 해볼까요? 내 부탁도 있었지만, 나와 만남을 가지기로 한 진짜 이유를요.”
처음 김동진 실장을 보게 되던 날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찾아뵙기로 했다’고 말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숨겨 있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요즘 가장 바쁜 열일곱 살인 학생 겸 사업가가 이유 없이 미국까지 넘어왔을 이유는 없다 믿었다.
“사실 그때는 예의상 한 말이기도 하였고, 직접 만나고 싶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
“분명 그때까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유가 생겨 회장님을 뵙고자 하였습니다.”
“이거 은근히 기대가 되는군요. 다음 말이 기다려져요.”
제프 베조스는 한강의 특이한 화법에 빠져들었다.
“아마존과 협력적 제휴를 맺고 싶습니다.”
이윽고 한강의 입을 통해 방문 목적이 공개됐다.
둘의 시선은 허공에 맞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