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60화 (60/237)
  • 60화. 17살, 보성에서 음악을 그리다

    [(주)한리버 아마존 주식 81만 주 매수, 약 970만 달러에 이르며 원화 116억 원이 넘어간다.]

    [미국 부동산에 투자한 유한강(17) 5천억 규모 매수.]

    [한리버 메신저 미국행 타다. 일본 회원 20만 명이 넘어서기 시작한 가운데, 미국도 품을 수 있을까?]

    [투자의 귀재로 떠오른 열일곱 살 고등학생에게로 대한민국의 시선이 모아진다.]

    한강의 소식이 크게 대서특필되어 기사에 실렸다.

    “내 회사가 장시간 버텨 승리하려면 어쩔 수 없지.”

    참 여러모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 되었다.

    네이컴으로 흘러가는 돈, 다운로드 횟수만큼 나가는 돈.

    이 모든 걸 감당하기 위해서 영업 외 수입은 필수였다.

    “정말 환생이 사기야. 내가 한 사업 중 이리도 사업이 쉽다 느껴본 건 첨이네.”

    일반인에게 있어 환생은 약간의 도움만 줄 뿐, 거대한 흐름을 바꾸는 데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재벌은 다르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확실한 투자를 감행해 기다린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로 찾아왔다.

    “그리고 이게 신의 한 수지.”

    가방에 챙겨둔 그림을 떠올려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었다.

    “육성 자동차로 가주세요.”

    하굣길에 김동진이 모는 자동차에 몸을 실어, 육성 자동차 본사로 향했다.

    “허허, 이걸 정말 우리가 가져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육성 자동차 나동근 대표는 받아든 디자인을 보고 머쓱한 얼굴로 뒷목을 긁적였다.

    “이미 회장님과 계약된 부분이에요.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것 참, 회사에 디자인팀이 왜 있는 건지... 대표님 덕분에 육성이 삽니다.”

    회사에 디자인 부서가 있지만,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보다 나은 디자인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설계에 맞게 수정하는 게 다였다.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이건 대표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이이고, 벌써 가시게요?”

    한강은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육성 자동차 대표 나동근은 급히 몸을 일으켜 물었다.

    “이걸 전하러 온 것뿐, 디자인도 전했으니 가봐야죠. 제 일도 다 하지 못하고 왔는데.”

    “제가 챙겨드려야 하는데.”

    나동근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바지사장 정도로 알고 있는 그로선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나오지 마세요. 불편하니까요. 전 가보겠습니다.”

    한강은 그의 위신을 떨어트리고 싶지 않았다.

    겨우 열일곱 살인 자신을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육성 자동차가 자신의 회사라면 모를 일이나, 아직은 아니었다.

    “보성으로 가주세요.”

    행선지를 녹차 밭으로 유명한 보성으로 정했다.

    ***

    쇼팽 즉흥 환상곡은 한강에게 아주 특별했다.

    처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처음과 끝을 장식한 곡이 바로 쇼팽 즉흥 환상곡이다.

    “음악을 그림에 담는다.”

    아주 독특한 발상이었다. 한강은 쇼팽 즉흥곡을 보성에서 한국식으로 표현해 캔버스에 담기로 하였다.

    흐읍, 후.

    짧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밖으로 내뱉었다.

    녹차 향이 코와 입안으로 들어와 머릿속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배경은 이 밭이 될 거야.”

    녹음(綠陰)으로 이뤄진 대자연.

    세워둔 캔버스 시야로 보이는 세상을 담기로 하였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한강은 두꺼운 판으로 위아래를 봉한 걸 떼어내 중간에 끼워둔 종이를 꺼냈다.

    8절지 크기에 높은음자리표로 오려진 종이였다.

    한강은 높은음자리표를 캔버스 중앙에 붙였다.

    “준비 끝...”

    한강은 펜을 들어 하늘과 대지의 경계선을 연하게 짓고 붓을 들어 하늘을 그렸다.

    솜사탕을 닮은 하얀 구름을 품고 있는 파란 하늘이 빠르게 채워졌다. 그 아래로 녹색 대지를 그려 녹차 밭을 넣었다.

    부착한 높은음자리표까지 포함해 보이는 모든 걸 넣었다.

    눈은 캔버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한 번쯤 허리와 어깨를 움직일 만하지만, 한강은 꿋꿋하게 자세를 교정해 온 신경을 그림에 집중했다.

    약 1시간이 지난 시점.

    “1차 작업은 여기까지.”

    세세한 작업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림을 그립시다에서 보이던 속도와 달리 상당한 시간을 가졌다.

    잠시간 호흡을 가다듬고, 손을 높은음자리표로 가져갔다.

    “이걸 떼어내면...”

    위에서 아래로 조심스럽게 종이를 떼어졌다.

    곧 높은음자리표로 된 하얀 백지가 시야로 들어왔다.

    “이제 이곳에 피아노를 담자.”

    높은음자리표 안에 검은색 피아노를 그렸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오선보가 높은음자리표 세상을 뚫고 연주를 하였다.

    한강의 콧노래에서 쇼팽 즉흥곡이 펼쳐졌다.

    흥얼거리는 박자에 맞춰, 높은음자리표 세상은 목표로 한 쇼팽 콩쿠르 바르샤바를 담았다.

    “한국인 감성 안에 폴란드라, 좋은데.”

    한강은 나이프에 하얀 물감을 묻혀 좌에서 우측 아래 방향으로 하얀 실선을 그려 잔잔하게 부는 바람을 표현했다.

    물감의 두께까지 미세하게 조절한 표현.

    그림 안에 또 다른 그림을 그리는 걸로 캔버스에 음악을 담았다.

    “제법 어려운 작업이었어.”

    어느덧 해가 저물어 저녁 빛이 하늘에 떠올랐다.

    “실장님 죄송해요. 이런 것까지 도와달라 해서.”

    “하하. 괜찮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이곳까지 안내한 김동진은 미소를 품고, 한강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같이 캔버스와 이젤 등 도구를 챙겨 차에 실었다.

    “오늘 수당은 봉급에 추가될 거예요.”

    자신으로 인해 시간을 뺏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보상은 돈이 전부였다.

    초과수당으로 계산하여 급여를 책정해 주기로 하였다.

    그간 고민했던 작품 하나가 완성됐다.

    오늘 하루 무척 뿌듯하다.

    ***

    열흘이 흘러 2001년 10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여름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잎으로 가득한 세상에 알록달록한 색이 도심을 채워갔다.

    “정말 기발한 작품이구나. 뭐랄까, 너다운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육성 미술 전시관 유한강을 위한 공간에 첫 작품이 채워졌다.

    홍라혜는 가져온 첫 작품을 보고, 입을 벌렸다.

    의도적으로 물감의 두께를 세밀하게 조절해 한강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걸 그림에 접목시켰다.

    어떤 음악도 들려오는 않는 공간에 대자연의 노래가 들려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이 작품의 이름은 대자연의 즉흥곡이에요.”

    쇼팽 즉흥환상곡에서 연상한 작품이기에 이름을 ‘대자연의 즉흥곡’이라 지었다.

    “제목도 멋지구나. 정말 제목과 어울리는 환상의 조합이야.”

    “이게 끝은 아니에요. 이 아래쪽에 제가 친 쇼팽 즉흥환상곡을 틀어 놓을 거예요.”

    음악과 그림의 조화를 하나로 묶어 예술화시켰다.

    한강은 모든 걸 자신의 힘으로 해냈다.

    “내가 사고 싶을 만큼 욕심이 나는 작품이야. 특히 너의 피아노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구나.”

    한강이 틀어 놓은 피아노 소리가 그림을 보는 재미를 더해줬다.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기분을 만끽하며 그림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이 공간을 다 채우기 전까진 아무에게도 그림을 넘길 생각은 없어요.”

    “호호. 알겠다. 여기를 어떻게 채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돼.”

    이미 첫 작품부터 크게 반하고 말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이걸 두고 말하는 모양이다.

    자연을 품은 소녀가 되어 작품을 감상했다.

    “당연히 이 공간을 채우기 전까진 언론에도 비밀이겠지?”

    “네. 되도록 모든 게 갖춰졌을 때, 그때 알리고 싶어요.”

    “그래, 너의 뜻대로 하렴.”

    홍라혜는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지어 한강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

    2001년 11월, 겨울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온 날, 더움 커뮤니케이션 고호경은 고개를 뒤로 젖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움은 우리의 인수 리스트에 없습니다.]

    라이코스에 대놓고 까였다.

    설마, 그렇게 거절을 당하고 망신을 당할지는 생각도 못 했다.

    “이거 큰일이야. 돈이 부족해.”

    돈 들어갈 때가 많은 지금, 더움 커뮤니케이션은 어려운 고비에서 수명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부족한 서버 증설과 개발비 등이 턱없이 부족했다.

    [꼭 라이코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기업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한리버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어요. 자본력도 갖춰진 상태고 최근 서버도 확충해, 규모를 늘려가고 있답니다.]

    [최근 듣기로 채팅과 광고, 게임 사업에 관심을 가지는지 활발하게 움직이고...]

    얼마 전 들려온 직원의 말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미국 부동산까지 손을 뻗쳤다지... 개인 사옥까지 가지고 있고... 어쩌면 괜찮을지도...”

    뒤로 젖혔던 고개를 끌어와 자세를 바로 했다.

    고호경은 생각을 마쳤는지, 시선을 전화기로 가져갔다.

    “그런데 그쪽에서 이쪽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다 미친 생각.

    상황을 보면 관심을 가질 거 같은데, 라이코스에 한 번 까이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아니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현재 투자자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

    이대로 있다가 빚을 떠안고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몰랐다.

    그건 피해야 하였다.

    “나일세. 한리버에 연락해 약속 잡게.”

    고민은 잠깐이었다.

    위기감을 느끼자, 더는 따질 이유가 없었다.

    고호경은 한리버 대표 유한강을 만나기로 하였다.

    ***

    지이이이잉.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더움 커뮤니케이션 고호경 대표가 기업 인수 문제로 대표님과 뵙길 청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김동진 실장 문자였다.

    “더움에서...”

    시선은 칠판에 가져간 채, 생각에 빠졌다.

    “하긴 요즘 더움이 힘들긴 하지.”

    요즘 더움의 인지도가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덩달아 대주주들의 지분매각이 다가오는 만큼 시장은 불안감에 떨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으나, 보기 좋게 까였다.

    손실액이 증가하는 지금, 더움에서 바라볼 수 있는 건 투자를 받거나 매각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

    [일요일 1시 30분으로 시간 잡으세요.]

    시선을 정면에 둔 채,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면 창을 보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당시 그때의 수치심과 쪽팔림을 당하지 않기 위한 터득한 수법이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온 답장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뭘 그렇게 중얼거려? 신내림 받았어?”

    짝꿍의 찰진 한마디가 뒤를 따랐다.

    “......”

    한강은 어이없는 시선을 보내다, 고개를 홱 돌렸다.

    ‘정말 2년이 길구나.’

    여러모로 학교생활이 사업에 방해가 됐다.

    미래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겠다.

    ***

    며칠 뒤, 주말이 찾아왔다. 한강은 캐주얼이 아닌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차량에 올랐다.

    부릉!

    투레질하듯 울리는 시동 소리가 들리며 차량이 천천히 바퀴를 굴려 도로로 진입했다.

    “신기하게 시기가 딱딱 맞아떨어지네.”

    2001년 겨울방학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일이 술술 풀리니 어깨가 들썩인다.

    빠르게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차량에 몸을 맡기며, 곧 펼쳐질 미래를 상상했다.

    “이대로만 가자. 이대로만 가면...”

    미래는 한리버를 향해 축배를 들리라.

    한강은 계획 이상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주)한리버를 느끼며 입가에 한가득 미소를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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