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17살, 버디버디 인수
딩동댕동.
수업이 끝났다.
“한강아, 그 언니랑 정말 사귀는... 아니, 결혼할 사이야?”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입술을 달싹이던 미나가 요즘 학교에서 떠들썩한 주제 한 가지를 꺼냈다.
“그거 물어보려고 그렇게 날 쳐다봤던 거? 맞아. 예쁘지?”
“어, 아. 응...”
‘정말이구나’ 작게 속삭이며 눈동자에 생기를 잃었다.
“축하해.”
애써 입가에 미소를 그려, 축하를 해주었다.
“고맙다.”
한강은 눈웃음을 지었다.
“응, 자리로 가볼게.”
미나는 자리를 떴다.
“잘생긴 애들이 왜 피곤한지 알 것도 같네.”
돌아가는 미나의 힘 빠진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왜 모를까? 그렇게 티를 내고 다녔는데.
그저 물어보지 않았기에 말하지 않았을 뿐, 딱히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건 아니었다.
이번에라도 물어봐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더 좋은 짝이 있을 거야. 미나야.”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함께 지냈다면 또 모를 일이나, 그건 아니었다.
머릿속에 있는 기억은 그저 ‘유치원에서 귀여웠던 아이’ 이 정도가 다였다.
“흠, 그런데 전시관에 어떤 작품을 걸어 놓는담?”
홍라혜가 내어준 전시관 개인 공간.
그 자리에 채울 그림을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자리를 천천히 정리해 가방을 들어 어깨에 멨다.
“고민이야. 고민.”
교실로 왁스 냄새가 확 나기 시작했다.
중독될 거 같은 기분 나쁜 냄새를 맡으며 교실을 벗어났다.
“뭐가 좋나...”
한강은 학교를 교육의 장이 아닌, 거쳐 가는 경험의 장소 정도로 받아들였다.
머릿속은 오로지 그림과 사업으로 들어찼다.
“에휴... 세상에 쉬운 게 없구나.”
창작의 고통은 행복하면서 무척 괴롭다.
자신만의 독특함을 살려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어낼 욕심에 빠져 헤엄을 쳤다.
딩동!
“문자?”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마누라]
윤희였다.
폴더폰을 폈다.
[나 짐 너네 학교.]
“아주 활발한 마누라야.”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곧 도착.]
[ㅇㅋㄷㅋ.]
[ㅇㅇ.]
[∠(・`_´・ )]
“귀엽다니까.”
잠시 고민을 뒤로 밀었다.
빵빵.
정면에서 클랙슨이 짧게 두 번 울렸다.
“일찍 왔네.”
“보고 싶어서 서둘렀지.”
“그러다 사고 나. 내가 기다리면 되니까, 안전하게 천천히 와.”
“참 신기해.”
“뭐가?”
“아빠 같아서.”
뜨끔...
“큼 아빠 같은 남자친구가 좋은 법이다.”
“눼눼. 암요암요. 우리 잘생긴 남친 말 들어야죠.”
핸들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오늘 김광석 과장과 함께하려다 스케줄이 꼬여, 윤희에게 도움을 요청해 함께 길을 나서게 됐다.
윤희의 차를 타고 버디버디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는 위메이킹으로 향했다.
“어떻게 할래?”
“난 여기서 기다릴게. 어차피 내가 올라간다고 도움 될 것도 없고.”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부담스러운 건지, 그것도 아니면 한강에게 방해가 된다 생각을 한 건지.
윤희는 아래에서 기다리겠다 말했다.
“됐어. 같이 가. 혹시 알아. 옆에서 보고 배울 게 있을지?”
“음... 진짜 괜찮아?”
하지만, 한강은 그런 윤희의 손을 꼭 잡았다.
윤희는 수줍게 웃으며,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한강에게 가져갔다.
“방해될 일이 뭐가 있어. 옆에 있는 것만으로 내 힘이 되어 주는데. 괜찮으니까 가자.”
“뭐, 그렇게 말한다면... 헿.”
윤희는 두 번 거절하지 않고 바로 한강의 옆에 찰싹 붙었다.
‘허허, 혼자 가겠다 했으면... 바가지를 긁혔을 거야’ 경험과 본능에 충실했다.
한차례 위기를 넘겼다 생각한 한강은 윤희와 함께 약속한 층으로 향했다.
***
한편,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위메이킹 대표 이진철은 ‘버디버디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섭섭하지 않은 가격에 쳐 드리죠’ 이 말에 고민에 빠졌다.
“이거 참...”
풀리지 않은 문제로 머리가 복잡했다.
일반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겠지만, 만나기로 한 주인공은 육성그룹의 사위 겸 실세로 올라설 앞날이 창창한 재벌가의 일원이다.
심지어 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리.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10인’이 바로 유한강이라는 것이었다.
확인된 재산만 몇조.
침이 꿀꺽 넘어갔다.
“만나보면 알겠지.”
답이 나오지 않자, 일단 만나보고 조건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똑똑.
“대표님. 유한강 씨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윤희 씨도 함께입니다.”
마침 여직원이 들어와 한강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뒤에 따라붙은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았네.”
이진철은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학생이라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도 함께 왔다 하니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남녀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위메이킹을 찾아주어 감사합니다. 대표 이진철입니다.”
두 사람을 본 순간, 이진철이 먼저 자신을 짧게 소개했다.
준비한 명함 두 장을 둘에게 내밀었다.
“유한강입니다.”
“이윤희예요.”
한강과 윤희는 순서대로 소개하고 건네는 명함을 받았다.
“이리로 앉으시죠.”
이진철은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둘을 자리로 이끌었다.
“제가 갖고 있는 버디버디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자리에 앉은 이진철은 조심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뗐다.
“그렇습니다. 전 버디버디에 대한 가치를 꽤 높게 사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도 혹할 만한 금액을 제시해 버디버디를 100% 인수를 하고 싶습니다.”
한강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이윤희는 그런 한강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버디버디는 우리나라 시장에 큰 획을 남기고 갈 최고의 메신저라 자부합니다.”
운영사는 버디버디이나, 모든 지분을 가지고 있는 위메이킹.
과연 어떤 제안을 해올지 조금은 기대 어린 심정이 되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지요. 요즘 위메이킹이 위기라는 설이 많던데. 적자운영을 한다 들었어요.”
“아직 초기라 그렇지요. 자본만 받쳐주면 금방 성장할 회삽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게 버디버디를 매각하신다면 그 부분을 해소하고 대표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무난하게 성장하리라 봅니다.”
위메이킹에 대해 언급하며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어 돌파구를 마련해 주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버디버디의 가치를 어느 정도 보고 계신지 먼저 들어보고 싶은데, 어느 정도를 보고 계십니까?”
위메이킹에 투자는 절실하긴 했다. 들어갈 돈은 많은 반면, 아직 수익구조가 탄탄하지 못해 회사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5백억이면 대표님도 만족하리라 봅니다.”
2002년을 기점으로 회원 수 약 60만 명 미만을 소유하고 동시 접속자 30만 명 이상을 유지한 메신저.
제대로 된 수익구조가 없는 빈 깡통 사업, 하지만 회원은 가히 압도적.
한강은 이 부분을 높게 책정했다.
“음... 좀 부...”
속으로 살짝 놀랐다. 놀란 모습을 숨기려 했지만, 그게 잘되지 않았다.
“6백억에 위메이킹에 별도로 백억을 추가로 투자해 드리지요.”
그런 그의 모습에 한강은 2타 어택에 나섰다.
손해 보는 투자는 아니었다.
6백억도 나쁘지 않아 여겼다. 몇 년간 돈을 잡아먹는 먹보 사업이 되겠지만, 그 정도 버틸 돈은 충분했다.
‘이걸 이용한 수익모델은 확실하지. 일단 모든 걸 공짜로 풀어 놓고 버틴다.’
“자, 어떠세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인데 말이죠. 위메이킹 입장에서 보자면 버디버디를 계속 들고 있기보다 가치를 높여 매각하고 자금을 확보하는 게 더욱 좋을 거 같은데...”
“정말 화통하십니다. 그 가격에 넘기겠습니다. 좋은 값에 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운영이 꽤 버겁던 차였다.
매출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할 걸로 전망이 됐고, 영업이익률은 30%에서 아래로 하향선을 그려갔다.
그런 상황에 봉이 등장했다.
이보다 더 좋은 조건에 버디버디를 넘길 수는 없으리라 봤다.
여기서 더 튕겨 볼까 하다, 한강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생각을 고쳐먹고 바로 손을 내밀었다.
“저도 좋은 거래였습니다. 이거 마땅한 호칭이 없어 어떻게 불러야 하나 했는데, 이제 대표님이라 부르겠습니다. 하하.”
이진철은 정말 기쁘다는 듯 웃어 젖혔다.
“서류적인 문제는 사람이 찾아와 마무리를 할 겁니다.”
“아무렴요. 무리 없이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한강은 돈이란 무기를 최대한 활용해 버디버디를 손쉽게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강의 재산에 스크래치조차 내지 못했다.
***
“유한강이 이번에 석차 1등 했다. 모두 박수.”
바쁜 활동 중에도 한강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들의 박수갈채를 들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성적표를 받았다.
[100점]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 숫자가 성적표에 찍혀 있었다.
“와, 말도 안 돼. 할 거 다 하고 어떻게 전 과목 올백을 받냐?”
“진짜 천재네. 그림은 그릴 때마다 학교에 걸리질 않나. 짱 부럽다.”
“학교 장학금도 양보한대잖아.”
“진짜 사기캐네.”
성적표를 받아들고 웃는 한강의 모습에 학생들은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경쟁심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어디 학원 다니면 너처럼 될 수 있는 거야?”
“나도나도.”
한 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한강에 모여들었다.
“나? 학원 안 다녀.”
“진짜? 레알마드리드?”
“어, 그래. 레알마드리드.”
처음에 이게 뭔 개드립인가 싶었다만, 한강은 아슬아슬하게 표정을 유지하고 말을 받아쳤다.
“와, 신을 무시한 새끼. 쩌네.”
“.....”
아주 독특한 여자애란 생각에 그녀에게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너의 언행은 내 인생 전설로 기록될 거다.”
“...백 점 변태 새끼.”
그녀의 찰진 어휘에 박수를 보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재밌는지 모르겠다.
***
딴따라, 따라라라.
스피커를 통해 쇼팽 즉흥환상곡이 흘러나왔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초등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피아노와 하나 된 모습으로 건반을 두들겼다.
손가락은 제각기 따로 놀며 한 치의 실수 없이 강과 약을 섞어 약간의 실수 없이 멋지게 해냈다.
“이게 당시 나와 동갑이던 8살의 실력.”
미로슬라브 꿀띠쉐프.
영상을 보는 남자의 풀 네임이다.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는 영상에 잡힌 동양인의 실력에 크게 감탄했다.
“만나고 싶어.”
엄마의 영향으로 유아 시절부터 피아노를 접했던 그는 6세에 무대에 섰고 10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하여 그 천재성을 입증했다.
그런데...
“쇼팽 즉흥환상곡...”
당시의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접한 인터넷 영상은 엄청난 큰 충격을 선사했다.
╔한국에 있는 유한강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러시아에 사는 미로슬라브 꿀띠쉐프입니다. 당신과 같은 나이로 올해 17살입니다. 8살 당시 쳤던 당신의 쇼팽 즉흥환상곡에 반했습니다.
당신의 피아노 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쇼팽 콩쿠르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나의 글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