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49화 (49/237)

49화. 13살, 1997년 12월 23일

“자, 말해봐.”

“음, 그러니까...”

한강은 밖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털어냈다. 중간에 느꼈던 기분까지도.

“그래서 전 저 아이를 우리가 보살폈으면 좋겠어요. 물론... 엄마와 아빠의 허락이 있어야겠지만... 죄송해요. 제멋대로 생각하고 데려와서... 하지만 이거 외엔 다른 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당당하게 말하다, 너무 나간 건 아닐까 걱정이 들어 당당히 정면을 주시하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넌 정말 내 아들이 아닌 거 같아. 물론, 아빠 아들도 아닌 거 같고. 얼굴 빼고 단 한 개도 안 닮았어.”

미화는 한강의 두 손을 잡았다.

“하지만, 난 내 아들의 이런 모습이 참 좋아. 똑 부러지고 마음씨도 착하고 능력도 있고 잘생기기까지 하고. 무엇보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이런 모습이...”

“엄마...”

“그렇다고 또 이러면 안 돼. 이번뿐이야.”

“감사해요.”

어려운 결정이었을 거다.

당신의 자식도 아닌, 타인의 자식. 그것도 예고도 없이 데려온 아이를 보살핀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네 아빠에겐 엄마가 얘기할게. 그리고 한강아.”

“네.”

“네가 데려온 만큼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건, 알고 있지?”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그래, 버려진 아이야. 네가 중심에 서서 지혜와 지숙이를 잘 돌봐야 해. 한쪽에 너무 치우쳐서도 안 되고.”

“꼭 그렇게 할게요.”

“그래, 엄만 아들 믿어.”

두 모자의 대화가 끝났다.

“와, 언니 예쁘다.”

거실에서 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한강이 다섯 살 때 옷이 딱 맞네. 잘됐다. 지숙아.”

제대로 꾸미지 않았지만, 잘 꾸미면 공주가 따로 없을 거 같았다.

“...감사합니다.”

지숙은 붉어진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이런 사랑은 태어나 처음 받아 보는지, 적응을 못 하는 모습이다.

“배고프지? 좀만 기다려. 바로 밥 차려줄게.”

지숙의 머리를 쓰다듬고 주방으로 향했다.

머리를 예쁘게 빗질을 해주고 싶지만, 그것보다 밥이 우선이었다.

식탁 위로 갈비찜, 김치찌개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 빠르게 채워졌다.

꿀꺽.

지혜와 지숙이 식탁에 앉아 입맛을 다셨다.

“어서 먹어. 엄마랑 난 많이 먹었어.”

한강은 숟가락을 뺐다. 한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아들, 엄마 밖에 나갔다 올게. 아빠랑 밥 먹고 올 거니까 동생들 잘 돌보고 있어.”

“네.”

잠시 뒤, 덕화와 통화를 한 미화는 밖에서 외식을 하고 오겠다며 한강에게 지혜와 지숙을 맡기고 밖으로 나갔다.

“세상엔 이런 아이들이 많겠지...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단순히 기부 말고 확실히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둘이 밥 먹는 모습을 보다 소파로 가 신문을 들었다.

[보육원 지원 부족, 시청에 난방비 건물 유지비 교통비 등 운영비가 줄어 시청에 얘길 해도 예산이 없다고...]

“이거다.”

그때 손에 들린 신문기사에서 시선이 고정됐다.

한강은 수화기를 들었다.

띡띡띡 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아저씨 내일 시간 어떠세요? 감사해요. 오늘 신문에 실린 소망 보육원에 대해 조사 좀 해주시고 제가 말하는 것들 좀 챙겨주세요...”

한강은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송화기에 입을 대고 모두 쏟아냈다.

***

“음... 한강이가 그랬단 말이지.”

미화를 만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들은 덕화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묻어났다.

“우리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우리가 부족하게 살고 있진 않잖아. 난 우리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불쌍한 아이야.”

미화의 눈이 젖어갔다.

“애를 씻기는데, 온몸이 멍으로 가득했어. 게다가 하필 그 추운 날 기다리라 해놓고, 버리고 도망갔대. 난 그 애에게 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거절하려는 덕화의 모습에 미화의 말은 빠르게 이어졌다.

“지혜는?”

아무래도 막내딸이 걱정인 모양이다.

한강이야 그렇다 치지만, 지혜는 어떨까?

“언니 생겼다 좋아해. 예전부터 오빠보다 언니가 가지고 싶댔어. 그리고 지금 지숙이를 무척 잘 따라.”

어색해하는 지숙을 챙기는 지혜의 모습에 심장에 따스함이 머물렀었다.

한강이 오빠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부모로서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리라.

“흠...”

덕화는 둘이 다툴 때를 생각했다. 지혜야 하고 싶은 말을 다 할지 모르나, 지숙은 다를 터.

거기서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누가 감당할까.

“좀 더 고민해 보고 이야기하자.”

“한강이 아빠.”

“하루만 시간 줘. 아니지. 집에 가서 아이를 본 후 말해줄게. 아무리 불쌍해도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아직 아이의 의견도 묻지 않았잖아.”

“......”

그러고 보니 너무 일방적으로, 감정적으로 몰아붙였다.

실수를 깨달은 미화는 얼굴이 붉어졌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그렇게 해.”

미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

12월 23일.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보육원 아이들을 위하여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부릉.

김광석의 차를 타고 도심을 지나 경사진 언덕 위로 [소망 보육원]이라 적힌 건물로 들어갔다.

“누구시죠?”

낯선 고급 승용차를 보고 보육원에 있던 원장이 밖으로 나왔다.

웅성웅성, 아이들도 궁금했는지 문틈과 창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유한강이라고 해요. 아저씨.”

보육원 원장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시선을 돌려 김광석에게 신호를 보냈다.

김광석의 걸음이 차량 트렁크로 옮겨졌다.

“저기에 있는 걸 아이들에게 나눠줬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이렇게 고마울 때가...”

부웅!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차량 소리.

“맙소사.”

차량을 본 원장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직원들도 놀란 눈으로 막 들어온 차량을 쳐다봤다.

“저기다 내려놓으세요.”

들어온 차량은 1톤 트럭으로 뒷칸에 쌀과 연탄 등이 구분되어 실려 있었다.

“트렁크에 있는 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고기와 갖가지 옷들이에요.”

“......”

보육원 원장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보육원 지원이 열악하다 알고 있어요.”

외환위기를 떠나 늘 부족한 예산으로 유지하는 보육원.

이혼한 가족도 늘어 보육원에 맡겨지는 아이들도 크게 증가했다.

그야말로 악조건 속의 지옥이었다.

“정말 이걸 우리에게 주는 건가요?”

살림이 꽤나 어려웠는지, 모두의 얼굴에 그늘지고 미래를 잃은 모습들이다.

모두 얼굴들이 어두웠다.

“그러기 위해 준비한 것들인데,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연탄이 다 떨어져 가던 와중이었다. 식사도 매일 열악한 상황,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전부를 구제하긴 힘들지만...’

아이들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저 중에는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형도 있고 누나도 있다.

하나, 정신은 이제 60대로 넘어간 시점.

나이들을 떠나 모두 불쌍한 아이들로 보였다.

“당연한 일을 할 뿐인 걸, 이곳은 선생님들께 맡기고 저와 따로 얘기해요.”

“...이리로 오세요.”

보육원 원장은 수행원을 대동해 따라오는 한강을 부잣집 도련님으로 받아들이고 정중히 대했다.

‘1950년도 아니고 이게 다 뭐람.’

지나가는 복도 벽이 전부 잔금들이 거미줄처럼 나 있고, 건물도 옆으로 기울어져 있는 게 최악의 환경이었다.

“원장님, 이 건물 언제 지어진 거죠?”

“1951년에 지어졌을 거예요.”

“그때 이후로 제대로 관리가 안 됐나 보네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1950년 당시 전쟁이 발발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고아원.

지금은 그걸 우리는 보육원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경제적인 문제, 이혼 등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이 모인 장소로 바뀌었다.

부모가 있음에도 고아가 된 불쌍한 아이들.

한강은 그들을 떠올려 원장의 뒤를 따랐다.

“운영은 어때요? 나라 지원금은 어떻고?”

“...예전보다 지원금이 줄었어요. 사실 교사들 월급도 반년째 밀려서...”

어린아이가 왜 이런 걸 묻는지 의아함보다,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원장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보육원 사정에 대해 토해냈다.

“역시... 그럼 아이들 식사는 어떻게 하나요?”

“하루 2회 정도 식사가 제공돼요. 소량으로.”

“......”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지숙으로 인해 찾게 된 보육원. 현실을 마주하니 매우 충격적이었다.

‘보육원 사정이 너무도 열악하구나.’

이건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

세상이 왜 이렇게 변질되고 못된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정말 최악이야. 빌어먹을.’

[아이들은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입니다.]

해피아이 광고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다.

우리의 미래가 망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꿈도 꿔 보지 못하고.

‘나라면... 바꿀 수 있을까?’

그러다 한 가지 생각에 미쳤다.

빠드득.

‘언제부터 그런 걸 따지고 사업했다고’ 한강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몸이 어려졌다고, 정신까지 어려졌나 보다.

이를 악물고 자신을 자책했다.

“원장님. 이 보육원 제게 넘기시죠.”

적어도 자신이라면 이것보다는 훨씬 나은 보육 시설을 갖출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 그게 무슨...”

어린아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얘기가 방을 채운다. 수행하는 남자에게 시선을 가져가 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운영은 원장님이 그대로 하실 거예요. 명의도 그대로예요.”

놀라는 원장을 진정시켰다.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대신이라고 말하기 그렇지만. 좀 더 전문성을 가진 보육원이 되었으면 해요. 단순히 아이들을 돌봐주는 그런 역할이 아닌 이곳을 벗어나도 전문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전문인력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게 제가 생각한 보육원의 역할이에요.”

19살이 지나면 떠밀리듯 나가야 하는 아이들.

심지어 손에 쥐여주는 돈도 쥐꼬리다.

과연, 그런 아이들 중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는데, 사회에선 외면을 받는다.

한강은 그것을 싹 뜯어고칠 생각이었다.

“잘못된 걸 고치고 아이들이 편히 쉬고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해요.”

“정말 그렇게 해주신다면, 더는 바랄 게 없어요.”

그늘에 가려져 어둡던 그녀의 얼굴에 밝은 햇살이 드리웠다.

“아,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원장은 한강을 향해 기도하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비록 어리지만, 눈앞에 보이는 진실을 믿었다.

부잣집 도련님. 이 정도 명함이면 충분했다.

이제부터 돈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저씨. 주식 매도 금액이 얼마나 되죠?”

“75억가량 되고 나머지는 그때 지시대로 건설주에 전부 투자했습니다.”

호남 관련주는 50% 수익을 낸 건설주를 제외하고 모두 매도했다.

“그 돈으로 쓸만한 빌딩들 매수해 주시고, 일부는 보육원으로 대신할 수 있는 정원이 넓은 주택으로 알아봐 주세요. 빠를수록 좋아요.”

이 정도면 충분할 터다.

김광석은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메모했다.

“......”

바로 정면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원장은 얼빠진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앞으로 여기 아저씨를 통해 연락이 갈 거예요. 원장님께선 이곳을 정리하세요. 새로운 보금자리가 정해지는 대로 그쪽으로 옮길 거니까요. 필요한 게 있다면 부담 없이 전화 주세요.”

모든 이야기는 빠르게 끝났다.

“저를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다주세요.”

이제 이건호는 한강에게 있어 선생님이 아닌 아버님이 되었다.

한강은 자연스럽게 이건호를 아버님이라 불러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차량은 미끄러지듯 보육원을 벗어났다.

뒤에서 소식을 접한 선생들이 나와 한강을 배웅했다.

***

육성그룹 사옥.

“갑자기 방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버님.”

한강의 목소리 톤과 무게감이 바뀌었다.

얼굴과 매칭이 되지 않은 모습은.

“...음.”

이건호의 눈과 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버님이 아니라, 아빠라 부르는 게 어떠냐? 네게 들으려니 소름이 돋아 말이다.”

기분이 동 나이대가 아버지라 부르는 기분 나쁜 울림에 호칭을 정정했다.

“큼... 그냥 아버님으로 하겠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단호히 말했다.

“쩝, 아쉽구만. 그래 무슨 일이냐.”

이건호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방문목적을 물었다.

“제가 드린 달러가 요즘 육성에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걸로 알아요.”

“...불안하게 하지 말고 말해 보거라.”

이건호의 얼굴 위로 찝찝한 기운이 올라와 둥지를 틀었다.

“저 이번에 사업합니다. 50% 지분 드릴 테니 10억만 투자해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