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48화 (48/237)
  • 48화. 13살, 12월에 데려온 손님

    [이건호 육성그룹 회장 막내딸 이윤희(19) 양의 미래 남편은 천재 만능예술가 유한강(13) 군으로 밝혀졌다.]

    [어린 신랑을 미래 남편으로 두게 된 이윤희(19) 양의 얼굴은 행복감으로 물들어 있다.]

    “이윤희!! 이 짐승!”

    “얌전한 고양이가 사고를 친다더니, 이 부러운 지지배!”

    “이거 범죄야! 범죄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용돈? 과자? 뭐로 협박한 거야! 안 되겠다. 우리 한강이에게 뭐로 협박했는지 알아내야겠다! 진실의 방으로!”

    선화예고 3학년 3반 교실이 꽤나 소란스럽다.

    여학생들은 공공의 적 이윤희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조서를 꾸렸다.

    “와, 윤희...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런 거였어?”

    “여섯 살 차...”

    남학생도 황당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고 눈에 악감정은 실려 있지 않았다.

    그저 질투와 ‘나도 여섯 살만 더 어렸어도 어쩌면...’ 인생 2회차를 꿈꿨다.

    “......”

    윤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 때문에 결혼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싫었고, 스스로의 마음을 숨기고 거짓으로 돌리기도 싫었다.

    “어때서 그래. 우리 부모님 나이 차도 6살 차야. 아빠가 엄마보다 연하라고. 남자들도 연하들 만나고 그러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두 부모님 허락도 받았고, 당장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이기주의 내로남불 아니니.”

    주변 아이들의 시도 때도 없는 질투와 시기에 근처에 있던 윤희의 베스트프랜드가 백기사를 자처했다. 여학생은 일어나 가슴을 열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희야, 축하해. 난 부럽다. 나 잊지 말고 초대해.”

    여학생의 이름은 박민아.

    이윤희와 단짝으로 알려진 여학생이다.

    그녀는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윤희를 축하해 주었다.

    “민아야, 고마워.”

    “고맙긴, 사실이잖아.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헤헤.”

    “그런데 너도 힘겹겠다. 당분간은.”

    “헤헤...”

    이윤희는 모든 걸 감수하고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대답은 쑥스러운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래그래. 그리고 이게 중요한 건데 혹여나, 성인 때 내가 홀몸이거든...”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민아는 손으로 입을 가려 진지한 얼굴로.

    “알지?”

    말했다.

    한쪽 눈을 찡긋 감는 걸 잊지 않았다.

    “...지지배.”

    윤희는 피식 웃고 시선을 정면으로 던졌다.

    앞쪽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교사가 서 있었다.

    “수업하자.”

    곧 교사의 목소리가 교실에 퍼졌다.

    ***

    1997년 11월이 되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모두의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몸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끝났다!”

    누군가에게는 해방감을 주었고.

    “다시 보지 말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은 교과서와 작별을 고했다.

    “누나 축하해요.”

    잠깐 사이에 한강의 키는 179cm가 되었다.

    빵모자를 쓰고 슈트에 코트를 입고 나타난 한강은 학교에서 나오는 윤희를 반겼다.

    “땡큐.”

    윤희는 한강의 팔 사이에 손을 꼭 끼었다.

    “나도 연하를...”

    “아... 불공평해...”

    “내가 서른 살이 되어도 24살... 하...”

    둘의 뒷모습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

    [원 달러 환율 대폭 상승,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의 매매기준율은 9백90.60원에 고시됐으나 개장과 동시에 이날 오를 수 있는 최대폭인 22.20원 올라...]

    고용률이 4% 가까이 추락하는 이때, 원 달러 환율은 멈출 줄 모르고 가파르게 상승했다.

    외화자금 부족과 금융시장 불안은 환율로 이어지고, 급기야 몇몇 이들은 환율 방어를 포기한 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여 외환 당국을 비판하였다.

    “아저씨, 지금 제 현금 얼마나 있나요?”

    정부에서 IMF 구제금융은 없을 것이라 발표한 가운데.

    한강은 투자 종목을 선택했다.

    “약 90억 정도 있습니다.”

    “흠, 좋네요. 그 정도면 여기저기 투자할 수 있겠어요.”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 하지만 이맘때쯤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거 전부 호남 연고 관련 기업에 싹 투자해 주세요.”

    앞으로 대선까지 약 한 달 남았다.

    그중 누가 대통령으로 유력한지 알고 있는 까닭에 이번에 크게 배팅을 해보기로 하였다.

    “90억은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육성과 같은 안전한 곳에 넣는 게...”

    “저, 아저씨. 지금 육성지분이 너무 많아요. 언젠간 정리를 해야 할 주식이에요. 당분간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지분을 더 늘리면 자칫 오해를 받을 수 있어요. 그것보단 앞으로 대통령이 누가 될지 점쳐서 투자하는 게 좀 더 생산적이에요.”

    육성주식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이자는 계속 쌓여가는 상태지만, 미래를 위해선 현금을 계속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파생상품을 건들면 그게 최고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 환경과 조건에 맞는 투자를 해야 추후 뒤탈이 없으니.’

    자칫 잘못 건드렸다, 피를 볼 수 있었으니까.

    현실에 맞는 투자를 하기로 하였다.

    “혹, DJ가 될 거라 보고 투자를 하는 건가요?”

    호남기업 관련주, 척하면 척이다.

    “네, 주변 반응도 그렇고. 제법 오르리라 봐요.”

    다음 정권의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IMF 요구에 위기를 느낀 기업들이 지분 보호에 들어가니 이보다 더 좋은 타이밍도 없지.’

    외국자본의 M&A, 인수합병 표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국내 기업들은 직원들과 함께 자사주 매입 운동에 들어간다.

    당연히, 주가는 상한가!

    “그렇지만, 너무 위험한 건 아닌지. 큼.”

    “걱정하지 마세요. 적당히 먹고 빠질 거니까요. 그 뒤 건설주에 넣고 내년 초까지 버틸 거예요.

    이번 경기 부양책으로 DJ는 건설 부문을 움직이리라 내다봤다.

    경기가 무너져 실업률이 증가하는 요즘, 일자리 창출로 적당한 사업은 역시 건설주만 한 게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나, 한 번에 모두 투자하기에는 위험성이 크니 분할로 투자를 진행하겠습니다.”

    “네, 나머진 모두 맡길게요.”

    너무 고집대로 움직이는 건, 좋지 않으니 고집은 여기까지 부리고 나머지는 김광석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

    “와, 눈이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었다.

    하늘로 시선을 가져갔다.

    어둡지만 하얀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피부에 달라붙은 눈은 크리스마스가 바로 코앞임을 알려주었다.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국민회의 DJ 후보가 대통령 당선 확정!]

    [호남 연고 기업 주가 일제히 상한가 기록!]

    “좋구나.”

    19일, DJ 후보가 당선 확정이 되면서 예정대로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21세기 상한가 30%가 아니란 점이 조금 아쉽지만, 어떠랴.

    지금 수익만 하더라도 만족했다.

    역시 수익이 오르는 기분은 최고다.

    한강은 하늘을 보며 눈을 맞은 채 빙글빙글 돌았다.

    나름의 세리머니였다.

    [정부 IMF 수용조건 합의, 한국은 구조조정과 금융 자본시장 조기개방 경제 주권 위기...]

    [기업들 대대적인 구조 조정 실시.]

    IMF와의 합의 안건은 연일 기사화되어 국민들에게 소개됐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딸랑딸랑.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선냄비를 사이에 두고 봉사자들은 종을 흔들어 불우한 이웃을 돕기를 간절히 청했다.

    뿌드득, 뿌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자선냄비로 향했다.

    “불우이웃에게 제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요.”

    178cm, 훤칠한 키와 달리 앳된 얼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미소년은 한강이었다.

    “감사하구나. 너도 행복이 가득한 날이 되길 바란다.”

    한강은 사람들의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듣고 걸음을 옮겼다.

    “...?!”

    우뚝. 몇 발짝 못가 자리에서 멈춰야 하였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허름한 잠바를 입고 오들오들 떨며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

    그러다 뒤로 시선을 옮겼다.

    자선냄비가 있는 장소였다.

    “...코앞에 이런 애가 있는데, 애를 보지 못했다고? 개새끼들.”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을 하고선, 진짜 도와야 할 아이를 돕지 않고 종이나 흔들고 있었다.

    ‘도둑놈들.’

    저 냄비에 돈을 왜 넣었을까? 깊은 후회가 막 밀려왔다.

    “아가야.”

    한강은 아이를 불렀다.

    “......”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불안한 눈으로 보다가 다시 고개를 팍 숙였다.

    오들오들 떨었다.

    “여자?”

    여자아이였다. 한강은 급 당황했다.

    “...음, 얘야?”

    당혹감을 감추고 다시 한번 여자아이를 불렀다.

    “배, 백 원만 주세요...”

    아이의 입이 어렵게 열렸다. 입이 얼어붙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

    그 모습에서 깊은 짜증과 빡침이 밀려왔다.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아이를 보지 못했다는 듯, 나 몰라라 지나쳤다.

    “나랑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저, 정말요?”

    어디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의 뱃속이었다.

    어린 한강의 모습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란 것일까?

    거리낌 없이 한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입어.”

    눈과 흙으로 더러워진 몸. 언제 감았는지 모를 머리카락과 땟국물이 굳어 얼굴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었다.

    하나, 한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자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아이의 몸에 걸쳐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엄마가 맛있는 거 사올 테니 자리를 지키고 기다리라 했단다.

    한데, 엄마는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전형적인 유기 방법이었다.

    뽀드득, 뽀드득.

    저벅저벅.

    “여기는...”

    여자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떠 걸음을 멈추고 한강을 올려봤다.

    “우리 집이야. 지금 네 모습을 봐. 이대로 식당에 들어가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아이가 유괴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운이 좋다면 무척 좋았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올라갔다.

    “한강이 왔니?”

    “네.”

    “......”

    부담스러운지 여자아이는 문 앞에서 서성일 뿐 들어오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괜찮으니까, 들어와.”

    한강은 무릎을 굽혀 신발을 벗겨주고 손을 잡아끌었다.

    “누구 왔니?”

    주방에 있던 미화는 인기척에 현관문으로 다가왔다.

    “그... 아이는 누구?”

    미화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한강을 바라봤다.

    “엄마, 얘... 씻겨 주세요. 이따 다 말씀드릴게요.”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며 부탁했다.

    “어? 어. 아. 응. 그래.”

    잠시 여자아이를 바라보다, 미화는 무슨 사연이 있다 여기고 한강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씻고 와. 무서워하지 말고. 우리 엄마 좋은 분이야. 네가 입을 옷은... 내가 준비해 볼게.”

    “......”

    “그, 그래. 이리 온. 아가.”

    당혹감도 잠시, 얼굴에 미소를 품고 여자아이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데려와 욕실로 데려갔다.

    “오빠, 누구야?”

    “불쌍한 언니야. 그러니까 앞으로 지혜가 언니 지켜줘.”

    “내가 지켜?”

    “그래, 잘 챙겨주고.”

    “언니랑 살아?”

    “그럴 거야... 아마도.”

    “와! 나 언니 생기는 거야?!”

    “좋냐?”

    “웅! 언니 좋아!”

    “나보다?”

    “응!”

    “HOT는?”

    “HOT!!”

    “...그래... 잘 지내.”

    한강은 지혜를 거실로 보내고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뒤적였다.

    “쟤가 입을 만한 게... 내가 다섯 살 때 입던 옷이면 맞겠지?”

    한강은 적당한 옷을 찾아 욕실에 놓았다.

    잠시 후.

    “어쩜, 이리 예쁘니.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리고 다녔어.”

    샤워를 끝낸 여자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수줍게 서 있는 모습이 천상여자였다.

    미화는 예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숙아, 저기 저 방에서 옷 갈아입고 나올래. 혼자 입을 수 있지?”

    끄덕.

    욕실에서 이름을 들었는지, 이름을 불러 한강이 준비한 옷을 건네어 방으로 보냈다.

    “아들, 엄마랑 할 얘기 있지?”

    “네.”

    “지혜야, 언니 나오면 친하게 놀고 있어. 알았지?”

    “응!”

    오빠는 HOT를 모른다며, 언니를 가지고 싶다며 칭얼대던 지혜의 해맑은 모습을 보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곧 둘의 대화가 안방에서 조용하게 이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