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43화 (43/237)

43화. 13살, 아빠 제가 있어요

[세계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 유한강에게 관심을 보내...]

[천재 화가 겸 천재 피아니스트 유한강(13) 군이 어제 오후 애플 회장 스티브 잡스와 독대를 가져...]

유한강으로 시끌시끌한 오후.

“넌 또 엄청난 일을 저질렀더구나.”

호프집에 앉아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놓고 자리를 가졌다. 시원한 맥주와 탄산음료가 치킨을 사이에 두고 자리했다.

“제가 저지른 게 아니고 거기서 찾아온 거예요.”

스티브 잡스가 찾아올 줄 진짜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획에도 없던 양반을 만났을 때 느꼈던 놀라움이란.

아직도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들었다.

“늘 너의 주변은 엄청난 사람들만 모여, 이젠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분명 좋지. 좋지만. 과하면 체하는 법이야.”

분명 저 말도 맞다. 능력 밖의 일을 혼자 하려 든다면 몇 배의 위약금을 뱉어내야 한다.

“조심할게요.”

꿀꺽꿀꺽, 500CC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덕화는 기분 좋게 한 잔을 비우고 한 잔을 추가했다.

“그래,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한데 무슨 일로 아빠를 이리로 불러냈을까? 돈 많은 아들인 치킨을 사달라고 불러냈을 일은 없고.”

잡다한 대화가 끝날 즈음.

덕화는 한강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얘기 들었어요. 엄마한테. 아빠 일 그만뒀다고.”

“...걱정이 되더냐?”

도리도리.

“아뇨. 전 아빨 믿어요.”

좌우로 두어 번 가볍게 흔들었다.

“녀석. 그럼 뭘까? 나를 부른 진짜 이유가?”

“제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아빠.”

잠잠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눈빛이 한강의 두 눈동자에 맺혔다.

“편히 말해봐.”

“아빠는 어린 시절 꿈이 있었나요? 목표라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음.”

덕화는 잠시 아들의 눈을 응시했다.

평소와 달리 무게감이 실린 모습이다.

‘오늘 대화 주제와 관련된 얘기겠지’ 받아들이며 입술을 뗐다.

“있었지. 그것도 많았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홍길동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며 의로운 도둑이 되는 거였지. 아주 웃기지. 하하. 내가 이런 걸 다 말하게 되다니.”

아들 앞에서 홍길동 얘기를 꺼내니 무척 부끄러운 모양이다.

덕화는 수줍게 웃다, 맥주로 입가를 적셨다.

“전 좋은데요. 다른 건요?”

‘나도 어릴 땐, 아빠와 같았어요. 남자는 다 같나 봐요’ 지난 과거를 되시기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이를 먹고 현실을 알게 됐지. 꿈은 흐려지고 먹고살기 급급해지더구나. 네 할머니 장사를 돕다 작은 사업이라 할 요량으로 기술을 배우고자 산을 내려왔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더구나. 현실과 타협해 살아갔다.”

“......”

어땠을지 상상을 해봤다.

하고 싶은 걸 내려놓고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가장.

그때부터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알 거 같다.

“네가 태어나고 너 하나 잘 키워 보자가 나의 최종 목표이자 꿈이 되더구나. 그랬는데 아비보다 잘나서는. 크크.”

지금 보니 손과 목 주변에 상처가 가득하다.

현장 일이 얼마나 고됐는지 보여주었다.

“아빠. 제가 아빠 다음으로 집안의 기둥인 거 맞나요?”

“그렇지.”

입에 가져간 맥주잔을 테이블 위로 올리며 아들의 말에 답했다.

“그럼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한강은 잠시 이야기를 정리하고 입술을 뗐다.

“지금도 사업이란 걸 해보고 싶으신가요?”

“사업? 할 수만 있다면 하고야 싶지.”

“어떤 사업요? 구체적으로 딱 하고 싶으신 거 있어요?”

“아니다. 내 주제에 사업은 무슨.”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바라보던 덕화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스로의 능력은 아주 잘 알기에 사업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아빠가 어때서요?”

작아지는 아빠의 모습에 한강은 더 작아지지 않게 붙잡았다.

“전 말이죠. 아빠가 결코 부족해 보이지 않아요.”

“한강아 어른은 말이다, 때론 하고 싶은 걸 참아야 하는 때가 있단다. 그래도 고맙네. 우리 아들이 아빠를 이렇게 띄워주고.”

씁쓸히 입맛을 다시며 맥주잔을 다시 입에 가져갔다.

하나, 눈은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알아요. 저도.”

‘왜 모를까요. 그 기분을’ 머릿속은 전생의 기억 저편으로 가져갔다.

덕화의 말에 한강은 예전 일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전생의 기억을.

[어디서 어른들 하는 일에 끼어드느냐?]

[저도 당당한 어른이라고요. 아빠는 왜... 아니 회장님은 왜 저를 믿지 못하시고 혼자 다 하시려 하십니까? 몸도 성치 않으시면서요.]

당시 아빠와의 대화는, 미래로 흘러 자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들의 입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란... 그때 아빠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자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는 건, 가장에게 있어 매우 큰 상처였다.

그러한 상처를 한강은 건드렸다.

‘상처는 빨리 치료할수록 좋지요. 사랑하는 여자에게 위로를 받는 것도 좋지만, 아들에게 받는 것이 아빠이기 전에 남자로서 더 좋은 선택일지 몰라요.’

엄마에게 말하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터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지.

“네가, 안다고?”

덕화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키만 컸지 아직 초등학생에 지나지 않은 아들이 어른의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장면은 다시 없을 경험이었다.

“왜 모르겠어요. 아빠가 우리를 위해 고생하고, 약한 모습보다 강한 모습만 보이려 한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지금은 무모함보다 안정을 찾으려 하시겠죠.”

‘아주 잘 압니다. 저도 경험이 있으니까요’ 한강은 진지한 눈으로 덕화를 응시했다.

“아빠, 아빠가 힘이 들면 아들이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걸 절대 부끄러워하시면 안 돼요. 미안하다 생각도 마시고요.”

진심이 닿기를 바랐다.

선배가 후배를 다루듯, 어른이 아이의 그늘이 되어 주듯. 조심히 보듬어 주었다.

현재는 아들일지 모르나, 지금껏 살아온 나이를 합치면 육십이 넘어선다.

한강의 눈은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하아...”

벌컥벌컥.

덕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맥주만을 들이켰다.

500CC 한 잔을 더 주문하며, 달싹이던 입술을 떼어냈다.

“때론 말이다. 차라리 네가 보통의 아이들처럼 평범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본단다.”

못난 부모 아래서 감당하기 버거운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은 매일 빛이 났다.

주머니에 숨겨도 뾰족한 바늘로 뚫고 나오는 아이.

그것이 한강이었다.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자식의 빛을 잃게 만들고 싶지 않아 달렸다.

악착같이 일해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강은 그런 부모의 도움 따위 필요 없다는 듯 스스로 쭉쭉 커갔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미성년자 중 10위권 내 오르기도 하였다.

다섯 살부터 돈맛을 알더니, 떡하니 건물이라며 아파트와 차를 구입하고, 집안의 기둥에 지붕이 되어 주었다.

아빠로서 해줄 게 하나도 없었다.

“아빠는 말이다. 네 엄마와 네 동생 그리고 너를 내 힘으로 보호해주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모든 아빠들의 목표.

거기서 오는 성취감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부모라도 느끼는 감정일 터.

덕화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빠, 꼭 모든 짐을 짊어지는 것만이 아빠로서 역할은 아니라 봐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빠는 가족의 힘이 되고 있어요. 아빠는 저의 울타리고, 엄마는 저의 안식처예요. 또 뭐가 더 필요할까요?”

돈은 누군가 벌면 된다.

많은 수록 좋은 게 돈이라지만, 부모를 대신할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있어서 좋고, 있어서 웃는다.

그래서 가족이라 부른다.

가족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미성년자인 제가 이렇게 나서는 건 주제넘은 행동이겠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저를 아빠의 버팀목으로써 봐주세요. 아빠가 힘들면 아들인 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게요.”

한강의 고집스러운, 하지만 사랑이 깃든 눈동자가 덕화에게 향했다.

“...난 정말 복 받은 아빠구나.”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부끄러운 마음이 얼굴 위로 올라온 건지, 피부 전체가 붉게 달아올랐다.

“저도 복 받은 아들이에요.”

“...하하.”

그제야 덕화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색하게 흘리던 웃음은 시원하게 마음을 비우듯 밖으로 쏟아냈다.

“제가 경제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아시죠?”

한강을 위해 경제신문이 매일 집으로 배달됐다.

덕화가 보는 건 스포츠 서울.

아빠와 아들의 입장이 확 바뀌었다.

“그래, 말해 보련.”

“지금 아빠가 다니는 곳, 자동차 3차 협력사들과 거래를 하죠?”

“그렇지. 별 걸 다 아네.”

자신이 언제 말했던가? 떠올리며 한강의 입에 집중했다.

“전 아빠가 맘만 먹으면 누구보다 잘하실 수 있으리라 봐요.”

한강은 용기를 심어주었다. 어른은 나이를 먹으면 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는다.

그 부분을 해소를 시켜주기 위한 북돋아 줄 수 있는 말로 힘을 실어 주었다.

“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빠의 꿈 제가 이뤄드리고 싶어요.”

“내꿈?”

“사업을 하고 싶다 하셨죠?”

“......”

“그거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직 뚜렷한 아이템이 없으신 거 같으니까, ...”

한강은 말을 잠시 멈추고 주변으로 시선 돌려 주위를 확인했다. 모두 술 취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다행히 옆자리는 빈자리. 직원이나 사장도 이쪽엔 관심이 없었다.

“......?”

의미심장한 이야기에 덕화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돈 다 갚아주겠다 이르세요. 대신 모든 지분을 던지는 조건이고, 아빠가 대표로 앉는 조건으로요.”

“그게 뭔 말이냐?”

“곧 육성에서 경성 자동차를 인수할 거예요.”

“경... 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기에 그래.”

“아빠, 그 빚 우리가 갚아주고, 회사 인수해요.”

그제야 돌리고 돌렸던 본론이 이제야 나왔다.

한강은 덕화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제가 투자할게요. 경성 자동차 3차 협력사들과 거래하는 게 아니라, 3차 협력사로 만들어 드릴게요. 아빠가 그 회사의 대표하세요.”

1차, 2차 협력사는 무리가 따라도 3차는 해볼 만했다.

육성의 도움을 받는다면, 일은 더욱 쉽게 풀릴 것이고.

시간이 지나 완벽한 준비가 되었을 때, 1차 협력사를 노릴 계획이었다.

“한강아, 이 아빠는 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대표라니?”

덕화는 크게 당황했다.

아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 회사 우리가 가지자고요.”

“난 경영을 해본 적 없다. 회사 경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냐.”

덕화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빠는 그냥 대표만 하시고, 실질적인 운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돼요. 물론 공부는 계속 하셔야겠지만... 전 아빠가 잘하리라 봐요.”

세상에 못하는 건 없다. 못한다는 건,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고 나서 깨달아라. 실패는 곧 자산이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한강이 전생에 했던 말 중 하나.

시간이 10년 20년이 걸려도 일단 될 때까지 하는 것.

그것이 한강의 신념이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경영에 자신이 없다면 잘하는 사람을 시키면 그만이다.

한강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크게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다.

‘어렵다면 제가 도울게요.’ 속에 있는 말을 조용히 삼키며.

“하세요. 저도 우리 아빠 대표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닐래요.”

아이로서 아빠를 대하였다.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 그 안에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정말로 아빠가 잘할 수 있으리라 보니?”

“네. 못하면 못하는 대로 괜찮지 않을까요? 사장 밑에 직원들이 왜 있겠어요. 사장이 못하는 부분은 직원이 해주면 되는 거예요. 그러라고 직원을 채용하고 돈을 주는 거잖아요. 기술은 엔지니어에게 맡기고 경영은 경영인들과 머리를 싸매 같이 고민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돼요.”

한강은 지난날을 떠올려 덕화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주었다.

용기를 북돋아 주어 힘이 되는 말.

“그런 큰돈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건 좋지 않은 일이다. 한강아...”

술에 취한 덕화는 한강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빚’ ‘대표’ ‘주인’ ‘돈’에 집중됐다.

‘큰돈은 큰돈을 만져 본 사람이 쓸 줄 알게 돼. 역시 아빠 엄마 두 분께 돈에 대해 적응을 시켜주자.’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 저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요.”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전화?”

“김광석 과장 아저씨에게 전화하려고요.”

“실례야.”

“아빠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잠시만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한강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부모님을 위하여 강한 충격요법을 사용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저씨 저예요. 죄송한 부탁을 드리려고요. 제 자산리스트 준비해서 저희 동네에 있는 XX호프로 와주시겠어요. 네, 맞아요. 거기 바로 건너편.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었다.

“나만 변해선 안 돼. 가족 모두 바뀌어야 해.”

앞으로 자신은 재벌이 될 자.

미리부터 돈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주는 게 좋으리라 봤다.

그러기 위해서 김광석 과장을 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