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42화 (42/237)
  • 42화. 13살, 스티브 잡스를 만나다

    휘이익.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지나갔다.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옆으로 쓸며 다가오는 스티브 잡스를 바라봤다.

    “나를 알고 있다니, 놀랍군.”

    중년남성의 정체는 또 다른 천재라 불리는 스티브 잡스였다.

    “어떻게 모르나요. 신문만 보면 종종 등장하시는 분을요.”

    아직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경제신문에 자주 기사가 실렸다.

    매킨토시의 신화를 창조한 애플 컴퓨터 설립자 스티브 잡스 회장.

    97년 여름 12년 만에 사령탑에 올랐다.

    “고맙구나. 나를 알아봐 줘서.”

    “천만에요. 근데, 저를 보러 오신 건가요?”

    끄덕.

    “그렇단다. 너의 그림에 매료돼 직접 보러 왔단다.”

    “음...”

    긁적긁적.

    뒷머리를 긁었다.

    “어떻게 하죠. 그 그림은 이미 넘겨서 제 손을 떠났는데요.”

    “아...”

    스티브 잡스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렀다.

    착잡함이 들린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회장님 관심 소재와 다를 텐데요.”

    아직 스마트한 세상을 그리고 있을 시기는 아니다.

    그렇기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의 그림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단다. 그걸 직접 보고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음 했는데...”

    “굳이 그림이 없어도 대화는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원한다면 간단히 그림을 그려 대화를 나눠도 좋고요.”

    전생 시절 그와의 만남은 이룰 수 없었다.

    무척 아쉽던 차, 현생에서 스티브 잡스와 연결고리가 생겼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래 자동차 그림 그리기 대회는 다시 없을 기회를 가져왔다.

    “그걸 다시 그리겠다고? 아니야. 괜찮단다. 네 말대로 대화 정도면 되겠구나.”

    다시 손수 그리겠다 하자, 잠시 감격한 표정을 짓던 스티브 잡스는 이내 현실을 깨닫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이쪽으로 가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모실게요.”

    “고맙구나.”

    스티브 잡스 얼굴 위로 흐뭇함이 자리했다.

    “아저씨, 육성호텔로 가주세요. 그리고 그곳에 숙소 하나 잡아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김광석은 꽤 놀랐지만,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한강의 요청에 김광석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

    저벅저벅.

    잔잔한 노래가 들려오는 우리나라 대표 호텔 중 한 곳인 육성호텔.

    세 사람이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로얄층으로 모시겠습니다.”

    모든 영업비(?)는 아맥스 블랙카드가 대신 처리해 주었다.

    결제를 미리 마친 세 사람은 로얄층으로 올랐다.

    “누가 온 거래?”

    “그룹 내 2세나 3세겠지. 신경 꺼, 딴 나라 사람들이니까.”

    아맥스 블랙 카드로 로얄층을 예약 없이 바로 결제 후 방이 배정되자,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일었다.

    하나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워낙 재벌들을 자주 접하는 탓에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관심에서 지웠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 육성그룹과 두터운 사이라고?”

    미국에서 한강의 소문은 꽤 많이 퍼진 상태.

    한강의 근황은 수시로 뉴욕타임지를 통해 꾸준히 소개됐다.

    거기서 가장 큰 관심사는 최연소 자수성가, 최연소 부자 등의 타이틀을 달기도 하였고, ‘미래 부인은 한국 재벌가?!’ 꼬리표가 생겼다.

    “저의 후원자세요.”

    “허허, 든든하겠구나.”

    대화를 나누는 스티브 잡스는 점점 한강에게 빨려갔다.

    유창한 영어 실력, 막힘없는 어휘와 생각.

    또래 아이들은 생각하기 힘든 부분까지 대화는 장애 없이 쭉쭉 이어졌다.

    “...정말 놀랍구나. 나도 네 나이대에 그러지 못했는데, 천재는 너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해.”

    10분 정도 지난 시점, 스티브 잡스는 한강을 천재라 부르며 크게 감탄했다.

    “별거 아니에요. 좀만 생각해 보면 현실과 엮어 더 발전할 수 있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에요.”

    “쉽게 볼 수 있다지만, 너의 생각과 상상은 쉽사리 할 수 없는 거란다. 작은 기기 하나로 통화, 음악, 사진, 인터넷은 물론... 그걸 넘어 주식거래와 영상회의 계약서 등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발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거다. 게다가 그걸 버튼이 아닌 올 터치라...”

    그 작은 기기를 응용해 자동차 비행기 전철 조선까지 연결한다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하하...”

    한강은 미래서 가져온 지식을 상상력으로 바꿔 말하려니 민망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회장님 죄송해요. 그 시작이 바로 회장님이었어요.’

    속으로 조용히 고백했다.

    “만약 그게 현실로 이뤄지면, 엄청난 발명품이 될 거야.”

    순수한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스마트폰을 개발하게 됐는지 알겠다.

    “그렇죠. 하지만 당장은 무리에요. 해당 기기는 세상이 좀 더 발전해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가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열세 살 아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올지 기대하는 눈치다.

    “음, 일단 인터넷과 같은 통신망이 지금보다 몇 배는 빨라야 해요. 기본 전제조건으로. 이 부분이 해결이 된다면, 해당 기기에 들어갈 부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들이 필요하겠고, 반도체 기술도 지금보다 훨씬 앞서야 할 거고, 휴대하기 편하게 소형화가 가능해야 할 거예요. 그래서 당장은 무리라 봐요.”

    “허허...”

    오늘만큼 황당하고 충격적인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나이가 좀만 더 많았다면, 나는 네가 원하는 연봉에 채용을 했을 거다.”

    스티브 잡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열세 살의 아이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우습지만 정말 그랬다.

    “좋은 평 감사해요.”

    과연 그에게 칭찬을 듣고 인정을 받는 사람은 세계 몇이나 될까?

    열세 살 아이 중 한강이 유일할 것이고 세계적으로 백 명은 넘지 않으리라 봤다.

    “겸손하기까지. 정말 아쉽구나.”

    스티브 잡스는 진정 안타까운 얼굴로 한강을 바라봤다.

    당장 경영진으로 올려도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아이라 생각은 들었지만 불가능한 인사이기에 포기를 하여야 하였다.

    “성인이 되면 뭐 할 건지, 정해둔 건 있는지 묻고 싶은데?”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닌 상황.

    스티브 잡스는 진지하게 물었다.

    바로 앞에 육성 관계자가 있음에도 없는 사람 취급을 하였다.

    “......”

    김광석의 입이 달싹였다.

    “제 사업을 할 거예요.”

    “사업?”

    “네.”

    “어떤 사업인지 알려줄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는 의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시대를 따라가면서 앞서나갈 수 있는 사업이요. 지금은 여기까지만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시대를 따라가면서 앞서나가는 사업...”

    스티브 잡스는 생각했다.

    천재가 그리고 있는 사업이 무엇일지.

    하나, 떠오르는 건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휴, 아쉽구나. 결국 애플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미겠지.”

    한강의 말에 마지막 희망을 놓아 보냈다.

    성인이 됐을 때, 스카웃을 하려 하였지만 완강한 한강의 목소리에 뜻을 접었다.

    “죄송해요.”

    말은 미안해 한다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눈은 오로지 정면만을 주시했다.

    “후후, 오늘 아주 즐거웠다. 덕분에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네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혹시 가지고 싶은 것이 있느냐?”

    모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과 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답답한 속을 풀어준 어린 친구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선물요?”

    “그래, 아무거나 괜찮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다 들어주마.”

    따스한 온기가 공기 중에 퍼졌다.

    ‘이건 기회야!’ 한강은 진한 감동을 받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애플 지분을 가지고 싶어요.”

    다시 없을 기회!

    들려오는 이 좋은 기회를 꽉 붙들어 맸다.

    “지분을?”

    “네!”

    한강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큭, 큭큭.”

    스티브 잡스가 고개를 숙여 등을 들썩였다.

    이런 재밌는 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터다.

    “...?!”

    반면 한강의 눈에는 물음표가 새겨졌다.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들썩이는 그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기까지 했다.

    “하하, 미안하다. 세상천지에 너 같은 아이는 다시 없을 거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구나.”

    눈물까지 흘렸는지, 손을 눈에 가져가 눈가를 닦았다.

    “난 돈이나, 컴퓨터라든가 이런 실질적인 물건을 달라 할 줄 알았는데, 내 잠시 너를 잊었구나. 그래, 어느 정도를 원하지?”

    유쾌한 자리에서 직접 말한 약속이다.

    스티브 잡스는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550만 달러요.”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억 원.

    한강은 통 크게 불렀다.

    “뭐? 550만 달러?!!”

    당연히 스티브 잡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큰 터무니 없는 금액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이 아이 재산이 그렇게 많았나? 그게 아니면...’

    스티브 잡스의 눈동자가 옆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김광석의 모습이 잡혔다.

    “이 부분은 육성과 관련 없습니다. 도움 없이 순수한 실력으로 만든 자산입니다. 전 고용된 자산관리삽니다.”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눈치챈 김광석은 한강의 재산은 육성과 관련 없음을 딱 잘라 말했다.

    “저 말이 진짜더냐?”

    “네, 그립을 그립시다 방송을 하면서 착실하게 모은 제 재산이에요. 투자도 제 뜻에 맞게 했고요. 지금처럼요.”

    한강의 그의 의심을 죽였다.

    “참으로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구나. 좋다. 550만 달러 지분을 네게 주겠다. 단, 3년간 매도하지 않는 조건이다.”

    ‘이 정도 도움을 주는 정도면 괜찮겠지. 설마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

    스티브 잡스는 한강에게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 애플은 크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믿었다.

    “그럼 저도 조건이 있어요. 20% 할인된 금액으로 매수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두 눈동자에 달러가 표시됐다.

    눈동자가 위아래로 돌아가 멈춘다면 ‘777’로 뜰 거 같았다.

    “조건에 조건으로 받아친다? 내가 너무 손해 보는 것 같지 않으냐?”

    “선물은 손해가 아니에요. 저에게 주심으로 회장님의 마음은 부자가 되실 거예요.”

    한강은 밝게 웃었다. 미소년의 반짝이는 미소는 중년의 남성의 마음도 움직이나 보다.

    “좋아. 그렇게 해주마. 거래는...”

    “제 자산관리사와 하심 되세요.”

    지금 입증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통 크게 애플 주식을 20% 할인된 16달러에 주기로 하였다.

    ‘몇 년도 안 돼서 6배 내지 10배로 뛸 주식을 생각지도 않은 기회에 가지게 되는구나.’

    세상의 운을 전부 끌어오기라도 한 행운은 또 한 번 자산을 불릴 기회를 주었다.

    ‘이 주식 평생 들고 있을게요. 회장님.’

    필요한 시기가 오면 매도하게 될 터이지만,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

    “좋은 시간이었다.”

    “저도요.”

    둘은 만족한 거래를 끝내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

    다음 날 아침.

    “어라? 아빠 출근하지 않으셨네요?”

    새벽 6시 20분이면 출근길에 오르던 덕화가 술 냄새를 풍기며 누워있는 걸 보고 미화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네 아빠... 회사 그만두었어.”

    “퇴사요? 아빠 회사 탄탄하다 하지 않았어요?!”

    “그게 말이다...”

    일찍부터 성숙하던 아이.

    미화는 어제 술 마시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남편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다른 집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미화는 거부감없이 한강에게 털어놓았다.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한강은 아빠와 상담(?)을 통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로 하였다.

    마침 좋은 아이템도 있었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