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13살, 육성그룹 대주주 유한강
“그림 1천만 달러 플러스 달러당 1900원. 이게 적당한 가격이에요.”
“...너무 덤터기 아니냐?”
“아주 합당하고 타당한 거랩니다.”
“어째서지?”
“요즘 달러가 귀하다는 거 알아요. 달러당 1900원에 쳐주세요.”
“그림은 그렇다 쳐도 달러당 1900원이라니.”
“2천 원 부를까 하다, 1900원 부른 거예요.”
한강의 눈빛이 무척 진지하다.
절대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신념이 두 눈동자에 비쳤다.
“내 살다, 이런 딜은 또 처음이구나. 그게 맞는 거래라 보느냐?”
육성에 너무도 손해가 막심한 거래조건이었다.
아무리 달러가 급하다지만, 이건 도가 지나친 거래였다.
적어도 이건호가 생각하기에.
“선생님이라 오히려 적게 부른 거예요. 제가 가진 달러를 세상에 알리면 어떨 거 같으세요?”
“음...”
“그렇게 고민이 되신다면 이건 어떨까요? 과거 선생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겠다 약속한 적이 있었어요. 지금 그 선물을 방금 말한 조건으로 껴 넣고 싶어요.”
육성에 받은 은혜는 많으나, 그만한 도움을 육성에 주었다.
‘공과 사는 확실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이번 거래는 앞으로 미래를 위한 한 걸음.
이 이상 양보는 없었다.
“큼.”
‘선물’이란 말이 나오자, 이건호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매우 감사하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제게 그랬죠? 비즈니스를 하자. 그럼 사적인 정을 미루고 공에 맞는 거래를 하는 게 맞겠죠?”
한강의 두 눈동자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뜻을 관철하고 이익을 위한 거래에 집중했다.
“어허, 그래도 1900원은 너무한 거 아니더냐?”
“해외 외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거예요. 앞으로 달러는 계속 오를 거고. 곧 부르는 게 돈이 될 거라 봐요.”
알고 있는 미래와 흘러가는 경제를 분석해 현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봤다.
“......1500원.”
너무도 정확하게 꼬집고 들어가는 전개에 이건호는 크게 놀랐다.
아무리 천재라도 이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1900원을 온전히 줄 수 없는 노릇!
중간값인 1500원을 불렀다.
“은행이 달러 때문에 망하게 생겼는데, 만기연장은 힘들지 싶은데 아닌가요? 좋아요. 50원 내려서 1850원. 더는 양보 못 해요.”
지금까지 모인 달러는 1400만 달러.
현재 기준 원화로 따지면 126억 원.
좀만 더 기다리면 266억 원까지 오를 터다.
약 2배 장사.
마음만 먹으면 2.5배까지도 가능했다.
하나, 역시 정과 도움을 받은 게 있어 마음이 살짝 약해졌다.
이건호에게 50원의 정을 나눠주었다.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는구나. 대체 그건 누구에게 들은 게냐?”
이건호는 절대 한강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다 여겼다.
저런 사실들을 안다면 개미들 중 투자에 실패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터였다.
육성에서도 조사해 상황을 분석해 알아낸 걸, 열세 살 아이는 확신을 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신문을 보고 내린 결과물이에요. 기업이 왜 부도가 날까부터 시작해 역으로 들어가 조사했어요. 태국이 무너질 수밖에 없던 원인까지도요.”
꿀꺽.
MBA를 수료하고 경영학 석사 학위 취득한 현 경영진들도 알아내지 못한 걸, 고작 열세 살이 해냈다.
“제가 들고 있는 달러가 그 증거예요. 어쩌시겠어요. 만약, 선생님께서 1850원이 싫으시다면, 전 제 달러를 경매에 부쳐 팔 거예요.”
모든 걸 예측하고 준비했다.
이건 지금껏 말한 모든 내용의 확실한 증거가 되어준다.
“졌구나. 내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완전히 당했어’
더 이야기를 해봐야 얻는 건 망신밖에 없었다.
“좋다. 하지만 내게 한 번 더 양보를 해줬음 하는데 말이다.”
단 한 번도 먼저 숙이고 들어간 적 없던 이건호는 난생처음 겪는 경험에 묘한 감정에 빠졌다.
“들어보겠습니다.”
한강은 절대 쉽게 답하지 않았다.
‘허허, 이거 참. 재진이가 이 아이의 반만 따라가도 좋을 것을...’
완전히 사업가 마인드.
세상이 왜 불공평한지 알 것도 같았다.
미소년 얼굴에 훤칠한 키.
탐나는 재주와 두뇌. 게다가 확실한 투자 감각과 성격까지.
모든 걸 두루 갖춘 게 한강이었다.
“259억은 지금 우리로서도 아쉬운 돈이야. 그래서 말인데, 일부는 주식으로 넘길까 하는데 말이다.”
이건호는 슬며시 한강의 표정을 살폈다.
두근, 육성의 회장이 되어 심장이 떨릴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주식 말이죠?”
한강은 생각하는 척, 눈을 감았다.
‘내가 먼저 꺼낼까 했는데, 먼저 언급해 주시다니. 꽤 당황하신 모양이야. 이거 너무 좋은 기회인데.’
지금 육성전자 주가는 1천 원도 안 된다. 미래에 200만 원이 넘어가던 시절을 떠올리면 너무도 터무니없는 주가였다.
어차피 육성주식은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을 예정이기도 했다.
‘10억 정도 20년 들고 있으면, 최소가 2천 배 장사를 하게 되는 기회...크.’
2천 배면 2조 원.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 빅 투자가 되어 버린다.
한강은 속으로 크크 웃었다.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이건 반드시 받아야 했다.
“좋아요. 저 근데, 할인해 주시는 거죠? 그러면 선생님 의견에 따를게요.”
“......”
순간 할 말이 막혔다. 설마 ‘할인’까지 알고 있을 줄 몰랐다.
“허허, 내가 완전 네 녀석의 봉이 되었구나. 아주 제대로 당했어. 하하하.”
이건호의 입에서 끝내 웃음이 터졌다. 완전히 놀아났다는 생각에 괘씸도 하고, 대견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선생님이 남는 장사란 걸 나중에 알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들어오게 될 자본에서 지분방어에 도움이 되실 거예요.’
이건 무조건 육성이 남는 장사였다.
“허허, 그래. 그렇게 해주마. 쩝... 그리고 말이다. 너에게 부탁이 있다.”
“네?”
거래가 끝나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려 하던 차, 이건호의 목소리에 다시 두통이 밀려왔다.
“어려운 건 아닐 게다.”
“......”
“경성을 인수하게 될 거다. 지금 이 디자인은 상당한 미래가 될 거 같고 당장 양산이 가능한 자동차의 디자인을 맡겨 보고 싶은데, 어떠냐?”
이건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대금조건은요?”
“계약금 10%, 양산 확정시 90%를 전액 현금으로 주마.”
“판매 대수 당 비율 정산까지 포함시켜 주세요.”
“...응? 하, 하하. 푸하하하하.”
또다시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 맞은 이건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지다 이윽고 박장대소가 터졌다.
처음으로 만신창이가 된 날이 되었다.
하지만, 무척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
부웅!
모든 거래를 완벽히 끝내고 집으로 복귀하는 길.
“윤희 누나가 미술을 하기로 했다라...”
조만간 윤희의 미래를 확 틀어버리려던 계획이 수정이 되었다.
설마 불어 전공이 아닌, 미대를 목표로 하겠단다.
그리고 그런 윤희의 미술 스승을 한강에게 맡겼다.
“그리고 내가 나보다 여섯 살 많은 누나의 과외선생이 되어라?”
뒤를 따르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는 윤희에게 중학교와 고등학교 수업을 받거라’
이것이 수업료 대신이란다.
“허... 참. 허허.”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이 흘러나왔다.
절레절레.
‘별수 없지. 거부할 이유 또한 없으니. 너무 이득만 취하려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아.’
당연하게도 ‘네, 그럴게요’ 대답하고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열세 살은 나밖에 없을 거야.”
작게 속삭이며 빠르게 뒤로 밀리는 어둠 속에 비치는 도심을 감상했다.
***
딩동댕동.
수업이 끝났다.
와아아아아.
아이들은 신나 하굣길에 올랐다.
“요즘 어때?”
한강은 경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 한강아.”
“돈을 보니 벌이가 나빠 보이지 않는데.”
“하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어.”
“그거 다행이다. 혹여나 도움 구할 일 있음 말해.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해.”
“응. 고마워. 헤헤.”
경태는 제법 책임감이 강했다. 그리고 공부도 곧 잘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반에서 5등을 유지하는 걸 보면.
“나 간다.”
“응. 잘 가. 한강아.”
경태는 오늘 청소 당번이라 남는다.
한강은 격려를 끝으로 교실을 나갔다.
“그래,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한강은 계단을 다 내려가지 않고 방향을 꺾어 교장실로 향했다.
“아저씨는 제 옆에 가만히 지켜만 봐주세요. 제가 손을 내밀 때, 그걸 주시고.”
“알겠습니다.”
김광석 과장은 한강의 옆을 따랐다. 작은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교장실.]
똑똑, 문을 두들기고.
드르륵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들어온 방은 교장실.
한강은 고민 없이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숙였다.
“이게 누구야. 한강 학생 아닌가? 여긴 어쩐 일인가?”
교장은 업무를 멈추고 벌떡 일어나, 한달음에 한강의 앞까지 이동했다.
‘경기초의 명물’, ‘경기초의 자랑’
그리고 ‘육성의 배경을 가진 아이’ 등의 키워드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교장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이란 의미가 되었다.
“교장 선생님께 긴히 드릴 말이 있어 왔어요.”
정중하면서 힘 있는 목소리.
“이리로 와서 앉지. 한데, 뒤에 분은?”
경기초 교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유한강 도련님의 보호자리 육성그룹 김광석 과장입니다. 전 없다 생각하시고 편히 대화해주세요.”
여기서 김광석의 할 일은 정해졌다. 육성의 힘을 보이며, 배경이 되어 주는 정도.
말만 보호자지 실상은 한강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동행이었다.
“그쪽이 그... 알겠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경기 초등학교 교장이라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다.
육성그룹의 힘은 교장이 감당할 수 없었고, 이사장도 힘을 쓰지 못했다.
즉, 잘 보여야 하는 상대였다.
‘이건호 회장과 홍라혜 대표, 막내딸이 이 아이를 보기 위해 찾았다 했어. 게다가 도련님이라... 그 말은 즉...’
막내딸과 약혼한 사이.
그것도 아니면 그에 준하는 관계라는 의미가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피도 섞이지 않은 아이에게 육성의 사람이 ‘도련님’이란 호칭을 사용할까?
생각은 끝났다.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말해 보려무나.”
더없이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학생들을 위해 교장 선생님께서 얼마나 큰 노고를 감내하시는지 알아요. 감사드려요.”
“......고, 고맙구나.”
6학년 아이의 어휘가 이상하다. 처음 겪는 거라 큰 거부감이 들었다.
하나,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바쁜 시간을 방해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작은 부탁을 드리려 찾아뵈었어요.”
한강의 동공은 교장의 두 눈에 고정됐다.
흔들림 없는 두 눈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과장님.”
시선을 돌려 처음으로 ‘과장’ 호칭을 사용했다.
“여깄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김광석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봉투를 건네고 입을 닫았다.
‘확실해졌군.’
모든 걸 지켜보던 교장은 둘의 관계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한강의 위치도.
“이게 뭔가?”
“2억이에요.”
“......?”
“제 개인 사비예요. 육성과 관련 없는 돈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2억이라는 돈에 교장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만한 자산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감히 아이에 입에서 쉽게 나올 법한 액수는 아니었다.
“이 돈을 여기에 적힌 아이들을 위해 써주세요.”
“뭐?”
“경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기업이 부도나고 그만큼 실업률이 늘었어요.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 일부가 돈 때문에 학교를 떠났어요. 앞으로 계속되겠죠. 전 그 아이들에게 부담 없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최소한 경기 초등학교의 졸업장을 받게 해주고 싶어요.”
“......”
“......”
방 안이 고요하다. 두 어른은 침묵을 지켰다.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김광석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허허...’
경기 초등학교 교장은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고 있기 민망했다. 얼굴색이 붉게 변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에요. 이만한 돈을 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지원을 하는 거니,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준비물 지원, 학비 무료, 우유 급식 지원, 특활비 지원 등 경기초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지원을 요청했다.
“알겠구나. 이 돈은 이 명단에 적힌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마.”
“감사해요. 그럼 전 일어나 볼게요.”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졸업까지 반년도 채 남지 않은 날, 한강의 결정은 두 어른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리버?”
“......?!”
일을 마치고 학교를 벗어나려던 참, 앞을 가로막는 인물이 있었다.
미국 사람으로 매우 익숙한 외모의 중년인이 앞에 서 있었다.
“스티브 잡스?”
이내 두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입은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