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40화 (40/237)

40화. 13살, 자동차 디자이너 유한강?

“잠시 저기에 세워주세요.”

달리는 차 안, 한강은 차를 세울 것을 요청했다.

“위험합니다. 안 됩니다.”

최동욱은 강하게 반발했다.

“세워주세요. 위험하면 저 몰래 따라다니는 경호 아저씨들 부르면 되잖아요.”

“...?!”

최동욱의 눈이 백미러를 통해 보였다. 꽤 놀란 눈이었다.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게 티 내고 다니는데, 모를 리 있나요. 알면서 모른 척 다닌 거지.”

매번 익숙한 얼굴이 시야로 잡혔다.

인기척을 없애면 뭐하겠나?

그 얼굴이 그 얼굴들인 걸.

“...맞은편에 세우겠습니다.”

최동욱은 핸들을 돌려 교차로 넘어 빈 공터에 차를 정차했다.

무섭게 뒤로 차량들이 따라붙었다.

“저기는 제 경호 인력 같고... 저분들은 제게 볼일이 있는 거 같네요.”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두 무리로 구분됐다.

한강의 시선은 뒤따라 들어오는 차량에서 내린 외국인들에게 옮겨졌다.

“어디서 오셨죠?”

‘많이 익숙한 얼굴인데, 누구지?’ 한강은 매우 익숙한 몇몇 외국인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분명 한 번쯤 본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는 건, 업계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란 의미겠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머릿속에 있다는 사실은 유명인이란 의미.

그들의 답을 기다렸다.

“난 조르제토 주지아로라 한단다.”

“......”

기억났다. 조르제토 주지아로.

자동차 업계 120명이 선정한 21세기 자동차 디자이너.

한강은 말없이 그를 올려봤다.

“폭스바겐 피터 슈라이어다.”

“......”

왜 모르겠나?

가까운 미래에 역작을 터트려 죽어가는 경성을 살린 인물을.

“루크 동커불케...”

그 뒤로 들려오는 이름도 결코 무시 못 할 이름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절 아시는 거 같으니, 제 소개는 생략해도 되겠죠? 매너 없이 저를 미행하시기도 하였고?”

큼.

불편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팩트는 사람의 입을 막는 마술을 부린다.

“모두 제 그림을 원하시는 건가요?”

말이 없자, 한강은 적극 나서 가려운 부분을 긁었다.

“여기서 대화하기 그런데,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련?”

루크 동커불케가 최동욱의 눈치를 보며 의견을 꺼냈다.

“그건 무리예요. 보다시피 전 선약이 있고 갈 곳이 있어요. 되도록 여기서 이야기를 끝냈으면 해요. 학교로 우르르 몰려와 저를 귀찮게 할 거 같아 이곳에 세운 거니, 여기서 끝내주세요.”

한강은 딱 선을 그었다.

몇 달 다니면 작별할 학교지만, 개인 생활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좋아, 그러지. 폭스바겐에서 네 그림을 좋은 값에 쳐주마.”

피터 슈라이어가 발 빠르게 나섰다. 한강의 눈이 얇아졌다.

“그 좋은 값이 얼마죠? 1천만 달러?”

한강은 지금 그림을 최소 1천만 달러에 거래할 계획을 잡았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생각 없이 그린 그림을 저들이 직접 찾아와 구입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하나로 귀결됐다.

아주 가치 있는 그림임을.

“......”

피터 슈라이어의 입이 닫혔다.

1만 달러를 생각했는데, 무려 100배가 넘는 천만 달러를 불렀다.

“이 이하는 안 돼요. 적어도 제 그림의 가치는 아주 잘 알아요. 마음대로 제 그림을 사용할 생각은 접는 게 좋아요.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기에 확실히 못을 박았다.

‘능력이 부족해 열세 살 어린이의 그림을 베낀 자동차 기업.’

역사 속 뒤로 갈 것이 아니라면 정당한 거래를 통해 가져가는 게 좋았다.

‘이건 기업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기도 하니까.’

“너무 과하면 그림의 가치는 제로가 될 거란다. 아이야. 1천만 달러가 어떤 돈인지 아니?”

발터 드 실바가 물었다.

목소리에 무시하는 어투가 들어찼다.

“제 재산보다 못한 돈이요.”

뭘 묻느냐는 투로 말했다. 특히, 자신을 무시한 듯한 감정을 실은 이에게.

한강은 결코 공자가 아니었다. 물면 무는 공격성을 지녔다.

“저를 무시하고 제 그림의 가치를 떨어트리려 하시는데, 그 안에는 여기 계신 분들이 생각도 못한 숨은 기술들이 숨어 있어요. 컨셉카 같죠? 아닙니다. 각 기업의 기술만 받쳐준다면 양산차로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차가 될 거예요. 그런 디자인을 고작 1만 달러?? 도둑놈이죠.”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믿을 수 없는 눈빛,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정 원한다면 직접 테스트를 해보세요. 테스트 정도는 허락해 드리죠.”

어린아이의 말이라 무시하는 시선에 기분이 상했다.

하나, 그렇다고 좋은 기회를 날릴 한강도 아니었다.

“더 할 말 없으시죠. 전 이만 갈게요. 아저씨 가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처음부터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한 행동. 저들에게 팔 생각은 없었다.

‘내 몸값이 오르겠지.’

저들은 분명 테스트를 통해 그림의 가치를 판단할 터다. 가치가 드러나면 한강의 미래가치는 지금의 배로 뛰리라.

슬며시 미소를 짓고 그들을 지나쳐갔다.

별 소득이 없어 보이는 대화로 보일지 모르나, 여기에는 많은 계산이 깔렸다.

“각 기업에서 어떻게 나오려나. 크크.”

얼마 가지 않아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 같다.

그날이 기다려졌다.

‘크크.’

앞으로 재밌어질 거 같다.

***

“미래에서도 움직였단 보고입니다.”

중년인이 들어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조용할 날이 없구먼.”

이건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감추고 싶어도 계속해서 존재감을 드러내니, 머리가 아팠다.

“차라리 드러내고, 육성과의 관계를 공식화하심이 어떻습니까? 한강 도련님은 홍 대표님을 아주 잘 따릅니다. 윤희 아가씨도 잘 따르고. 미대를 목표로 두고 있는 이유도 한강 도련님 덕 아닙니까?”

이건호의 비서실장도 한강을 ‘도련님’이라 칭했다.

“음...”

이를 이건호도 당연시하게 받아들였다.

눈을 감고 책상을 두들기는 손가락.

고민이 깊어 보인다.

“이번 기회에 아가씨의 미술 과외 교사로 등용해도 좋으리라 봅니다. 아가씨는 한강 도련님의 공부를 돕는다면...”

“음...”

비서실장의 의견에 귀가 솔깃했다.

꽤 좋은 아이디어였다.

“좋은 생각일세. 한데, 좀 늦는군.”

“들려온 소식으로 외국기업이 따라붙었답니다.”

“뭐라? 그래서?”

이건호는 깜짝 놀랐다. 경쟁기업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일 줄 몰랐던 탓이다.

“그 자리에서 그림값을 1천만 달러 불렀답니다.”

“...누가 날강도인지 모르겠군.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는가?”

“알아본 결과 충분히 그만한 값을 부를 만했습니다. 컨셉이 아니라 당장 상용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

“경성을 인수해 바로 해당 다자인을 기초로 삼아 차량을 개발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봅니다. 이미 기사로 사람들의 반응과 각국 디자이너들이 직접 움직여 한강을 스카웃하려는 모습만 보더라도 보증수표나 다름없습니다.”

“살고 있는 집을 빼고 매도하고, 모든 자산을 달러로 바꿔 버리는 대담함과 결정력에 이젠 미래를 바꿀 자동차까지. 정말 괴물이 따로 없어.”

“하나를 빼놓으셨습니다. 미래를 읽는 실력. 이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경영자의 자질은 타고났다 보입니다.”

“허허, 실장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야.”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단순히 천재 화가로 알고 있던 아이는 시간이 더해갈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 가치를 더해갔다.

똑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데, 딱 저 아이를 하는 말이야. 후후.”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노크 소리가 들리며 한강이 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너라. 오는 길, 힘들었다 들었는데, 괜찮으냐?”

사전에 연락을 통해 외국인들에 뒤덮인 사실을 알기에 그 부분을 슬쩍 언급했다.

“아뇨. 아주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럼 다행이다. 이번에도 상을 탔다지? 축하한다.”

이건호는 진심을 다 해 한강을 축하했다.

저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는 건, 그의 낙이 되어버렸다.

‘손주가 생기면 딱 이럴까?’

이건호는 슬며시 웃었다.

“감사해요.”

“그럼 선물 보따리를 풀어볼까.”

“선물요?”

“그래. 너로 인해 육성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상당한 우위에 서게 됐지.”

국내 기업에서 가장 많은 달러를 보유하고 부실이 적은 기업이 된 육성은 정부와의 딜에서 우위에 섰다.

경성의 채권을 사들이는 한편, 경성의 지분을 늘려갔다.

아직 언론에 알리진 않은 비공식 행보.

이번에 그간 바라온 소망을 이루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김 실장, 그걸.”

이건호가 팔을 뻗어 손을 벌렸다.

“여깄습니다.”

손위로 갈색 봉투가 올려졌다.

“이거다. 열어 보거라.”

봉투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한리버 전시회.]

“이건...”

순간 몸이 경직됐다.

시선은 종이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조만간 육성 미술 전시관을 열거다. 거기에 한강, 너의 작품을 전시를 할까 한다. 개인 공간이라 여겨도 좋아.”

홍라혜가 직접 전해주려 하였지만, 이건호가 직접 전해주겠다 고집부려 가져온 정보였다.

해당 종이는 그에 맞는 계약서.

예술가에게 있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다는 건 축복이요, 영광스러운 일일 터다.

알려지지 않고 사라지는 작품들이 많은 이때, 한강은 자신의 공간을 가지게 됐다.

“정말로 저 주시는 건가요?”

“공짜는 아니다. 거기서 판매되는 미술품 가격의 일부는 운영비 명목으로 가져갈 거니까. 그 외 비용은 들지 않을 게다.”

이건호의 어깨가 올라갔다. 오늘따라 유난히 허리가 꿋꿋하게 펴졌다.

“감사해요.”

생각도 못 한 선물이다.

설마 이런 걸 준비할 줄은.

생각만 해봤지,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 못했다.

감동이었다.

“선물은 이쯤 하고, 비즈니스를 해볼까?”

“혹시 전시관은 뇌물인가요?”

“겸사겸사.”

“...큼. 좋아요.”

“얘기는 들었다. 1천만 달러를 불렀다고?”

“네.”

‘귀가 참 밝은 사람’ 이라 생각하며 대답을 하였다.

“그 디자인이 어떻게 1천만 달러의 값어치가 있는지 들어보고 싶은데, 이유는 있겠지?”

푸근하고 장난스러운 모습은 사라지고, 노장의 기운이 자리를 대신했다.

“첫째로 디자인은 고객들이 차를 고르는 가장 큰 이유예요. 두 번째는 가격이죠. 가격이 아무리 좋아도 디자인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구매력은 떨어지죠.”

“그 말은 너의 디자인은 사람이 찾는다? 이 말이냐?”

“당장은 아니지만, 10년 내 큰 인기를 끌 거라 자신해요.”

“왜지?”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시기예요. 주머니가 잠긴 상태에 비싼 차를 내놓아 봐야 외면을 받을 거예요.”

“.....”

“또한, 현 디자인은 외부든 내부든 해당 기업의 모델이 되어 선점할 수 있다는 거예요.”

“......”

“이게 가장 중요한데, 기업의 가치가 높아질 거예요. 디자인의 완성은 기업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고객들의 충성도를 이끌게 될 거고. 그 기업의 자존심이 될 거예요. 앞으로 육성이 가져갈 목표가 되어 줄 것이기에 최소가로 1천만 달러도 싸다 봐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내용을 속 시원하게 바깥으로 내보냈다.

“...허허.”

이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서 큰 공감을 받아 저도 모르게 긍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기를 잠시, 이건호의 눈빛이 반짝 빛을 뿌렸다.

“좋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가진 모든 달러를 내게 넘기거라. 그러면 그림을 1천만 달러에 가져가겠다.”

그리고 딜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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