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39화 (39/237)

39화. 13살,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다

태국에서 바트화 고정환율제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경성 자동차로 들어가는 철강제가 공급 중단돼 공장가동이 멈췄다.

국가에 지원요청을 했지만, 은행은 이를 거부하고 나섰다.

[경성그룹은 부도유예협약 적용.]

[경성 자동차 신용매수 급증, 증권사 영업 담당자는 재계 8위가 무너질 리 없다는 심리와 육성과 미래 등 재벌그룹이 경성을 인수할 가능성을 제기...]

경성의 부도는 모두에게 위기감을 심어주었다. 한편으로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부도유예협약을 맺은 경성의 소식은 투자자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절대 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거기다 덩달아 부품사도 경성 살리기에 돌입하였다.

“경성 회장과 약속을 잡게.”

마침내 이건호가 움직였다.

***

아연제조.

“유 반장...?”

덕화가 이직한 지 5년째 되던 해.

아연제조 대표가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부탁일세. 내게 3억만 빌려주게.”

갑작스러운 대표의 부탁에 덕화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리고 제가 그 큰돈이 어딨어요.”

애걸복걸하는 대표의 모습은 덕화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리 회사는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빚도 많지 않은 회사가 바로 아연제조였다.

그 부분을 높이 사 봉급이 적어도 입사를 한 것인데, 난데없이 3억을 빌려 달란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말일세... 보증을 선 친구가 날랐네. 그걸 갚지 못하면...”

“......”

“도와주면 꼭 이 신세를 갚겠네.”

빚보증이 문제였다.

덕화는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대표님.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 정말 돈 없어요. 직장인이 그런 큰돈이 어딨나요. 당장 제 연봉이 2천도 넘지 못하는데.”

“자네 아들이 있지 않은가? 내 듣기로 자네 아들이...”

“대표님. 저 사직서 낼게요.”

“유 반장.”

“제가 다른 건 다 참아도 내 아들 돈 챙기라는 말은 못 참아요. 난 내 돈으로 아들을 키울 거지 아들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 생각은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덕화의 안색이 굳어졌다. 절대 꺼내선 안 될 부분을 대표가 꺼냈다.

이곳에 더 있을 이유는 없다 생각했다.

“유, 유 반장! 유 반장!”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하나, 덕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벗어났다.

***

한 곳에 어둠이 있다면, 다른 한 곳엔 빛이 자리했다.

[97년 꿈을 현실로, 미래를 오늘로(Dreams Come True, Future in Today) 어린이 미래 자동차 그림 그리기 대회 개최.]

외환위기 속에 미래 자동차 그림 대회가 개최됐다.

“어려운 시국을 다른 데로 돌려보기 위한 목적인 거 같은데.”

요즘 나오는 뉴스와 신문기사 주 내용이 외환위기와 기업의 상폐 소식을 주로 달았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을 애도하였다.

“에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런 것.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미래엔 어떤 자동차가 우리와 함께할지 잘 상상해서 그려보세요.”

6학년 미술 담당 김경애가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지켜봤다.

그중 한강에게로 시선을 가져갔다.

“어떤 그림을 그리려나?”

미술 시간마다 늘 기대를 가지고 지켜본다.

어쩌면 그녀의 학교생활 중 가장 큰 행복이지 아닐까 싶다.

‘거참, 이걸 어쩐다.’

머릿속으로 떠다니는 차량들이 너무도 많았다.

시선을 옆으로 돌려 아이들의 그림을 살폈다.

‘다들 하늘 나는 자동차를 그리네. 미안하지만, 그건 못 만들어. 친구들아.’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 비행기라 해서 나오는 게 있지만, 그건 그냥 비행기였다.

날개와 비행기 형태를 갖춰야 날 수 있는 그냥 ‘비행기’였다.

‘자고로 나는 자동차면 날개 없어야 미래형 자동차지. 암.’

아이들의 그림을 즐겁게 감상하다, 펜을 들었다.

“그럼 난 외형보다 내부적인 부분에 신경 써 그려볼까.”

스스슥.

연필을 휴대용 연필깎이에 깎고 도화지 위로 올렸다. 호흡조차 아껴가며 펜을 쥔 손을 움직였다.

스스슥.

귓가로 흑심이 그어지는 소리가 연하게 들려온다.

좌측 도화지 면에 형태를 갖춘 자동차가 그려졌다.

“그리다 보니 컨셉카가 되어 버렸네.”

외형이 많이 본 미래에 개발될 국내 프리미엄 자동차가 되어버렸다.

우측에는 내부가 어떤지 상세하게 그렸다.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내부는 벤츠를 그려버렸네. 크크.”

어떠랴, 재미로 그리는 그림.

이번 그림은 전생에 아쉬웠던 디자인을 살짝 수정만 하여 그림에 넣어봤다.

“제네시스의 장점과 벤츠의 장점을 가져오니 확실히 세련되고 멋스러운 디자인이 됐어.”

좌에 우로 길게 나 있는 벤틸레이터(Ventilator), 송풍구라 부르기도 한다.

주변을 카본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계기판과 내비게이션을 터치스크린으로 만들고, 특히 내비게이션을 대시보드에서 기어봉 아래까지 둥글게 이었다.

기어 봉은 오리 주둥이처럼 그렸다.

“끝.”

90년 후반부와 비교되는 고급스러움의 완성체 컨셉카를 가장한 실사 응용판 미래형 자동차가 완성됐다.

“이런 자동차 한 대 가져보고 싶네.”

어느 틈에 다가선 김경애 미술 선생은 시야로 들어오는 그림에 감격했다.

“미래에 생길 거니 꼭 구입해 타고 다니세요.”

“호호, 그럴 듯한데, 혹시 요곤 뭘까?”

김경애는 내비게이션을 가리켰다.

“미래에는 위성의 도움을 받아, 지도를 보여주고 안에서 음악과 전화 등 갖가지 기능이 탑재되어 있을 거라 봐요. 이건 그런 걸 보여주는 화면이에요.”

이 시대에 맞게끔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이걸로 인터넷도 가능하고, 이걸 끄집어 올리면 키보드가 나오는데, 차 안에서 컴퓨터도 가능해요.”

한강이 아쉬워했던 부분 중 하나.

수많은 기능을 탑재했지만, 정작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활용이 가능하게끔 만든 차는 40년이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걸 그림 안에 넣어 활용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꽤 그럴싸한 상상이구나. 정말 이런 미래가 오면 아주 좋을 거야.”

김경애는 가볍게 넘겼지만, 계속 한강의 그림으로 눈길이 갔다.

‘완전 컨셉카가 따로 없어. 화가보다는 디자이너에 어울릴지도...’

채색을 마무리하는 한강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아이였다.

[서울 모터쇼 어린이 미래 자동차 그림 그리기 대회 우승자 유한강(13), 세계 프로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을 씹어먹다.]

[열세 살 어린이의 놀라운 디자인에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 모여들어...]

그림 대회 결과가 나왔다. 한강은 다른 아이가 가져가겠지 생각하며 편하게 그린 그림이 대상에 오르면서 큰 화제를 낳았다.

“정말 놀라워요. 이 섬세함. 저항까지 생각해 디자인이 됐어요.”

“고작 열세 살이라 하지 않았나요?”

“직접 제작하고 싶을 정돕니다. 내부는 모르겠지만, 외부는...”

이는 세계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드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는...

폭스바겐, 벤츠,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BMW 등 역대 CEO들이 총출동해 그림을 감상했다.

그들은 자동차가 아닌 열세 살이 그려낸 그림에 집중했다.

“우리가 디자인한 게 너무 보잘것없어 보일 정도야.”

“정말 창피하구만.”

“애보다 못한 디자이너라...”

CEO 집단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무언의 경쟁을 하였다.

‘그 아이를 우리 회사로...’

‘...하다 못해 이 그림은 우리가 가져야 해.’

‘고작 이런 작은 땅에 놔두기 아까운 실력이야.’

‘저 디자인 우리가 가져온다.’

한강은 세계에서 인정한 최연소 화가. 그림 실력은 입증된 바 있다.

CEO와 디자이너들은 한강도 모르는 틈에 열띤 경쟁을 펼쳤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됐다.

***

미래 자동차 그룹 본사 회장실.

“어떻게 보나?”

상석에 앉은 노인은 사진 속에 담긴 그림을 보이며 물었다.

“놀랍단 말 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중년남성은 놀란 눈으로 사진을 바라봤다.

일반 사람에게 있어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나, 그림 안에는 과학적 기술이 도입되어 있다.

즉 디자인 하나로 품질이 향상되고, 브랜드 가치의 차별화를 두기도 한다.

즉, 디자인도 자동차에 설계의 일부분. 설계자와 디자이너가 서로 원하는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양산형 자동차를 만들게 된다.

“자네는?”

“직접 대조해 봐야 알겠지만, 저 디자인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얼마가 들어도 좋아. 무조건 우리가 저 그림을 가져와야 할 것일세.”

미래 자동차에서도 움직였다.

세계시장의 진출, 그것을 한강의 그림에서 찾았다.

***

애플.

“오 마이 갓! 이걸 봐요. 이게 어린아이가 상상한 미래예요.”

스티브 잡스는 신문에 실린 사진과 기사를 보며 놀란 음성을 토해냈다.

“아주 멋지지 않나요? 이 안에서 노래도 듣고 컴퓨터도 하고 지도까지 보며 운전을 할 수 있다니. 이건 마치...”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하나의 기기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난 이 아이의 생각을 듣고 싶어졌어요.”

아니, 생각도 못 한 부분이 아이의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후끈 달아오르는 몸을 추슬러 발걸음을 한국으로 향했다.

***

쉬이이이이이.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부아아앙!

대지를 질주하는 자동차.

“감사합니다!”

공기를 울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수업이 끝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본사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한강의 등하교는 김광석과 최동욱이 맡아 돌아가면서 맡았다.

오늘은 최동욱이 운전대를 잡았다.

“요즘 선생님이 심심하신가 봐요.”

촬영장으로 찾아오지를 않나, 갑자기 저택으로 납치를 하질 않나.

참으로 갖은 고생을 다 한다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막내 아가씨의 짝이 될 분...’

최동욱은 눈치가 있고 들은 게 있다.

육성에서 이제는 알만한 사람은 모두 한강을 육성인으로 대우를 하였다.

“중요한 문제... 음? 외국인? 무슨 외국인 교환학습이라도 하나?”

최동욱과 대화를 하던 중 시선이 밖으로 옮겨졌다.

다양한 외국인들이 학교로 우르르 들어가고 있었다.

발걸음이 무척 다급해 보였다.

“저, 저깄다. 막아!”

“잡아야 해!”

그러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뭔가 싶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 모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추, 출발하겠습니다.”

그때 급하게 들려온 최동욱의 목소리.

최동욱은 당황한 목소리를 흘리고, 액셀을 밟았다.

“......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세요?”

“......”

“아무래도 그 외국인들 절 만나러 온 거 같은데. 저 뒤에 몇몇 차량이 급하게 따라오기까지 하고. 하실 말이 많을 거 같은데,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죠.”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한강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가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저 생떼 부려요? 피곤하실 텐데?”

눈으로 보고 궁금해진 건 바로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이대로 두루뭉술하게 넘길 생각은 없었다.

“......”

“제 고집 아시죠?”

휴...

한숨이 터졌다.

최동욱은 벌어지지 않은 입을 간신히 벌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소상히 털어냈다.

“호오...”

체념한 최동욱 실장의 모습을 시야로 담으며...

한강은 묘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돈 냄새가 나.’

한강은 입꼬리를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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