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38화 (38/237)

38화. 13살, 한강의 예언

우리나라는 자고로 배달의 민족이라 했다.

배달 문화가 가장 잘 발달한 국가.

‘이걸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지.’

음식에 배달 값을 얹어 배달하던 음식점들은 배달 업체가 생기면서 배달비까지 얹어 음식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한강은 거기서 아이디어를 따와, 실행에 옮겼다.

“우리를 불러낸 이유가 뭔데?”

왕따라 칭해지는 약자를 지키는 방법 두 번째.

순수강자를 동원하면 된다.

“너네 쌈 잘하지?”

“...?!”

“우리 학교에서 일짱, 이짱 하니 잘하겠지. 그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너네 용돈 벌고 싶지 않냐?”

“용돈?”

“그래 용돈. 그리 큰 액수는 아니고. 불법도 아닌 합법적 동의하에 벌어들인 수입을 기준으로.”

한강은 폼잡고 서 있는 아이들을 향해 걸어가 어깨동무를 하였다.

“단, 이걸 이용해 아이들 돈 뜯는 비겁한 행동을 하면 내게 배로 물어내는 조건으로.”

“지금 우리랑 싸우자는 소리로 들리는데?”

“싸움이라니, 난 평화주의자라고. 그런데 듣기로 너희 부모님이 육성그룹 계열사로 물건을 납품하고 계시다 들었는데. ”

은근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육성과 거래가 끊긴다면 너네 집은 어떻게 될까? 내가 보기에 너네도 셔틀과 비슷한 처지에 놓일 거 같은데. 막 무시도 받고. 아니면 다른 데로 전학을 가겠지. 부모님에게 볼기짝을 맞으면서.”

초등학생도 아주 기본적인 건 잘 안다. 어른들이 보이는 모습들을 보고 자란 덕분에 사회적 위치를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여자친구랑도 헤어져야 해. 아우 슬퍼라.”

한강은 계속 입을 털었다.

“하, 하면 되잖아. 하면. 그만해.”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데.”

거듭되는 언어적 압박에 아이들은 기가 확 죽었다.

지금의 삶이 도망간다 생각하자, 끔찍한 상상이 고개를 들었던 탓이다.

“오케이. 너네들은 걔네들을 보호해주면 돼. 자칭 일진이라 나대는 얘들 관리 좀 하고. 집안도 걔네보다 너네가 더 좋잖아.”

“...알았어.”

“후후, 너무 침울해하지 마. 일주일에 한 번씩 너네에게 소소한 용돈을 지급할 테니까. 서로 좋은 거래를 해보자고.”

한강은 히죽 웃고는 아이들의 등을 토닥여주고 밖으로 나갔다.

***

“다 모은 거야?”

“응, 얘네가 다야.”

“히유, 많기도 하다. 반마다 2~3명씩은 있다는 소리네.”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이야기는 들었지? 모두 부모님 사정으로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다 들었어. 그러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는 법을 배울 때라 본다. 조선 시대에 13살이면 결혼도 가능한 나이야. 너네도 책임을 지고 무언가 해보려 해야지. 안 그래?”

한강은 주변을 둘러봤다.

잔뜩 위축된 모습, 자신감이라고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려 해. 이왕 이리된 거, 이런 환경을 이용해 너네가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정당성을 찾았음 한다. 모르는 단어는 알아서 찾아봐. 질문은 안 받아.”

누군가 손을 들려 하자 바로 차단했다.

“여기서 지금의 환경만을 비판하며 패배자로 살아가려는 친구는 필요 없어. 그런 사람은 나가. 안 잡으니까. 하지만 변하고 기회를 얻고 앞으로 나가고자 할 친구는 내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너희들 부모에게 어떤 사업적 보탬을 주겠다는 건 아니니 기대하지 말길.”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분위기, 한강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야.”

어슬렁어슬렁.

“쟤, 쟤네들은...”

강당에 모인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겁먹을 필요 없고, 앞으로 너희들의 정당성을 보호해줄 친구들이다.”

‘나중에는 또 다르겠지만, 지금으로서 이게 젤 좋은 방법이야.’

다음 학년은 어떨지 모르나, 1년간 6학년은 한강이 책임져 주기로 하였다.

“이 정도면 너희들 안에 잡혀 있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됐으리라 본다. 앞으로 잘해보자.”

***

“오늘 그 자식 없지?”

“광고 촬영 간댔어.”

“그래, 하아. X발. 이게 뭔 개쪽이냐. 경태야.”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 아이들이 저마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창틀에 자리를 잡고 떠들던 아이가 경태를 불렀다.

“응, 왜?”

“기분 X 같으니까, 뭐라도 사와라. 그거라도 먹고 기분 좀 풀자.”

“... 돈 줘.”

“방금 뭐라고 그랬냐?”

“배달비랑... 음식값 주면 사올게.”

“응? 뭐라고?!”

전과 달라진 모습을 떠나, 돈을 달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지금 뒈지고 싶다고 들린 거 같은데? 맞아?!”

“한강이가 그렇게 안 하면 각오하랬어...”

겁은 나지만 할 말은 다 하는 모습이 가상하다.

하나, 말을 한 아이는 그걸 바라진 않았다.

“얘가 단단히 미쳤네. 야, 잊었어? 너네집 먹고 살게 해주는 게 누구인지?!”

“......”

경태의 말이 막혔다.

드르륵!

“야, 인수야. 지금 내 친구한테 뭐 하냐?”

그때 문을 열고 거구의 아이가 등장했다.

“박현?!”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간 눈동자가 급격히 떨렸다.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경태야, 뭔 일이야?”

박현은 싱긋 웃으며 경태의 목을 잡고 끌어와 물었다.

누가 봐도 무척 친해 보였다.

“그게 얘네들이...”

반면 경태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집에 피해가 갈까 싶어 불안한 눈치였다.

“녀석하고는.”

사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뻔했다. 박현은 인수의 눈과 마주했다.

“인수야, 얘네들 시키려면 돈 줘야 돼. 안 그럼 너네집 날아가. 아, 얘한테 피해가 가도 너네집은 끝나. 너 우리집 알지?”

“......”

학교에도 집안 사이 약육강식은 존재한다.

박현은 그걸 아주 교묘하게 잘 사용했다.

“경태야, 뭐 해. 돈 안 받고.”

“어, 응.”

“......”

“인수야, 5천 원 주면 다 사올게... 배달비는 천 원이야. 아, 양과 무게에 따라 달라져.”

“...거지 새...여깄으니 다녀와.”

인수는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뒤에 버티고 있는 박현의 눈빛에서 심한 압박을 받았다.

‘제기랄...’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기도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

결국 지갑에서 돈을 꺼내 경태에게 건넸다.

경기 초등학교에 선생들도 모르는 새로운 문화가 6학년들 사이에 천천히 잡혀갔다.

“삼 일 사이에 30만 원이나 벌었다고? 와우. 요즘 애들 돈 많네.”

모델 일을 끝내고 학교로 등교한 한강은 경태의 말에 헛웃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돈 있는 애들 사이에 돈을 안 주고 시키면 없는 애들 취급당해서 무조건 줘야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끄덕.

그 잠깐 자리를 비운 기간 동안 아이들 사이에 귀족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허세와 과시.

일종에 ‘나 좀 살아’ 재력을 보이며 여자들에게 과시를 하는 것이다.

‘허, 애나 어른이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누가 그랬지.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고.’

생각도 못 해본 결과였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좋게 흘렀다.

“약속대로 이 중 10%만 내가 가져갈 거야. 나머진 너희들끼리 알아서 써. 그리고 박현, 재욱아 고맙다. 이건 너희들 몫이다.”

30만 원 중 10%를 가져와 박현과 재욱에게 건넸다.

“어?! 이러면 네 몫은 없는 거 아냐?”

박현이 물었다.

“더 잘해 달란 의미다. 앞으로도 내 몫은 챙기지 않고 너네들에게 줄 거야. 그러니 친구들 사이에 서열 정해서 놀지 말고 어울려 놀아줘라.”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한강은 아이들에게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들이 새로이 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조금은 어른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

[총외채 1050억 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원화 가치가 지난해보다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외채 이자 부담이 가중됐다.]

[매매 기준 환율 850원에서 50원 올라 900원 기록, 관련 업계에서는 1천 원까지 직행할 거란 관측을 내놓고...]

[한국은행 외화가 부족한 시중 은행에 10억 달러 지원...]

“회장님, 아무래도 경성이 무너질 거 같습니다. 태국 바트화가 무너졌습니다. 그 타격이 고스란히 경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의 역플라자 합의 이후 태국의 바트화는 크게 폭락했다.

약 2년간 버텨온 태국은 복수통화 바스겟 제도를 포기한다 선언을 하였다.

“허허, 이런 공교로운 일이 다 있나...”

이건호는 갑자기 몰아쳐 오는 위기 속에 태평하게 웃었다.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시려거든 1997년 말 이후에 하세요.]

당시 아홉 살이었던 유한강의 목소리가 환청이 되어 들려왔다.

“차 준비하게. 그 아이를 만날걸세.”

이건호의 무거운 엉덩이가 떨어졌다.

***

찰칵찰칵.

“컷, 수고했어.”

한강의 사진 촬영이 끝났다.

“이제 제법 모델티가 난다 너?”

“다 작가님 덕분이죠.”

“말은 늘 참 잘해. 고생했어.”

“고생하셨습니다.”

요즘 청소년 의류 사진을 찍는 데 한창이다.

잡지에 실리는 한강을 이제는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이제 제법 남자 티가 나네.”

키는 어느덧 176cm가 되었다.

같은 반 아이들 중 가장 큰 키를 자랑했다.

전생 시절이었던 키를 고작 13살에 넘겨 버렸다.

“한강아 잘 가.”

“아유 예쁜이 바이.”

지나가는 여성 모델들이 한강에게 윙크를 보냈다.

“누나들 담에 봐요.”

한강도 그에 화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 끝났는가?”

“선생님, 여기 어쩐 일이세요?”

촬영장을 벗어나자, 이건호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뭐랬나? 내가 갑자기 찾아와도 눈 하나 끔뻑이지 않을 녀석이라 했지?”

놀랄 법도 하건만, 한강의 얼굴에서 표정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 놀랐습니다만.”

“예끼. 어른을 놀리면 못써.”

“...진짠데. 어쩐 일이세요.”

기다리는 답은 들려오지 않고, 엉뚱한 말이 들려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나오거라. 나가서 이야기하자.”

이번에도 답을 주지 않았다. 한강은 미간을 좁혀 앞서 걷는 이건호를 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띠라라, 띠라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

그곳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에 이건호와 한강이 자리했다.

“식전이지? 일단 먹지.”

“......”

아직 말할 생각이 없나 보다. 한강은 말없이 고기를 썰어 입에 넣었다.

우적우적, 비싸서 그런지 역시 맛있다.

“큼, 내 너를 찾은 건 궁금한 게 있어서다.”

오물오물, 고기를 씹은 모습 그대로 이건호를 바라봤다.

이제는 자신의 키보다 작은 그를 보며.

‘위너.’

속으로 웃으며 입안에 있는 고기를 삼켜 배로 보냈다.

“궁금한 거라면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대뜸 찾아와 궁금하게 있다?

그게 뭘까?

“몇 년 전 내게 말한 적 있었지? 자동차 설립을 올해 말 이후로 늦추라고 말이다.”

‘음, 그랬던 적이 있었지.’

“네, 기억해요.”

확실히 그때 그랬다.

그런 어린아이의 조언을 받고 육성은 역사와 다른 노선을 탔다.

‘덕분에 외환위기 부담을 없앴지. 해외에 공장을 설립해, 달러를 모으는 모습까지 취했고. 이제 육성의 시대가 되겠구나.’

육성에 투자할 타이밍을 잡으며 귀는 이건호 회장에게 향했다.

“혹시, 이걸 예상하고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건지 궁금하구나.”

어떻게 대답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고 좋은 답이 될까?

머릿속을 뒤적여 셈을 치렀다.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 볼까? 내게 은연중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지.’

지금 모든 생활과 편의를 육성이 봐주고 있었다.

하나, 그걸 빚으로 남겨두는 것보다 서로 윈-윈 하는 공생관계임을 보여줌이 나중을 위해서라도 좋아 보였다.

“네.”

“...정말이더냐?”

“이미 외환위기는 예고된 거였어요.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언제고 외환위기가 왔을 거예요.”

“왜지?”

이건호의 목젖이 꿀렁였다.

“종합금융사들의 이자 놀이, 고집스러운 고정환율제, 경상수지적자, 역플라자 합의 여파, 미국의 억지스런 이기주의 금융사업 등 이 모든 것들이 국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어요. 끝으로 최근에 터진 한보 사태.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에요.”

“......”

쩌억, 벌어지는 이건호 회장의 입.

이건호는 멍하니 열세 살의 어린 소년을 바라봤다.

“이번 사건으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리라 봐요. 하지만 체력을 갖춘 회장님껜 기회죠. 자동차 사업을 보다 저렴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기회요.”

한강은 빙긋 웃으며 이건호를 쳐다봤다.

이건호는 말문이 막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우리가 꼭 품어야 할 아이로구나.’

이건호의 두 눈동자에 짙은 욕심이 눈가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윤희를 밀어줘야겠구나. 사돈을 만나봐야겠어.’

한강을 미래 사위로 점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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