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35화 (35/237)
  • 35화. 9살, 독점 사업은 이런 것

    육성저택.

    홍라혜가 테라스에 앉아 티타임을 가지며 김광석 과장의 보고를 들었다.

    “그 아이의 자산이 오늘을 기점으로 10억을 넘겨 15억이 됐습니다.”

    한강의 자산은 데이콤의 떨어질 줄 모르는 주가의 힘을 받아 단숨에 10억을 뚫었다.

    “이제 갓 아홉 살이 15억, 이게 가능한 수친가요?”

    홍라혜는 들려온 보고에 마시던 찻잔을 내려 생각에 잠겼다.

    잔잔히 흐르는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사회 물도 제대로 마셔보지도 않은 아홉 살.

    과연 한강과 같은 아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다시는 나오지 않을 기록일 겁니다.”

    없을 거다.

    있다면 사회적 생태계 붕괴를 떠나 많은 이들이 현자 타임을 가지게 될 터.

    최동욱은 속으로 ‘아홉 살이 나보다 재산이 많구나’ 회의감을 느꼈지만.

    “정말 대단하죠?”

    그걸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육성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지만, 이건 정도가 넘었습니다.”

    “정말 탐나는 아이예요.”

    홍라혜는 작게 웃었다.

    “한데, 요즘 그림보다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요? 듣기로 실력도 괜찮다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그러다 요즘 한강의 관심사로 눈길이 갔다.

    알고 구입한 건지 어떤 건지 알지 못했지만, 상당한 고가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그걸 연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 국민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겁니다. 그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맡았습니다.”

    “네?!”

    경기 국민학교 악단은 유명하다. 그런 곳에서 다른 아이들은 제치고 연주라고?

    홍라혜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쪽 음악선생이 강하게 밀어붙였답니다.”

    “이거, 그 아이는 계속 나를 놀라게 만드네요.”

    “행사가 언제라고요?”

    “가정의 달을 맞이해 5월 6일 금요일에 행사를 한다 합니다. 한강의 미술작품과 연주가 있을 겁니다.”

    호오, 홍라혜의 얼굴에 짙은 호기심이 동했다.

    “그날 일정 비우세요. 우리도 경기 국민학교로 갑니다. 그런 좋은 구경을 빼놓을 수 없지요.”

    홍라혜의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

    육성그룹 본사 사옥.

    “백화점 매출이 크게 늘었군.”

    “그렇습니다. 특히, 문구점과 아동복이 크게 올랐습니다.”

    “이유가 뭔가? 다른 때랑 크게 다른 건 없을 터인데.”

    너무도 의아한 상황.

    늘 2~3% 수준으로 증가와 하락을 반복하던 매출이 무려 5%대까지 올랐다.

    너무도 이상한 현상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홍 대표님께서 미는 그 아이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옆에 자리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남자가 입술을 뗐다.

    “그 아이라 하면, 유한강이?”

    “그렇습니다.”

    “왜지?”

    “작년 키드캅 영화를 기억하십니까? 홍 대표님이 투자를 하신.”

    “알지. 근데 그게 왜?”

    키드캅 관객 흥행은 3만 명을 채, 채우지 못했다.

    역사와 달리 분명 성적은 올랐지만, 시대가 제대로 받쳐주지를 못했다.

    덕분에 홍라혜를 위로하던 사람이 이건호였다.

    이건호는 망했다 생각한 영화가 나와 의문을 표했다.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비디오에서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떴다고?”

    “모두 망했다 생각했는데, 비디오가 없어 대여를 해주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아이들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계속하게.”

    “거기에 출연한 한강 군이 입고 있던 옷과 사용한 물감과 팔레트 등에 미술용품 판매량이 크게 늘었고, 아이들이 입고 나온 옷 중, 특히 한강 군이 입고 있던 옷이 아이들 사이에 유행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유행의 선도주자 유한강.

    아이들 사이에 나도는 말이었다.

    “허허, 될 놈은 된다 이건가?”

    이건호 회장은 의외의 보고에 골똘히 생각했다.

    “나도 그 아이를 만나보고 싶어지는군.”

    말들은 많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부인이 전부 알아서 하고 있기도 하였고, 직접 찍은 아이였기에 신경을 끄고 살았다.

    그러나 보고를 듣게 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아이일지.

    “자리를 마련할까요?”

    옆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반응했다.

    “그래 주게.”

    이건호의 고개가 움직였다.

    막내딸도 빠져 있을 정도면, 그 아이에게 뭔가 있으리라 봤다.

    이건호의 시선은 다시 중년인에게 향했다.

    “그럼 그만한 준비는 하고 있겠지?”

    “이번에 그 아이를 위한 광고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걸로 부족해. 물들어 올 때 확실히 해야지. 모든 계열사에 전해. 그 아이를 이용할 광고들 만들라고.”

    한창 뜨고 있는 서태지와 아이돌이 10대들의 뜨거운 팬심을 자극하고 있다지만, 한강은 다양한 연령층에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건호 회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한강도 모르게, 또 다른 인물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지혜야, 오빠 학교 다녀올게. 이따 봐! 다녀오겠습니다.”

    오바바바.

    지혜의 인사를 들으며 등굣길에 올랐다.

    룰루랄라, 어깨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을 춘다.

    “가족은 좋은 것이야.”

    입가가 연일 양쪽으로 찢어졌다.

    “자, 여기 주목!”

    교실로 2학년 5반 담임인 이혜경이 들어왔다.

    “이번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어요.”

    손에 종이 한 움큼이 들려 있었다.

    이혜경의 시선이 한 장소로 향했다.

    그 자리에 뽀얀 피부에 선이 예쁜 아이가 있었다.

    “모두 한강에게 박수.”

    짝짝짝,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혜경은 박수가 끝나가는 시점.

    “한강이가 1학년에 이어서 이번에도 전교 1등을 했어요. 한강아, 성적표 가져가거라. 축하해.”

    발표를 하였다.

    1학년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학생으로 유명한 아이가 이번에도 1등을 차지했다.

    “감사합니다.”

    한강의 키는 이제 150cm가 넘어가는 수준.

    아이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성적표를 건네어 받았다.

    [평균: 100점]

    [국어: 수]

    [산수: 수]

    [사회: 수]

    [영어: 수]

    ......

    모든 성적이 올 “수”, “100점”이라 표기돼 있었다.

    [협동심이 강한 아이입니다. 아이들의 모범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당연한 걸...’

    고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 시험에선 단 한 문제라도 틀릴 수 없었다.

    전생 시절 명문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한강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6일에 축제가 있는 거 알지?”

    네!

    아이들이 외쳤다.

    “음식을 만들어 팔기로 한 사람 손.”

    저요!

    저요!

    몇몇 아이들의 손이 올라갔다.

    “한강이도? 연주도 잡혀 있는데, 괜찮겠어?”

    “같이 하는 거니까 문제없을 거예요.”

    비록 2학년이지만, 아이들의 경제적인 개념을 일깨워줄 목적으로 시행됐다.

    “그래, 그럼 하다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 부르고.”

    “네!”

    한강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경기 국민학교 2학년 5반 담임 교사 이혜경입니다. 따스한 바람이 부는 가정의 달 5월을 기념하여 작은 행사를 열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참여하여 자리를...╝

    “이번에 오케스트라도 한다고? 한강이 네가 거기 나가는 거야?!”

    “...네. 그렇게 됐어요.”

    “피아노 산 지 얼마나 됐다고?”

    “괜찮아요.”

    처음에는 살짝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 그것도 시간이 흘러 생각은 변해갔다.

    ‘당시엔 아름다움을 좇아 헤맸었지.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었어.’

    음악도 단순히 할 줄 아는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즐거웠어.’

    그림을 그리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라고 표현을 한다면, 음악은 지난날을 추억하게 해주어 감성을 이끌었다.

    “연주회 오셔서 꼭 들어주세요. 멋진 연주를 들려 드릴게요.”

    한강은 자신감을 내보였다. 집에서도 치고 있지만, 요즘은 지혜로 인해 학교에서 연습을 하는 편이기에 미화가 한강의 연주를 제대로 들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 아빠랑 같이 가서 울 아들 연주하는 거 꼭 들을게.”

    ‘간단한 동요겠지’ 미화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하였다.

    그저 간단한 연주회라고.

    1994년 5월 6일 금요일, 축제의 날이 밝았다.

    아이들의 복장도 오늘만큼은 자유롭다.

    “떡볶이 드셔보세요! 완전 맛나요!”

    “여기 떡볶이가 더 맛있어요!”

    “김밥 가져가세요!”

    단돈 800원!

    아이들은 저마다 가격표를 적어 책상 앞에 붙여 호객행위를 하였다.

    맛있는 음식의 향이 대기에 퍼졌다.

    “이거 맛있어 보인다. 1인분만 사볼까?”

    30대로 보이는 여성 고객이 앞에 섰다.

    “아줌마! 여기서 사시면 700원에 드려요!”

    그때 한 아이가 크게 외쳤다.

    “오, 그러니?”

    귀가 솔깃한 제안에 고개가 옆으로 옮겨졌다.

    ‘어쭈?’

    옆에서 가격을 깎는 아이의 행동에 한강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매운맛을 보여줘야겠는데?’

    어이없이 가격을 깎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행동인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다.

    “6백 원에 드릴게요.”

    한강도 슬며시 가격을 낮췄다.

    “5백 원!”

    예상대로 아이가 가격을 또 내렸다.

    “저기서 사세요. 진짜 싸네요. 하하.”

    한강은 슬쩍 백기를 들었다.

    “호호, 미안해서 어쩔까.”

    웃으면서 여성은 걸음을 틀어 옆쪽 떡볶이를 사갔다.

    어수선하던 주변이 조용하게 변했다.

    “야, 거기 정말 1인분에 500원이야?”

    “그래, 왜.”

    아이가 배짱을 부렸다.

    지금은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상태.

    한강은 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거기 있는 거 내가 다 살게. 1인분에 5백 원씩 해서.”

    “어, 진짜?”

    “그렇다니까. 너넨 다 팔면 놀 수 있고 좋은 거잖아.”

    “와!”

    “서비스로 떡볶이도 좀 퍼줄게.”

    “그 말 진짜다?”

    “아무렴.”

    “다 가져가.”

    절레절레.

    꼼수에 너무도 쉽게 넘어오는 모습에 고개가 저어졌다.

    “아싸, 우리 1등이다.”

    아이는 건네는 돈을 받고 웃으며 후다닥 자리를 떴다.

    말을 바꿀까 겁났나 보다.

    “쯧쯧, 그게 그리 좋을까. 나영아, 크레파스 줘봐.”

    “이건 왜?”

    나영이가 궁금해 묻는다.

    “가격 바꾸게.”

    “여기.”

    나영이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한강은 은은한 미소를 걸쳐, 종이에 가격을 써 앞에 붙였다.

    [1인분: 1천 원]

    “녀석이 이걸 보면 뭐라 하려나.”

    이겼다며 쾌재를 부르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자, 아이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어? 뭐야. 왜 1천 원이야.”

    그때 밖으로 뛰쳐나갔던 아이가 다시 돌아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도 참, 양반은 아니네.’

    “이건 사기야!”

    “이상한 소리 하네, 얘가. 친구야, 내가 너한테 5백 원에 다 사갔지? 그치?”

    “그랬는데, 뭐.”

    목소리가 크다.

    자신을 방어하고자 할 때, 나오는 본능이다.

    즉, 크게 위축되어 있다는 소리다.

    “그럼 가격을 정할 권리는 내게 있는 거지. 아까 네가 우리 손님 뺏으려고 막 가격을 낮춘 것처럼. 언더스탠?”

    “으... 으...”

    “서비스로 떡볶이까지 가져가서 먹고선. 일로와. 요구르트 줄게. 이거 먹고 할 거 없으면 일이나 도와.”

    “힝...”

    아이가 울먹인다. 요구르트를 주며 여린 속을 달래어 주었다.

    “그거 오늘 네 일당이니까, 잘해야 돼.”

    조금 있으면 연주회 시간, 자리를 떠야 한다.

    “맛있어 보인다. 우리 2인분 줄래?”

    “네! 여깄습니다!”

    8백 원에 팔기로 했던 떡볶이 가격이 1천 원으로 올랐지만, 갑자기 모여든 줄은 좀처럼 줄지 않고 늘어만 갔다.

    “여깄습니다. 2천 원이요.”

    아이들은 저마다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냈다.

    딩동댕동.

    [곧 연주회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연주회에 참여하는 학생은 1학년 1반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때마침 천장과 벽에 붙은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잘 부탁한다. 나 갈게.”

    한강은 주변을 정리하였다.

    “아, 형석아. 장사할 때 함부로 가격 내리는 거 아니다. 그러다 뒤통수 얻어맞고 망하는 수가 있어. 아버지 사업 물려받을 거면 잘 알아둬. 수고.”

    한강은 형석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조언을 해준 뒤 1학년 1반 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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