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34화 (34/237)
  • 34화. 8살, 데이콤 상장

    1993년 7월.

    IOC에서 마련한 강당 안.

    “이제 최우수상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최우수상 손기정 선수의 눈물을 공개합니다.”

    와!

    한강의 그림이 영상으로 띄워졌다.

    사람들은 한강이 그린 그림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번 그림은 손기정 선수의 소망을 그림에 담아 그려낸 작품으로 여덟 살 아이의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당 주인공을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경기 국민학교 유한강!”

    짝짝짝.

    유한강이 호명됐다.

    어느 때보다 박수 소리가 우렁차고 경쾌하다.

    사람들은 앉았던 몸을 일으켜 기립박수를 보냈다.

    저벅저벅.

    잘 차려입은 모습의 한강은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포상으로 상금 5백만을 IOC 위원장님이 전달하겠습니다.”

    짝짝짝.

    또 박수 소리가 강당을 채웠다.

    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가 커다랗게 인쇄된 카드를 가져왔다.

    “축하한다. 한강 군.”

    “감사합니다.”

    위원장의 축하에 한강은 방긋 웃었다.

    “다음으로 감사패를 전달하겠습니다.”

    “응? 감사패?!”

    얘기에 없던 또 다른 상이 생겼다. 한강은 의아한 마음에 시선을 사회자에게 옮겼다.

    한강과 시선을 마주한 사회자는 싱긋 웃고는.

    “감사패는 한국의 전설, 우리의 가슴에 횃불을 지핀 그림 속의 주인공...”

    뭐라고?! 설마...

    “손기정 선수가 직접 한강 군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맙소사!

    손기정 선수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그가 무대 위로 올랐다.

    한강은 얼빠진 얼굴로 바라봤다.

    “생애 소망을 이뤄준 한강 군에게 손기정 선수가 감사패를 전달합니다.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손기정은 도우미 손에 들린 감사패를 전달받아, 한강에게 내밀었다.

    “오늘 일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게다. 정말로 고맙구나. 그림으로나마 나의 꿈을 이뤄주어서.”

    손기정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않으리라, 강하게 다지던 마음은 한강을 본 순간 무너져 내렸다.

    “......”

    한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일본의 악행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의 꽃을 피워준 손기정 선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우리 IOC는 한강 군과 협의 끝에 해당 작품을 손기정 선수에게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아...

    손기정의 입에서 감탄이 터졌다.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 꿈에 바라마지 않던 모습이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손기정의 몸이 무너졌다.

    한강은 조심이 다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반쯤 포기했던 상은 IOC의 목적에 따라 한강에게 지급됐지만, 무수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심어주었다.

    한강은 한 번 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확실히 각인을 시켜주었다.

    ***

    [키드캅 7월 대개봉! 천재 화가 영화배우로 데뷔, 영화 속에서 한리버를 만나보세요.]

    [유한강, 영화 제작에 1억2천만 원 투자.]

    손기정과 맛좋은 음식을 같이 먹고, 기념사진을 끝으로 7월.

    기다려온 키드캅이 개봉을 알렸다.

    [시작하지.]

    [흐압!]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CCTV에 주차장이 찍힌 사진을 부착했다.

    “......”

    극장 안에 자리한 아이들은 긴장하며 손을 꽉 쥐었다.

    [이상 무. 경비실 점검했습니다.]

    영화는 중반부에 치달았다.

    도둑들은 경비원들을 손쉽게 잡고, 경비원들에게 잡혀 있던 아이들은 준호(한강)를 따라 경비실에서 탈출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 도둑들이 백화점을 털러 왔음을 알게 되었다.

    [전화도 안 되고,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도둑을 잡는 수밖에 없어.]

    준호가 비장한 눈으로 말했다.

    아이들은 떨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마침 여기는 백화점이야. 도둑을 잡을 수 있는 장비들을 구할 수 있어. 내가 말한 대로만 해. 그럼 도둑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은 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는 물총과 갖가지 장난감을 이용해 함정을 만들었다.

    [물감이다. 이 물감을 계단에 뿌리자.]

    준호는 문구점에서 가져온 물감을 이용해 도둑들이 이동할 경로에 뿌렸다.

    바닥은 흥건하게 젖었다.

    [준호야, 준비해!]

    돈 가방을 뺏은 아이들이 황급히 뛰어 계단으로 도망쳤다.

    도둑 두목은 아이들 뒤를 쫓아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이 녀석들, 네놈들은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두목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아이들을 따라 어두운 계단을 미친 듯이 내려갔다.

    [어어어어. 크악. 콰당탕탕.]

    하하하.

    두목은 준호가 뿌려둔 물감에 미끄러져 계단을 구르다 밑으로 떨어졌다.

    영화를 보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극장에 퍼졌다.

    [예에!]

    최종 보스인 두목을 잡았다. 돈 가방도 지켰다.

    백화점 경비실과 연락이 안 되어 이상함에 출동한 경찰은 1층에 쓰러진 도둑을 발견하고 본부에 알렸다.

    [으이그. 으휴.]

    엘리베이터와 수영장 각 장소에서 쓰러져 있던 도둑들이 경찰들에 구속된 채 끌려 나왔다.

    도둑들은 아이들을 보며 질린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아참! 오늘 네 생일이었지. 이거 널 위해 그렸어. 늦어서 미안해.]

    도둑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던 준호가 등에 메고 있던 원통을 은수에게 전달했다.

    [준호야...]

    은수가 감격한 얼굴로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도 그런 은수를 쳐다봤다.

    둘의 시선이 교차한 순간.

    [여러분! 준호와 은수가 사랑에 빠졌더래요! 모두 밀어주세요!]

    장면과 함께 아이들의 마지막 웃음으로 끝이 났다.

    “아... 나 낼 학교 어떻게 가냐.”

    첫 개봉일, 덕화와 미화를 대동해 간 극장.

    한강은 상영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리 아들 이제 영화배우 다됐네. 민정이랑 뽀뽀도 하고 말이야. 호호.”

    그런 한강을 놀리는 미화였다.

    “다음에 민정이 집에 데려와라. 이 아빠가 우리 아들 신붓감인지 봐야겠다. 하하.”

    그에 덕화도 합세를 하였다.

    ‘두 번 다시 영화는 안 찍는다.’

    하루 종일 괴롭힘에 시달린 한강은 각오를 다졌다. 다시는 영화 쪽은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고.

    ***

    1993년 8월 초 저녁.

    “아악.”

    방에서 미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강아, 넌 집에 있어. 최동욱 아저씨가 집에 올 거야. 알았지.”

    미화는 고통을 호소하며 119 구급대원의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무사하세요. 엄마.”

    한강은 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무사히 순산하기를 기도하였다.

    “한강아, 진짜 멋지더라. 영화 찍었다고 왜 말 안 했어?!”

    “나도 어제 영화 봤어. 진짜 재밌더라.”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 키드캅 이야기를 하며 엄지를 세웠다.

    “민정 누나 진짜 예쁘더라. 실제로 어때?”

    그중 한 남자아이가 민정을 언급했다.

    아무래도 팬이 되어버린 듯하다.

    “잘 봐줘 고맙다. 민정 누나 예뻐.”

    정신없고 창피함이 밀려오지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봐야 무어 할까?

    한강은 친절하게 아이들의 질문을 다 받아주었다.

    “휴... 힘들다.”

    반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당분간 영화로 시끌시끌할 거 같다.

    “한강아, 나 잠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니,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어여쁜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응, 뭐. 무슨 일이야.”

    교실까지 그리 먼 거리도 아니기에 잠시 시간을 내었다.

    “이거 받아줘.”

    “... 이건?”

    “나 너 좋아해. 답 기다릴게.”

    후다닥.

    리본으로 묶인 선물상자를 건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

    잠시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다, 받아든 선물을 들고 교실로 향했다.

    푸지이임!

    “이게 다 뭐야?!”

    교실에 들어선 한강은 그만 입을 쩍 벌렸다.

    책상과 의자 위로 수를 헤아리기 힘들 선물들이 놓여 있었다.

    “하, 하하...”

    그야말로 선물 지옥이라 할 수 있었다.

    “휴... 아무래도 아저씨께 도움을 청해야 할 거 같네.”

    한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선물을 한쪽에 잘 모아두고 자리에 앉았다.

    ***

    간간이 덕화가 얼굴을 비쳤지만, 미화로 인해 대부분을 병원에서 지냈다.

    덕분에 한강은 최동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기를 얼마 뒤.

    “한강아, 동생이다.”

    작은 아기를 가슴에 품은 미화가 한강 앞에 나타났다. 미화가 조금은 지친, 하지만 행복한 미소를 품고 자세를 낮췄다.

    “엄마. 얘가 내 동생이에요?”

    작디작은 아기가 품에 안겨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예쁘지?”

    앙증맞도록 작고 귀여운 여자아기.

    천사가 따로 없었다.

    “네. 예뻐요.”

    여동생이 생겼다.

    한강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름이 뭐예요?”

    “지혜란다.”

    “와...”

    전생에 여동생이 없던 한강은 눈앞에 있는 동생을 보며 행복감에 젖어갔다.

    “지혜야, 내가 네 오빠야.”

    동생이 깨지 않도록 작게 속삭였다.

    한강은 한동안 지혜를 바라봤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

    12월이 되었다.

    “아저씨, 저 지금 부동산 빼고 자산이 얼마나 돼요?”

    등굣길.

    한강은 통장 잔액을 물었다.

    “통장에 2억 정도 있고, 주식은 수익률 125% 정도 발생해 6억7천 정도 됩니다.”

    반도체, 통신, 건설 등 한강의 종목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육성의 정보력을 이용해, 투자에 나선 최동욱은 한강의 수익률을 힘껏 끌어올렸다.

    “데이콤에 전부 넣어 주세요. 6억 원 중 절반 매도하시고, 데이콤에 몰빵해 주세요.”

    승부수를 던질 시기가 찾아왔다.

    한국정보통신이 보유한 데이콤이 시장에 풀렸다.

    데이콤이 드디어 상장 소식을 알려왔다.

    “그렇게 되면 총 5억입니다. 무리한 투자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다 해주세요. 괜찮으니까요. 그리고 장기간 묵혀 두지 않고 10일 내 고점에서 매도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참았다.

    그간 겪어 온 한강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건 꼭 하고 마는 아이였다.

    무엇보다 투자 센스도 남달라, 아직 손해 본 일도 없었다.

    육성의 정보력을 이용했다지만, 그것도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중간중간 한강의 결정이 빛을 발하기도 하였다.

    매도한 날 신기하게 주가가 급격히 빠졌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고등학생까지 빡세게 돈은 모으자. 그때부터 시작이다.’

    한강은 숨을 죽인 채, 미래계획을 세워갔다.

    앞으로 10년.

    그때까지만 참자.

    ***

    [데이콤 상한가 6% 찍다! 데이콤의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데이콤은 공모가 이후 2배에 달하는 시초가를 시작으로 상한가를 찍었다.]

    [한국통신 주가 11만 원대, 데이콤 기대치 6만 원 넘어...]

    기다리던 데이콤의 상장 소식이 기사에 실렸다.

    데이콤은 기대치 만큼이나 시장에 매물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 거래량은 고작 20주.

    [소액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고작 100만 주에 불과, 유통주식이 적어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되고 있어...]

    “후후, 돈이 아주 굴러들어 오네. 아주 그냥. 크크.”

    신문에 실린 데이콤 기사를 보며 한강의 미소는 점차 짙어져갔다.

    1993년의 마지막 날은 불타는 양봉을 받아들이며 1994년을 맞이했다.

    한강의 나이 9살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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