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33화 (33/237)
  • 33화. 8살, 손기정의 눈물

    국제 올림픽 위원회 그림대회 공모전 심사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람들은 한 장의 그림에 꽂혀 시선을 떼어내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보십니까?”

    [제목: 손기정의 눈물]

    성화봉을 들고 봉화를 향해 달리는 손기정 선수.

    손기정의 얼굴에는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바라던 태극기 달린 옷을 입고 달리는 그의 소망을 이룬 뭉클함이 심장을 울렸다.

    “결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봅니다. 한국에 있어 손기정은 역사이고 전설입니다.”

    “저도 공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그림은 작품성까지 있어요. 저기 보세요. 성화를 보세요. 손기정 선수와 함께 가장 눈에 띕니다.”

    주변을 흐릿하게 그려 손기정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됐다. 두 눈이 향하는 지점엔 불꽃이 자리했다.

    “최우수상은 정해졌다 볼 수 있습니다. 하나, 이건 너무 차이가 심하니... 허허. 다른 건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한강의 실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예전 공모전처럼 의심이고 뭐고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아주 좋은 기회라 생각 듭니다.”

    사람들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중년남성의 입이 열렸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위원장님.”

    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가 현시대 위원장 이름이다.

    위원장의 말에 의문을 느낀 남자가 물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자리를 했을까요? 여러분들만 있으면 될 이번 공모전 심사에?”

    위원장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자신의 속내를 파악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유는 하나예요. 바로 한리버, 유한강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죠. 제가 이렇게 궁금해 한달음에 달려와 심사 자리에 꼈는데, 아직 그림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기다리기 위함이다.

    누가 먼저 대답을 할까?

    “무척 궁금하겠군요.”

    좌측 라인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은 풍만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입술을 뗐다.

    “그렇죠. 자, 그럼 궁금한 상황을 우리가 유도하면 어떨까요?”

    “세계인들의 관심이 이곳으로 모이겠지요.”

    “굿, 맞아요. 사람들의 관심은 위원회에 있어 긍정적 요인이 되어 줄 거예요. 그로 인해 위원회 이미지도 좋아지겠지요.”

    작년에 나빠진 올림픽 위원회의 이미지를 되찾고자 하였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한 방책으로 한강의 그림을 선택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는 이번 기회를 확실히 이용하기로 하였다.

    “해서 말입니다. 저는 이 아이를...”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입에 집중됐다.

    ***

    1993년 여름계획을 짜낼 때.

    전국적으로 한 아이가 뜨거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PBS 그림을 그립시다 방송을 끝내고 1년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도 어린 천재 화가를 잊지 못한다.]

    시작은 가볍게.

    [해당 사진은 다섯 살 시절 한리버(유한강)의 모습이다.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금은 국민학교에 다니는 8살 미소년으로 자랐다. 좌측에 있는 모습이 최근 유한강(8) 군의 모습이다.]

    국민학교 교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찍혔다.

    구령대 위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유한강 군은 최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스포츠 그림대회 공모전에 참여를 하였다.]

    서서히 시동을 걸어 이슈몰이에 들어갔다.

    [금일 IOC에서 공모전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모두의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은 “이보다 훌륭한 작품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이 어린 천재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련한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은 그림의 주인공인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 한강의 작품을 언급하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두 번째 관심 키워드를 공개했다.

    “대체 뭔 그림이길래, 그걸 손기정 할아버지에게 준다는 거지?”

    “손기정 선수 그림이라잖아.”

    “누가 몰라서 물어. 그러니까, 뭘 어떻게 그렸는지 말하는 거잖아. 진짜 궁금하다.”

    신문에는 그간 한강이 그렸던 작품들이 게재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들 대작이었다.

    [역대 최고의 감동을 전해준다. IOC는 해당 그림을 최우수상으로 선정 후 예정에 없던 감사패를 전달하기로...]

    [수상작품은 내일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할 방침...]

    최우수 수상자를 공개하며 기사는 끝났다.

    사람들의 관심은 기사에 이끌려 한강에게 모아졌다.

    부릉.

    기사가 쏟아진 오후.

    경기 국민학교로 고급 세단이 정문 앞에 줄지어 멈췄다.

    “마침 저기 나오네요.”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유독 빛을 내는 미소년에게 향했다.

    “유한강 군?”

    미소년의 정체는 유한강.

    한강은 걸음을 멈춰 사람들을 올려봤다.

    “누구세요.”

    “안녕. 나는 IOC 위원 이현우란다. 너에게 볼 일이 있어 왔는데, 잠깐 시간 괜찮겠니?”

    “IOC?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는데요.”

    IOC라면 짐작 가는 바 있지만, 뒷걸음질쳐 이현우와 거리를 벌렸다.

    “하하, 아주 잘 배웠구나.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네 그림과 관련된...”

    이현우는 한강의 모습에 통쾌하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가 걸음을 좁히려던 차.

    “무슨 일이십니까?”

    앞을 막아서는 남자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누구...시죠?”

    “질문은 제가 했는데, 보호자 대리 최동욱입니다.”

    “아, 그분! IOC 이현우입니다. 이번 공모전으로...”

    “신원을 증명할 거라도 있습니까?”

    이현우의 말이 또 잘렸다.

    최동욱은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거참. 위원회에 전화해 알아보시지요.”

    연달아 말이 막히자 기분이 상했다. 하나, 둘의 입장도 이해는 가기에 답답한 속을 누르고 신원을 확인하라 일렀다.

    최동욱은 사람을 시켜, 위원회에 전화해 확인하라 지시를 내렸다.

    잠시 뒤.

    “미안하게 됐습니다. 요즘 세상이 뒤숭숭하다 보니 이해 바랍니다.”

    이현우의 신원이 확인됐다. 최동욱은 사과를 하고는 한강의 옆에 섰다.

    “이해 갑니다. 워낙 유명하니, 그럴 수 있지요. 제가 온 목적... 이제 말씀드려도 되겠죠.”

    시선을 한강에 맞췄다.

    끄덕.

    “큼, 이번 공모전 최우수로 유한강 군이 수상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입상된 작품을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그에 따른 동의를 구했음 하여 찾아왔습니다.”

    말은 존칭은 하고 있지만, 시선은 한강에게 가 있었다.

    “제 그림을 손기정 할아버지께 드리겠다는 건가요?”

    한강이 즉각 반응했다.

    “그렇단다. 우리 위원회는 너의 그림으로 큰 감명을 받았다. 마음 같아서 이 그림을 위원회 복도에 걸고 싶다만,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하는 것이 맞겠다 싶더구나.”

    이현우는 인자한 얼굴로 한강을 응시했다.

    ‘영특한 아이라지.’

    과연, 아이의 선택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좋아요. 위원회 뜻을 따르겠어요.”

    한강의 입이 열렸다.

    ‘웬일로 위원회가 마음에 드는 선택을 했을까. 그래, 그 그림은 그분을 위한 그림이니까.’

    일평생 처음으로 IOC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또한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말해 보거라.”

    기대 어린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

    “그림을 내어 주실 때, 값진 액자에 넣어 주셨음 해요. 이게 제 조건이에요.”

    노파심도 있지만, 위원회 사람들을 믿지 못한 한강의 제안이었다.

    “응? 음하하. 아주 착한 아이구나. 그래 알겠다.”

    예상 밖의 말에 모처럼 입을 벌려 웃었다.

    아이여서 나올 수 있는 제안이라 봤다.

    때가 타지 않은 순수한 제안에 이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를 전했다.

    “시상식에서 보자.”

    이현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품고 자리를 떴다.

    “아저씨 우리도 가요.”

    “네.”

    한강도 차량에 올랐다.

    목적지는...

    “다 일시불로 결제해 주세요.”

    “이, 이 카드는...”

    피아노, 바이올린 각 한 개를 선택해 카운터 앞에 섰다.

    카드를 받아든 남자는 깜짝 놀라 한강을 바라봤다.

    아맥스 블랙카드.

    세계 1%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카드가 아이의 손에서 나오니 매우 놀란 모습이다.

    “정 의심되면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육성그룹 홍라혜 여사님의 카듭니다.”

    사장의 생각을 눈치챈 최동욱이 발 빠르게 나섰다.

    “하, 하하. 진즉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하하. 하마터면 제가 실수할 뻔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매우 익숙한 아이다.

    귀티까지 철철 넘치는 모습을 보아 재벌 2세, 혹은 3세로 보였다.

    “결제됐습니다.”

    영수증이 출력되며 결제가 떨어졌다.

    “블랙카드를 언제 써보나 했는데, 이제 써보네.”

    블랙카드로 사탕과 과자를 사먹기 애매하여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사용을 해봤다.

    한강은 매우 만족한 마음을 갖고 집으로 향했다.

    “이, 이게 다 뭐예요?”

    집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들어와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다.

    놀란 미화가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홍 대표님의 선물입니다. 음악에 조예가 있다는 걸 알고 선물로 드린 거니 편히 사용하시면 되십니다.”

    사전에 말하고 결제를 하였다.

    이를 설명할 길이 없기에 ‘홍라혜의 선물’이라 말했다.

    “정말 우리 아들 복도 많아. 저런 비싼 것들을 다 받고 다니고.”

    의아한 시선을 던지던 미화의 눈에 안도가 깃들었다. 최동욱의 말은 충분히 신뢰가 갔다.

    “그런데 우리 한강이가... 피아노랑 바이올린을 켤 수 있었던가?”

    안도도 잠시, 미화의 머리로 또 다른 의문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미화의 시선은 한강의 방으로 옮겨졌다.

    ***

    [한국 유한강(8) 군은 “손기정 할아버지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의 모습을 그림에 재현을 하였다.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태극기가...]

    “아...”

    한 노인이 신문을 들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격한 감정이 심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하나님. 부처님. 이런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늙은 몸을 위해 이런 귀한 선물을...”

    1992년 올림픽, 황영조가 태극기를 달고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 “한국 선수가 우승하리라 확신하며 내 여기 왔다.” 그 정도에 만족했다. 그런 줄 알았다.

    하나 그건 아니었나 보다.

    태극기를 달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후배의 모습이 부러웠다.

    조금만 젊었어도, 그랬더라면 자신도 태극기를 달고 뛸 수 있지 않았을까?

    “고맙구나. 고마워.”

    [IOC 그림대회 최우수상 유한강(8), 천재 화가의 실력을 입증하다.]

    신문에 그려진 그림 안으로 젊은 날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성화봉을 들고 달렸다.

    하나, 입은 웃고 있었다.

    이보다 더 행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리라.

    며칠 후, 집으로 IOC 위원이 찾아왔다.

    “어르신을 모시겠습니다.”

    자신을 찾아와 좋은 소식을 알려준 남자,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 그 아이를 꼭 만나고 싶으이. 부탁해도 되겠는가?”

    손기정이 조심스레 물었다.

    “되십니다. 그러기 위해 저희가 모시러 온 겁니다.”

    남자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고맙구먼. 고마우이. 참말로.”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하나, 오늘만큼 그의 마음은 소풍을 떠나는 아이의 마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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