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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31화 (31/237)

31화. 8살, IOC 스포츠 그림대회

1993년 3월.

정부의 정책과 윤달이 겹쳐 분당 아파트 가격이 작년에 비해 1% 이하로 떨어졌다.

덕분에 분당 아파트 청약은 미달돼 빈집이 많았다.

그러한 사정 속에.

“당장 팔 생각은 없으니까, 여기를 싸게 세를 주고 가는 게 맞아.”

한강은 이사를 하게 되었다.

들고 있으면 자연히 오르게 되어 있는 아파트.

돈이 부족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익을 포기하고 매도할 이유는 없었다.

“자, 준비 끝.”

직접 챙길 수 있는 짐을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방이 제법 빵빵하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환생해 내 힘으로 마련한 첫 집. 이렇게 떠나는구나.”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나름 정들었던 집을 떠나니 조금은 아쉬운 생각마저 들었다.

방문을 닫기 전, 다시 한번 방을 눈에 담았다.

그동안 보금자리가 되어 주어 고맙다.

“우리가 압구정에서 살게 될 줄이야. 정말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아직도 얼떨떨해.”

미화는 하나씩 내려가는 이삿짐들을 보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공용욕실에 공용화장실, 냄새 나는 연탄.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웠고, 도둑 들기 참 좋은 집이었다.

당시에는 20평 남짓 주택이라도 들어가 세 식구 오붓하게 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짧은 시간 정말 많은 일을 경험했다.

“샛별아, 오빠 참 멋지지? 이사 가면 우리 샛별이 방도 생기고 좋겠다.”

어느 틈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밖으로 나가는 한강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동동!

든든한 오빠가 있어 좋다며 뱃속 아이가 발로 배를 찼다.

“우리 아들이지만, 대단해. 그 비싸다는 학교도 들어가고.”

예정대로 경기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게 꿈처럼 다가왔다.

“맞아. 그래서 너무 미안하기도 해. 내가 해준 거 하나 없이 혼자 컸어.”

아기 시절부터 범상치 않았던 아들로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개천에서 용이 탄생했다.

“앞으로 더 신경 쓰자. 회사도 그만뒀으니까, 더 잘 챙겨줄 수 있을 거야.”

미화는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주부가 되었다. 임신을 한 까닭도 있지만, 이제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고 싶었다.

“응.”

미화는 무거운 배를 손으로 지탱하며, 덕화의 어깨에 기댔다.

자신은 참으로 행복한 여자였다.

***

경기 국민학교 입학식 날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민석 어머님.”

“어머, 희영이 어머니. 희영이도 여기 다니는 거예요?”

얼굴을 익히 알고 지내던 두 여성은 입가에 미소를 그려 자리에 멈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된 거 같네요. 호호. 우리 희영이가 국민학교에서도 민석이와 친하게 지냈음 좋겠네요.”

희영이 엄마가 미소를 짓는다. 희영이는 부끄러워 뒤로 물러나,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저도 그래요. 아 참. 혹시 그 얘기 들었어요?”

대화를 하던 민석이 엄마가 의문사를 곁들여, 화제를 바꿨다.

가볍던 눈빛에 욕망이 묻어났다.

“무슨 얘기요?”

“글쎄 말이에요, 여기에 육성과 관련된 자제가 입학을 한다지 뭐예요. 그리고 또 누구더라. 그래. 그림을 그립시다 나오고 광고모델로 활동한 아이 있잖아요. 그 아이도 입학한다지 뭐예요.”

“어머, 전혀 몰랐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희영이 엄마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희영이 엄마 정보 늦네. 그렇다니까요.”

“그거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학교 선생 중 한 분이 아버지 지인이세요.”

“아, 그렇구나. 좋은 정보 알려줘 고마워요.”

“우리가 남남인가요. 호호.”

민석이 엄마는 부드러운 미소를 품고 친분을 드러냈다.

“희영아, 그 두 아이들을 만나거든, 친하게 잘 지내야 한다. 알았지?”

오해로 만들어진 두 아이(?) 미래가 보장된 보증수표.

꼭 가까이 두고 지내야 할 아이였다.

아이 엄마는 자녀에게 말해 친하게 지낼 것을 주문했다.

부웅.

여러 대의 차량이 줄지어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무슨 국민학교 입학식에.”

차량에 내려선 아이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강아, 가자.”

코란도에서 내려선 아이는 유한강, 뒤로 미화와 덕화가 내렸다.

“시간이 참 빠르구나. 네가 벌써 국민학생이라니.”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에 시선을 뒤로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한강의 두 동공에 잡힌 여자, 홍라혜가 수행원들과 함께 걸어왔다.

“한강아, 입학 축하해!”

옆으로는 이윤희.

한국으로 넘어와 아직 전학 수속을 밟지 않아, 한강의 입학식에 따라왔다.

“감사해요.”

‘정말이지, 이건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구나’ 낮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웅성웅성.

벌써부터 주변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쪽 세상의 학부모들이 홍라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심지어 뒤로 수십의 수행원을 거닐고 있는 모습은 누가 뭐라 해도.

“호, 홍라혜 대표다. 그럼 저 아이가?”

“민지야, 쟤랑 꼭 친해져야 해.”

“준식아. 절대 밉보이면 안 된다. 알았지?”

육성그룹의 사람, 혹은 핏줄로 오해받기 딱 좋았다.

“그런데, 저 아이... 그 아이 아냐?”

“어, 진짜?!”

“설마, 육성의 사람이... 저 아이야?”

동시에 한강을 알아본 사람들은 퀭한 얼굴이 되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지금껏 두 사람으로 알고 있던 아이가 한 사람이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 사람들.

그것도 잠시.

그들의 눈동자에 탐욕이란 강한 욕망이 사로잡혀 갔다.

탐욕은 자녀들에게 전달되었다.

“누나랑 손잡고 가자.”

“응.”

그들과는 다른 이곳, 윤희는 생기발랄한 얼굴로 한강의 옆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뭐, 어때. 이건 이것대로 좋겠지. 똥파리만 조심하자.’

한강은 모든 걸 내려놓고, 앞으로 내민 윤희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

“저리 좋을까. 막둥이 만들지 않아도 되겠어. 그렇죠?”

“......”

홍라혜는 뿌듯한 시선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힐끔힐끔.

눈동자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강은 미간을 좁혔다 펴기를 반복했다.

“... 입학식을 마칩니다. 학생들은 앞에 대기한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길고 긴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끝나고, 배정된 교실로 향했다.

속닥속닥.

몇몇 아이들이 모여 시선을 한곳에 두고 대화를 하였다.

“엄마가 쟤랑 친하게 지내래.”

“나도나도.”

교실에 도착해서까지 아이들의 관심사는 한강에게 머물렀다.

발그레, 몇몇 여자아이들은 부끄러운 마음에 한강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쩝, 별수 없나.’

동심은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입에 걸쳤다.

“모두 안녕하세요. 전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할 선생님...”

[김문숙]

“...이에요.”

칠판 위로 하얗게 세 글자가 적힌다.

앞으로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선생의 이름이었다.

“모두 잘 지내보아요.”

네!

아이들의 하나 된 목소리가 공기를 탔다.

동심을 잃은 모습이지만, 아직은 때가 덜 탄 아이들의 모습에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킁킁.”

옆에서 들려오는 콧소리.

“... 야, 너 그대로 있어.”

콧물이 아래로 흘러 코 주변이 허옇게 변한 아이의 입 주변을 닦아 주었다.

“흥.”

한강이 짧고 굵게 말했다.

“크흥!”

아이가 눈치를 보다 코를 풀었다.

“... 잘했다.”

진하게 묻은 콧물이 묻은 손수건을 잘 접어 가방에 넣었다.

“......”

“......”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부모들은 황당함에 얼빠진 표정을 짓다,

풋.

“호호.”

“하하.”

누군가의 웃음소리에 순식간에 전염되어 웃음바다가 되었다.

“앞으로 여러분이 1년간 지낼 교실이에요. 모두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길 바라요.”

간신히 웃음을 참고 말을 간신히 마쳤다.

‘쟤구나. 확실히 튀네.’

김문숙은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참 귀여운 아이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매우 의젓한 모습.

앞으로 학교생활이 기대가 되었다.

“모두 돌아가셔도 됩니다.”

안내문을 돌리는 걸로 입학 첫날이 끝났다.

아이들은 부모님 손을 잡고 하교를 하였다.

“이거 내가 주는 선물, 입학 축하해.”

교실을 벗어나 주차장에 다다른 시점, 윤희가 차에서 가방을 꺼내왔다. 감색으로 된 화구가방이었다.

제법 비싸 보인다.

“고마워요. 누나.”

“에헴. 앞으로도 좋은 그림 그려줘.”

쑥스러워 얼굴을 붉히지만, 진심은 확실하게 전했다.

한강은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전했다.

“우리 윤희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거니, 잘 써야 한다.”

“네, 선생님.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학교 생활하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김 과장이나, 최 실장에게 이야기하고.”

“네.”

홍라혜가 웃으며 차에 올랐다.

“한강아, 바이. 담에 봐.”

윤희도 차에 탑승했다.

3월 초 한강의 입학식은 훈훈하게 끝났다.

***

경기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어느덧 6월이 지났다.

“다녀오겠습니다!”

집은 압구정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고, 전과 비교할 수 없을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부릉!

일단, 출퇴근이 공짜.

돈이 들지 않았다.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줄까 해. 자, 주목! 이걸 뒤로 전달. 앞사람부터 한 장씩 가지고 뒤로 넘겨요.”

미술실 시간.

미술 선생인 김가영은 아이들에게 프린트 종이를 나눠주었다.

“IOC 스포츠 미술 대회??”

받아든 종이에 처음 들어보는 대회가 정리되어 있었다.

“이번에 대한체육회에서 88올림픽 5주년을 기념하는 미술대회를 열기로 했어요. 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오늘까지 반장에게 제출하고, 반장은 받아서 나에게 가져와요.”

네!

“자, 수업 끝.”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가 교실로 향했다.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한강은.

“이거 재밌겠는데.”

전혀 새로운 형태의 대회.

진한 호기심이 일었다.

“나도 나갈래.”

“나도 해줘.”

“나도!”

음.

교실로 들어서자, 참가를 하려는 아이들이 반장 나주영 주변에 모여있었다.

‘그때는 하기 싫어 죽으려 하더니, 열심히 하네.’

나주영, 남자아이로 중견기업 대표 아들이라 한다.

당시 한강도 추천을 받아 반장선거 후보로 올랐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난 미화부장 할 거야.’

이 한마디에 후보에서 제외가 되면서 나주영이 맡게 되었다.

“반장, 나도 적어줘.”

“역시 너도 하는구나. 알았어.”

한강을 확인한 나주영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종이에 적힌 한강의 이름에 [០]를 체크했다.

“고마워.”

주영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두들겨주고 지나갔다.

[IOC 스포츠 그림대회 개최]

[총상금: 1천6백만 원]

[최우수상: 5백만 원(1명)]

[우수상: 2백만 원(3명)]

[장려상: 50만 원(10명)]

[대상: 국민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제법 큰 대회야.”

최우수상은 한 명.

나머지는 3명과 10명.

그중 우수상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눠 각 1명씩 선발해 지급하려는 모양이다.

“난이도도 있겠고.”

이 정도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천재니 수재니 하지만, 알맹이는 50대 성인.

아이가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다.

“손도, 팔길이도 키도 이 정도면 예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야. 수상작이 오르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자.”

한강은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해 최고의 걸작을 그리리라 다짐했다.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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