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7살, 역사를 바꾸다
[천재 화가 유한강(7) 미술계 섭렵 이후 향방은 배우의 길?!]
[유한강(7)의 장래가 점쳐지는 가운데, 육성그룹 이건호 회장 안주인 홍라혜 여사가 투자하는 아이들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됐다.]
[해당 영화 제작은 씨 월드 이준 대표가 맡기로 하였다.]
[모든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은 유한강 군의 출연료에 모이면서...]
“아주 돈방석에 앉네, 앉아.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터지고. 누구는 염병.”
해당 소식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무명 배우들에게 한강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다섯 살도 안 됐는데, 가진 재산이 억대로 알려졌다.
그것도 어떤 도움 없이 자신의 실력으로.
“난 이번에 안 되면 진로 바꿀 거야. 우리 집 형편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망할, 나도야. 집에서 그러더라. 이러는 시간에 글자 하나라도 더 보라고.”
둘은 얼굴을 찡그려 암울함에 그늘을 그렸다.
인생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둘의 시선은 다시 화면으로 보이는 어린 천재에게 향했다.
***
쉬이이이이.
비행기가 떠올랐다. 장장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비행기는 활주로로 내려섰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정말 많은 걸 겪는구나.’
이제 나이 일곱 살, 몇 달 뒤면 국민학교에 입학한다.
현 자산은 분당 아파트, 일산 땅, 주식, 현금을 포함해 5억 원이 넘는 자산을 가지게 됐다.
‘내가 생각해도 엽기적이야.’
이 자산은 얼마 가지 않아 큰 폭으로 늘 테고, 역대급 미성년자가 될 터다.
전생과 지금, 어떤 것이 더 대단할까?
5살에서 2년 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5억을 번 것과 성인이 되어 재벌이 되는 것.
‘어이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어. 뭐가 됐든 대단한걸. 후후.’
어느새 게이트에 들어섰다.
“꺄악! 한리버!”
“한리버다!”
그러던 때, 사방에서 한리버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찰칵! 찰칵!
연달아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소리.
이게 뭔 난리인가 싶어 시선을 가져갔다.
“사인 부탁해도 될까?”
“오빠! 팬이에요!”
누나, 이모 심지어 동생으로 짐작되는 아이까지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다.
“하, 하하. 가, 감사합니다. 네, 해드려야죠. 주세요.”
몰려드는 인파에 당혹감도 잠시, 기쁜 마음으로 사인을 해주었다.
‘하하, 이래서 애들이 연예인병에 걸리나 보구만.’
종이를 받아 들어 사인을 해주는 행위 자체가 묘한 짜릿함을 전해주었다. 마약을 해본 적 없지만,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리라 생각 들었다.
“자! 급한 일이 있어 사인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광석은 더는 안 되겠다 결론 짓고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정말 엄청나네요. 한국에서는 그래도 조용했는데.”
10여 분의 씨름 끝에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둘은 진땀을 빼며 미국에서의 인기를 체감했다.
아직도 저 멀리서 ‘한리버!’ ‘사랑해요!’ 외쳐댔다.
“그러게요. 그래도 좋았어요. 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훗.”
이런 기분 처음이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다.
전생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에 행복감을 느꼈다.
“어, PD님?”
근처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었어. 한강.”
제임스 에단이었다.
방긋 웃는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작가님이 같이 가자 했지만, 건강 문제도 있고 집에서 쉬라 했단다.”
밥 로스는 수술을 받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림을 그립시다는 지난 방송을 끌어와 재방송을 하였다.
“잘하셨어요. 그럼, 선생님 집으로 가요.”
한강은 앞장서 걸어갔다.
건강해진 밥 로스를 본다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오! 한강. 우리의 은인.”
공항을 벗어나 도착한 밥 로스의 저택 문을 열자, 밥 로스가 나와 한강을 반겼다.
옆에는 아내 제인이 자리했다.
“환영한다. 한강아.”
제인이 한강을 품으로 끌어안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천사를 내려주셔서’ 속으로 세상에 없는 신에게 감사를 전했다.
“옆에 분은?”
한강과의 재회를 마치고, 그제야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김광석에 대해 물었다.
“저의 보호자이자, 지적 재산권에 대해 도움을 줄 김광석 과장님이세요.”
한강은 짧게 김광석을 소개했다.
“육성그룹 과장 김광석입니다.”
“호, 꽤 유명한 곳에서 왔구만.”
여타 기업은 잘 몰라도 육성은 밥 로스도 잘 안다.
반도체로 유명세를 펼치고 있는 한국 기업.
게다가 한강과 같이 다니던 사람도 육성의 신분이었던 점도 한몫했다.
“들어와요.”
밥 로스는 저택 안으로 둘을 받아들였다.
“나는 한강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렇게 목숨도 건져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됐지요. 제 아내도 그렇고. 해서 난 한강에게 은혜를 갚고자 제가 줄 수 있는 걸 주려 해요.”
밥 로스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계신지요?”
김광석이 조심이 물었다.
“25%를 넘길까 합니다.”
“25%요?!”
기껏해야 5% 미만 대를 생각하고 있던 김광석은 크게 놀랐다.
“마음 같아선 더 주고 싶지만, 이쪽도 사정이란 게 있어서 말이죠.”
밥 로스는 미안한 얼굴로 변했다.
머쓱한 공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저, 선생님. 제가 제안을 드려도 될까요?”
대화의 공백 속에 한강이 끼어들었다.
“그래, 말해 보렴.”
밥 로스가 허락하고 김광석이 잠시 뒤로 물러났다.
“제안을 드리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해당 지분을 정확히 어떻게 나누고 싶은지 알고 싶어요.”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의 역사 중 하나를 너무 늦게 기억해냈다.
‘만약 그 사건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잊고 지나칠 뻔했어.’
밥 로스의 미래와 관련된 사건.
매니저이자 동업자로 활동 중인 월트 코왈스키 그리고 밥 로스의 이복형제.
‘이복형제에게 51% 지분이 문제였지. 이복형제가 코왈스키에게 모든 걸 넘긴 게 시작.’
덕분에 밥 로스는 자신의 상표를 잃어버리고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그의 아들인 스티브 로스의 뒷이야기는 모를 일이지만.
‘암튼, 막을 필요는 있지.’
“음, 일단은...”
고민하던 밥 로스의 입이 열렸다.
“처음엔 내 형제와 아들에게 반씩 주려 했단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확인차 묻길 잘했다.
“그럼 제게 25%를 주시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걸 여쭈게 돼 죄송해요.”
선의를 베푼 이에게 묻기엔 조심스럽다.
“아니다. 음, 형제에게 38% 주고, 아들에게 37%를 주려 한다.”
“......”
참 공교롭다.
왜 저리 반을 나눠 주려는 건지.
한강은 말없이 생각을 가지다, 이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전 옆에 계신 고모도 지분을 가질 권한은 충분하다 봐요.”
시선이 옆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눈을 동그랗게 뜬 제인이 자리했다.
“나를?”
처음으로 고모라 불렀다. 그러한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고 제인은 되물었다.
“네, 선생님을 모시는데 1%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돼요. 저는 이렇게 된 거, 넷이서 공평하게 25%씩 나누면 어떨까 해요. 선생님까지 다섯이서 나누면 더 좋고요.”
이복형제에게 지분을 넘기지 말자 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나가는 행위.
그래서 생각한 부분이 꼭 줘야 한다면, 밥 로스에게 있어 우군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지분을 모아주고, 이복형제에게 돌아갈 지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겠지.’
잔머리가 잘 돌아간 한강이다.
“음...”
“상표는 선생님 거예요. 혹여 다른 사람이 나쁜 의도로 선생님의 상표를 노린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 걸로 봐요.”
“......”
계속되는 한강의 주장에 밥 로스는 말문이 막혔다.
그건 자리한 사람 모두 마찬가지.
한강을 외계인 바라보듯 하였다.
“그게 네 머리에서 나온 거니? 한강...?!”
한 박자, 두 박자 쉬고 밥 로스가 물었다.
영특하고 뛰어난 아이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경제적 지식까지 밝으니 쉬이 믿을 수 없었다.
“신문을 보다 보면 그런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러면 어떨까 제안을 드린 거예요.”
한강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였다.
“믿기지 않지만... 허허.”
평소 한강이 신문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동화책이 더 재밌지 않을까?’
물었을 때 한강은.
‘그건 아이들이나 보는 거라 재미없어요. 그것보다 이게 더 도움이 돼요.’
그 당시 얼마나 황당하던지, 밥 로스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신 생각은 어때?”
“당신의 재산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한강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 봐요.”
“음, 그래.”
밥 로스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좋아, 한강이 말대로 하지. 하지만, 내가 주기로 한 25%는 그대로 두겠어.”
“그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밥 로스는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한강에게 25%를 주고 나머지를 넷이서 나누기로.
“내가 18, 나머지 셋에게 19씩 주고.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 감사히 받을게요.”
반대를 하려다 밥 로스의 눈과 마주한 순간, 생각을 바꿨다.
그의 성의를 받아들여 25%를 가지겠다고.
‘잠시 제가 맡고 있도록 할게요.’
어쩌다 일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를 일이지만, 잠시 가지고 있기로 하였다.
“이야기가 끝난 거 같으니,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을 다물고 상황을 지켜보던 김광석은 ‘대체 난 여기 왜 온 거지?’ 의문은 감춘 채, 서류를 꼼꼼하게 살핀 뒤 마무리를 하였다.
***
서울특별시 씨 월드 종로빌딩 3층 사무실 안으로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가졌다.
“시나리오를 바꾸자고요?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해요, 감독님.”
이준은 그날이 있고 급하게 사람들을 소집해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꿀 것을 주문했다.
“캐릭터 하나만 바꾸면 돼.”
“자칫 전체 내용이 망가질 수 있어요. 조연도 아니고 주인공이라고요.”
하나, 작가의 반발에 바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 들어보지도 않고 격한 거부감을 내보였다.
“지금 우리가 누굴 섭외를 했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을 거야.”
“휴...”
작가는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을 표시했다.
“말씀해 주세요.”
결국, 작가는 한발 물러섰다. 어쩌겠나? 상대는 대표이자 감독인걸.
“땡스. 자 들어보라고. 일단 육성에서 투자를 해줬어. 백화점 촬영도 허락해 줬고.”
“...?”
“장소 섭외는 끝났다 이 말이야. 그런 곳에서 미는 아이가 한강이야.”
이준은 한강을 육성과 연관 지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 아이에게 어떤 관심을 보이는지 잘 생각해 보자고. 그런 아이가 장난꾸러기처럼 방을 뒹굴고 집에서 총 놀이를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차라리 이런 부분을 지우고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로 설정하고, 이 아이가 중심이 되어 사건을 풀어가게끔 고치자는 거야. 바닥에 물감을 뿌려 미끄럽게 만들어 도둑들을 골탕 먹이는 거지. 어때? 이 정도면?!”
꽤 긴 설명이 이어졌다.
“음, 그 정도면...”
“그치?! 내가 이번 일만 끝나면 두둑하게 챙겨줄게.”
그리고 달콤한 당근도 제시를 하였다.
“휴... 이게 끝이에요. 또 바꾸자 하기 없기에요.”
“알았어. 하하.”
턱 막히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
다음 날 오후
“앞으로 도련님께 연기를 가르칠 이영화 원장입니다.”
한강은 최동욱 실장과 함께 연기학원에 도착해, 이영화 원장과 마주 섰다.
“당분간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천천히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 허리를 숙였다.
한강의 첫 연기 생활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