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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28화 (28/237)

28화. 7살, 투자하다

“...뭔 일이지?”

수화기를 내려놓는 김광석 과장은 눈썹을 팔(八)자로 만들었다.

단, 한 번도 이유 없이 끊은 적이 없기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만나서 얘기할 게 뭐가 있으려나?”

자신과 관계된 일이라면, 투자 하나.

그 외 떠오르는 건 없었다.

“하여튼, 알다가도 모를 아이야.”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만나보면 알것지. 일하자. 일.”

이내 생각을 포기하고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책상 위에는 수북이 쌓인 종이들로 수북했다.

오늘도 야근이다.

짹짹.

“한강아 어디가?”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아들의 모습에 미화가 다가와 물었다.

“과장 아저씨 만나기로 했어요. 그 계약서 문제 때문에요.”

“네가 아들이라 참 다행이야. 딸이었음 슬펐을 거야.”

신발을 신고 일어서는 아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겼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다녀오겠습니다!”

“차 조심하고! 아저씨 너무 괴롭히지 말고!”

“네!”

휘잉.

한강이 떠나간 자리에 바람이 불었다.

“진짜 귀염성 없는 아들이라니까. 그렇지. 샛별아.”

미화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나직이 속삭였다.

***

“죄송해요. 늦었죠.”

“아닙니다. 도련님.”

[앞으로 한강 도련님은 육성의 로얄이시다. 실수 없도록 해.]

위에 내려온 지시를 떠올리며 한강에게 고개를 숙였다.

‘태도가 음, 뭐. 저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재벌이 서민들과 비슷한 사고를 가지며 산다 하는데, 그건 그저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일종의 이미지 관리.

절대 서민과는 전혀 다른 타차원의 사고를 지니고 살아가는 게 재벌들 세상이었다.

그런 생리를 잘 알기에 달라진 그의 모습은 그러려니 넘겼다.

“제가 보자고 한 건, 씨 월드 영화제작소에서 저에게 캐스팅이 들어왔어요.”

“캐스팅요?”

“네. 아이들 영화인데, 주연을 해보지 않겠냐 제안이 들어와, 그와 관련된 계약서를 아저씨가 대신 처리해 달란 부탁드려도 될까요.”

육성의 배경은 매우 든든하다.

얻어먹을 수 있을 때, 확실히 얻어 먹는 게 좋다.

“씨 월드라, 처음 들어보는 곳이네요. 조사부터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신생이라 아직 알려진 건 없을 거예요.”

“음, 더 조사가 필요해졌군요.”

“그건 과장님 소관에 맡길게요.”

한강의 자산을 관리하는 걸 떠나, 홍라혜가 지켜보는 아이다. 피해를 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거다.

한강은 대충 굴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여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네.”

“그곳에 투자를 하고 싶어요.”

“네?”

“제가 찍게 될 첫 영화예요. 확실히 하고 싶어요.”

“영화투자는 위험도가 큽니다.”

“제 꿈 잊었어요? 돈을 버는 데 겁을 먹는다면 돈은 도망가요. 도망가기 전에 잡는 게 중요해요.”

돈을 좇는 게 아닌, 그물을 던져 달아나지 못하게 만든다.

“알겠습니다. 그럼, 투자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강을 본 지 이제 2년.

적응을 할 때가 되었지만, 시야로 다가오는 모습과 말들이 서로 매칭이 되지 않았다.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1억 정도면 될 거 같아요.”

92년에 만들어지는 아이들 영화는 저예산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1억 정도의 투자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거다.

“그거면 되겠습니까?”

“네, 출연료도 전부 투자로 돌려서 나중에 받겠다 해주세요.”

거기서 나오는 출연료라 해봐야 얼마 되지 않을 거라 본다.

크게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럴 바에 투자 명목으로 나중에 받는 게 훨씬 이득이 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야기는 끝났다.

“아, 그리고 저 미국에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밥 선생님이 퇴원하는 날에 맞춰서요. 그날 선생님이 저에게 지적 재산권 지분을 주신댔어요.”

그런 줄 알았던 찰나, 황당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알겠습니다. 일정에 맞춰 바로 넘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지요.”

예상도 못 한 카운터 한 방에 김광석은 얼이 나가버렸다.

“정말 빙의로 당한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한강의 모습에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자리를 피한 지 한참이나 지난 한강을 떠올리며.

***

육성문화재단.

“그 아이가?”

홍라혜가 관심을 보이며 눈을 반짝였다.

늘 기대 이상의 일을 해내는 모습은 심심한 날에 재미를 주었다.

“그렇습니다.”

“호, 호호. 정말 매번 놀라게 하는 아이야.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홍라혜가 큰 관심을 보였다. 눈빛에 기대감이 실렸다.

“씨 월드에 대해 알아본바, 이번 영화를 제작하는 건 맞았습니다. 대표이자 감독은 올해 30대로 이번 영화가 데뷔작입니다.”

“흠...”

“어떨 거 같아요?”

“분위기를 볼 때 손해는 보지 않을 거 같습니다. 아역배우들도 제법 괜찮고, 무엇보다 현시대는 아이들 영화가 뜨는 시댑니다. 발상도 새롭고. 재밌을 거 같습니다.”

김광석은 육성의 힘을 이용해, 씨 월드에서 추진하는 영화에 대해 알아봤다.

확인한 결과, 평가는 나쁘지 않다였다.

“그럼, 저도 투자를 해도 될까요?”

“괜찮으리라 봅니다.”

“좋아요. 내일 한강일 이곳에 데려오세요. 그리고 내일 그쪽과 약속을 잡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또 있던가요?”

“밥 로스에게 지적재산권 지분을 받기로 했답니다.”

“그 밥 로스가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얼마 전 병을 알게 돼 목숨을 구한 보상으로 보입니다.”

“좋네요. 주겠다는 건 받아야죠. 그 아이의 것인데요.”

“앞으로도 그 아이가 하고자 하는 건, 조용히 듣고 내게 말해줘요.”

홍라혜는 이번 보고를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받아들였다.

따분하던 일상에 재미가 더해졌다.

***

따르릉.

방 안에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네, 씨 월드 이준입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준이 전화를 받았다.

“...네?!!”

수화기를 든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아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준은 허공에 깍듯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

“네?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계약하기로 했다고요?”

차 안에 탑승한 한강.

김광석은 안전띠를 걸치며, 한강에게 오늘 있을 일들을 알렸다.

“그렇습니다. 대표님께서도 이번 영화에 큰 관심을 보여, 도련님과 공동계약하기로 하셨습니다.”

“...일이 좀 커졌네요.”

“하하, 그런 면이 좀 있네요. 육성의 자본이 들어가면 도련님께도 좋게 작용할 겁니다.”

“...네.”

한강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김광석이 구해온 시나리오 책자를 펼쳤다.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야 하나?’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일을 떠올렸다.

***

끼릭.

차량 한 대가 육성 미술재단이라 적인 출입문 앞에 멈췄다.

“제가 뭐라도 된 거 같네요.”

매번 그렌저를 타고, 기사를 대동하고 다니니.

옛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그때로 돌아온 기분이야. 시대적 배경만 빼면.’

서울이지만 전생의 기억과 비교하면 지금의 서울은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촌스러운 머리부터 시작해, 쳐다도 보지 않던 자동차들까지.

모든 게 유물로 취급할 것들 천지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복도를 지나 홍라혜가 있는 방으로 안내됐다.

한강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 이야기는 들었다. 미리 축하한다 말해야겠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널 보면 내가 진짜 선생님이 된 기분이구나. 호호.”

홍라혜가 가벼이 웃었다.

“선생님이 맞으시죠. 인생 선배님이시기도 하고, 저를 이끌어 주시니 선생님이 아니면 뭐겠어요.”

한강의 말은 청산유수, 민망한 말도 막힘없이 잘 해냈다.

“호호. 정말 네가 다른 사람보다 훨 낫구나. 이리도 듣기 좋은 소리를 입에 기름칠도 하지 않고 부드럽게 하는 걸 보면.”

말재간이 참으로 뛰어난 아이였다. 홍라혜는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에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자고로 선생님은 제2의 부모라 했어요.”

“좋구나.”

한강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연기는 배운 적 있고?”

대화의 주제가 바뀌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송에서 보이는 제 모습이 연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지금 제 모습 자체가 연기 덩이랍니다. 연기 안에 연기를 넣는 것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한강에게 있어 지금의 모습은 연기 그 자체였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아이의 몸으로 생활하는 어른.

한데, 사람들은 이를 천재, 신동이라 불렀다.

착각과 오해를 받아들여진 거짓은 진실이 되어 한강을 천재로 살아가게 하였다.

“호오, 일리 있구나.”

“설사 제 연기가 부족하더라도 큰 영향은 끼치지 않을 거예요.”

“왜지?”

“요즘 나오는 아이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어설프고 대사 톤에 유치한 몸개그가 메인으로 깔려요. 아이들은 대사보다 그런 단순한 몸개그에 재미를 느낄 거예요.”

90년대 초 아이들 영화들이 다 그랬다.

에스퍼맨, 우뢰매, 영구와 맹구가 나오는 모든 영화들은 쿨하게 와이어를 내보이며 어설픈 연기를 하였다.

“호옹, 그래도 연기를 배워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계약이 성사되면, 바로 연기학원에 다녀볼 참이에요.”

미술은 나의 감정을 기술로 승화해 도화지에 담아 사람들에게 보이면 된다.

하나, 연기는 표정 행동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현 아이들 영화를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배움 없이 연기에 임할 생각은 없었다.

“듣던 중 다행이구나. 그건 내가 알아봐 줄 테니, 너는 네 할 일을 하거라.”

한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천재적 기지를 보이는 모습 때문인지 그건 모른다.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내 지켜보마.’

당장은 한강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걸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대화가 끊겼다.

“아, 안녕하세요. 씨 월드 이준입니... 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씨 월드 이준 대표.

그의 눈에 익숙한 꼬마가 비쳤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한강은 그를 대표가 아닌 감독이라 불렀다.

“네가 여기는 어떻게...”

이준은 크게 당황했다. 육성의 투자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로 구면이죠. 일단 여기 앉으세요. 김 과장님.”

“네, 여깄습니다.”

옆에 비서처럼 대기하고 있던 김광석 과장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건넸다.

“시나리오는 잘 읽어 봤어요. 재밌을 거 같더군요. 마침 이 아이가 감독님께 캐스팅이 되었다고요?”

“아, 네... 그런데 둘이 어떤 관계인지...”

“제 제자예요. 매우 아끼는 아이죠.”

홍라혜가 방긋 웃으며 한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강은 그녀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아...”

이준은 이해되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지만, 차마 다른 말은 꺼내지 못했다.

“여기 이 아이와 제가 공동으로 씨 월드에 투자를 할까 해요.”

“...?!”

“이 아이는 1억 원, 제가 5억을 대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선을 한강에게 가져갔다.

“설명은 내가 하지요.”

대답을 바라는 한강을 바라보던 시선은 이내 거두어지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급하게 꺾였다.

“이 아이는 육성에서 후원하는 아이예요. 당연히 육성의 일이기도 하지요.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네, 이해했습니다.”

“여기 한강이가 그러더군요. 출연료는 받지 않고, 출연료까지 투자하겠다고요.”

“......”

정신이 멍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판단을 내리기 위해 정신없이 머리를 굴렸다.

‘대체 이게 뭔 일이야. 그냥 능력 있는 꼬마가 아니라, 재벌과 연관된 아이였잖아. 이건...’

꼭 잡아야 하는 동아줄이 되었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이준은 이내 입을 열었다.

“원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씨 월드에 기회였다.

이준은 자신 있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한장은 한강에게 건넸다.

“사인은 저 대신 여기 보호자 대리로 있으신 아저씨가 해주실 거예요. 아저씨.”

한강은 종이를 옆으로 밀었다.

“출연료는 이천만 원. 꽤 신경을 쓰셨네요.”

한강의 출연료가 이천만 원이 책정됐다. 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다는 의미였다.

“저, 선생님. 이참에 백화점 촬영도 육성백화점에서 하는 건 어떨까요?”

그때 생각났다는 듯, 한강이 입을 열었다.

“백화점을?”

“네.”

“힘들 건 없는데, 왜 그리 생각했지?”

“아이들 영화예요. 시나리오를 보니 백화점에서 도둑을 잡는데, 장난감 매장이 나와요. 육성백화점 상호를 내보이며 장난감과 같은 특별 상품을 홍보하거나 PPL을 한다면, 육성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봐요.”

“호, 그래. 그거 좋구나. 어때요?”

홍라혜가 반색했다. 시선은 곧장 이준에게 향했다.

“아휴, 그렇게 해주시면 제가 더 감사하지요. 예산도 아낄 수 있고.”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흥행을 빌지요.”

“감사합니다.”

1992년 6월. 한강은 7살 나이에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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