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27화 (27/237)

27화. 7살, 복이 밀려오다

분당 아파트.

한강의 집.

“네? 한강이를 거길 보내자고요?”

한강이가 외출한 사이 최동욱 실장이 집을 찾았다.

최동욱은 덕화와 마주 앉아 한강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습니다. 지금 한강 군은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영특한 아입니다.”

한강과 둘이 있거나, 육성가문과 함께 있을 때는 ‘도련님’ 호칭을 사용하지만, 지금처럼 일반인과 둘이 있을 때는 ‘군’을 붙여 대화를 하였다.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성인의 경험은 익힐 수 없습니다. 한데, 한강 군은 신기하게 그 모든 걸 습득하고 있고,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일반 국민학교를 다닌다면 한강 군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겁니다.”

“음...”

“그곳은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의 능력에 맞게 교육과정을 제공합니다. 외국어 교육, 해외교환학습, 1인 1악기, 미술, 수영 등 아이들의 예체능까지. 한강 군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이들이 다니는 곳.

최동욱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무리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그곳은 부자들만 다니는 곳이 아닌지요. 저희가 생활력이 늘었다 치지만, 음... 1년 학비를 감당하는 것도 힘들지 싶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좋은 환경에서 원하는 교육을 자유로이 받을 수 있게 해주면 좋겠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학비만 몇백에서 많게는 몇천.

서민 입장에서 그건 무리였다.

물론, 한강의 정확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르는 덕화였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강 군의 학비는 모두 홍라혜 대표님이 책임져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필요 물품은...”

[실장님, 절대 아빠랑 엄마에게 이 블랙카드 이야기는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절대요.]

꿀꺽.

“한강 군과 상의해 처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순간 한도 무제한 아맥스 블랙카드가 한강의 손에 있다고 말할 뻔하였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저희를...”

“모두 한강 군을 위해섭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는 한강 군을 육성의 미래 경영진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헉!”

덕화는 마시던 물에 그만 사레에 걸렸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육성이 어떤 곳이던가?

대한민국의 재벌 귀족 기업.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실상부 최고의 기업이 육성이었다.

그런 곳에 최상층 자리에 한강을 앉히겠다는데,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거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지정한 학교를 졸업해 사회로 나온다면 한강 군은 인맥은 물론, 앞길이 탄탄해질 겁니다.”

홍라혜는 한강을 아꼈다. 육성의 재원으로 키워 막내딸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길 바랐다.

“...알겠습니다.”

“잘 결정하신 겁니다. 등하교는 저희가 맡아 할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십니다.”

최동욱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큰 문제 없이 이야기가 잘 통해 다행이었다.

“아무쪼록 제 아들, 잘 부탁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최동욱에게 감사를 전했다.

“거참, 한강이 덕분에 별 경험을 다 하는구나...”

딩동.

이제 한숨을 내쉬며 몸을 펴 쉬려는 시점, 벨소리가 울렸다.

“최 실장님이 뭐 놓고 가셨나? 네, 나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현관문으로 향했다.

“실장님 뭐 놓고 가신... 누구십니까?”

밖으로 나가자 최동욱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뵙게 돼 죄송합니다. 저는 다름 아닌, 씨 월드 대표 이준이라 합니다. 영화감독을 겸하고 있습니다.”

“네?”

덕화의 고개가 한 번 더 옆으로 꺾였다.

그림을 그립시다 방송에 이어 광고 모델에 데뷔를 하더니, 이젠 영화사에서 찾아왔다.

“혹, 한강 군 아버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한데 무슨 일로... 제 아들을...”

영화사에서 왜 찾아왔을지는 예상이 간다.

하나, 좀 더 확신을 갖고자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아이들 영화를 제작하게 됐는데, 한강 군을 주연으로 쓰고 싶어 급한 걸음을 하게 됐습니다.”

“...들... 어오시죠.”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다.

이 시각 한강은.

[네가 떠나고 벌써 시간이 이리도 흘렀구나.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 너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시간을 가졌단다.]

“쑥스럽게...”

놀이터 그네에 앉아 앞뒤로 이리저리 흔들며 미국에서 온 편지를 읽었다.

[우리 부부는 너를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네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니 나는 죽을 날을 기다리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지 싶구나.]

편지의 주인공은 미국 병원에 입원 중인 밥 로스였다.

밥 로스는 한강으로 인해 건진 목숨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우리는 수술이 성공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곧 방송에 다시 나갈 수 있게 될 거 같아.]

“다행이네요. 선생님.”

편지로 보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 거 같다.

잘 회복하고 있다 하니, 곧 방송에서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사설이 길었구나. 다름이 아니라, 네게 아주 좋은 걸 주려 한단다. 나는 네게 지적 재산권을 주려 한단다. 이건 우리를 구해준 보답이 될 수 있고, 나의 친구이자 제자인 너에게 주는 선물...]

“...맙소사.”

깜짝 놀랐다.

행복회로를 돌리며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던 두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입은 크게 벌려져 닫히질 않았다.

“이런 큰 걸 내게 준다니...”

밥 로스의 상표권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밥 로스의 가치를 대충 따지면, 매년 수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아주 튼실한 회사였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 생각될지 모르나, 이 브랜드가 죽는 순간까지 간다 생각해 보자.

결코 적지 않은 보상이었다.

“...이거 계속 운이 따르니, 무섭긴 크크. 좋네. 좋아. 짱 좋구나.”

돈은 모두를 웃게 만든다.

한강은 편지를 가방에 넣고 그네에서 내렸다.

이제 집으로 가자.

***

“다녀왔습니다. 음, 그런데 저 신발은 뭐지? 손님이라도 왔나?”

집으로 돌아오니, 못 보던 신발이 보인다.

웅성.

거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강이 왔니. 마침 잘됐다.”

몇 분 전 집으로 들어온 미화가 아들을 맞이했다.

“한강아, 거실로 가봐.”

“네.”

신발을 벗고 발을 거실로 향했다.

처음 보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 사장님, 아드님이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잘생겼습니다. 세상에 이런 외모가 있을 줄이야.”

이준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화면으로 봤을 땐 몰랐는데, 본 순간 아우라가 주변을 감쌌다.

‘이 아저씨 뭐지?’

텐션이 업된 모습에 황망한 시선. 복잡한 감정들이 눈에 녹아들어 있었다.

“하하, 제 어미를 닮아 아주 기똥차게 잘생겼지요. 한강아 뭐 해? 어른을 봤으면 인사해야지.”

아차.

“안녕하세요.”

극렬한 반응에 잊고 있었다.

“그래그래. 네가 나온 방송은 다 봤단다. 아주 대단하더구나.”

그림을 그립시다는 이준도 심심치 않게 보던 방송이었다. 거기에 이어 각종 광고에서 보아온 한강의 모습보다 지금의 모습이 훨씬 빛이 났다.

“감사해요.”

“한강이도 왔으니, 같이 이야기하자.”

한강을 앞에 앉혔다.

“그것도 좋겠군요. 듣기로 한강이가 매우 영특하고 똑똑하다 들었습니다. 지금 보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네요.”

이준은 오늘 여러 번 놀랐다.

보통 일곱 살이라 하면 어리광을 부리거나 어른들 사이에 끼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한데, 한강은 너무도 당연하게 중간에 껴 자리를 잡고 조용히 지켜봤다.

절대 7살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하, 아주 특출난 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보다 신문을 가까이 두고 지내다 보니, 대화도 참 잘 통합니다.”

“아니, 신문을 좋아한다고요? 저 말이 사실이냐?”

이준은 또 한 번 놀랐다.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놀랄 일만 가득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싫어서요. 신문으로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어요.”

한강은 진중하고 점잖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허, 허허. 하하하.”

이준은 어이없어 웃었다. 확실히 일곱 살과 다르다.

어른인 척하는 게 아니라, 한강은 진짜 어른다웠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이크, 내가 말을 안 해줬구나.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란다.”

“영화요?”

“그래, 영화 좋아하니?”

“네, 좋아해요.”

말하면서 눈을 깜박였다.

‘아빠 지인 중에 영화감독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너희 부모님껜 다 말씀을 드렸다만, 내가 만든 영화에 너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을 하고 싶구나.”

“네?! 저를요? 왜요?”

이번엔 한강이 깜짝 놀랐다.

“하하, 당연히 내 영화에 네가 딱이니 그렇지. 그리고 솔직히 너의 영향력을 이용해 영화를 홍보를 하고 싶단다.”

어떻게 말할까 하다, 이준은 솔직하게 말했다.

똑똑한 아이인 만큼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리라 판단했다.

“저, 혹시.”

“그래.”

“영화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아이들 영화라면 몇 개 생각나는 게 있었다.

한데, 딱히 짐작되는 영화가 없었다.

‘영구? 땡칠이? 맹구? 젓가락도사? 홍길동? 우뢰매?’

다양한 영화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키드캅이란 영화인데, 너만 한 아이들이 모여 도둑을 잡는 이야기야.”

“......”

얼었다. 이준을 바라본 자세로.

키드캅, 왜 모르겠나?

자신도 보고 자란 영화가 키드캅이었다.

“왜?!”

한강의 표정에 이준이 물었다.

“아, 아니에요. 거기에 절 넣겠다고요? 저 연기는 해본 적 없는데...”

“연기는 배우면 되는 거고, 방송에서 보니 기본 발성은 되어 있더구나. 그리고 모델 경험도 있고. 난 충분히 네가 할 수 있으리라 보는데. 어떠니?”

“......”

한강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감독의 데뷔작이 되는 영화. 극장에선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93년대는 아이들이 극장을 쉽게 접하기 힘든 시기다.

대신 아이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비디오 대여점에서 대박이 터졌다.

명절 때마다 사골로 우려먹기도 하였으니, 말 다 했다.

‘김민정이 참 예뻤지.’

국민학생들의 사랑을 받아 인기가 높았던 김민정.

그 덕을 톡톡히 치렀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하지 말란 법은 없지? 그렇다면 출연료네. 나를 이용하겠다 말했으니... 그만한 페이는 준비해 주겠지.’

계산을 마쳤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한강의 눈빛이 변했다.

“정했어요. 하지만 당장 여기서 계약은 힘들 거 같아요.”

덕화나 미화나 계약서에 눈이 어둡다.

스스로가 나서도 문제가 있고.

‘김 과장님이 적당해.’

육성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이보다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도 없었다.

“하하, 아주 잘한 선택이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계약은 걱정 말거라. 오늘은 그저 여기 계신 부모님과 너의 의중을 듣고자 온 거니까.”

이준은 정말 기뻤다.

‘이런 외모에 그간 쌓아온 인지도면... 화제성은 확실해. 이 영화 무조건 성공한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무조건 뜨리라 확신했다.

바닥을 짚고 있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한강아, 정말 할 수 있겠어?”

이준이 돌아가고, 덕화와 미화가 앉아 물었다.

“네. 그간 해온 방송 경험이 있는데, 충분해요.”

“그래, 네가 할 수 있다 하니.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덕화는 아들을 믿었다.

‘경기 국민학교에 보내기로 한 건 잘한 선택이야.’

동시에 몇 시간 전, 최동욱과 나누며 결정된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강의 끝 없는 능력을 그에 맞는 환경에서 키워주기로 하였다.

“꼭 좋은 결과를 낼게요. 아빠. 엄마!”

돈 나올 구멍이 생기니 기분이 한껏 업됐다.

이번 영화 반드시 성공해, 돈길을 걸으리라.

10분 후.

“과장님. 저 한강인데요... 내일 시간 되세요?”

한강은 자산관리사 김광석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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