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25화 (25/237)
  • 25화. 7살, 1992년 한국으로 돌아가다

    [천재 화가 유한강(5) 해피아이 아동복 모델 계약! SA급 대우!!]

    [모델계 0.1% 오르다.]

    한강의 해피아이 계약은 국내를 걸쳐 미국에 이르기까지 큰 화제로 떠올랐다.

    해당 소식은 한강과 연결된 모든 이들에게 전해졌다.

    “헙... 그, 그럼 저건...”

    하나는 벙찐 얼굴을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봤다.

    “대체 얼마야...?!”

    그러고는 나직이 속삭였다.

    그림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한 하나였다.

    ***

    북한산성.

    “허허허.”

    “이거 우리가 돈 벌었고먼.”

    “그러게 말이야.”

    “허허,”

    중년인들이 모여 TV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에 혀를 내둘렀다.

    1만 원을 대가로 받아온 그림은 최소 10배로 뛰었다.

    ***

    “우리 손주 훌륭하구먼. 안 그래요. 당신.”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옥순은 TV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남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커험, 다 내 피 덕이야. 우리 집안 피가 예술가 피지. 암.”

    그러자 한열은 조상을 소환해 핏줄의 위대함을 공개했다.

    “아주 그냥 예쁘다, 장하다. 칭찬하면 될 일을. 쯧쯧. 잘 나셨수. 피가 위대해서. 내 피는 안 섞였나.”

    옥순은 남편을 못마땅히 바라보다.

    짝!

    “비켜요. 우리 한강이 보게.”

    엉덩이를 때려 옆으로 밀치고 자리를 차지했다.

    ***

    시끌시끌하던 여름이 지나고 1990년 9월 가을이 시작되는 날.

    “한강이 아빠, 한강이 아빠! 시작했어!”

    얼마 전 분당 아파트로 이사한 미화와 덕화.

    이삿짐을 정리하다 말고 한강의 아동복 모델이 되었다는 소식에 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오, 저기 한강이다! 오!!”

    정규방송이 끝나고 광고 방송이 떴다.

    나는요 정말 멋쟁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꼬마 신사, 꼬마 숙녀 해피아이 해피아이 아동복은 해피아이♬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입니다.

    아동복은 해피아이♬

    “꺄, 어쩜 좋아. 우리 아들 너무 예뻐.”

    “진짜 누굴 닮았는지 아주 옷이 죽네 죽어.”

    “당연히 나지?”

    “...그, 그렇지.”

    “호호.”

    아주 짧은 방송이지만, 한강이 메인으로 잡혀 멜빵바지를 입은 상태로 방송에 출연했다.

    여자아이와 손을 잡고 나오는 모습이 신사가 따로 없었다.

    “아들 보고 싶어.”

    미국으로 당장 달려가고픈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냉혹했다.

    ‘자네만 자식 있어? 나도 있고 여기 있는 사람 다 있어.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상사의 한마디에 계획을 접어야 하였다.

    한강이 보내오는 돈도 있었지만, 그 돈은 오롯이 한강을 위한 돈으로 남겨 두었다.

    딩동!

    그리움에 사무쳐 있는 시각, 벨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급히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현관문으로 나갔다.

    “엄마! 나예요! 한강이!!”

    집으로 한강이가 찾아왔다.

    “아들!”

    미화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한강이 웃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한강은 달려가 미화 품에 안겼다.

    그리운 엄마의 온기가 피부 전체로 전해왔다.

    따뜻하다.

    “한강아,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돌아온 거야?”

    덕화가 거실로 나와 한강을 보며 감격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요. 해피아이에 볼일이 있어서 일 마치고 잠시 들렀어요. 이따 저녁 비행기로 가봐야 해요.”

    잠깐 해피아이 마케팅팀과 미팅을 가지고 다음 촬영은 미국에서 찍는 걸로 최종 협의를 끝내고 집에 들른 한강이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미화는 한강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전부 예쁘게 봐주셔서 힘든 것도 없어요. 오히려 그림만 그리다 보니 이렇게 살도 쪘는걸요.”

    실제로 살이 제법 올랐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미화는 크게 안도했다.

    “엄마, 나 된장찌개 먹고 싶어요.”

    미국에서 지내며 가장 힘든 게 엄마의 된장찌개였다.

    엄마의 손맛에 익숙해진 혀는 된장찌개를 그리워했다.

    “그래, 그래. 엄마가 금방 해 줄게.”

    오랜만에 아들을 봤다는 기쁨에 미화의 얼굴 위로 오랜만에 봄꽃이 만개했다.

    “크아, 진짜 맛나다.”

    구수한 된장 맛이 고춧가루와 어우러져, 그간 잊었던 혀를 자극했다.

    “아들, 더 줄까?”

    보통 아이보다 반 그릇은 더 먹는 한강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아니에요. 더는 못 먹어요. 진짜 많이 먹었어요.”

    혀가 얼얼했지만, 꾹 참고 입안에 감도는 된장의 여운을 즐겼다.

    “엄마, 아빠 저랑 나가요.”

    소화가 적당히 될 시점, 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화와 덕화의 손을 잡아끌었다.

    “왜.”

    “갑자기 무슨 일인데.”

    “제가 얼마 전 말씀드린 것 중, 약속 하나 지키려고요.”

    “약속?!”

    “약속?”

    한강의 말에 떠오르는 의문부호.

    “어서요! 빨리. 저 시간 없다고요.”

    하나, 그건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재촉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손에 붙들려 밖으로 나갔다.

    “한강아, 이 차는 다 뭐니?”

    “...?!”

    일반인은 끄는 것조차 힘든 그렌저가 떡하니 대기해 있었다.

    덕화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육성에서 지원해 준 차예요. 저 요즘 대접받고 지내요.”

    “육성에서...”

    육성이란 말에 둘은 쉽게 납득했다.

    “아저씨 아까 부탁한 곳으로 가주세요.”

    둘의 놀라움도 잠시, 한강의 요청에 차량이 출발했다.

    둘은 한강이 덕분에 호강을 다 한다며, 그렌저 내부를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기 바빴다.

    ‘어떤 표정을 지으시려나.’

    곧 벌어질 깜짝 이벤트에 두 분의 표정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아빠, 엄마. 여기예요. 풋.

    “......”

    “......”

    아들 앞에서 이게 뭔 망신인지, 도착한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주변을 멍하니 보다 아들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부끄러운 마음에 허겁지겁 차에서 내렸다.

    “여기는?”

    정신없이 내려 고개를 정면으로 가져간 순간, 수많은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 대리점이 보였다.

    “들어가요. 아빠 엄마.”

    부모님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왜 온 거야?”

    미화가 물었다.

    “아빠 면허만 있지, 차 없잖아요. 그리고 예전부터 코란도 끌고 싶어 하셨잖아요.”

    돈을 모으고 불리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을 위해 돈을 쓰는 것 또한 중요했다.

    한강은 지난 시간 가져오던 목표를 하나둘 이뤄갔다.

    “아저씨.”

    “준비는 다 해놨습니다. 인적사항과 기본 서류만 제출하면 끝입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한강아...”

    덕화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제 첫 선물이니 조심히 몰고 다니세요. 그리고 저 복귀하면 저 차 타고 함께 여행가요.”

    90년형 코란도 디럭스 6인승, 1천90만 원.

    일시불로 계산했다.

    덕화는 고개를 떨군 채,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들에게 제대로 해 준 것도 없는데,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에게 거액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복잡한 감정이 몸을 괴롭혔다.

    “또 있어요. 빨리 오세요.”

    한강은 또다시 팔을 잡아끌어 건물에 함께 위치한 명품매장으로 향했다.

    “여깄습니다.”

    도착한 곳은 까르띠에 매장.

    그곳에서도 이야기가 끝났는지, 미리 상품이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한강아...”

    이번엔 미화가 놀라 말을 더듬었다.

    “엄마, 제가 말했죠. 결혼반지 제가 꼭 해드리겠다고. 엄마랑 아빠 거예요.”

    흑흑.

    울음소리가 들렸다. 결혼 이후 어떻게든 아들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모든 패물을 팔았다.

    가슴이 아팠지만, 아들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자신도 여자였나 보다.

    미화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꿇고 앉아 펑펑 울었다.

    “한강이 엄마.”

    덕화가 자세를 숙여 미화를 안아주었다.

    손으로 가볍게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들 잘 키웠지.”

    “으, 응. 으응.”

    미화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저 덕화의 품속에서 그동안의 설움을 풀었다.

    “한강아, 정말 고맙다.”

    “전 두 분의 아들이에요. 당연한 걸 한 거고, 꼭 하고 싶었어요. 이제 제가 두 분을 편히 모실 거예요.”

    다섯 살이 말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어울리지 않지만, 덕화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아주 잘 알았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네. 아빠.”

    오늘 하루 매우 유쾌하고 기분 좋은 하루다. 비록 두 분을 울리는 날이 되었지만.

    쉬이이이이이.

    둘을 울린 한강은 2시간 뒤, 미국 비행기에 올랐다.

    ***

    1992년 7살의 해가 밝았다.

    한강의 키는 쑥쑥 자라 135cm가 되었다.

    통통하던 얼굴은 윤곽이 잡혀, 미소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무척 어둡다.

    “오늘은 반드시 병원에 데려가겠어.”

    걸어가는 게 심상치 않았다.

    한강의 눈이 매우 날이 서 있었다.

    “선생님.”

    “여, 왔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밥 로스가 반갑게 한강을 맞이했다.

    “오늘은 꼭 병원 가시죠. 사모님도요.”

    아내인 제인은 9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밥 로스는 95년 림프종으로 삶을 마친다.

    그러한 정보를 궤고 있는 한강은 매번 병원에 같이 가자며 몇 번이고 요청했다.

    하지만.

    “괜찮단다. 우리 몸은 우리가 잘 아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매번 이런식으로 피했다.

    “오늘은 무조건 두 분 데려갈 거예요. 그전에는 한국으로 못가요.”

    그림을 그립시다 방송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문제는 꼭 해결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선생님과 사모님을 이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 죄라고요.’

    “이번만 가시면 두 번 다시 귀찮게 굴지 않을게요.”

    “허허, 거참.”

    밥 로스는 난감한 얼굴로 한강을 쳐다봤다.

    “부탁이에요. 선생님.”

    한강은 허리를 숙였다.

    꼭 가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둘 다 초기에 잡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 병이다.

    초기에 잡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살릴 수 있었다.

    “휴, 알았으니, 이제 일어나려무나. 네가 그러고 있으니, 내가 죄를 짓는 기분이야.”

    “아! 그럼 당장 가요.”

    승낙한 이상 더 미룰 이유는 없었다. 한강은 밥 로스의 손을 잡아끌었다.

    “거참...”

    뒷머리를 살살 긁으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어냈다.

    “여보, 일이 그렇게 됐네.”

    “호호, 참 귀여운 아이예요. 우릴 생각해 그런 거니, 가봐요. 우리.”

    제인은 싱긋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한강아, 같이 갈까?”

    “네! 사모님!”

    “다섯 살이 사모님이 뭐야. 그냥 고모라 부르라니까.”

    “그게...”

    “그래, 편하게 부르련.”

    힘겹게 병원행이 결정됐다.

    애초부터 둘을 따라나설 생각이었기에, 고민 없이 차에 올랐다.

    “음...”

    병원에 도착해 긴 기다림 끝에 검사를 마쳤다.

    의사의 얼굴이 좋지 못하다.

    “두 분 정말 병원에 잘 오셨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길 잠깐, 의사는 크게 안도를 하였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생각과 다른 의사의 이상한 반응에 둘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아내 분은 암초기에 남편분은 림프종 초기임을 확인했습니다. 저 아이가 증상에 대해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할 뻔했어요.”

    진찰 당시 한강은 옆에서 둘의 증상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당연히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신이 공부한 바 있다며 박박 우기는 까닭에 넋 빼고 지켜봤는데,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다.

    둘은 놀란 얼굴로 의사의 말을 듣다, 한강을 바라봤다.

    “휴... 정말 다행이에요, 두 분. 완치가 될 때까지 당분간 일은 쉬세요. 일보다 몸이 먼저예요.”

    한강은 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고맙다. 한강아. 네가 우리 부부를 살렸구나.”

    제인은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진심으로 한강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허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넌 정말 신기한 아이야.”

    밥 로스는 얼마 전부터 병원에 가자던 한강의 모습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두 분은 정말 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분들이세요. 타국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고, 많은 걸 알려주셨어요.”

    둘은 한강에게 있어 은인이었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았던 밥 로스 선생님.

    둘의 운명을 바꿀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밥 로스 림프종 초기 발견, 그의 아내 제인 암 초기 발견.]

    [“한강은 우리 부부의 은인이에요. 그 아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깊은 안식에 들어갔을 거예요.” 한리버(유한강) 밥 로스 부부를 구하다.]

    [PBS 그림을 그립시다는 밥 로스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한리버가 혼자 마지막 방송을 장식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의 마지막 달 방송을 혼자 진행하게 되었네요. 오늘 그림은 두 분이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라는 의미에서 푸른 숲속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를 그려 볼까 해요. 부족하지만, 아주 쉽게 그려 보도록 할게요.”

    북한산을 배경으로 정중앙에 커다란 소나무가 푸른 잎을 둘렀다.

    한강의 손은 붓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되어 그림을 빠르게 완성했다.

    “이 그림은 제가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림 하단에 사인을 하였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한리버.’

    “참, 쉽죠? 지금까지 저 한리버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992년 5월.

    오늘을 기점으로 2년, 모든 방송이 끝났다.

    즐거웠던 미국 생활, 오늘로 안녕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자.

    쉬이이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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