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5살, 돈을 불리다
‘대체 이 아이는...’
전신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다섯 살 아이가 던진 딜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 아이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그 아이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만 도움을 주세요.]
홍라혜의 지시가 떠올랐다.
처음에 아이가 하라는 대로 따르라기에 무슨 말인가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좀 알 거 같았다.
‘보통 아이가 아니야.’
“도련님, 말씀대로 하시죠.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봅니다.”
한강을 지원사격했다.
“아, 아. 음. 네...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 대표님 결재를 받고 와야 할 거 같습니다. 제 권한 밖이라 죄송합니다.”
벙찐 얼굴로 멍때리다 들려온 목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하세요. 결정이 되면 다시 찾으러 오세요.”
한강이 웃으며 여유로이 말했다.
“하하.”
김동진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우리도 가요.”
“네.”
최동욱은 복잡한 시선으로 한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다섯 살 같지 않은 그의 행동들을 떠올리며.
***
쉬이이이이.
“여, 왔는가. 김 과장.”
김동진 과장이 귀국해, 다음 날 아침 회사로 출근했다.
이혁필 팀장이 기쁘게 반겨주었다.
“계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뭐, 왜? 그 돈이면 충분히 대우를 해주는 걸 텐데?”
들려온 보고에 이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잡음없이 성사될거라 믿었던 일이 틀어졌다.
“그게 실은...”
김동진 과장은 미국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상세히 털어냈다.
“허, 그게 정말인가? 육성이라고?!”
“그렇습니다.”
“음, ...이거 골 아프게 됐는데. SA급 대우에 그림을 그립시다에 우리 옷을 1회때마다 입고 나간다라...”
반대로 이번 제안을 거절 시 2천만 원에 광고 한 편.
무척 고민이 되는 제안이었다.
“자네는 어떤가?”
“모르기는 해도 광고 효과로 본다면 국내에 내보는 것보다 해외로 내보내는 게 더욱 큰 광고 효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국내에 한정해 영업을 하느냐?
세계로 발을 뻗느냐?
결국 이거였다.
“1억이라... 1억...”
이혁필 팀장은 팔짱을 끼고 고민을 하였다.
“저, 이건 제 생각인데, 그쪽에서 원하는 걸 시원하게 해주고, 육성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보는게 더 좋은 선택이지 싶습니다.”
미국에서 느끼고 생각한 점을 풀어내었다.
“확실히... 그거라면. 출장 보고서 다시 올려놔. 내 대표님과 다시 이야기를 하고 올 테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는 사실에 이혁필은 고민을 멈추고 다시 대표실로 향했다.
그의 재가를 다시 받아내기 위하여.
***
뜬 따라라 뜬 따라라♬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는 정원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이고, 오랜만일세. 밥 로스.”
콧수염을 위로 올린 노신사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제법 높은 위치 있는 노신사인지, 밥 로스가 예를 갖췄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어 고맙네.”
“별말씀을요.”
노신사는 기쁜 마음을 남기며, 유유히 자리로 이동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안으로 모여들어 자리를 채웠다.
“그쪽 사람은 다 왔나요?”
밥 로스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네, 이쪽은 다 왔습니다.”
“그럼, 시작합시다.”
둘이 사인을 주고받고, 행사 시작을 알렸다.
“저희에게 관심을 주시고 한자리에 모여주어 감사합니다.”
밥 로스는 무대 앞에 자리를 잡았고, 제임스 에단이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제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던 한리버입니다.”
미리 도착해 자리에 대기하고 있던 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한리버, 유한강이에요. 제 부족함이 묻어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합니다. 서로가 만족한 행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이크에 입을 가져가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냈다.
대부분이 할아버지 연령대.
한강을 보는 사람들은 똑 부러지는 말에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준비한 건 총 세 작품입니다.”
체서피크 베이 브릿지 배경으로 그린 작품, 수평선.
뭉게구름과 파도를 그려낸 작품, 구름과 파도.
호수를 중심으로 울창한 나무, 그 위로 지어진 원두막, 숲속의 원두막.
이 세 작품이 앞에 놓여졌다.
“정말 훌륭해.”
“분명 부족한 부분은 보이나, 다섯 살인 걸 감안했을 때 확실한 자산가치가 있는 그림일세.”
“작품마다 무엇을 생각하고 그렸는지 알겠어.”
“아주 개성 있는 그림이야. 그림마다 특징을 아주 잘 살렸어. 대단해.”
그림에 견식이 높은 사람들은 가벼이 그림을 감상하다, 돋보기를 들어 그림을 유심히 살폈다.
모든 채색이 아주 훌륭했다.
결코 다섯 살이 낼 법한 기술이 아니었다.
또한 한강의 미래가치를 따져 작품에 자산으로서 ‘가치’를 매겼다.
“색감이 아주 뛰어나. 밥 로스 자네의 작품과 견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야.”
“감사합니다. 제자이자 동료의 칭찬은 저의 칭찬이지요.”
“허허, 아주 좋으이.”
밥 로스의 말에 노신사는 흐뭇하게 웃었다.
“자네는 얼마의 가치가 있다 보나?”
“제가 어떻게 같은 화가의 가치를 매길 수 있겠습니까. 그저 좋은 값에 가져가길 바랄 뿐입니다.”
솔직한 감성을 전했다.
“좋은 값이라, 알겠네.”
‘천재 화가 고흐’가 그의 머릿속에 자리했다.
198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알리스캉프의 산책로]가 242만 달러, 87년 런던에서 [해바라기]가 2475만 파운드(약 300억), 87년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5390만 달러]에 팔리던 때가 있었다. 최고가의 경신.
노신사는 재밌다는 얼굴을 하고는 곧 시작될 경매에 집중했다.
“먼저 보여드릴 작품은 파도입니다.”
바닷물과 이어지는 거대한 구름.
그 중심을 파도가 채워, 구름과 전쟁을 치르는 듯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였다.
“시초가는 100달러로 시작하겠습니다. 인상단위는 50달러입니다.”
원화로 약 8만5천 원에 경매가 시작되었다.
“200달러.”
적다 느꼈던 시초가는 단숨에 두 배로 올랐다.
그림이 팔리는 가격은 곧 한강의 가치로 평가받게 될 터다.
“200달러 나왔습니다. 250달러 없으십니까?”
제임스 에단은 경매가 올려 불렀다.
“300달러.”
누군가 300달러를 불렀다.
조금씩 열기는 더해갔다.
“1000달러.”
어느 순간 100달러는 1000달러까지 향했다. 그림 한 점에 원화 85만 원까지 치고 올라갔다.
‘한국에서 공식적인 작품이 3500달러에 팔렸다지.’
밥 로스의 옆에 자리를 잡고 있던 노신사는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한강의 작품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4000달러.”
꾹 입을 닫고 있던 노신사가 4배에 달하는 금액을 불렀다.
오오, 사람들의 술렁임이 들려왔다.
“5000달러 하지요.”
누군가 바로 치고 들어왔다. 노신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5000달러 나왔습니다. 단위는 500달러로 올리겠습니다. 5500달러 있으십니까?”
제임스 에단이 주변을 둘러봤다.
“셋을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낙찰받으셨습니다.”
노신사는 포기하고, 해당 그림을 양보했다.
“다음은 숲속의 원두막입니다. 시초가는 100달러입니다.”
낙찰가는 빠르게 정해졌다. 5500달러에 중년여성이 가져갔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던 경매는 잠잠했다. 5천 달러 정도의 가치가 적정가라고 모두들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기다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품명은 수평선. 경매가는 1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단위는 500달러입니다.”
한강이 체서피그 베이 브릿지에서 그린 수평선이 공개됐다.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시초가도 10배로 뛴 1000달러.
지금껏 수평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저건 볼수록 탐이 나는 작품이야. 저 하얀 실선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정이 돼.”
“저 수평선이 모든 걸 조화로이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욕심이 자리잡혀 갔다.
‘최소가 10만 달러다.’
‘20만 달러면 될 거야.’
제각기 셈을 치르며 그림의 가치를 속으로 정했다.
“1만 달러.”
곧장 1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헐...”
경매를 지켜보던 한강은 헛바람을 삼켰다. 그림 한 점이 단숨에 900만 원 문턱까지 오른 탓이다.
“지금까지 벌어들인 게 5천 달러에 5천5백 달러... 900만 원 정도를 벌었어. 저것까지 합친다면 최소가 1800만 원...”
단숨에 아파트 매매가를 벌었다.
“10만 달러!”
생각하는 틈에 금액은 단숨에 10만 달러를 달렸다.
단위는 1천 달러로 조정된 상태.
두근두근. 이쯤 되니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20만!”
그 순간 노신사는 20만으로 끌어올려 배팅을 하였다. 소모전을 끝내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21만 달러.”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1만 달러’를 올려 노신사와 경쟁을 벌였다.
“해보자 이건가. 25만 달러.”
다시 금액은 대폭 뛰었다.
이제 싸움은 둘만의 경쟁이 되었다.
목표로 두었던 예상가를 넘어, 참여를 포기했다.
‘가치는 이미 넘긴 상태. 여기서 더 올리느냐 마느냐 고민이 될 터.’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가치를 지나치게 넘기지 않는다.
이제 서로 간의 눈치싸움이 되었다.
30만 달러는 비싸다.
25만 달러도 모두 비싸다, 과하다 생각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은 최종 낙찰가로 향했다.
“25만 달러, 25만 1천 달러 없나요? 숫자를 세겠습니다.”
노신사의 경쟁하던 남성은 꽤 고심하는 눈치.
“둘.”
“25만 5천 달러.”
결국 5천 달러를 높여 불렀다.
사람들은 모두 해당 남성을 응시했다.
“끌, 어지간히 저 작품이 가지고 싶은 모양이야. 아쉽지만, 여기까지구만.”
끝내 노신사는 경매를 포기했다.
“둘, 셋. 수평선이 25만 5천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제임스 에단이 최종 낙찰가를 부름으로 경매는 끝났다.
“하, 하하. 265,500달러...”
한강은 헤벌레 입이 벌어져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거액을 주고 가져가는 남자를 응시했다.
“대체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껴 2억이나 주고 저 그림을 사간 걸까.”
한강으로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그림은 2억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흐흐, 그래도 그게 어디야.”
의문도 잠시, 한강은 기쁨에 춤을 추었다.
덩실덩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럭키보이.”
낙찰을 받아 그림을 받은 남자는 멀리서 한강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지시대로 한강의 작품을 인수했습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복귀하겠습니다.”
한강을 바라보던 남자는 한강의 옆에 자리한 남자와 눈으로 인사를 하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축하해. 한강.”
“축하한다.”
곧 한강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채워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강에게 인사를 건네고 삼삼오오 자리를 벗어났다.
***
다음 날 한국으로 한 소식이 강타했다.
[최연소 천재 화가 유한강(5) 그림 경매가 미국 달러 265,500불에 경매가 낙찰되다.]
[기네스북 등재, 다섯 살 자수성가, 빈센트 반 고흐의 화신이라 찬사를 보내다.]
[밥 로스는 “한리버(유한강 별명이다)는 천재예요. 전 한리버에게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주어, 다시 없을 미술계 거인으로 거듭나길...”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님, 당장 잡아야 합니다. 모델료 1억을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해당 소식을 접한 해피아이 팀장 이혁필은 대표에게 한강의 소식을 보이며 강하게 나갔다.
“모든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당장 한강 군을 해피아이 모델로 받아들이세요.”
끝내 대표의 지시가 떨어졌다.
급성장하는 유한강을 잡기 위하여, 그날 저녁 김동진 과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