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21화 (21/237)
  • 21화. 5살, PBS 그림을 그립시다 데뷔, 사기꾼이 되었다

    육성 미술재단 대표이사실.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일산과 분당에 투자를 해달라 했습니다. 또한 통신과 인터넷 관련 기업에 집중투자를 해달라는 부탁도 있었습니다.”

    한강의 자산관리사를 맡은 김광석은 미국으로 떠난 한강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표정에는 어이없음, 황당함 등이 머물러 있었다.

    보고를 하고 있음에도 지난 시간이 전부 꿈으로 다가왔다.

    “그 아이가요?”

    이는 보고를 듣던 홍라혜도 마찬가지였다.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부모도 아닌, 고작 다섯 살이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넘어갔다 하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강이의 지난 행적들을 살펴봤는데, 보통이 넘었습니다.”

    김광석은 자신이 조사하고 경험했던 모든 걸 홍라혜에게 보고를 하였다.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 사고보다 위에 있다라... 당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네요.”

    “아주 뛰어난 아입니다. 아니, 그 표현조차 아까울 정돕니다.”

    김광석 과장은 홍라혜가 직접 고용해 키운 인물로 상당히 유능한 인재였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하나같이 무게가 실려 홍라혜에게 전달되었다.

    “육성이 품기에 아주 좋은 아이군요.”

    감탄은 육성에 필요한 인재로 이어졌다.

    “옆에 두시고 키운다면, 육성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이를 김광석도 동의를 하였다.

    “우리 쪽에 괜찮은 부지 중 일부를 떼어주세요. 그리고 그 아이가 필요한 게 있다면 아끼지 말고 지원하시고.”

    육성에서 품을 아이라면, 이 정도 도움은 당연한 것.

    약간의 도움으로 호감을 이끌어 내어, 육성의 사람으로 만든다.

    아주 좋은 그림이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김광석은 홍라혜 여사의 지시를 이행하고자, 보고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저 아이가, 당신이 후원하겠다 하는 아이야?”

    집으로 돌아온 홍라혜는 남편인 육성그룹 총회장 이건호와 자리를 가졌다.

    거실에 비치된 TV 속에 한강의 모습이 보였다.

    “맞아요. 저 아이예요.”

    홍라혜는 남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시선을 TV에 가져갔다.

    [속보입니다. 미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 영향을 끼치는 PBS 그림을 그립시다에 최근 이슈로 떠오른 유한강 어린이가 캐스팅되었습니다. 유한강 어린이는 다섯 살이란 나이에 이미 수준급 실력을 드러내...]

    TV에는 한강의 모습과 한강이 그간 그려온 그림들이 순차적으로 나열됐다.

    크레파스로 그린 가족 그림.

    홍라혜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공모전 작품과 오일 파스텔로 그린 홍라혜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정말 대단하군. 저게 다섯 살 아이의 작품이라. 허허.”

    이건호는 안경을 고쳐잡고 TV로 시선을 고정하고는 고개를 앞으로 가져갔다.

    자세히 보기 위함이다.

    “그쵸. 그러니 밥 로스가 직접 두 발로 찾아와 데려갔죠.”

    “어떻게 할 생각이야?”

    “우리 사람으로 만들려고요. 마침 윤희와 나이 차도 크게 나지 않고, 옆에 두면 어떨까 싶어요.”

    “그래서 윤희를 미국으로 보내, 저 아이를 윤희와 살게 한 거군.”

    대충 상황을 판단한 이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겠어.”

    “찬성한 거죠?”

    “저런 뛰어난 아이를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일이지. 다섯 살에 영어까지 잘할 정도면 이미 타고난 건데, 입증된 인재를 놓칠 수야 있나.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고마워요.”

    남편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이제 정말 거칠 것이 없었다.

    홍라혜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내려갔다.

    ***

    “자, 시작합니다. 셋, 둘, 하나. 샷.”

    PD의 사인이 떨어졌다.

    카메라가 밥 로스를 향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밥 로스입니다. 오늘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친구를 이 자리에서 소개를 시켜주려 합니다.”

    밥 로스의 소개가 이어졌다.

    “그 전에 그 친구와 있었던 일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전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한국에 갔었고, 구애를 했습니다. 정말 힘겨운 여정이었죠.”

    밥 로스는 약간 과장을 섞어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어떻게 됐냐고요? 끝내 미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지요.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한강이지만,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이벤트를 마련하였다.

    “우리는 짧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했습니다. 체서피크 베이 브릿지로 향하는 길, 우리는 그림을 그렸죠. 왼쪽이 제가 그린 거고, 오른쪽이 친구가 그린 거예요.”

    아주 쉽게 그려낸 하늘 아래, 뻗어 있는 바다. 그 사이로 보이는 수평선을 설명하며 밥 로스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대단하죠. 이 그림 제가 사고 싶을 정도예요.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을 불러 볼 겁니다. 모두 기쁘게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리버, 유한강입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어둑한 방 아래 조명이 밝혀졌다.

    “안녕하세요. 한리버 유한강입니다.”

    처음 한리버란 별명을 들었을 때, 한강은 크게 반발했다.

    세상에 사람을 하천이라 부르는 게 어딨냐고!

    하지만 제임스 로딘의 한마디에 한강은 입을 닫고 수긍하고야 말았다.

    [한강이라는 이름보다, 한리버의 별명이 사람들 뇌리 남기기 더 쉬울 거야. 그렇게 되면 너의 이름은 빠르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겠지.]

    이 방송에 나와야 했던 이유 중 하나.

    그건 몸값을 불리는 데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야 하였고, 그러자면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을 짓는 게 중요했다.

    썩 내키지 않지만, 방송 이름은 한리버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한리버 유한강이에요. 오늘부터 밥 선생님과 이곳에서 함께 방송을 하게 됐어요. 부족하더라도 웃음으로 대해주셨음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한강은 최대한 예를 갖춰,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단어를 선택해 말하였다.

    “우리 한리버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럼, 소개는 이쯤하고 그림을 그려 볼까요. 오늘은 새 친구가 온 기념으로 그림을 아주 쉽게 그려 볼 거예요. 시작하죠.”

    정면을 주시하던 밥 로스의 시선은 캔버스로 향했다.

    한강도 캔버스로 시선을 옮겼다.

    “한리버는 제가 그리는 걸 따라 그리게 될 거예요. 아주 운이 좋은 친구예요. 하하.”

    앞으로 한강은 방송시간에 밥 로스가 그린 걸 따라 그리게 될 거다.

    교육 방송에 맞게끔 방송을 하기로 사전에 합의를 하였다.

    “날이 더우니 바다로 가볼까요. 오늘의 색은 화이트 블루 블랙 엘로우가 레드가 될 거예요. 오늘은 다른 날과 조금 달라요. 옆에 있는 친구의 팔이 짧아서죠. 하하. 먼저 파란색을 붓에 충분히 묻혀 하늘을 그릴 거예요. 다른 날보다 작은 하늘이지만, 행복할 겁니다.”

    1인치 붓을 팔레트 위에 있는 파란 물감을 푹푹 찍듯이 묻혀 캔버스로 가져갔다.

    늘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며 하얀 면에 하늘부터 담았다.

    “어렵게 그리지 마세요. 저처럼 쉽게 그리세요. 어때요. 참 쉽죠?”

    위아래 좌우로 생각 없이 쓸고 지나가는 자리에 파란 하늘이 생겼다.

    “하늘이 되었어요. 저 아이의 캔버스에도 하늘이 빠르게 완성이 되어 가네요. 어때요? 한리버.”

    “참 쉬워요.”

    저도 모르게 원치 않은 말을 하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인지하고 있지 못한 모습이다.

    “그렇죠. 자, 그럼 구름을 만들어 볼까요. 일단 사용된 붓에 묻은 물감을 없애주세요. 그리고 충분히 털어주세요.”

    브리쉬클리너에 기름을 분해하고 마른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마른 붓으로 주변을 가볍게 문질러 주세요. 하얀색 면이 파란색과 만나 파란 구름이 될 거예요. 막 문지르세요.”

    밥 로스는 열심히 문질렀다. 정말 그림을 대충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약간의 시간이 지나는 순간...

    “화이트를 묻혀 이 선에 맞춰 과감히 칠하세요. 어렵게 칠하시면 안 됩니다. 쉽게 칠하세요. 저 친구처럼요. 참 쉽죠?”

    “네.”

    그림은 어느 순간 거대한 구름 한 개가 뚝딱 만들어지고 아래로는 거품을 일으키는 거대한 파도가 그려졌다.

    “여기는 밝게 갈 거예요. 이곳에 그림자를 만들어 문질러 주세요. 자 보세요. 구름이 파도와 만나 하늘로 이어졌어요. 좋아요. 거의 다 됐어요. 2인치 붓을 들어 부드럽게 원형으로 붓질을 해주면서 조금 어두운 색과 섞어주세요.”

    작은 원형과 큰 원형을 그리듯 일정한 방향으로 붓질을 하였다.

    단순한 붓질은 거칠던 그림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며 입체감 있게 바꿔나갔다.

    “이곳에 사인을 하면, 완성이네요. 저 친구도 완성했네요. 그럼 같이 자신의 그림에 사인을 하는 걸로 오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강은 뿌듯한 눈을 화면에 보내며 배꼽 인사를 하였다.

    둘의 첫 방송이 끝났다.

    ***

    [대한민국 천재 화가 한리버, 유한강(5) PBS 그림을 그립시다 첫방! 유한강(5)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려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밥 로스는 그림을 그리다 유한강(5)에게 “하늘이 되었어요. 저 아이의 캔버스에도 하늘이 빠르게 완성이 되어 가네요. 어때요? 한리버.”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유한강(5)은 “참, 쉬워요.”라는 기만성 대답을 하였다.]

    [천재의 멋진 데뷔전, 화려하게 끝내다. 밥 로스와 함께 그린 그림이 화제로 오른 가운데, 재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어라, 이거 자네 아들 아닌가?”

    신문을 보던 중년인이 신문을 펼쳐 보이더니, 앞면에 뜬 사진에 안경을 고쳐 쓰며 옆에 자리한 덕화에게 물었다.

    “어, 하하. 맞아요. 제 아들이에요.”

    “세상에... 진짜?!”

    중년인은 깜짝 놀랐다.

    PBS, 그림을 그립시다는 TV를 잘 안 보는 중년인도 알 만큼 무척 유명한 프로였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고생길 폈구만. 듣기로 최소 출연료가 150달러는 받을 거라 하던데. 좋겠어. 다섯 살에 벌써 돈 벌고... 내 자식놈은 대체 언제 효도하려나.”

    한강은 공장에서 제법 유명하였다. 오죽하면 사장이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며 농을 할 정도로 한강의 인기는 상당했다.

    그런 아이가 이제는 방송에 출연해 세계에 얼굴을 알리고 있으니, 부러움과 놀라움이 교차했다.

    “이런 큰일이 있는데, 말도 안 하고 말이야. 아, 이대로 못 넘어가. 오늘 자네가 한턱 내게. 아들도 돈 벌고 제수씨도 돈 벌고. 여기서 자네가 가장 부자야.”

    “하, 하하. 좋아요. 제가 오늘 삼겹살 쏩니다! 가죠.”

    오늘만큼은 덕화도 마시고 싶었다. 힘들어서가 아닌, 행복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서.

    ‘미안해요. 계장님. 저 곧 회사 그만둬요.’

    속마음을 숨긴 채, 덕화는 손을 올려 외쳤다.

    “오늘 제가 쏠 테니, 모두 한잔 걸치시죠!”

    ‘장하다, 내 아들. 저 신문은 가져가 스크랩을 해놓자.’

    한강이가 있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든든한 덕화였다.

    ***

    XX 중학교 미술 시간.

    “자, 오늘 주제는 자유롭게 정해서 그리면 된다. 2시간 내 못 그리면 숙제니까, 열심히 그리도록.”

    미술 선생은 아이들의 준비물을 검사한 뒤, 그림의 주제를 말하고는 걸음을 움직여 교실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야, 그게 그림이냐?”

    “나랑 같은 새끼가 잘 그리는 줄 아네.”

    “내가 어제 EBS 보면서 배웠다고. 잘 봐. 내가 하는 걸.”

    짝꿍의 그림을 보며 키득키득 웃던 남학생은 팔레트 위에 물감을 뿌리고 붓을 들었다.

    허리를 펴고 어디서 본듯한 행동을 취했다.

    “붓에 있는 물기를 싹 제거하고, 물감을 툭툭 치듯이 묻혀. 그리고 이렇게 그리는 거야.”

    그 행동은 밥 로스가 늘 해오던 행동이었다. 그럴듯하게 자세를 잡은 남학생은 붓을 도화지에 찍듯이 채색을 시도했다.

    “크크크크.”

    동시에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앉은 학생은 배꼽이 빠지려 하며 죽을 지경에 처했다.

    “어, 이게 아닌데. 분명히 이걸 이렇게 툭툭 치면 나뭇잎이 그려졌는데... 이상하다. 분명 쉬워 보였는데... 악! X발, 망했다.”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갈수록 상황은 악화만 되었다.

    도화지는 점점 물감에 젖어 흐물거리다 끝내 찢어지고 말았다.

    남학생은 크게 좌절했다.

    “네가 그럼 그렇지. 그거 보고 아무나 다 따라 하면 화가라는 직업이 왜 있냐? 고맙다. 덕분에 나보다 네가 꼴통임을 알게 됐다.”

    자신감은 곧 자괴감과 절망으로 바뀌어 고개는 아래로 떨어졌다.

    자고로 친구의 좌절은 곧 자신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사기꾼 새끼들. 쉽긴 뭐가 쉬워. 개뿔이...”

    당사자는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남학생은 낮게 중얼거리며 밥 로스를 욕했다.

    그리고...

    “그 애새끼도...”

    한강도 희대의 사기꾼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일들은 전국에 자리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

    ‘사기꾼 놈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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