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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7화 (17/237)
  • 17화. 5살, 육성 미술재단 홍라혜

    “캐스팅이요? 제 아들을요?!”

    불안감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 유명한 밥 로스의 방송, 그림을 그립시다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기쁜 일이지만, 머리는 그러지를 못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화는 덜컥 겁을 먹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머님도 아시겠지만, 이건 다시 없을 기회입니다.”

    통역사는 둘의 사이에 껴 열심히 통역해 서로의 대화를 전달했다.

    ‘그런데 저 꼬마는 왜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지?’ 꼬리표를 머릿속에 달았다.

    “저는... 전...”

    미화는 한강의 손을 꽉 잡았다.

    아들을 몸 뒤로 보내 거리를 벌렸다.

    “아드님께는 상당한 스펙으로 작용될 거고. 여기 밥 로스 작가님과 같이 방송을 한다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고, 미래를 보장받게 될 겁니다.”

    이보다 더한 영광이 또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싶어 하는 세상에, 한강에게 있어 꼭 잡아야 하는 기회였다.

    “......”

    “한국의 돈 좀 있다 싶은 부모들은 자녀들을 일찍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시키기 위함과 스펙을 쌓게 만들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절대 무시 못 할 겁니다.”

    자녀의 사교육비만 하더라도 엄청났다. 특히,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교육이라면 더욱 많은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한강인 다릅니다. 방송에 출연만 한다면 모든 생활비는 PBS에서 지원을 받게 될 것이고, 회당 출연료를 받게 될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작품과 마주하게 되며 일반 아이들보다 시야가 넓어지게 될 겁니다.”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에 에단은 더욱 강하게 나갔다.

    현실에 벌어지고 일들을 끄집어내어 설득에 나섰다.

    “아직 다섯 살이에요. 어린아이를 어떻게 그 먼 타국으로 보내나요.”

    하지만 미화의 생각은 생각 이상으로 단단했다.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 미화에 모습에 제임스 에단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고 아들의 성공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미화는 한강을 위험에 노출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쩐다...’

    그러한 미화의 모습에 한강은 무척 난처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미국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이만한 기회는 제임스 에단의 말대로 다시 찾아오기 힘든 역대급 기회임이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 근질거리는 입을 힘겹게 참아냈다.

    ‘엄마의 마음은 잘 알아. 그렇지만, 절대 놓칠 수 없어. 일단 시간을 들여 설득을 하는 수밖에 없겠지.’

    어린아이의 몸은 모든 부분에 있어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

    “당장 이야기를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애초부터 바로 수락하리라 보지 않았다. 지역을 옮기는 것도 아닌, 타국으로 이동하는 일.

    일반적인 부모 입장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고 생각이었다.

    “저희는 일정이 있어 오랜 시간 한국에 머물지 못합니다.”

    방송 일자는 맞춰야 하기에 이것도 간신히 시간을 빼내어 온 것이다.

    한강이가 아닌 다른 아이였다면 다른 사람을 보냈을 일이나, 이번 섭외는 자신이 꼭 하고 싶었다.

    “그런다 해서 제 생각이 바뀌지 않을 거 같은데,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하지만 미화의 생각은 너무 단호했다. 좀처럼 의견을 좁힐 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뵐 때, 그때도 지금과 같다면 포기하겠습니다.”

    제임스 에단은 한발 물러섰다.

    미화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를 하기에, 그때도 지금과 같다면 더는 붙잡지 않기로 하였다.

    “제 뜻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제임스 에단의 입은 더는 열리지 않았다.

    “헤이, 내 말은 통역하지 말아요.”

    타이밍을 재던 밥 로스가 슬쩍 끼어들어 통역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보아하니 엄마 쪽은 영어를 못하는 눈치.

    하나, 아들은 달랐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자신과 소통을 하는 데 장애가 없었다.

    밥 로스가 한걸음 다가와 다리를 굽혀 입을 한강의 귀에 가져가 속삭였다.

    “이대로 여기서 멈춰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미국으로 오거라. 내가 가진 모든 걸 너에게 전수해 주겠다.”

    “......”

    한강은 고개를 들어 밥 로스를 바라봤다.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미화의 눈치를 보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훗, 굿. 미국에서 기다리지. 에단 우린 이만 가지요. 내 볼일은 끝났습니다. 저 꼬마는 반드시 미국으로 올 겁니다.”

    밥 로스는 확신이 깃든 음성으로 말했다.

    한강은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천재는 천재가 알아보는 법.

    눈이 말하고 있었다. 꼭 자신에게 올 거라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뵙지요.”

    제임스 에단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작별을 고했다.

    5분 정도 지난 시간, 둘의 모습은 시야에서 벗어났다.

    “한강아, 우리도 가자. 너무 늦었네. 서두르자.”

    생각에 빠져 잠시 멈춰 서 있던 미화는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한강의 손을 붙잡고 은행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하지 말자. 한강이는 절대 안 보내.’

    오늘 일은 잊기로 하였다.

    “엄마, 그런데 통장은 왜 챙기라 그랬어요?”

    은행에 도착해 통장을 내밀며 엄마에게 물었다.

    한강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우리 한강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

    “음...”

    아리송한 수수께끼 같은 물음.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 꾹 누르고 눈을 위로 올리며 생각했다.

    ‘뭘까? 은행, 통장.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게 있던가? 뭐랑 관련이 있는 거지.’

    지금껏 딱히 뭐가 좋다 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미래를 위해 착실히 준비해 나갈 뿐, 그 외 다른 건 관심에서 배제했다. 딱히 돈 나올 구멍도 없었고.

    한강은 동그란 두 눈을 미화에게 보냈다.

    “호호, 누굴 닮아 이리도 예쁠까.”

    아까의 일은 잊었는지, 미화는 한강을 꼭 껴안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엄마, 제발... 이건 좀.’

    한강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아들, 이따 너무 놀라지 말기. 알았지?”

    미화는 그것도 모르고 곧 보게 될 아들의 반응을 떠올려 희미하게 웃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얼굴에 행복감이 묻어났다.

    ‘진짜 뭐지?’

    한강은 아직 시청에서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해당 기사가 신문에 실리지 않은 탓에 한강이 알기란 무리가 따랐다.

    한강은 궁금한 시선을 유지한 채, 시선을 창구에 고정했다.

    타르르르.

    찌잉, 찍.

    통장이 기계 안으로 들어가, 숫자가 찍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제법 길었다.

    “이상하다? 내 통장에 정리할 게 있었나?”

    한강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최소한 자신이 알기로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지갑에서 돈을 꺼낸 모습은 보지 못했다.

    눈썹이 꿈틀거렸다.

    헙!

    창구에서 여직원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다.

    한강의 시선은 자연히 그쪽으로 옮겨졌다.

    “죄송합니다. 여깄습니다.”

    여직원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하고는 통장을 건넸다.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이 장면을 지켜본 한강은 더욱 짙은 의문에 휩싸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아들, 이거 펼쳐봐.”

    미화는 건네받은 통장을 확인하고는 뿌듯함이 깃든 눈으로 한강을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서서히 기대로 얼룩져갔다.

    “네, 음.”

    통장을 받아든 한강은 대체 뭣 때문에 그런 건지 싶어 즉시 통장을 펼쳤다.

    “음... 응? 헉!”

    통장을 펼친 순간 말도 안 되는 숫자가 종이에 찍혀 있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생에서는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얼떨떨한 정신을 부여잡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엄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총 1억 260만 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 아들 참 똑똑해. 숫자도 다 볼 줄 알고. 시청에서 우리 아들한테 미안하다고 용돈을 보내왔어.”

    미화는 보상을 용돈으로 표현을 하였다.

    아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한 표현이었다.

    “아...”

    그제야 입금자명이 눈에 들어왔다.

    통장에 찍힌 돈이 어떤 성격의 돈인지 알 수 있었다.

    “후후, 놀랐지. 아들!”

    아들에게서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자 미화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아, 이 돈을 부동산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한강은 몹시도 안타까운 감정을 두 눈에 담았다.

    “와! 돈 왕 많다. 너무 좋아요!”

    하지만, 한강은 속마음 감추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호호, 좋지.”

    “네!”

    ‘조치를 취해야 해.’

    미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한 이상 일주일 내 엄마를 설득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 전에...

    ‘1억에 해당하는 돈을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자. 찾아보면 좋은 수가 생길 거야.’

    지금은 조용히 있기로 하였다. 맑게 웃는 엄마의 모습을 망치기 싫었다.

    “아들, 엄마가 오늘 아들이 좋아하는 거 쏜다! 떡볶이에 야끼만두 먹으러 가자!”

    미화는 기분이 좋은지, 한강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속마음을 꽁꽁 감춘 채.

    ‘오늘은... 가만히 있자.’

    한강은 이때까지 몰랐다. 생각도 못 한 원군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

    한강이 잠든 저녁.

    “오늘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응.”

    미화는 덕화를 조용히 불러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정말 밥 로스였어?”

    “응, 확실했어. 정말 놀랐어.”

    “음...”

    덕화는 크게 고심을 하였다.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한강인 뭐래?”

    “아직...”

    “한강이 성격 잘 알지. 영특한 애야. 그냥 넘겼을 리 없어.”

    “나도 알아. 하지만, 한강인 아직 다섯 살이야. 그런 아일 어떻게 보내.”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미화는 덕화로부터 엄한 말이 나오기 전에 강하게 나갔다.

    “사실은 회사 사람한테 좀 물어본 게 있었어. 고민하다, 이왕 이리된 거 말할게. 미술로 크게 성공하려면, 유학은 필수래.”

    덕화의 눈이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래서 저 어린아이를 혼자 보내겠다는 거야? 지금?!”

    미화가 격렬하게 반응을 하였다.

    “현실을 보자, 우리. 지금 우리 형편에 한강일 유학 보내는 건 무리야. 한데, 무료로 유학을 다녀올 기회가 생겼어. 그것도 밥 로스에게 배울 기회까지 말이야. 당신이 그랬잖아. 미술 선생이 한강일 가르칠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정말 오랜 시간 홀로 고민을 하였다.

    아닌 척 무시했지만, 어느 누구보다 아들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오던 덕화였다.

    누가 보더라도 영특함을 숨길 수 없는 아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하였다.

    밥 로스가 직접 찾아와, 한강일 만났다고 한다면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했다.

    “누가 혼자 보낸대?”

    “그럼?”

    “같이 다녀와. 이참에 해외 구경도 좀 하고.”

    덕화가 씩 웃었다.

    “한강이 아빠!”

    그에 미화가 크게 화를 냈다.

    너무도 섭섭한 마음에 참을 수 없었다.

    “미화야.”

    아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덕화는 따스한 미소를 품고 말했다.

    “방금 말했지. 우리 아들 똑똑한 아이라고. 가고 싶은 거 꾹 참고, 우리를 신경 쓴다고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할 아이야.”

    “......”

    “난 그런 아빠가 되기 싫어. 세상천지에 어린 자식한테 보호를 받는 부모가 어딨어. 미화 네가 한강이랑 다녀와. 난 여기서 기다릴게.”

    아들의 미래를 오랜 시간 고민해 온 결과, 이게 맞다 보았다.

    존경받는 아빠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어주고 싶었다.

    “싫어. 어떻게 당신을 놓고 혼자 가. 말이 되는 소릴 해.”

    하나, 미화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데, 꼭 이렇게 어렵게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좀 더 고민해봐. 그리고 한강이 얘기도 들어보고.”

    처음엔 미화가 한강이를 지원해주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덕화가 나서서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자. 나 잠시 바람 쐬고 올게.”

    너무 답답한 걸까? 남편에게 괜히 얘기를 꺼낸 건 아닌지,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혹시나, 한강이 떼를 쓴다면 옆에서 말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했던 것인데.

    오늘 밤은 너무도 길게 느껴질 거 같았다.

    ***

    같은 시각.

    “남 교수님. 저예요. 내일 저랑 그 아이 유치원에 가주실 수 있을까요. 고마워요. 내일 거기서 뵙도록 하죠.”

    이태원에 자리한 대저택 거실에서 중년여성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품고 수화기를 내렸다.

    “기대돼...”

    [명성이 자자한 작가님과 선생님을 알게 됐지요. 이보다 더 값진 게 있을까요.]

    중년여성은 화면 속 어린아이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행동, 어휘, 주눅 들지 않은 모습 모든 것이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떤 아이일지...”

    그녀의 시선은 곧 아래로 내려 손으로 향했다. 손에는 놀랍게도 남수영 교수에게 있어야 할 그림이 중년여성의 손에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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