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6화 (16/237)

16화. 5살, 캐스팅이 되었다

“으자자자.”

잠에서 깼다.

“어제 좋은 꿈을 꿔서 그런가? 오늘따라 상쾌하네.”

평소보다 몸이 가볍고 눈이 개운했다.

“한강이 일어났어?”

“안녕히 주무셨어요.”

씻으러 가기 전, 거실에서 미화와 마주쳤다.

한강은 허리를 숙여 아침인사를 하였다.

“하여튼, 울 아들이 복덩이야. 호호.”

“어제부터 기분이 무지 좋아 보여요.”

“그러니? 호호.”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난 집안은 다른 때보다 더한 온기를 품었다.

덕화의 미소는 떠날 줄 몰랐고, 미화의 웃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다.

심지어 그 비싸다는 소고기까지 먹었을 정도!

“네.”

눈을 끔뻑거렸다.

확실히 이상했다.

“이따 엄마랑 같이 한강이가 좋아하는 은행 가자. 일찍 데리러 갈게.”

“은행요?”

“그래, 그렇게 알고 있어.”

“네.”

무슨 일인지 모르나,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이 통장은 꼭 챙기고.”

“네.”

‘무슨 일일까? 보너스라도 받으셨나?’

알 수 없는 일에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 물음표를 띄웠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기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다’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배꼽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집에서 벗어나 유치원으로 이동했다.

“선생님 안녕. 친구들 안녕.”

아이들의 수업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이하나의 율동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절레절레.’

한강이는 고개만 좌우로 흔들 뿐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눈물을 머금었다.

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와 율동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누구시죠?”

이하나는 문밖에 서 있는 두 인물을 바라봤다.

풍성한 아프로 머리를 가진 남자와 머리카락을 길게 뒤로 넘긴 남자.

‘저, 저 사람은 설마...’

한강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그대로 얼어 버렸다.

너무도 유명한 대화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아니, 몰라도 무조건 알아야만 하는 인물이 문 앞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수업시간에 무례하게 들어와서. 저는 미국 PBS 그림을 그립시다 PD 제임스 에단입니다. 여기는...”

“제가 소개하지요. 화가 밥 로스입니다.”

두 사람은 바로!

PBS PD 제임스 에단과 밥 로스였다.

“그런데 여기느... 헙!”

간신히 영어를 알아들었다 싶은 순간!

이하나의 두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시선은 아프로 머리 밥 로스에게 멈췄다.

“아, 안녕하세요! 패, 팬이에요!”

뒤늦게 밥 로스를 알아봤다.

수업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하나는 종이와 펜을 들어 밥 로스에게 내밀었다.

하나는 익숙지 않은 영어단어를 간신히 떠올려 말을 하였다.

“하하, 한국에 절 알아봐 주는 분이 계실 줄은. 감사합니다.”

밥 로스는 웃으며 종이와 펜을 들어 사인을 해주었다.

“저, 저기 저도 사인해주세요!”

뒤를 잇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한강이었다. 한강은 이게 꿈인지 싶어 볼을 꼬집다 드로잉북을 챙겨 앞으로 내밀었다.

“호, 어린 꼬마도 날 아는 건가?”

다른 아이들은 누군가 싶어 쳐다보고 있는 반면, 한강만이 밥 로스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했다.

스스스.

펜이 그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강은 들뜬 마음으로 사인이 끝나길 기다렸다.

“이름이 뭐지?”

“유한강이요!”

이때까지 아무도 한강이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오, 굿.”

[밥 로스가 유한강에게.]

“감사합니다!”

지금 순간만큼은 여느 다섯 살 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새로운 한강의 모습에 하나는 웃었다.

‘아무리 의젓해도 아이는 아이야. 귀여워.’

정작 자신이 벌인 행동은 생각지 못한 하나였다.

“어라, 가만... 한강아...”

그러던 차, 하나의 두 눈은 다시 한번 크게 떠졌다.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너, 너 영어 실력이...”

하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할 줄 알아요.”

한강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지금은 하나에게 신경 쓸 정신 따위 없었다.

꿈에서조차 보기 힘든 밥 로스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다른 곳에 정신을 돌릴 수 있겠나!

“오, 굿. 아주 좋아. 그럼 우리의 의사소통은 아무런 장애가 없겠구나. 아이야.”

밥 로스는 단번에 영상의 주인공을 알아봤다.

“나는 한국의 천재 화가를 만나러 왔단다.”

“네?!”

“헙.”

한강이 놀라고 하나가 놀랐다.

지금의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이야기가 늦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TV에서 나온 이 아이의 모습에 반해서입니다.”

밥 로스와 한강이 영어로 대화를 하는 사이, 에단은 하나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천천히 뱉어내었다.

“한강이를요?”

띄엄띄엄 들려오는 단어를 조합해 간신히 해석한 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가지 않은 탓이다.

“저는 한강이를 PBS 그림을 그립시다에 출연을 시키기 위하여 이 먼 곳까지 밥 로스와 함께 건너왔습니다.”

“!”

“!!”

밥 로스와 대화를 하고 있던 한강은 깜짝 놀라 시선을 에단 쪽으로 꺾었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절 출연을 시킨다니.”

너무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그만 넋을 놓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너의 부모님을 뵙고 하고 싶은데.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 있겠니?”

에단은 부드러운 미소를 걸쳐, 한강의 부모를 만나길 요청했다.

“엄마는 조금 이따 이곳에 오실 거예요. 그런데 방금 한 말씀은 대체 뭔가요?”

“설명해 주게. 딱 보니 보통 아이가 아니야.”

밥 로스가 나서서 한강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기를 바랐다.

“확실히, 그렇군.”

한강의 모습에서 다른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보였다.

에단은 납득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작게 흔들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하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하였다.

갑작스러운 방문객이 밥 로스인 것도 놀라운 일인데, 한강을 캐스팅하겠다는 소리는 머릿속을 강하게 흔들어 놓았다.

‘아, 이럴 때, 연서라도 있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영어가 짧은 탓에 그러지를 못했다.

‘맞아. 한강이.’

그러다 한강에게 미치는 시선은 놀라움을 더욱 증폭을 시켰다.

“이 방송을 찍으면서 많은 그림을 접했지만, 다섯 살이 프로들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그림을 그리는 아이는 본 적이 없어.”

제임스 에단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우리는 그런 너를 그림을 그립시다에 출연시켜 밥 로스와 멋진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찍고 싶단다.”

한강을 출연시킴으로 그림을 그립시다는 아시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 확신했다.

제임스 에단은 꼭 한강을 캐스팅하고 싶었다.

“음...”

모든 이야기를 이해한 한강은 생각에 빠졌다. 너무도 좋은 기회였기에.

모두 들어가고자 하는 세계 수준급 방송.

그걸 한강이 의도치 않게 따냈다.

‘분명 좋은 기회야.’

설마, 엉뚱한 곳에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줄 몰랐다.

이는 어린이 그림 대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기회였다.

전 세계가 보고 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닌 해당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하지만, 엄마랑 아빠가...’

자신의 나이는 아직 다섯 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커나갈 시기이다. 과연, 그런 외지에 부모님이 보내줄지...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어 보였다.

“확실히, 부모님이 오셔야, 이야기가 되겠네요.”

한강은 시선을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곧, 점심시간.

미화가 올 시간이 다 되어갔다.

“허허, 한국 어린이는 무척 똑똑한가 보군요.”

한편, 제임스 에단은 한강에 대해 더욱 흥미가 동했다. 심지어 한국의 교육법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주 똑똑한 아이구나. 엄마는 언제 오실까?”

“곧 점심시간이에요. 늦어도 1시간 내 오실 거예요. 그리고 통역사를 구하시는 걸 추천해요.”

미화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자신이 통역을 하면 될 일이나, 일일이 다하기에 무리가 따랐다.

“하하, 걱정 말거라. 통역사는 이미 뒤에 있었단다. 두 사람 다 영어를 잘해 필요가 없어 뒤에 대기했지만.”

“하하...”

문 뒤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남자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이제야 자신의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한 얼굴이다.

“밖에서 기다리마.”

한강의 이야기를 들은 에단은 만족한 웃음을 남기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이따 보자. 천재.”

밥 로스도 교실을 벗어났다.

“한강아...”

폭풍을 일으킨 주범들이 나가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하나가 한강을 불렀다.

“하하하.”

한강은 어색하게 웃었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걸 보여주었다.

‘좀 경솔했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어.’

밥 로스를 얼마나 만나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다는 말인가?

“너 영어는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는 거니?”

하나는 수업을 다시 시작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하나 또한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며 살아왔는데, 간신히 해석해 아는 단어를 짜집기 하여 말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한강은 원어민 수준으로 막힘없이 말을 하는데, 아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뭐, 그게 어떻게 공부를 하다 보니. 영어를 할 줄 알게 됐어요. 아, 북한산에서 할머니랑 잠깐 지낸 적이 있었는데, 영어를 많이 접하기도 했고요.”

참 변명이 궁색하다. ‘전생에서 치열하게 살다 자연히 익힌 게 영어였소.’ 이 말을 어떻게 던질까?

한강은 적절히 거짓을 섞어 진실로 받아쳤다.

‘하긴 이건 무리가 따르지. 그래도 천재들 중 어린 나이에 몇 개 국어를 독학으로 터득한 사례도 있으니까. 뭐, 어떻게 되겠지.’

“선생님, 저 화장실!”

일본어, 중국어까지 할 줄 안다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한강은 어색하게 웃고는 자리를 슬쩍 피했다.

“......정말 말도 안 돼. 진짜 이건 너무하잖아.”

하나는 힘 빠진 눈으로 사라진 한강의 자리를 바라봤다.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 한강이가 무지 부러웠다.

***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

“한강아.”

미화가 유치원을 찾았다.

“엄마.”

한강은 미리 챙겨놓은 가방을 메고 미화에게 달려갔다.

“한강아, 내일 보자.”

교실을 나서는 한강이를 향해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의 시선엔 아직도 복잡한 감정이 머물러 있었다. 제법 오래 갈 거 같다.

“네, 안녕히 계세요.”

한강은 그 점을 알면서 모른 척, 유치원을 벗어났다.

“저기 엄마. 그 밥 로스 작가님 아시죠?”

“고럼, 한강이 네가 좋아하는 방송 중 하나잖아.”

“그 작가님이 오늘 유치원에 찾아왔어요.”

“뭐, 정말?!”

미화는 화들짝 놀랐다.

한강이 자주 보기도 했지만, 미화도 알 정도로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동네 유치원에 밥 로스라니!

“네.”

“그래서?”

“여기 싸인도 받고 그랬는데, 그 작가님이 엄마랑 대화를 하고 싶대요.”

“대화를? 왜?”

“그건 저 작가님과 PD님께 물어보면 될 거 같아요.”

미리 알릴까 하다, 멀찍이서 다가오는 두 사람을 보고, 아니 세 사람을 보고 입을 닫았다.

“맙소사... 정말 밥 로스...”

한강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향한 장소에 TV에서 보아온 밥 로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미화는 너무 놀라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강의 손을 꽉 잡았다.

긴장한 탓이다.

“한강이 어머님 되십니까?”

제임스 에단이 웃으며 물었다.

“네, 그런데요. 갑자기 저희는 왜...”

“아드님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왜 제 아들을,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반가움, 기쁨, 놀라움도 잠시.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미화는 위축되어 경계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경계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여기 밥 로스 작가님과 함께 일하고 있는 PBS PD 제임스 에단입니다.”

“그런데, 그게 제 아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불안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미화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본능이 발동되었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시간, 제임스 에단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 방송에 아드님을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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