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5살, 밥 로스를 만나다 (2)
서울시청 안.
“지금 그걸 보상이라고 내민 건가요?”
남수영 교수의 외침이다.
“맞습니다. 지금 부정에 의하여 한 아이의 미래가 엉망이 됐습니다. 게다가 당신들로 인하여, 사람들의 몰매까지 맞는 사기꾼이 되었다 이 말입니다.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지 생각하면...”
김현 작가의 외침이 뒤를 따른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남수영 교수를 비롯한 협회 사람들로, 최근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보상을 협의하기 위하여 한자리에 모였다.
“분명 저희 측 잘못임에는 맞습니다. 그렇지만, 담당으로 있던 박 국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보세요! 지금 사람 하나 죽여 놓고 잡혀갔다 말하고 끝낼 생각입니까?”
김현 작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목에 핏대가 돋아났다.
두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갈 거 같았다.
“아니, 누가 죽었다 그러십니까?”
“당신이 작가에 대해 뭘 압니까? 공무원들은 이미지가 망가져도 인생에 큰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작가 인생에 있어 한강이에게 벌어진 일은 아주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게 될 겁니다. 자칫 마음에 상처가 심해 그림을 내려놓으면, 그건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한강이 그럴 일은 절대 없으나, 김현 작가는 과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끙.”
“고작 50만 원이 말이 된다 보십니까?”
대상으로 받지 못하게 된 50만 원을 보상이랍시고 주겠단다.
개새끼도 자기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양심은 있어 눈치를 본다. 한데, 인간이란 작자가 개새끼만도 못했다.
“5천은 말도 안 되는 보상입니다.”
반면, 본부장은 남수영 교수가 언급한 보상금에 대해 반박을 하였다.
50만 원과 5천만 원의 싸움.
서로의 입장 차가 너무도 컸다.
“정말 어이없는 곳이네요. 정말 그렇게 나오실 건가요? 계속 그러시면 전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1억도 아니고 겨우 5천만 원이다.
남수영은 단 한 발짝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본부장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협박?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본부장님에게 협박을 할까요?”
시청의 본부장 김갑수. 꽤 힘이 있는 상대였다.
신분이 교수인 그녀로서 본부장을 상대하는 건, 무리가 따랐다.
“그러면 방금 한 말의 의도는 뭔가요?”
“지인에게 부탁을 드리려고요.”
“지인?”
“네, 계속 터무니없는 보상을 내거시니,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허, 정말 웃긴 일입니다? 시장님이라도 아십니까?”
“아뇨, 들어보시면 알 거예요. 전화 좀 빌리죠.”
남수영은 자리에 놓인 전화기에 손을 가져갔다.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얼굴에 김갑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홍 여사님. 저예요. 남 교수. 다름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가 생겨, 도움을 구하고자 연락을 드렸어요.”
부릅!
김갑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그분은 아니겠지.’
앞에 ‘홍’으로 시작하는 사람 중 힘을 쓸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머릿속으로 곱씹어 봤다.
‘아닐 거야. 고작 교수가...’
불안감은 심장을 두들겨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다.
“최근 어린이 그림 대회 공모전 있었잖아요. 거기에 나간 아이가 제 제자의 친구의 제자예요. 아, 네. 맞아요. 바로 그 아이예요.”
두근두근.
김갑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게 말이죠. 시에서 보상금에 대해 협상을 하는데 50만 원 이상은 절대 안 된다 하지 뭐예요. 저희는 5천만요.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을 거예요. 이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건 아닌가 걱정도 들고요.”
이쯤 되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만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확실했다.
“......”
김갑수는 딱딱한 얼굴로 남수영을 응시했다. 그리고 누가 갑의 위치에 있는지 느껴가고 있었다.
“당연히 보여드려야죠. 네, 꼭 데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사님.”
전화가 끊겼다.
“곧 전화가 올 거예요.”
남수영은 고고한 학이 되어 소파에 편히 등은 기대고 자세를 잡았다.
“큼, 혹 전화하신 분이...?”
“육성그룹 홍 여사님이세요.”
“......”
“......”
남수영의 폭탄 발언에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조차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한낱 교수가 홍 여사와 친분이 있을까?
“홍 여사님은 그림에 관심이 많으시죠. 한강이에게 큰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던데. 뭐, 이 정도는 되어야 본부장님을 설득하기에 좋겠죠?”
싱긋 웃었다.
하나, 눈은 절대 웃고 있지 않았다.
두 눈빛은 더욱 날 선 눈으로 변하여 갔다.
“......”
반면, 김갑수의 마음은 초조하게 변했다.
지금껏 자신이 강자라 알고 있던 상황에 변수가 생겼다.
적막감에 빠져든 공간, 눈치를 보며 입을 열 타이밍을 쟀다.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울린 벨소리는 김갑수를 작게 만들었다.
“뭐 하세요? 안 받으시고요.”
“큼, 네. 김갑수 본부장입니다.”
상대가 누구일지 모르는 상황, 김갑수는 최대한 공손하면서 정중하게 전화를 받았다.
곁눈질로 남수영 교수를 바라봤다.
입꼬리를 올린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아, 시장님. 네, 바로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걸려온 전화는 시장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김갑수는 마치 앞에 시장이 있다는 것처럼 굽신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 맺혔다.
“후...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진즉 홍 여사님과 친분이 있다 말씀하셨다면... 큼.”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갑수의 자세가 바뀌었다.
거드름을 피우던 자세가 사라지고 철저한 ‘을’의 위치에서 남수영 교수를 대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죠?”
남수영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결론을 물었다.
“1억을 보상금으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두둔!
애초에 계획했던 금액보다 2배가 뛰었다.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정도면 우리도 불만이 없습니다.”
오로지 남수영 교수만 평정심을 유지했다. 내심 놀랐으나, 홍 여사의 압력이 시장에 닿았음을 짐작했다.
‘아무리 정치판이 콧대가 높아도, 육성은 안 되는구나.’
남수영은 국내 권력에 관심은 없었지만,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여자였다.
교수 생활과 평론가로 일해온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이야기도 정리된 거 같으니, 우리 이만 일어서요.”
“그럽시다.”
“허허.”
목적은 이뤘다. 더는 본부장과 대화할 내용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끙, 이거 골치 아프게 됐어. 어떻게 교수가 홍 여사와 같은 거물을 알고 있는 건지.”
모두가 나가고 혼자 남게 된 방 안.
소파에 앉아 고개를 위로 올렸다.
아주 잠깐 사이에 기가 싹 빨려 나갔다.
김갑수는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
5분 전.
“아무리 여사님이시라도 그런 큰 돈은... 무리가 따릅니다. 자칫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습니다.”
서울시청 한주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좋아요. 이렇게 하면 어때요? 시에서 2천 챙기시고, 제가 8천을 지원하죠. 그 돈을 서울시 이름으로 지급하세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홍라혜 여사였다. 홍라혜는 그의 곤란함을 해결해 주겠다는 듯, 넌지시 제안을 하였다.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저야 좋지만. 그림 하나로 이만한 지원을 해주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그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좁혔던 미간이 펴졌다.
그것도 잠시 한주원의 얼굴에 또 다른 감정이 자리했다.
홍라혜가 고작 다섯 살 아이에게 이만한 투자를 하려는지를.
-가치라. 그건 만나봐야 알겠지만, 제가 보기에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해요. 마침 명분도 좋고, 차후에 촉망받는 아이를 위해 육성에서 지원을 했다는 소식이 나돌면 기업 이미지에도 크게 작용하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전 이해를...”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시장님은 제 말대로 해주시면 돼요.
계속 반발하는 한주원에게 짜증을 느낀 홍라혜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죄송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해주세요. 그럼 끊을게요.
전화가 끊겼다.
“...휴. 재벌들 머릿속은 이해를 할 수 없군. 1억이 누구 이름도 아니고. 쯧.”
한주원은 백기를 들었다.
그의 손이 곧 수화기로 향했다.
***
1990년 5월 말 주말 아침.
한강의 집으로 일련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누구시죠?”
노크 소리에 문을 여니, 검은 복장의 남정네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시에서 왔습니다.”
남자들은 명함을 건네며 신분을 증명했다.
[서울시청 계장 이석필.]
“시에서 무슨 일이죠?”
명함을 받아든 유덕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시에서 집에 방문할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일개 공무원도 아닌, 계장이나 되는 사람이.
“최근 있었던 어린이 그림 대회 공모전 아시죠?”
“네, 그렇소만? 다 끝난 일 아닙니까? 더 볼일은 없을 거 같은데?”
공모전 이야기가 나오자, 덕화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감돌았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분노를 했는지 모른다.
결말이 좋지 못했다면, 당장 시청에 쳐들어가 난리를 쳤을지 몰랐다.
“큼, 그에 대한 보상책이 나와 방문을 드렸습니다. 그때의 일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아드님께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이석필 계장과 그 외 직원들.
덕화는 떨떠름한 눈으로 고개를 숙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휴...”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고민 끝에 사람들을 안으로 들였다.
“한강이 엄마, 차 좀 내와 봐. 시에서 사람 왔어. 편한 곳에 앉으세요.”
좁은 거실로 들어서 자리에 앉았다.
미화는 남편과 함께 들어오는 사람들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다 믹스커피를 준비해 내어놓았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이석필 계장을 순으로 차를 받아 인사를 전했다.
“서로 불편한 사이니, 요점만 말하고 끝냅시다.”
긴 시간 같이 있어 봐야 서로 좋을 건 없었다.
“그러겠습니다. 저희는 이번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준비하였습니다. 여기.”
이석필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내밀었다.
종이는 덕화에게 향했다.
[₩100,000,000(일억 원정)]
“이... 일억?!”
덕화의 눈은 더는 커지지 않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너그러이 받아 주셨음 합니다.”
놀라는 그의 모습에 이석필은 만족한 미소를 걸쳤다.
‘나도 놀랐었지. 처음 보상금을 보고서.’
이석필은 지난날 내려온 지시가 떠올랐다.
[보상금으로 1억을 지급하게. 바로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시장님 지시다.]
그 짠돌이 본부장이 무려 1억 원을 결재해 버린 것이다.
시장의 재가까지 받았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그때 자신의 상황과 덕화가 겹쳐 보였다.
“허, 하하...”
“아드님과 두 분께 정말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잠시, 이석필은 진심을 담아 무릎을 꿇고 몸을 바싹 낮춰 이마를 바닥까지 내렸다.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하다. 과오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시간들을 지금 이 순간 모두 보상을 받는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큼. 우리 한강을 위해 이리 큰 보상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사드려요.”
불편한 얼굴로 시청 사람들을 대하던 덕화와 미화는 자세를 바꿔 그의 몸을 일으켰다.
“돈은 계좌로 바로 입금이 될 겁니다. 원하시는 계좌를 이곳에 적어주시면,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둘에 의해 몸을 일으킨 석필은 종이에 계좌를 적어줄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지요. 한강이 엄마.”
덕화의 눈이 미화의 눈에 닿았다.
“이거 한강이 돈인 거 알죠?”
“나랑 생각이 같네. 그렇게 하자.”
“고마워요.”
“뭘, 당연한 걸 가지고.”
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이 통했다.
[새마을금고 XXXX-XXX... 유한강.]
“여기로 부탁하죠.”
들었던 펜을 놓고 계좌가 적힌 종이를 석필에게 밀었다.
“정말 좋은 부모시군요.”
석필은 한차례 놀랐다.
보통은 목돈이 들어오면 자식에게 주기보다, 부모가 돈을 관리해 사용하기 마련이다.
한데, 둘은 그러지 않고 모두 아들에 통장에 넣길 바랐다.
‘나도 배워야 할 자세야. 그리 부유하지 않지만, 이런 환경에 자랐으니, 그런 아들을 둔 것이겠지.’
이석필 계장은 둘의 모습에서 많은 걸 배웠다.
그리고 부모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부모는 되지 못합니다. 그저 아들의 미래에 부모 된 입장에서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 생각할 뿐입니다.”
“오늘 많은 걸 배우고,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한데, 아드님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주말임에도 보이지 않는 한강을 찾았다.
“지금 방에서 자요.”
미화가 말했다.
“꼭 좀 보고 싶었는데, 보기 힘들겠군요. 그럼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최연소 천재 화가 유한강을 꼭 보고 싶었는데.
자고 있다니, 포기를 하여야 하였다.
이석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을 떠났다.
그 시각, 작은 방.
“대통령님, 뭘 또 이런 걸 다. 음... 감사합니다. 냠냠. 쩝쩝.”
한강은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수여 받고, 음식을 대접받는 꿈을 꾸고 있었다.
***
쉬이이이.
끼리릭. 끼이익.
“여기가 한국이구나.”
“굳.”
두 명의 외국인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둘의 얼굴에 홍조가 맺히며 설렘으로 가득했다.
“에단, 갑시다. 우리 천재 화가를 만나러.”
밥 로스가 한국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