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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4화 (14/237)
  • 14화. 5살, 밥 로스를 만나다 (1)

    “찍지 마! 찍지 말라고! 내가 누군지 알고 이래. 우리 아빠가 3선 국회의원이야. 당신들 일자리 잃고 싶어서 이래. 당장 치우라고!”

    김희자는 주변에 몰린 기자들에 대고 삿대질을 해대며 욕설을 퍼부었다.

    특정 몇몇 사람에게 협박을 하기까지 하였다.

    찰칵찰칵.

    김희자의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김희자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았다.

    “저 여자는 알까요? 덕분에 그 의원님 입지가 확 줄어들면서, 정치권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요.”

    “냅둬. 딱 보니 사이즈 나오잖아. 저러다 인생 종 쳐도 후회 안 할 여자야. 그리고 저 모습이 하루 이틀이야.”

    “후후. 그렇긴 하네요.”

    기자들은 여자의 고성을 들으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실실 웃으며 앞으로 벌어질 여성의 미래를 점쳤다.

    “국장님, 다섯 살 어린아이의 꿈을 짓밟고, 큰 상처를 남기셨습니다. 이에 대한 한 말씀 바랍니다.”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천재 화가의 등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다른 한 곳에서는 박두선 국장이 얼굴을 가린 채, 검찰로 들어섰다.

    기자들은 박두선 국장 주변을 에워싸며 질문을 던졌다.

    “......”

    하나, 박두선 국장에게서는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검찰 건물로 말없이 유유히 사라졌다.

    [서울시 어린이 그림 대회 부정행위 적발, 검찰은 금일 오전 10시 시청 국장을 포함하여 3인 긴급체포!]

    [서울시청 박두선 국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김성수 3선 국회의원의 딸인 김희자 씨의 부정청탁을 받고 친딸인 최모양(13)을 어린이 그림대회 대상으로 지목...]

    며칠 뒤, 뉴스를 포함해 신문에 어린이 그림 대회가 대문짝만하게 메인 상단을 차지했다.

    [공모전의 본래 수상자는 KBC 오보로 알려진 XX유치원 유모군(5)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아이의 상처가 걱정이 되는 가운데, 더욱 놀라운 건 이화여대 교수 남수영 씨를 필두로 미술, 예술협회에서 영상본을 공개해 유모군(5)의 실력을 입증을 하였다. 해당 영상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알려져...]

    [대한민국 최연소 천재 화가의 탄생을 알리다.]

    덕분에 한강은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매스컴에 수시로 얼굴을 알리며,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한강아, 여기 보자. 하나 둘 찰칵.”

    “......”

    생각도 못 한 사태에 휘말린 한강은 노란색 유치원 복장을 하고서 기자와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찰칵찰칵, 터지는 플래시를 정면으로 받으며 올라가지 않는 입술을 힘겹게 위로 올렸다.

    ‘설마, 이렇게 관심을 받게 될 줄은... 이건 이것대로 머리가 아프구나.’

    아주 잠시간에 10년은 늙은 기분이다.

    “대상으로 수상을 하였는데, 기권을 한 이유가 있을까?”

    예상대로 대상은 한강에게 주어졌다. 하나 한강은 이를 거부하고 상을 반납했다.

    “딱히 관심이 없어서요.”

    “에이, 그러지 말고 말해봐.”

    한강의 앞에는 KBC로고를 단 이억수 기자가 하얀 이빨을 내보이며 씩 웃고 있었다.

    이번 기사가 터지고 이억수는 기사회생하여 취재에 나서게 되었다.

    [에헴, 귀에서 피가 나네. 하도 욕 처먹어서.]

    팀장이 보란 듯, 목에 힘을 주고 취재에 나선 이억수였다.

    “......”

    한강은 고개를 위로 향해 이억수의 얼굴을 응시했다. 장난기로 가득한 얼굴.

    참으로 입이 가볍게 생긴 관상이다.

    “아저씨라면 화장실 쓰레기통에 던진 똥 묻은 휴지로 엉덩이를 닦을 수 있어요?”

    한강에게 있어 대상은 똥 묻은 휴지보다 못한 상에 지나지 않았다.

    “크크, 그놈 참 말 잘한다. 그렇지. 못 닦지. 그래서 받지 않았다?”

    “네, 그리고 더 값진 걸 얻게 됐달까. 전화위복이네요.”

    “와, 너 진짜 다섯 살 맞냐?”

    “보시다시피 참뜻 유치원 다섯 살 어린입니다만?”

    “...세상에 별 희귀종은 내 다 보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

    이억수는 대화를 나누면서 혀를 크게 내둘렀다. 어휘가 심상치 않았다.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그런데 취재는 언제까지 할 생각이시죠?”

    슬슬 피곤하다. 쉬고 싶다.

    “크크, 그래그래. 마지막 질문. 방금 말한 이야기 있지? 대상을 받으면 장관상과 장학금 50만 원을 받는데, 그것보다 값진 게 있다고?! 그게 뭘까?”

    이억수는 재밌다는 얼굴로 한강을 바라봤다. 다섯 살과 말이 이리도 잘 통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있지요. 명성이 자자한 작가님과 선생님을 알게 됐지요. 이보다 더 값진 게 있을까요?”

    인맥보다 귀중한 자원도 없었다. 상은 타면 그만이지만, 좋은 인맥은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귀한 자산이었다.

    ‘돈도 더 벌었고. 후후.’

    덕분에 통장 잔고는 263만 원까지 늘었다.

    흙수저 집안의 다섯 살 아이가 개인의 힘으로 이뤄낸 쾌거였다.

    심지어 한 달도 안 되어 이뤄낸 업적!

    만약, 이러한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이억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세상 참, 다섯 살의 신비로운 세상이지 아닐 수 없네. 어째 나보다 네가 말을 더 잘하는 거 같다?”

    “후후.”

    “......”

    억수는 황당한 시선을 한강에게 던졌다.

    입꼬리를 마는 게 아주 가관이다.

    “이제 끝난 거죠?”

    “그래, 하... 뭐, 이 정도면 되겠지. 참, 내가 아주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까?”

    자리에서 일어나던 한강의 몸이 멈췄다.

    아주 재밌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시에서 보상이 나갈 거야. 남 교수와 협회에서 꽤나 압력을 행사한 모양이더라.”

    “오!”

    뜻밖의 희소식에 한강의 안색이 단번에 밝아졌다. 피로감에 찌든 얼굴 위로 맑은 햇살이 비추었다.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적지는 않을 게다.”

    “감사합니다.”

    “거참, 참 신기한 놈일세.”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보상’이란 단어를 아는지 물어봐야겠다 싶은 이억수였다.

    “이만 간다. 담에 또 보자. 천재 화가.”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에 올랐다.

    억수는 출발 전 창문을 열어 한강을 응시하다, 이내 액셀을 밟고 유치원을 떠났다.

    “보상이라, 일이 너무 잘 풀려 좋은데.”

    처음에 심사위원을 맡은 박두선 국장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는데,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자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인생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렷다. 좋아좋아.”

    한강은 두 손을 뒤로 보내 깍지를 끼고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간 속을 썩이던 문제가 아주 좋은 방향으로 풀리니, 마음이 너무도 가벼웠다.

    “아고고, 허리야. 비가 오려나.”

    습관처럼 나온 한마디를 툭 던졌다.

    ***

    “계속해서 작은 X자로 붓질을 해 주세요. 그러면 그 색이 잘 섞여 하늘이 될 거예요.”

    풍성한 아프로 머리에 턱밑까지 이어진 옅은 갈색 수염의 남자가 붓을 들어 캔버스에 장난치듯 붓질을 하였다.

    장난스러운 손짓은 어느새 도화지에 하늘을 담았다.

    “금세 하늘이 되었네요. 참 쉽죠? 좋아요.”

    붓에 파란 물감이 묻었다며 프탈로 블루를 붓에 묻혀 섞어 그린 계열의 블루로 만들었다.

    남자의 손은 캔버스 하단으로 향했고 좌우로 손을 움직여 호수를 그렸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당겨주세요. 가능한 쉽게 그릴 거예요.”

    어느 순간 캔버스에는 하늘과 호수가 완성이 되었고, 순식간에 눈 덮인 산이 중앙에 자리했다.

    뭉게구름 아래 자리한 눈 덮인 산은 시간을 더해갈수록 입체적으로 변해갔다.

    “쉽게 산을 갖게 됐어요. 이제 작은 언덕을 만들 거예요.”

    팔레트에 검은색 파란색 하얀색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붓에 묻혀 산과 호수 사이에 붓을 툭툭 터치하는 걸로 언덕을 만들었다.

    “언덕은 참 쉬워요. 자 보세요. 금세 언덕이 되어 가죠?”

    계속하여 쉽다고 말하며 만들어내는 그의 그림은 어느새 푸르른 나무들 사이에 호수가 보이는 눈 덮인 산으로 변해갔다.

    “여기에 서명을 하면 끝이네요. 오늘도 저와 함께 해주어 감사합니다.”

    그림이 완성되었다.

    “오늘도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작가님.”

    “늘 좋은 말씀 감사해요.”

    남자의 이름은 밥 로스.

    미국 PBS에 방영되는 ‘그림을 그립시다’ 화가였다.

    그의 멘트 중 ‘참, 쉽죠’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통하게 될 정도로 상당한 유명세를 펼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보다 작가님. 작가님의 평을 듣고 싶은 게 있는데. 이쪽으로 와보세요.”

    중년남성은 밥 로스를 잡아끌어 모니터가 자리한 자리로 이동했다.

    “뭐기에 제가 평가를 할 게 있다 이러세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아주 재밌는 영상을 내보냈습니다.”

    “재밌는 영상?”

    “이거 재밌더라고요. 일단 봐보세요.”

    남성은 아주 재밌다는 얼굴로 밥 로스를 모니터 앞에 앉혔다.

    “어린아이?”

    영상이 재생이 되었다. 영상 속에는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은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림?”

    화면은 아래로 내려가 책상 위에 올려진 도화지를 잡았다.

    아이의 손이 도화지 위로 올라갔다.

    “헙.”

    곧 작은 손에서 발휘되는 놀라운 손놀림이 밥 로스를 놀라게 만들었다. 거침없이 움직이는 손동작은 절대 아마추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게 정말 어린아이가 부릴 수 있는 기술이라고? 오 마이 갓! 말도 안 돼.”

    놀라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드로잉이 끝나고 이어지는 채색은 더욱 가관이었다.

    밥 로스는 같은 자세 그대로 잡고 화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한국 나이로 5살이라더군요.”

    남자가 아이의 간략한 정보를 읊었다.

    “......난 저 나이에 저러지 못했어요.”

    모든 걸 쉽게쉽게 해낸다.

    심지어 색과 색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입마저 벌어지게 만들었다.

    “천재 화가의 화신이라며 꽤나 떠들썩해요.”

    “천재가 맞아요. 저리 깔끔한 솜씨라니.”

    “더욱 놀라운 건, 저게 아니에요. 저건 한국에서 벌어진 어린이 그림 대회에 내놓은 그림에 대한 실력을 입증하는 자리이고, 진짜는 이거예요.”

    남자는 옆으로 치워둔, 신문을 가져와 펼쳤다.

    “바로 이 그림이 저 아이의 작품이라더군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신문 일면에 인쇄되어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이럴 수가... 이게 정말로 저 아이의 그림이라고요?”

    “놀랍죠? 저도 이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위에서도 상당히 관심 있어 하는 눈치입니다.”

    “그렇다는 건...?”

    “우리 방송에 저 아이를 내보내면 어떨까 싶어요. 작가님만 오케이해 주시면, 저 아이를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아주 멋진 그림이 나올 거 같다.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는 상당한 시청률을 자랑했다.

    하나, 약간의 심심함이 있는 것도 사실.

    그 심심함을 한국의 아이가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였다.

    “아시아의 시청률도 대폭 상승하리라 봐요.”

    남자는 강하게 어필했다.

    “나도 저 아이를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세상에 이만한 소질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니, 저도 이 아이와 같이 그림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밥 로스는 반색하며 남자의 두 손을 잡고 부탁했다.

    “그렇다면 위에 보고하고, 진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단, 부탁이 있소. 나도 같이 가게 해주시오.”

    밥 로스가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네?”

    “나도 한국에 가, 그 아이와 대화를 해보고 싶어요. 만약, 캐스팅이 안 되면 그 아이를 못 보는 거 아닙니까.”

    “음...”

    이거 왠지 밥 로스에게 잘못 보여준 건 아닌지 싶었다.

    고민하던 에단은.

    “휴, 제가 누구를 말립니까. 같이 가시죠. 경비는...”

    이내 깔끔히 포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린다고 포기할 거 같지도 않았다.

    “하하, 그건 걱정 마세요. 내 그 정도 돈은 있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첫 한국행이 결정 났다.

    밥 로스는 시선을 돌려 영상에 나온 아이를 응시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밥 로스의 머리에는 온통 한국의 천재 화가로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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