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3화 (13/237)
  • 13화. 5살, 새로운 수입

    “할 말이?”

    당돌한 다섯 살 아이.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한강을 단순한 다섯 살 아이로 보지 않았다.

    “네. 선생님.”

    “그래, 말해 보거라.”

    성인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한강은 여기서 주인공으로서 의견을 낼 자격이 충분했다.

    어른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히 의견을 내는 장면이 익숙지 않을 뿐이다.

    “말씀드리기에 앞서 제 실력에 대해 입증이 된 게 맞는지 확인부터 하고 싶습니다.”

    “...인정한단다.”

    알면 알수록 머릿속엔 혼란만이 가득하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라 보면 되겠죠?”

    끄덕.

    한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말씀드릴게요. 이 일이 잘 되면 분명히 수상자는 바뀌어 제가 대상을 타리라 봐요. 하지만 전 받고 싶지 않아요.”

    모든 걸 파악한 이때, 불합리한 방법으로 결정된 대상을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똥물이 묻은 대상은 상으로의 가치를 잃었다.

    “기분이 나빠 그러니?”

    “솔직히 나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기분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나이도 먹은 상황에 그런 소심한 발상은 하지 않는다.

    한강은 이보다 조금 더 앞을 내다봤다.

    “기분 때문은 아니다...?”

    “네. 대상을 타면 제 이력에 남으리라 보지만, 딱 그뿐입니다. 제 미래에 큰 영향은 주지 못한다고 봐요. 전 그보단 더 현실적인 보상을 받고 싶어요.”

    “...현실적 보상...”

    다섯 살의 어휘가 너무도 기막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건지, 놀랄 기력을 잃어갔다.

    “제 그림을 구입하고 싶다 하셨죠? 김현 작가님. 그리고 대표님과 다른 분들도.”

    소개하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진정한 목적까지.

    포기를 해야 했던 돈이 생기려 하는데?

    그깟 상이 대수랴.

    ‘개인의 이력으로 평생 남는다지만, 글쎄? 그게 돈보다 가치가 있는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군.’

    전생에 있던 당시에도 상은 종종 탔지만, 개인적으로 큰 혜택을 받은 바는 없었다.

    “음, 그랬었지.”

    “그랬지.”

    주변의 분위기가 묘하게 흐른다. 남수영 교수는 어이없는 눈으로 한강을 응시했다.

    한강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아들은 탓이다.

    “제 그림이 분명 장학금으로 50만 원을 탈 수 있던 작품임을 방금 인정하셨어요. 그렇다면 제 작품의 최소 가치는 50만 원이라는 의미가 될 거라 봐요.”

    “......”

    “......”

    모두는 조용한 눈으로 한강을 주시했다.

    저 작은 몸에서 곧 나오게 될 말이 충분히 예측이 되었다.

    정말 말도 안 나오는 상황이다.

    머릿속은 ‘다섯 살이’ 반복적으로 떠다녔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전 이걸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분께 팔고 싶어요.”

    한강의 입이 열렸다.

    “허...”

    “......”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저 어린 입에서 직접 들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하나와 오연서의 얼굴은 붕어가 되어 눈만 끔뻑였고, 다른 사람들은 허탈하게 웃었다.

    남수영 교수는.

    “그게 가장 좋을 수도 있겠구나.”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한강의 말에 수긍을 하였다.

    ‘대체 무슨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고 살면 저리될 수 있을까. 재벌 가문의 핏줄보다 교육과 수양이 깊은 아이야.’

    한강의 부모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졌다. 꼭 아이의 교육법을 배우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선생님께 진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명성이나 인지도를 따져 봤을 때도 남수영 교수만 한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 한강은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일을 맡기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남수영. 물론 지금의 교수님은 자신을 모르지만.

    그의 발언이면 모두가 납득하고 받아들이리라.

    “전 한강이의 말에 찬성해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이런 재밌는 기회 흔치 않겠지요. 참여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이 그림에 있습니다. 목적은 이뤄야 맞지요.”

    사람들 전부 남수영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각자 가져온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렸다.

    어떤 이는 대놓고 현금이 잔뜩 든, 돈 봉투를 꺼내놓기도 하였다.

    “좋습니다. 그럼 방식은 제가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소치는 50만 원으로 하되, 종이에 가장 높은 금액을 적은 분께 한강의 그림을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동의를 하시는 분에 한하여 진행을 하도록 하지요.”

    일반적인 경매 방식이 아닌, 숫자를 비공개로 돌려 종이를 한 번에 펼쳐 입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어린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그럴 일은 없다 생각이 들지만, 경매가 과열되어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랐다.

    “시작하죠.”

    입찰 경쟁이 시작되었다.

    ‘설마,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몰랐어. 다섯 살 아이의 감성에 맞지 않게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야. 색의 조화도 좋고, 메시지도 확실해. 보면 볼수록 대단해.’

    남수영은 책상 위에 올려진 그림을 보며 평가를 하였다.

    일반 도화지인 점, 한강의 경력, 들인 시간, 채색, 메시지 등등을 꼼꼼히 따졌다.

    ‘나무줄기도 올곧게 잘 뻗었고, 빛 조절도 훌륭해. 명암의 경계선도 좋고. 하나하나가 입체적이야. 완전 괴물이야.’

    심지어 그림의 주인공이 무엇인지, 대번에 보이기까지 하였다. 삼등분된 장면마다 주인공은 달랐다.

    첫 번째 장면은 나무, 두 번째 장면은 쓰레기, 세 번째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다.

    남수영은 순간적으로 피부로 소름이 돋았다.

    ‘음, 가격은 많이 줘야 백만 원 미만이 적당하겠지만, 이 아이의 미래가치를 따진다면...’

    긴 시간 끝에 결정이 섰다.

    남수영이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봤다.

    각자 준비된 종이에 낙찰 회망 가격을 적는 모습들이 보였다.

    모두 저마다 평가를 내려 결정한 모습이다.

    “모두 다 된 거 같으니, 바로 공개를 하도록 하지요.”

    종이가 오픈되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하나와 오연서의 눈은 종이가 펼쳐질 때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입찰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놀란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헉!”

    “헐.”

    “허허...”

    그리고 모든 시선은 한 곳에 집중이 되었다. 그곳에는 생각도 못 한 숫자가 종이에 적혀 있었다.

    “......”

    한강의 눈도 화등잔만 하게 커져 일순간 사고가 정지가 되었다.

    방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오로지 한 사람만 빼고.

    “정해진 거 같으니,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돈은 한강이의 부모님을 만나 직접 전달하도록 하지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따 보자꾸나. 한강아. 연서야 가자.”

    “교수님...”

    남수영 교수였다. 남수영 교수는 잔잔한 미소를 흘리며 유유히 방을 벗어나 유치원을 떠났다.

    ***

    그날 저녁, 한강의 집.

    “이, 이게 다 무슨...”

    “그림 대회라니요?”

    덕화와 미화는 너무 놀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앞에 놓인 그림과 돈뭉치.

    생전에 처음으로 보는 거금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본래 한강이의 그림은 공모전에 나가 대상을 타고도 남았을 그림입니다. 한데, 시의 어떤 사정에 의해 한강이의 그림이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저는 한강이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가치를 높게 사고 있어 그림을 구입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 돈은 한강이의 그림에 대한 값입니다.”

    한강의 집으로 남수영이 찾아왔다. 위치는 이하나의 도움으로 알게 됐다.

    남수영은 오면서 준비한 돈뭉치를 건넸다.

    “그렇다고 고작 아이 그림에 이만한 돈을...”

    덕화는 너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들의 그림이 인정을 받은 건, 분명 기분이 좋은 일이나 그것도 어느 정도였다.

    몇 달은 벌어야 하는 돈을 그림 한 장에 내놓는 모습은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고작 어린아이의 그림이 아닙니다. 이 그림의 가치는 머지않아, 더욱 크게 오르게 될 겁니다. 또한. 전 한강이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해간다. 작가의 값어치가 오르면 그림의 가치는 배로 뛴다.

    마치 기업의 주가처럼.

    남수영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림보다 한강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

    “총 300만 원이에요.”

    오늘의 최종 낙찰 금액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통이 큰 건 여전하구나.’

    한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종적으로 생각한 건, 맥스치 100만 원.

    예상대로 그림의 가격은 그 정도 선에서 이뤄졌었다. 한데, 변수가 등장했다.

    남수영 교수로부터.

    설마하니 자신의 그림에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을 베팅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정말 이걸 한강이에게 주는 건가요?”

    미화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너무도 얼떨떨한 마음도 들고, 괜히 받았다 잘못되는 건 아닌지 덜컥 겁도 났기에 재차 물었다.

    “네. 이건 이제 한강이의 돈입니다. 전 한강이가 훗날 멋진 작가가 될 거라 확신해요.”

    목에 힘주어 말했다. 한강은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결코 진흙에서 헤엄칠 그릇이 아님을, 몇 시간 겪어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화와 미화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남수영은 둘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환경은 조금 빈약한 정도. 여느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럼에도 저런 의젓하고 영특한 모습이라니. 새삼 대단하구나.’

    덕화와 미화를 만나기 전만 하더라도 한강의 교육 비법을 물어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둘을 만나고 나서 생각을 바뀌었다.

    가정환경과 부모의 영향이 아닌, 한강이 스스로 개척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주 특별한 아이였다.

    ‘다행이라면 둘의 인성과 생각이 올곧다는 점이야. 다행이야.’

    그나마 덕화와 미화가 젊음에도 못난 성격이 아님에 크게 안도를 하였다.

    “시간도 늦었고 이야기는 모두 끝난 거 같으니, 전 이만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남수영은 만족한 미소를 입가에 품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시죠.”

    미화가 나가려는 남수영을 잡았다. 그냥 보내기에 너무 미안했다.

    “아니에요. 내일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준비하려면 지금 일어나야 합니다. 한강아, 앞으로 멋진 그림을 부탁한다.”

    남수영은 사람 좋은 얼굴로 말하고는 한강의 부드러운 머리를 매만졌다.

    “네, 선생님.”

    “그래, 담에 또 보자. 그럼, 이만.”

    남수영은 웃는 모습 그대로 집을 벗어났다.

    집에는 덕화, 미화, 한강만이 남게 되었다.

    “한강이 아빠. 우리 꿈을 꾸고 있는 거 아니지?”

    “아마도...”

    덩그러니 놓인 돈을 보며, 꿈이 아닌 현실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 돈 어떡하지?”

    먼저 정신을 차린 덕화가 물었다.

    “한강이 통장에 다 넣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미화가 말했다.

    “그렇지. 그게 좋겠다. 한강이 결혼도 해야 하고, 대학도 보내려면.”

    “아냐, 대학은 우리가 보내주고, 저 돈은 한강이가 쓰고 싶은 데 쓰게 하고 싶어.”

    “그것도 좋고.”

    아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물려줄 생각은 절대 없었다.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부모가 될 생각 또한.

    한강이라면 돈을 섣불리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간에. 참으로 좋은 분들이라니까. 저 돈을 다 가져도 되는데.’

    본래부터 장학금은 모두 부모님께 드릴 생각이었다.

    조금은 욕심을 부려도 될 일인 것을.

    한강은 자신이 나설 때임을 느꼈다.

    “엄마, 아빠. 백만 원은 필요한 데 쓰세요. 전 200만 원만 저금해도 충분해요.”

    “한강아...”

    예상조차 못 한 상황. 당황으로 물들던 둘 눈에 습기가 채워졌다.

    축축한 눈동자는 한강을 향했다.

    ‘휴... 참으로 눈물이 많은 엄마야.’

    그렇게 말은 하지만,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한강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이 미소, 평생 간직하도록 해드릴게요.’

    거실에 나와 가족의 정을 느낄 때, 안방에 켜놓은 TV에서는.

    ***

    [긴급속보입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개최한 어린이 그림 대회 수상작품에 대한 부정이 의심이 된다며 검찰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검찰은 심사위원 명단과 수상자 명단을 확보...]

    미술 대회에 대한 속보가 보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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