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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12화 (12/237)

12화. 5살, 실력 발휘 (2)

두둔!

이곳에 도착한 여성은 바로 이화여대 교수 남수영이었다.

옆에는 이하나의 단짝, 오연서 미술학원장.

“아니, 저분은...?!”

“저분이 여기에 오셨다고?”

“어떻게 저분이 여기에...”

남수영 교수를 접한 순간,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모두 남수영 교수를 잘 아는 얼굴들이었다.

“선생님이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설마... 선생님도 이 아이를 보러 오신 건가요?”

그중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었는지, 다가가 알은척을 하였다.

그들의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보게 될 줄 몰랐네요.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김현 작가님도 그간 잘 지내셨나요.”

에이시스 기획사 대표 홍진구.

화가 김현.

나름 이쪽에서 이름 좀 알린 거장이다.

그럼에도 남수영 교수에게는 한 수 양보하는 행동을 보였다.

“저야, 잘 지내죠. 허허.”

“이거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생겼습니다.”

두 사람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유한강을 바라보며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다섯 살 소년.

과연, 그는 알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지를.

“에헴. 내가 늘 말했지. 남수영 교수님이셔.”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연서가 나와 하나에게 소개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가워요. 저도 연서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나의 인사에 남수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데, 방금 말했던 그 조건 말이에요. 저도 참여해도 될까요?”

“다, 당연하지요. 교수님께서 참여해 주시면 한강이에게도 큰 힘이 될 거예요.”

남수영의 이야기에 하나는 크게 과장된 몸짓을 하였다.

이화여대 교수 남수영.

비평가이자, 평론가로도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안 될 이유는 없었다. 무조건 대환영!

“고마워요. 그런데 원장님도 허락을 하셨나요?”

그것도 잠시, 아직 보이지 않은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치원 선생이 결정을 짓기에 무리가 있음을 잘 아는 탓이다.

“...그게, 실은. 원장님은 저희 엄마세요. 엄마는 아직 출근 전이라 이따 말씀을 드리면 돼요. 그리고 실질적인 관리는 제가 맡고 있어요.”

대반전이 벌어졌다.

‘...허. 이런 반전이 다 있나. 어쩐지 너무 자유롭게 일한다 했다.’

숨겨진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연서를 올려봤다. 그러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고개를 끄덕여 납득했다.

끄덕끄덕.

‘그럼 그렇지. 이하나 선생님. 은수저셨군요.’

“오, 원장님 따님이라니. 잘 부탁해요.”

한강을 더불어 남수영 교수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연서에게 시선을 보내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무언으로 눈치를 주었다.

호호.

연서는 작게 웃었다.

“아니에요. 우리 한강이를 위한 일이에요. 제가 더 잘 부탁드려요.”

한 아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이하나는 큰 사명감을 느꼈다.

‘허허허. 거참. 아주 양파 같은 선생님이야.’

한강은 그녀의 모습에 다시 한번 깊이 빠져들었다.

그저 ‘제삼자’에 지나지 않은 자신을 위하여 선생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접 나서는 모습은 어느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리로 모실게요. 선생님 아이들을 부탁해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동료 교사에게 아이를 맡기고, 1층이 아닌 2층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하나의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모두 이 그림을 봐주세요.”

위로 올라서고 각자 자리를 잡고 대기하는 시간, 남수영이 원통에서 그림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모두의 시선은 그림에 꽂혔다.

“오, 정말 대단합니다. 신문에서 보던 것 이상입니다.”

“심사위원들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조금은 이해 갑니다.”

신문에서는 작품의 모든 걸 보기란 힘들었다. 그럼에도 뛰어남을 숨길 수 없었던 한강의 그림은 접하는 순간 빛을 뿜었다.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런 그림을 대상으로 올리지 않고. 정말 화가 납니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며 각자 지니고 있던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대부분이 한강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믿고 싶었다.

‘보통이 넘는 아이야. 낯선 사람들 사이에 혼자 있음에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모습이라니.’

한편, 남수영은 놀라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 큰 성인도 지금의 자리는 무척 부담스럽게 다가올 자리였다.

그 증거로...

“......”

“......”

꿀꺽.

옆에 있는 연서와 하나의 긴장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한데.

‘저리 여유로운 눈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라....’

이런 자리가 매우 익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남수영의 시선은 한강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하여, 전 하나 씨의 제안을 적극 수용해, 한강이의 실력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시에 항의를 할 겁니다.”

남수영 교수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지만, 겉과 달리 속은 큰 분노에 휩싸였다.

“저는 잘 알고 지내는 기자에게 말해 도움을 구하지요.”

“미술협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이건 작가에 대한 모독입니다.”

“예술협회에서도 지금의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한강의 실력이 진짜라는 데 확신했다. 한강의 모습부터 범상치 않았다. 처음부터 평온한 모습, 몸에 여유가 넘쳤다.

성인도 하기 힘든 걸, 다섯 살 아이가 해내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큰 믿음을 주었다.

‘정말이지, 언론의 힘은 무서울 정도야.’

오해로 세상에 뿌려진 작품, 그러나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국내에 뻗어 있는 실력자에게 진한 호기심을 전달하였고, 새로운 시도로 그려진 수준 높은 그림은 유명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었다.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한강이의 실력을 입증하기에 앞서... 한강아.”

남수영은 자상한 목소리로 한강을 불렀다.

“네. 선생님.”

한강은 전생의 기억을 살려 남수영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듣기 좋구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네 그림 실력을 보고자 한단다. 우리를 위하여 너의 그림을 그려줄 수 있겠니?”

다섯 살 아이라고 하나,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다.

이미 결정된 일이나, 한강의 허락을 구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지 않아도 된단다.”

여기에 모인 이유는 한강의 실력을 밝히기 위해서였으나, 굳이 강요는 하지 않았다.

제자가 입증을 하였고, 한강의 모습이 확신을 주었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큰 수확이었다.

“아니에요. 선생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여기 계신 분들의 마음도요. 저의 그림을 유명한 분들 앞에서 뽐낼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두근거려요.”

한강은 의자 위에 올라서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진한 흥분감이 얼굴 위로 나타났다.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

“......”

“......”

하나,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삽시간에 방 안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큼, 그래. 그럼 뭘 그려 볼래?”

“아무거나 그려도 될까요? 눈앞에 있는 그림을 또 그리면 될까요?”

너무도 태연한 모습,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유유자적한 모습에 놀라움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아니다. 자유롭게 그리면 될 거 같구나. 그리고 우리는 너의 모습을 여기 카메라에 담을 거야. 이건 방송국을 통해 세상에 뿌려질 건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전 괜찮아요.”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일이 쉽게 풀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강은 이 또한 당연하게 받아넘겼다. 신문만도 엄청난 효과를 내보였다. 그럴진대, 방송으로 전국에 내보낸다면, 시에서 주최한 공모전은 어떻게 될까?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질 터다.

‘허허, 이거 참...’

‘기대가 돼.’

‘내가 다 떨려.’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려 우리를 놀라게 해 줄까?’

사람들은 놀란 모습을 지우고, 기대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 한강을 주시했다.

“공모전 그림에 대한 제 실력을 입증하는 자리이니, 수채화가 좋겠네요. 간단히 저기에 자리한 음료수를 그려 보도록 할게요.”

“......”

“......”

사람들은 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기존에 갖고 있던 모든 상식을 눈앞에 다섯 살의 아이가 산산이 부숴버렸다.

“아, 좀만 기다려. 선생님이 금방 가져올게.”

하나는 후다닥 밖으로 나가 1층으로 향했다.

한강을 위한 수채화 용품을 챙기기 위해서다.

“대체 무슨 일인데, 너네반 아이들을...”

“엄마 미안. 내가 좀 있다 자세히 말해줄게.”

무슨 일이기에 아이들을 다른 선생에게 맡기고 2층에 있는지, 2층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물어보려던 김문숙 참뜻 유치원 원장은 휑하니 나가버리는 딸의 모습에 열었던 입을 닫아버렸다.

“저 노무 지지배가 대체 뭔 일을 꾸미기에...”

따라 올라가려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심상치 않아 차마 올라가지 못하고 방향을 꺾어 방으로 돌아갔다.

‘오기만 해봐’를 나직이 중얼거리면서.

“한강아 이거면 되겠지?”

후다닥 올라온 하나는 바구니 잔뜩 들어 있는 미술용품들을 꺼내며 물었다.

“네, 이거면 돼요.”

비록 전문가용 물감은 아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대회에 내놓기 위한 그림이 아닌, 실력을 입증하는 자리기에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시작하겠습니다.”

결연한 의지를 담아 앙증맞은 오른손으로 연필을 뽑아 들었다.

‘후웁, 후. 확실히 보여주자. 방송을 타는 작품인 만큼.’

옅은 실선이 빠르게 하얀 도화지 위를 채워간다. 약간의 망설임도, 멈춤도 없는 움직임.

여러 개인 선은 하나로 만나 음료수의 형태를 취했다.

전생의 기억이 뇌를 통해 손끝으로 전달된 순간, 감각이 살아나며 기적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저 작은 손으로 저게 가능한 건가?”

손끝에서 벌어지는 기적 앞에 사람들의 입은 쩍 벌어졌다.

“......”

“......”

현실성이 떨어지는 비상식적인 일이 참뜻 유치원 2층 방 안에서 벌어졌다.

다섯 살의 작은 손에서 나오기 힘든 빠르고 정확한 동작.

이것만 보더라도 놀라운데, 거기에 더하여 음료수에 있는 글씨까지 빼놓지 않은 디테일을 고스란히 살렸다.

‘지금부터 넌 콜라가 되는 거다.’

드로잉을 끝내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붓을 뽑았다. 붉은색 물감의 밝음과 어둠의 조화가 한데 어우러지니, 그림은 서서히 도화지 위로 솟아올랐다.

색들이 섞여 하나의 색으로 진화해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빛을 가려 만들어진 그림자가 음료수 캔 밑으로 까맣게 채워졌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지만, 정말 믿어지지 않아.”

“대체 저 아이의 정체는...”

자리한 사람들은 그림에 푹 빠져들었다. 아주 단순한 음료수 캔 하나를 그렸을 뿐이지만, 이건 단순히 음료수 캔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다 됐다.”

그림을 지휘하듯 도화지 위를 노닐던 붓이 허공으로 떠오른 순간.

도화지 위에 코카콜라 캔이 세워져 있었다.

“정말 훌륭해.”

생동감마저 느껴지는 그림.

색에 대한 이해와 센스가 그림 안에 모두 녹아들었다.

남수영은 책상 위에 올려진 그림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에게 알리던 교과서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갔다.

그야말로 교과서의 표본. 아니, 그 이상의 작품이었다.

“한강아, 혹 그림을 언제부터 그렸니?”

손의 움직임과 색에 대한 감각은 절대 짧은 시간에 익힐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1년.

아니 반년?

사실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3개월 정도가 고작이었다.

남수영은 한강의 입술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저번 달 미술 시간이 처음이에요.”

뭐라고 말할까 하다, 설명할 길이 없어 냅다 질렀다.

함께 있는 이하나 선생에게 말한 것과 같은 답안을 내놓았다.

“......”

남수영은 얼빠진 얼굴로 한강을 바라봤다.

이 말이 사실이고, 스승이 없다면.

“그냥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생각한 대로 그림이 그려져요.”

“정말 믿을 수 없어. 이건 역사에도 없는 일이야.”

남수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참말이더냐?”

남수영은 떨리는 눈으로 재차 물었다.

이하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끄덕, 이하나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한강은 더욱 대담하게 나갔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 살폈다.

“정말 믿을 수 없어. 설마 이 정도의 수준 높은 실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런 한강의 행동에 남수영은 허탈한 얼굴로, 주변 사람들한테 물었다.

“...이렇게 모든 걸 목격을 하였는데,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인정합니다. 제 이름을 걸고 증인이 되어드리지요.”

“저도 같습니다. 이런 실력을 확인도 하지 않고 멋대로 규정 위반 작품으로 지정해 수상작에서 빼다니. 이건 시에서 부정이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사람들 눈에 진한 경멸이 일었다.

“절대 이번 일은 가벼이 넘기지 않을 겁니다.”

“혼을 담은 그림을 감히...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처럼 열받는 일은 다시 없을 터다.

“저 선생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모두가 진실을 밝히고자 결연한 의지를 담는 모습을 보며 한강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이목은 단번에 한강에게 집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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